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쓴 세상에 없던 과학 세계사

예전에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울 땐 유럽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계사가 당연한 건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이제는 유럽사가 곧 세계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도 조금씩 변해와서 이제 세간의 인식 속에서도 조금씩 그런 깨달음이 꽤 많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문화도 역사도 과학도 그 기원을 전부 유럽에서 찾아왔었던 과거의 인식엔 문제가 있다고,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학문의 기원이 유럽에서만 있던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이 책도 그러한 종류의 책이다. 이 책은 말한다. 과학 천재는 유럽에만 있었냐고? 아니라고, 우리가 아는 과학의 역사는 반쪽짜리 였다고!

전통적으로 주장되어온 바에 따르면 근대과학의 역사는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론을 발전시킨 19세기의 영국 박물학자 찰스 다윈과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안한 20세기 독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들에게만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이야기다. 여기에 따르면 19세기의 진화론에서 20세기의 우주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근대과학은 유럽에만 국한되어 발달한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근대과학의 기원에 대해 아주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었다. (p. 13) -시작하는 글 中-

근대과학이 유럽에서 태동했다는 주장은 단순히 기원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바탕엔 착취와 왜곡의 역사가 깔려 있었고, 경제와 정치가 늘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과학적 발견을 낱낱이 살피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가 근대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했는지 보여줌으로써 그동안의 과학사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몇 명의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과학이 발달해 왔다는 것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유명한 천재들의 일화에 감춰진 진실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의 요약>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알리 쿠시지의 결과를 인용해 레기오몬타누스는 모든 행성 궤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다른 지점'이 사실 태양이라고 주장하며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 (p. 90)

갈릴레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책도 사실은 그 이전 이슬람 학자들의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8세기까지의 대항해 시대에 천문학과 수학이 유럽에서만 발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항해는 그야말로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휘젓고 다녔고 모든 교류는 상호적이지 일방적일 수 없었다. 유럽은 세계의 모든 자원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도 빨아들였다. 그들의 발견은 그들만의 발견이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해왔던 것이다.

뉴턴은 잉글랜드은행을 비롯해 아시아와의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지닌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관리했다. 또 런던에서 왕립 조폐국장으로 일하면서 금과 은에 대한 해외 무역을 감독하며 생애 마지막 30년을 보냈다. 이렇듯 뉴턴이 금융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되는 18세기 과학의 한 측면을 암시한다. (p. 134)

과학자로만 알려진 뉴턴은 외톨이 천재로 묘사되곤 하지만 사실 뉴턴은 돈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노예무역이 절정에 이르렀던 18세기 뉴턴의 투자는 그 핵심을 향해 있었다. 뉴턴은 순박하고 고립된 괴짜 과학자가 아니라 경제에 눈밝은 금융맨이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무역의 대부분이 자연 세계에서 가져온 상품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무역 회사는 그들이 취급하고 있는 상품을 분류하고 평가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사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p. 184)

린네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각 나라에서 특별히 유용한 것을 생산하도록 배열되어 있으며 경제학의 과제는 다른 곳에서 재배하려 하지 않는 작물을 경작하고 모으는 것이다" 린네는 이것이야말로 자연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단지 전 세계 동식물 목록을 만드는 데 지나지 않고 유럽에 유리한 방식으로 무역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p. 185)

자연학의 발달이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새로운 발견으로 발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은 무역과 경제와 유럽이 벌어들일 수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이 시기에 발전한 자연사 지식은 제국의 무역 산업과 분리할 수 없다. (p. 194)' 어디 자연사만 그랬을까. 저자는 말한다. '근대과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전 세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p. 225)' 라고. 뉴턴의 발견도 린네의 분류도 모두 무역과 관련이 있었기에 과학사를 과학적 발견으로만 보는 것은 그야말로 반쪽만 아는 것이 될 것이다. 다른 시대의 과학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윈은 유럽에서조차 진화론을 주장한 최초의 사상가가 아니었다. (p. 235)

다른 많은 나라가 그랬듯 다윈주의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관념은 생물학자들뿐 아니라 정치 사상가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었다. 이 관념은 산업화와 군사적 확장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p. 264)

다윈이 처음 깨달은 것도 아닌 진화론이 시대의 사상으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그 시대를 흐르는 역사적 흐름 때문이었다. 진화론은 생물학에서보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더 맹위를 떨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심지어 과학에 있어서도 말이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이 과학계의 중심이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는 앞에서 살폈다시피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얻은 경제적 이득에 힘입은 결과가 대부분이었으며, 유럽 이외 지역 출신의 과학자들도 일정 부분 공헌을 했다. (p. 282)' 그런데 우리는 몇몇의 천재들에 가려진 다수의 공헌과 노력에 너무 무심해 왔다. 무엇보다 그 시대의 역사와 너무 떨어뜨려 생각해왔다. 하지만 과학은 시대의 정치경제와 너무나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던 것이다.

19세기 물리학과 화학의 역사는 고립된 유럽 출신 개척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민족주의, 전쟁, 산업의 전 세계적인 흐름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잘 설명된다. (p. 286)

파시스트,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참정권 운동가, 반식민지 운동가는 모두 190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그리고 정치는 과학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p. 345)

20세기의 물리학과 국제정치의 연관성도 앞선 시대에서 과학과 정치경제와의 관계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도 물리학만 연구하고 있던 학자는 아니었고.

과학에 한 획을 그었다면 그었다고 할 수 있을 코페르니쿠스, 뉴턴, 린네, 다윈, 아인슈타인등 그들의 과학적 업적은 유명해도 그들이 살던 시대와 역사를 연결지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왜일까? 의도적으로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게끔 우리를 만들었던게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왜 그랬을까?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유산을 단순히 무시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살펴야 한다. 과학의 미래는 결국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발전했던 과거에 대한 더 나은 이해에 달려 있다. (p. 472)'는 저자의 마지막 당부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반쪽만 아는 것은 결코 전체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라도 반쪽짜리 과학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이 그 시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