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현대지성 클래식 48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최고의 부조리 소설

사르트르·바르트가 극찬한 문체를 생생히 살린, 가장 카뮈다운 번역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다. 나도 아마 언젠가 읽었었고 길지 않은 작품이기에 줄거리도 대충 기억하고 있는 몇 안되는 세계문학 중 하나일 정도로.

'국내최초 컬러 일러스트 수록' 이라는 문구에 기대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큰 기대를 안했던게 다행이었다. 일러스트보다는 '가장 카뮈다운 번역' 이라는 문구에 끌렸었고, 그래서인지 과거에 읽은 <이방인>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예전엔 냉정하게 읽었다면 이번엔 인간적으로 읽혔달까. 왜였을까...

<이방인>을 번역한 지 6년 만에 출판사를 옮겨 개정판을 내면서 몇 가지를 보완했다. 무엇보다 번역문 자체를 꼼꼼하게 다시 읽으며 정확성을 더하고자 애썼고, 특히 카위의 문체를 더욱 온전하게 전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 초판본에 실린 옮긴이의 <해제>외에 <이방인>에 대한 카뮈 자신의 글을 번역하여 실었다. (p. 16) - 옮긴이의 말 中

비교적 짦은 작품이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나오면서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답게 작품 이해를 돕는 알찬 정보들이 앞뒤로 꽉 들어차 있다. <이방인>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역자의 말이 초판본과 개정판본 모두 실려 있어서 번역에 있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알 수 있고, 카뮈 자신의 미국판 서문과 작가노트를 통해 작가의 생각도 알 수 있으며, 충실한 해제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좀더 고찰해 볼 수 있다.

역자는 [<이방인>의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에 맞추어 형식이 선택되었다는 사실, 그 간단한 사실을 기억 (p. 19)]하는 것이라 했고, 카뮈는 [<이방인>에서 아무런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것은 크게 틀린 독법은 아니리라 (p. 22)]라고 했다.

'뫼르소는 표류물이 아니라 어둠을 남기지 않는 태양을 사랑하는 인간, 가난하지만 가식 없이 솔직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부재하기는커녕 집요하고도 깊은 열정, 절대와 진실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중요한 것은 아직은 소극적인 진실, 존재하고 느낀다는 진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다는 진실이다. (p. 21)' 라는 카뮈의 설명을 읽으며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읽기전부터 그동안 내가 기억해온 '이방인'의 이미지는 깨져가고 있었다. 냉정과 냉소가 아니라 문장의 형식 그리고 뫼르소의 진실 이라...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실은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삶의 변화에 관심이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누구도 결코 삶을 바꿀 수 없고, 결국 이런 삶이나 저런 삶이나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지금 여기의 내 삶이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p. 73)

나는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이고, 그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대답한 대로,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아마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와 결혼을 하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 문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p. 74)

뫼르소는 직장사장이 파리지사 근무를 제안했을 때 이러나저라나 마찬가지라고 했고,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마리가 원할때 언제든지 결혼하자고 말했다. 뫼르소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기에 서 있거나 어디론가 떠나거나 결국 마찬가지였다. (p. 91)' 그런 그가 해빛을 넘치게 받으며 열기에 취했을 때 방아쇠는 당겨졌다.

내 모든 존재가 팽팽히 긴장했고, 나는 권총을 꽉 쥐었다. 방아쇠가 놀았고, 총자루의 미끈한 배가 느껴졌다. 그리고 메마른 동시에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을, 내가 그토록 행복해했던 바닷가의 기이한 침묵을 깨뜨렸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방을 쏘았는데, 총알은 그런 것 같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그것은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p. 95)

뫼르소가 아랍인을 행해 총을 쏘는 것을 기점으로 이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뫼르소의 일상이라면 2부는 뫼르소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살아온 뫼르소는 한낮의 열기에 약했다. 어머니의 장례식때도 바닷가에서 적대적인 아랍인을 맞다닦드렸을 때도 뜨거운 한낮이었고 뫼르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의 그의 태도로 인해 벌어진 일들로 인해 그는 죄인인 것인가?

나는 천성적으로 육체적 욕구가 감정을 방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그에게 설명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나는 몹시 피곤했고, 졸렸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었다. (p. 103)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 절대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실상 쓸모없는 일이었고, 귀찮기도 해서 그러기를 단념했다. (p. 104)

어찌되었든 뫼르소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었으니 살인범이다. 하지만 예심판사는 그에게 '하느님을 믿느냐' 고 물었고, 검사는 그의 행위에 대해 '어머니의 장례식 이튿날 더없이 수치스러운 정사에 탐닉했던 자가 하찮은 이유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치정 사건을 결말짓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p. 138)' 라면서 '범죄자의 가슴으로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유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p. 139)' 라는 결론으로 뫼르소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뫼르소가 장례식에서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사실인 동시에 아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p. 132)' 라는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p. 139)' 라는 변호인의 말은 방청객들을 웃게했지만 배심원단은 사형을 결정했다. 뫼르소는 '어떻게 한 평범한 인간의 장점이 죄인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p. 143)' 사람을 총으로 쏴 죽였고 재판 중 한번도 반성이나 후회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거의 무감정으로 보이는 뫼르소도 하지만 모두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 한없이 흔들리는 그저 인간.

나는 그들이 새벽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컨대 나는 그 새벽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다. 나는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을 싫어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길 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낮에 잠시 잠을 자두었고, 밤에는 천창에 빛이 비칠 때까지 계속 끈기 있게 기다렸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보통 그들이 그 일을 실행하는 때라고 내가 알고 있었던 모호한 시간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렸고, 동정을 살폈다. 내 귀가 그토록 많은 소리를 감지하고, 그토록 작은 소리를 분간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럼에도 발걸음 소리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나는 그 무렵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종종 누구라도 완전히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하늘이 유색으로 물들고 새로운 하루의 햇살이 내 감방으로 미끄러져 들어왔을 때, 나는 엄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쩌면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고, 그리하여 내 심장이 터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비록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려도 문가로 달려가곤 했찌만, 비록 문짝에 귀를 댄 채 정신없이 기다리다 보면 나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개의 헐떡거림을 닮아 있어 화들짝 놀라곤 했지만, 결국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24시간을 벌었다. (p. 158)

그러나 뫼르소는 감옥에서 똑같은 매일매일을 보내며 결국 그러한 감옥의 생활이 일상이 되면서 본연의 뫼르소식 생각으로 안정을 찾아간다. 하지만 면회를 계속 거절했음에도 찾아온 부속 사제와의 대화로 인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뫼르소를 설득하려는 부속 사제에게) 분노가 폭발하고 새로운 마음의 평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또한 뫼르소만의 방식으로.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게서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준 듯, 신호와 별들이 가득한 밤의 어둠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가슴을 열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았고 그토록 형제 같으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결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내게 남은 처형일에 모쪼록 많은 구경꾼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주기를 소망하는 것뿐이었다. (p. 171)

뫼르소는 이제 유일하게 공포를 느꼈던 자신의 죽음 즉 사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어떠하리라는 평온을 찾았다. 삶의 선택에 있어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 라고 말하던 뫼르소는 이제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러나저라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달까.

책의 의미는 정확하게 말해 1부와 2부의 평행관계에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사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또한 우리는 결코 우리가 짐작하는 범죄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지 않는다. (p. 174)

세 인물이 <이방인> 속에 들어 있다. 두 남자(그중의 하나는 나)와 한 여자. (p. 179)

알베르 카뮈가 남긴 노트에는 저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각자 다를테지만 사회에서 통용되는 슬픔의 형식이 있고 법은 죄를 벌하는 것 같지만 죄인은 범죄때문에 유죄를 선고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두 남자와 한 여자는 누구일까? 뫼르소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카뮈라고 할 수 있을까?

역자는 [해제]에서 '카뮈의 작품 세계는 부조리, 반항, 사랑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요약되며, 각각의 주제는 에세이, 소설, 희곡으로 형상화된다. (p. 184)' 라며 카뮈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엮어 문학적 특징을 설명해 준다. 그는 살면서 부조리한 사회에서 반항을 시도하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사랑도 했다. 하지만 어디서든 그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그의 사고방식이 그런 존재감을 만든 것인지 그의 존재위치가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한건지 구분지을 순 없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방인>은 이해해달라는 책이 아니라 의심해달라는 책이다. 늘 익숙하고 안정된 세계가 돌연 나의 고향, 나의 왕국이 아니라는 느낌, 이 느낌을 얻는 자가 바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인간' 즉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일 것이다. <이방인>을 읽은 후 확신이 아니라 의심 속에서, 안정이 아니라 동요 속에서 자신의 근원적 이미지를 찾아 조용한 성찰의 여행을 떠나는 것, 그것은 곧 <이방인>을 정독했다는 뜻임이 틀림없다. (p. 197) -해제 中

거의 쌍둥이 아니 요샛말로 연관검색어 처럼 붙어 다니는 '이방인- 부조리'

나의 기억속에서도 이 작품은 그러한 이미지였는데, 지금 오랜만에 새 번역으로 다시 읽은 나는 왠지 뫼르소의 무심함에 공감이 되고 슬퍼지면서 인간적으로까지 여겨지는데... 의심이 아니라 이해를 얻은, 동요가 아니라 안정을 느낀 이번의 독서가 <이방인>의 정독에 대한 역자와 견해와는 좀 다를 테지만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웠다. 성찰을 하며 살기엔 아무래도 내 삶이 좀 팍팍한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