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이름의 기적 - ANA WITH YOU
박나경 지음 / 청림Life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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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 With You 일상이라는 이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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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라는 이름의 기적 : Ana with You>의 저자 Ana, 한국 이름 박나경은 블로그를 "일부러" 꾸리지 않았다. 파워블러거를 욕심내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블러그로 "뭔가" 해보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온라인 사이트 상에 내 집을 짓고," 10년 동안 꾸리면서 타인을 의식해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Ana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nasmile를 찾는 데 대해 저자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왜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 것일까 참 신기했었다(7)"라고 겸손히 말한다. 육아, 연애, 결혼 에세이 치고는 상당한 분량인 323쪽의 <일상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읽고 나니, 왜 그녀의 블로그가 인기 있는 줄 알겠다. 엄청 솔직하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게는 19금 수준으로 굉장히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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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학번, 한국 나이로 40세의 아이 엄마들이라면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자기 첫사랑 이야기, 20대의 "등에 칼 꽂힌 것 같은 아픔을 주던" 연애史, 시댁 식구들 이야기, 특히 시부모님 이야기 이렇게 공적인 공간에 활짝 열어 제끼기 어렵다. 그런데 그녀는 아주 쿨하게 시시콜콜, 자신의 내면, 가족의 소소한 일상, 관계의 그물들을 독자에게 다 보여준다. 그건 아마 그녀가 박나경인 동시에 Ana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글로벌 다문화 가족으로서 한발은 한국에, 다른 한 발은 미국에, 또 가슴은 페루에, 또 머리는 이 세상 온갖 것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 열린 사람이다. 그녀의 활기와 부지런함, 지칠줄 모르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도전하는 독특한 모험가적 기질은 그녀의 얼굴표정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블로그에 전체 공개로 올리고, 저서에 삽입하는 자기 사진이야 별다섯 수준의 컬렉션에서 뽑은 것이겠지만, 20대의 박나경에게서도 40에 진입한 Ana에게서도 특유의 활기를 본다. 아름답다. 그녀의 남편인 마이크 역시 이런 열정과 활기에 반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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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될 지 모르는 박나경 저자에게 "내가 당신의 320여쪽 에세이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페이지는, 당신 남편분의 목 늘어진 회색 티셔츠 이야기였어요."라고 하면 저자가 나랑 친해지고 싶을까? 자신처럼 'sensitive, delicate'한 인간형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보러 처음 아레끼빠에 왔을 때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이라고 믿어질 만큼 비슷한 스타일의 오래된 회색 셔츠만 주구장창 입었다. 하나같이 목이 늘어났고, 보풀이 퍼져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면 늘 좋은 비누향이 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과 옷차림이 깔끔했고 언제나 당당했다. 구김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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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이렇게 사랑하고, 뜨겁게 분출하고. 또 그러려면 Ana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여성에게, 재생산이라는 반 필연의 과업은 넘기 힘든 큰 산맥이 되기도 하는데, 작가가 되고픈 자신의 꿈을 오히려 그 바탕에서 실현시키는 그녀에게 응원을 보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시샘도 보낸다. 그녀랑 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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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
김우열 지음 / 잉크(위즈덤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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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번역 한번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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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면 당한다"기 보다는 "모르면 할 말이 없다."를 최근 실감. 번역자격증 획득 (+ 이를 위한 강좌 수강)을 권유하는 통화에서 '기술번역/영상번역/출판번역'과 같은 기본적 범주어조차 모르니 대화가 안 될 수 밖에. 그래서 찾게 된 착한 안내서가 바로 <나도 번역 한번 해 볼까?>. 저자 김우열은 <시크릿>의 역자이자, 번역단체 "바른번역"의 부대표이자, 1년 전까지도 네이버 까페 "주간번역가"의 까페지기로서 활동했다고 한다. 저자 역시 이화여대나 한국외대의 통번역 프로그램 이수를 거치지 않고도 우연히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 왕성히 활동, 현재는 입지에 오른 번역가인만큼 번역의 세계를 기웃거리나 잘 알지 못하는 입문자의 상황을 잘 안다. 그들이 궁금해할 내용을 Q&A형식으로 꾸렸는데, 마치 김우열 저자와 1:1 상담이라도 하듯 "내가 궁금한 내용"을 콕콕 집어서 먼저 설명해주니 시원하다.

*

어느 한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초보 번역가, 이름 있는 번역가, 출판사, 번역가 입문을 못해서 기웃거리는 이들을 두루 고려해서 책을 써주었기에 읽는데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저자가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여러 이해관계에 두루 얽혀 있기에 말이 조심스러운 측면은 있겠으나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준다. 예를 들어, 번역 계약서 작성하며 출판사에게 (혹시라도) "을"되지 않기라든지, 형편 없는 번역문으로 두고두고 욕먹지 않을 수준의 번역 실력 갖추기 등 다양한 입장에서 충고를 해준다.

읽다보니,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할지 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김우열 저자 덕분이다. 외서 기획에 관한 자세한 안내문이 김우열 저자가 실제 썼던 기획서를 예시로 실려 있다.

 

기획의 절차
1. 한국 내 출간 및 판권 확인: 편집자에게 직접 부탁이 가장 빠름 혹은 해외 저작권 에이전시 (엔터스 코리아, 에릭양 에이전스, 북코스모드 등 활용)
2. 출판사에 연락 & 기획서 발송: A4 1~2매 (제목 및 기본 정보, 저자 소개, 제안 이유, 책 소개, 차례, 독자 서평)
3. 2차 기획서: 1차 + 상세 검토사항 (기획의도[제안 이유], 원어민 독자 서평, 책 목차, 발췌 번역, 기획가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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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심리학 -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드는 공간의 힘
바바라 페어팔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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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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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기록삼아 올리는 리뷰 중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검색해보니 몇 편이나 검색된다. , <글쓰는 여자의 공간>, <공간의 재발견>. 심미적 안목도, 추구할 성실함도 결여된 인간형이지만, 적어도 꿈을 실현시키는 데 공간의 중요성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
"성스러운 공간"찾기가 더 쉬운 시절, 더 편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어느 땅에 발 딛었던 간에  wifi전자파가 파파팍 터지고, 소음과 미세먼지가 가득한데 나만의 성스러운 공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아니 일상의 번잡함과 경쟁의 속도감 때문에 애시당초 "성스러운 공간" 찾을 생각조차 잊게 된다. 바쁜 도시인의 비애이다. 그런데 정작 꿈을 실현시켜주는 요소는 잘 받은 교육이나, 대단한 자격증, 금수저 부모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간과 시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관리하느냐의 능력이다. 그걸 자꾸 놓치게 된다. 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가 바로 공간의 소중함인데 말이다. 꿈을 꾸고 있거든, 그 꿈을 실현시키고 싶거든 먼저 자신의 공간부터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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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심리학 (원제: 영혼이 편안한 공간 Ein Zuhause für die Seele)>은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과 거리가 멀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심리학 전공을 살려 공간 심리학자로 활동중인 바바라 페어팔 (Barbara Perfahl) 이 썼다. 종종 풍수지리가로 오해받기도 한다는 그녀는 주로 개인과 회사, 부동산 중개인을 주요 고객으로 공간관련 심리 상담을 해왔다. 따라서 이 책은 알록달록 천연색 사진으로 아름다운 실내장식을 보여주거나, 아이들 방 꾸미는 팁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주거 욕구를 파악하고 현재 주거 상황을 되돌아봄으로써, 공간을 변화시키게 동기부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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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제 3의 피부'임을 강조하는 이 책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어휘가 바로 '주거 욕구'이다. 살짝 생소하다.  "인간이 집에 바라는 기대나 요구"를 의미하는데, 다음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안전 욕구, 휴식 욕구, 공동체 욕구, 자기표현 욕구, 환경 구성에 대한 욕구, 심미적 욕구이다. 내가 살고 싶고 꾸리고 싶은 집을 만들려거든 먼저 자기 내면부터 살펴보라는 의미이다. 실제 바바라 페어팔 박사가 공간 상담 의뢰를 받으면,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 이전에 그 사람부터 파악한다고 한다. 독자 역시 자신의 주거욕구를 철저히 분석한 이후에, 공간 변화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공간, 집이라는 공간을 바꿈으로써, 인생에도 변화가 오리라는 기대와 함께. <공간의 심리학>이 흥미로웠다는 저자라면 소린 벨브스 (Xorin Balbes)의 <공간의 위로>를 꼭, 꼭 함께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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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나를 찾는 길 - 4,300킬로미터를 걷다 처음 맞춤 여행
김광수 지음 / 처음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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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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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T (4277km),  CDT (4900km),  AT (3508km)라는 영어 대문자 조어가 트레일을 나타냄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세 트레일 모두를 완주한 독일 여성이 쓴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원제: Laufen, Essen, Schlafen: Eine Frau, drei Trails und 12700 Kilometer Wildnis)>덕분이었다. 그동안 걷기(의 효용성)을 예찬한 고매한 분들의 글을 기웃거려본 적은 있으나, 이처럼 '걷기 자체가 목적'인 걷기의 희노애락을 본격 이야기한 책이 처음이었기에 꽤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 독일인 저자 크리스티네 튀르미야  마찬가지로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고 PCT에 도전한 한국인이 책을 썼다기에 놓칠 수 없었다. 400여 페이지의 길고 긴 에세이였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는 사진이 많아서 페이지를 술술 넘기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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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김광수는 사남매 중 맏이 아닌 아들로서 한국나이로 35세의 미혼남성이다. 원체 산을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인 스스로 수십 차례 "짧은 영어," 혹은 "서바이벌 영어"라는 수준의 영어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도전할만큼 그는 용감하다. 또한 400여 페이지의 에세이의 반 이상이 트레일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묘사나 그들과의 친교활동에 할애되는 만큼, 김광수는 사교성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같다. 그러니, <나를 찾는 길>을 통해, 자아의 심연에 침잠하여 자신을 성찰한다거나 걷기의 명상을 대리체험하고 싶은 독자는 기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고독한 4277km의 길에서 온통 고마운 인연, 놓치지 싫은 인연은 끊임 없이 만나고 만든다.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그의 성격 덕분에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관계도 따뜻한 인연이 된다. <나를 찾는 길>을 읽다보면, 왁자지껄하고 취기가 올라오는 흥겨운 술자리가 자꾸 연상된다. 조용한 명상의 걷기가 아닌, 다국적 친구사귀기 프로젝트로서의 걷기. 아무튼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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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위에서의 5개월간 하루도 빠짐 없이 쓴 일기처럼 <나를 찾는 길>은 놀랍도록 시시콜콜하고 자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신라면을 누구에게 나눠주었다든지, 어디어디 브랜드 신발은 어떤 점에서 약하다든지, 누구랑 누구 누가 삼각관계라든지, 언제 먹은 맥주는 미지근했다거나 혹은 시원했다든지의 내용 말이다. 마치 일기인양 당황스러우리만큼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 적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김광수 저자처럼 처음 PCT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조언과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을테니까. 또한 저자 혹은 저자의 트레일 동료들이 직접 찍은 사진 덕분에 활자로만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천혜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독자가 간접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현재 트레일 러닝화 브랜드 소속 하이커로 활동중이라니 김광수가 다음번엔 CDT, AT에 도전하리라는 데 한 표 내기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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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 그녀의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다이어리
크리스티네 튀르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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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미국 3대 트레일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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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까막눈인지라 원제 의 뜻을 모르겠으나 한국어판 제목,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자꾸 곱씹게 된다. "생이 보일 때까지" 걷겠다면, 저자 크리스티네 튀르미 (Christine Thurmer)는 아직도 그 "生"이란 걸 찾고 있는 걸까? 1967년생, 한국 나이로 51세인 이 분은 여전히 고국인 독일에 집도 두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걷고, 사이클 타고, 걷고 있으니까. 여전히 생을 찾고 있나보다. 그녀의 개인 블로그( http://christine-on-big-trip.blogspot.kr/ )의 자기 소개란에서 " I still have not had enough."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아직 덜 충분하다는 뜻일까?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고 나서도, 난 아직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왜 걷는지 잘 모르겠더라. 본인이 카페인 중독이 아니라 식수조차 귀한 산 속에서 다행이라던 그녀는 그냥 "걷기 중독"일까? 왜 걷는지 잘 모르겠더라.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도 도통 모르겠어서, 그게 참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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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생각하면 크리스티네 튀르미야 말로 걷기 자체가 목적인 도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사로운 '무엇'을 위하여가 아니라, 그저 낯선 곳을 걷는 자체가 즐거운 사람. 일반 하이커들과 차원이 다른 사람. 그녀는 트리플 크라운 (멕시코와 캐너다 국경 사이의 PCT 4277km,  CDT (4900km), 미국 동부의 AT (3508km)를 완주한 자에게 미국 장거리 하이킹 협회가 수여함)을 받는 다거나, 걸어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지병을 고치고 건강해지겠다거나, 정신적 성숙을 도모하겠다거나,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자유를 느끼겠다거나 하는 구체의 목적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맘이 내키면 행동으로 옮겨 바로 걷는다. "오로지 걷는 것이 목적"이 진정한 걷기의 달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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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cm가 넘고, 족히 80kg은 넘어 보이는 거구에 평소 운동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30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필 받아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총 4277km에 이르는 PCT 길을 종주한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잡 인터뷰를 하는데 사장단에게 질문을 받는다. "PCT, 그게 뭡니까?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는 질문에 그녀가 받아 친다.
"빌헬름 사장님, 진작 자아를 찾지 못한 사람은 그런 트레일을 절대 완주할 수 없습니다. 다섯 달 동안 혼자서 야생 속을 걸으려면 떠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죠.(235)" 이 문장이 암시하듯이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는 한국인 독자가 기대하는 것처럼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여행을 그리는 책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착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왜 그런 착각과 기대를 했을까를 역으로 내 자신을 정신분석했으니까. 쓰루하이커(through-hiker) 사이에서 GT (German Tourist)로 통하는 그녀는 독일인 독신 여성의 시각에서 미국 문화와 다른 국적의 쓰루하이커들을 관찰한다. 하이킹에서조차 1등을 하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에게서는 성과 제일주의를 읽어낸다. 겉으로는 자유를 표방하지만 동성애자들의 무지개 상징에 긴장하고 온천 앞에서 나체되기를 꺼리는 미국인의 이중성을 비웃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를 찾는다거나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땅이 보이니까 걷는다. 걸으면서 도시에서의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듯, 트레일 도중에 만난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고 그들 세계의 보이지 않는 규칙과 관계맺음의 논리를 보여준다. 공간이 대자연으로 바뀌었을 뿐, <생이 보일때까지 걷기>는 등장 인물 수십 명 나오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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