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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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haiku)"를 검색해봅니다. 원했던 답만큼 시원스러운 답변은 아니어서, 여전히 궁금합니다. "하이쿠 소설"이 뭔지. 히라이데 다카시가 쓴 『고양이 손님』이란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겁니다. 평론가들과 번역가가 쏟아낸 말의 향연 중에 "이 작품은 일종의 하이쿠 소설이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찾아본 게지요. 다 보여주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표현으로 계속 몸체를 감추려 하면서 유혹하는 소설이라고 제 식대로 정리해버렸습니다.

제목보고 짐작은 했는데, 『고양이 손님』에는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예뻐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네, 실은 그 주인공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이뻐하다 못해, 별명까지 '딸랑이'로 붙여준 고양이 '치비'는 그들의 고양이도 아닙니다. 같이 세 사는 처지의 가족에게 입양된 하얀 고양이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손님』일 것입니다. 제목이. 손님으로서의 '치비'는 도도하게, 애교 부리는 법도 없이 부부의 집을 들락이면서 마련해 준 잠자리에서 잠도 자고 갑니다. 부부는 '치비'더러 '미인'이라고 하며, 유난히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도도함이 못내 서운하지요. 그래서 고양이는 오로지 자기 주인 앞에서만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법이라며, 주인 아니라 옆집 사는 이웃임을 자위하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 줄거리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게 없는 내용 - 세 들어 살게 된 집에서 다른 세입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제 집에 드나들다 보니 정이 옴팍 들었다가, 고양이가 죽었다 해서 많이 슬퍼한 내용- 인데도, 읽고 나면 가슴 한 수석에 아련한 감동이 남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지칭하는 단어가 고양이일 뿐이지 소설에 등장하는 부부는 고양이 '치비'를, "운명"이라는 단어를 번복해 쓰면서 하늘에서 보내준 자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처럼 대하거든요.

'왔다, 돌아갔다'라고 했던 말투도 어느새 '돌아왔다, 가버렸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둘이 함께 외출했던 날에는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어두침침한 현관 앞 작은방에 앞발을 가지런히 맞추고 부모 기다리던 아이처럼 맞아주는 일도 있었다

- 우리 고양이지.

라고 말하는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층 더 자신에게 보내준, 아주 먼 곳에서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는 기색이었다

『고양이 선물』 85쪽 본문

소설 속 화자인 '나'보다도, 그의 '아내'가 고양이 '치비'에게 보이는 감정의 복잡한 선들은 분명 아기 키우는 엄마의 그것입니다. "나는 공연히 껴안으려 하지 않아. 치비를 자유롭게 놀다 가게 해줄 거야."(48쪽)면서 치비가 놀고 쉬고 먹을 수 있는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예뻐합니다. 심지어는 밥상 앞에서 '갯가재'의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입에 '갯가재' 넣어주는 속도에 발끈한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손을 물자 "이제 절교야!"하면서 화를 내는 모양새가, 꼭 '중2병' 아이 키우는 엄마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루는 그 '아내'가 '치비'를 위해 전갱이를 구워 놨는데 치비가 먹고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차에 치여 죽었다더군요. 그들은 원래 '치비'의 주인이었던 이웃을 찾아가 조문하고, 꽃을 공양하겠다고 성묘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웃집은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데요. 다시금 '치비'를 자식으로 생각하는 그 부부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집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참에 알지도 못했던 그 아이의 또 다른 반쪽의 삶을 갑작스럽게 코앞에 들이댄 것이다. 성묘랍시고 내 집 정원에 불러들여 또 한 명의 '엄마'가 울기 시작하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다

『고양이 손님』 126쪽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 부부는 치비가 죽은 지 10년이 지나도록, 치비가 죽은 날짜를 기억하고 슬퍼하는데 갑자기 3월 11일이 아니라, 3월 10일에 치비가 죽었다는 계산을 하더니 그에 집착하거든요. 3월 10일 밤 10시부터 11일 밤 11시까지, 죽기 전 치비가 "마지막 하루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냈"을 텐데 그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허무했어요. 처음엔. 그러나 다시 곱씹어 보니, '치비'를 "하늘이 보내준 선물" 혹은 "운명," 다시 말해 자신들의 자식으로 생각했던 부부에게는 고양이가 죽기 전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10년이 지났어도 궁금해질 터이겠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래서 부제를 '아이 없는 부부가 자식처럼 사랑한 고양이'로 지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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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9-01-0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 -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양정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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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

 


 역주행 베스트셀러였다는 『언어의 힘』 이 밀어낸 물결이었을까? 2018년 유난히도 "말," "언어"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들이 많이 보였다. 나긋나긋 일기체로 "묵언"의 디톡스 운동을 전파하려는 책,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니!"라며 자기 긍정의 말을 종용하는 책, 최근에는 『차별의 언어』(장한 업 교수, 이화여대) 나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교수, 고려대) 등 학자들까지 언어 이면, 차별과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를 반성하자는 책을 펴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도 2018년 출판계 파도를 타고 쓸려온 책인가 싶어,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저자 양종철을 소개하는 책날개 문구에 한국 사회 저자 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학력 사항, 수상 경력 등이 없음을 확인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대신 그의 생을, 카피라이터 정철이 "양정철로 살았다.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으로 살았다. 문재인을 만났다. 문재인으로 살았다. 다시 양정철로 산다."라고 굵고 짧게 압축해냈다. 읽어봐야겠다 싶어졌다.

 



책 손에 든 후, 내려놓지 않고 한숨에 다 읽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민주주의적 진보를 이루려면 국민들 생각과 의식을 바꾸고 문화를 바꿔야 (7쪽)" 하기에 함께 봉하마을에서 글을 쓰자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빚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드러내놓고 혹은 행간에서 모시던 전 대통령과 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존경심과 뜻을 함께 세우고 펼친다는 의지가 계속 보인다. 이 책을 쓰기까지, 대한신문기자연합 회장으로서, 대기업 홍보담당 전문 인력으로서, 문예창작과(우석대) 교수로서, 정치인의 비서로서 활동하며 얻은 경험에 더해 뉴질랜드에서 거주하는 친동생, 영국에 거주하는 처제와 동서로부터 얻은 글로벌 비교자료까지 많은 자료를 양정철은 성실히 모았다. 그가 글쓰기 가르치는 업을 삼았었음을 모르고 읽었을 때도, 어쩜 이리 국어 바르게 쓰기 정신이 곧은 데다 실제 실천까지 중시할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체 글쓰기를 좋아하고 좋은 글쓰기를 사명으로 아는 이이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평등의 언어, 배려의 언어, 공존의 언어, 독립의 언어, 존중의 언어라는 5장 구성에 짧은 에세이들을 담았다. 모든 에세이들이 부제인,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으로 수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실은 구매해서 포스트잇 덕지덕지 붙여놓고 싶은 페이지가 많았다. 여러 주장 중, 상당 부분은 이미 기존 혹은 양정철의 책 이후 출간된 책의 저자들과 주장과 겹친다. 예를 들어 신지영 교수가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맹렬히 비판했던 '미망인'이란 단어 이면의 성차별주의나 장한업 교수가 콕 집어낸 한국 특유의 '국민여동생,' '국민배우' 표현의 함의 등이 그러하다. 양정철의 여러 주장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바로 한국에서는 유난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식 정서가 팽배한지 일상생활에서나 정치권 활동에서 '고성 高聲'을 많이 쓴다는 지적이다.


목소리가 크다고 설득력이 높은 게 아닌데도 우리 사회엔 왜 그렇게 고성이 많은 것일까. 사회 전반에서 목소리가 커진 것은 저마다 절박한 상황이 있어서일 것이다.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 주목해주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 오랜 풍토가 만든 일종의 사회 병리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힘』52쪽) "

양정철 저자의 해석을 듣고 보니, 단지 목소리의 크기뿐 아니라 태도의 공격성에도 마찬가지의 배경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점잖게 언질을 주거나, 담당자가 문제 사항을 알아서 처리해주리라고 기대했다가는 숟가락 뺏기는 경험을 하거나 전해들으니...... 내 숟가락 남이 챙겨주지 않는다는 절박함 때문에 나의 상황을 더 격하게 어필하려 드는 성향. 점잖빼거나 어물쩍거리다가는 30분이 지나도록 새치기 때문에 비오는 날 택시 못 잡거나 TV도 없었음을 증명 못해 시청료 8년치를 못 돌려받는다. 목소리를 키우거나 태도에 공격성을 더하는 해법을 쓰게 된다.

비록 230여 페이지 짧은 에세이였지만, 양정철 저자는 서문에서 조심스럽게 희망한 집필목적을 상당히 성취한 것 같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일부가 아닌 전반적으로 차별을 덜 하고, 특권의식을 덜어내고 온화해지는데 꼭 필요한 지적을 했는데, 문제는 저자처럼 언어용법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훈련을 받았거나 업 삼는 일부가 아닌, 그렇지 않은 다수가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을 느끼고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말하고 써야하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평등, 공존, 배려, 화합. 가치는 가치로서만 남게 되니.

"지방방송 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감사해요. 감사드려요." (상대높임법은 합쇼체를 써야함)

"좋은 하루 되세요." (어법에 안 맞는다!)

"중대박사태권도, 연세대치과, 용인대 유도" (학력드러내는 사회)

"내일은 맑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체없는 수동형 문장)

"미세먼지 좋음" ('아니, 미세먼지가 어떻게 좋을 수가 있는가?')

"살생부, 진검승부, 화약고, 용병, 격전지" (전투적인 방송용어)

"일가견, 기라성, 18번, 간발" (일본어의 잔재)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힘』에서 지적하는 민주주의 저해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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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조성일 지음, 박지영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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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책 제목이 과거형의 문장이기에, 이미 제목만으로 그 톤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지나 보니, 그게 사랑이었더라. 헤어지고나니, 더 잘 사랑할 수 있었겠더라"의 톤이라고 짐작하며 첫 페이지를 펼쳐씁니다. 이 아기자기하게 예쁜 책을 쓴 이는 조성일.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로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의 사랑을 받았다는 문구를 보니, 전작을 쓸 때는 열애중이었나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는 헤어지고 난 후의 아픔,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반해서요. 

'피뜨겁고 뺨 복사꽃같이 부드럽고 혈색 좋은 젊은 날의 사랑, 누가 안 하나? 누군들 책으로 엮어낼 이야기가 없을까?'하는 독자의 반응을 미리 읽기라도 하듯, 저자 조성일은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을 자기 연애담에 함몰해 쓰지 않았다고 "책을 내며"에서 밝힙니다.  "구체적인 상황보다 모호한 상황으로 열린 결말을 만들어서, 그 글에 각자(독자)의 경험을 넣어 완성하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1쪽)"하여 "묘하게 독자의 글이 되는 느낌을 주고 싶어 (2쪽)" 썼는데 "(독자는) 어떻게 하면 사랑의 정체기에서 벗어날지 고민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3쪽) 바란다고 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랑에서의 각자 "답찾기"는 독자의 몫인 셈이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땔거리 삼아, 독자 각자가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태우며 불의 형상을 각자 만들고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지요. 뭐, 제게는 꽤 어려운 과제이긴 합니다만.....태울 원료도, 태울 의지도 딱히 없어 작가가 보여준 사랑궤적을 따가가 보는 식으로 리뷰를 전개하려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을 서술형으로 거칠게 말하면, "내가 널 좋아했다. 나중에 보니, 내가 널 (너가 나 좋아한 것 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아. 그만큼 넌 사랑스러웠어. 그런데 내 뜨거운 사랑이 되레 독이 되어 네가 삼키기 힘들어했나봐. 헤어지고 나니, 이제서야 보여. 그래도 우리 사랑 너무 아름다웠지 않니? 난 여전히 네가 그리워"의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좁은 해석으로는 그렇게 보였으나, 사랑 이야기야 워낙 줄기가 갈리는 해석을 낳을테니, 개인의 해석이라 한정해둡시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헤어지니 "
내일 눈 뜨기가 두렵다 / 그냥 이 모든 게 장난이면 좋겠" (17쪽)을 정도로 실연의 고통이 큽니다. 실연의 고통은 삶의 물결이 흘러가는데도 다시 저자를 찾아와 자꾸 과거 회귀하게 합니다. "지겨울 때도 됐는데, 그만할 때가 맞는데"(105쪽)라며 머리로는 정리하면서도 자꾸 헤어진 이를 생각하고 궁금해합니다. "우리는 이미 1년 반 전에 헤어졌는데 말야"(105)

"여기 진짜 맛있다."

"어떻게 또 찾았어?"

"매일 취향 저격이네."

"역시 센스 있다니까." 

.

"혼자 오셨어요? 같은 걸로 드릴게요. 오늘은 늦으시나 봐요. 언제 오세요?"

.

"여기 계산해주세요."



 

 - 조성일 "단골 손님" (134쪽) 



저자는 위에 전문을 소개한 "단골 손님"에서처럼 헤어진 여자친구랑 늘 찾던 맛집을 혼자 찾아 처연함을 안주 삼기도 하고, "누구를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너처럼 성장통을 겪게 하진 않더라 (233쪽)" 며 사랑의 기억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돌아봅니다. 조성일 작가와 경험의 공감대가 많은 이들에게는 한 줄 한 줄, 일기장 들킨 기분으로 읽게 되는 글일테고, 경제신문 페이지를 한장한장 탐독하며 일상의 메모에서 형용사를 지워나가는 이들이 읽는다면 괴리감을 느낄 글이겠지요. 직접 읽고 확인해보세요. 

아 참, 일러스트레이터 '박지영' 님의 화사하면서 부드러운 일러스트레이션은 사랑경험의 편차가 어떻듯 모든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책 속, 보너스 선물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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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혼 2
모모세 시노부 지음, 추지나 옮김, 사카모토 유지 원작 / 박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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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이혼

 

 

 

한국의 김수현 작가 위상일까? 사카모토 유지는 일본에서 제 76회 드라마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은 <최고의 이혼> 시나리오 원작자라고 한다. 이 드라마가 최근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덕분에 친절한 한국어 번역으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박하출판사에서 발 빠르게, <최고의 이혼> 2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해주었으니까. 1, 2편 다 하면 총 50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이지만 치밀한 묘사보다는 통통 튀는 대사 중심이기에 무척 빨리 읽을 수 있다. 각본을 원작으로 소설화한 작품의 약점이자 매력인 듯.

 

 

드라마 문법에 익숙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했겠지만, “최고의 이혼은 달달한 로맨스 소설이기에 결코 주인공들이 각자의 길을 모색하며 이혼 도장을 흔쾌히 찍고 내게 놔두지 않는다. 되레, 이혼을 계기로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갈망하는지를 깨달아 다시 신혼으로 돌아가게 설정한다. 주인공 유카와 마쓰오의 밀당만으로는 양념이 약하다. 그래서 그들과 커플로 밀당하며 연애의 타래를 복잡하게 얽게 하도록 또 다른 문제적 커플을 등장시킨다. 그 커플의 아카리는 마쓰오의 전 애인인데, 아카리의 현 애인은 타고난 바람둥이로 유카와도 탈 뻔한다. 일본인 특유의 예의바른 거리두기를 유지해오다가도 어느 순간 존대법을 버리고 반말을 주고받으며, 아슬아슬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일본 드라마의 특징일까? 주인공 캐릭터 네 명 모두, 태연자약한 척하다가 한순간에 욕망과 셈법을 훤히 드러내며 판을 흔드는 공통점이 우연의 일치인지, 일본 드라마의 문법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두 커플을 자칫 짝을 바꾸어, 바람날 뻔하나 건전 드라마답게 얌전하게 원래 짝을 찾아 해피엔딩 한다. 이혼했던 유카와 마쓰오는 다시 혼인서류를 내고 공식 부부가 되고, 류와 아카리도 배속의 아기 덕분에 끈끈하게 다시 맺어진다 

 

<최고의 이혼>은 일본에서 인기를 끈 후, 한국에 상륙한 셈인데 두 나라 시청자들에게 거부감 적은 결혼, 이혼의 문법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해진다. 예를 들어, 1편에서 이미 이혼 서류로써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유카와 마쓰오는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쇼윈도 부부 생활을 지속한다. 유카의 경우는 시할머니를 실망하게 하거나 병환 중인 친정아버지께 누가 될까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더 들어가 보자. 이혼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유카의 시할머니는 손주와 손주며느리의 결정이 경솔하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유카의 시아버지는 남의 집 소중한 딸을 이렇게 만들었다며아들 마쓰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유카의 친정아버지 역시 제멋대로인 딸 때문에 미안하다며 사위에게 사과한다. 으흠…… 이어서, 직접 화법으로 결혼은 너희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닌 두 가족, 즉 집안끼리의 인연이라는 문법을 강조한다. 미혼이 아닌 주체적 비혼이 증가하는 추세의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이런 문법이 어색하게 느껴질 날이 올까? 결혼과 이혼의 문법은 앞으로 어떻게 어떤 속도로 바뀌어갈까?  <최고의 이혼>을 읽고 나니 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길다면 꽤나 긴 <최고의 이혼> 1,2편 전부 읽고 나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이것. “콩나물 따위는 (전골 냄비 속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익는다는 듯이 내버려두다사랑과 존중 받고 싶다면서 정작 상대를 콩나물 취급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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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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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올해만 3권째 읽었다. 오찬호 박사의 책을. 사회학자가 쓴 책이지만, 대중( 중에서도 아마도 20대 청춘, 중에서도 아마도 대학생)을 겨냥한 문장이기에 술술 읽힌다. 지금은 몰락과 상승의 극 줄타기하며 아슬하지만 한 때 "사이다" 별명을 지녔던 그 정치인처럼 "톡톡톡" 쏘는 맛이 매섭고, 솔직하기로도 아슬하슬하게 솔직하다. 그래서 대학에서 많이 읽히나 보다. 검색하면 곧바로 뜨는게 "독후감"들이다.  어제 읽는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도 오찬호 박사가 몇 페이지나 할애해서 베베 꼬는 대목에 "독후감"이 등장한다. 기껏 불러서 100분이나 강의 시켜놓고 강사료는 커녕, 대학생들 "독후감"을 들이밀기에 열받아서 지하철 쓰레기통에 읽지도 않고 버렸다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와 『진격의 대학교』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거저 없다" 12년째 전국을 돌며 시간강사를 한다며, 자조 반 역자부심 반의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는 오찬호 박사. 그가 대학을 전국구로 옮겨다니며 하루 3건 강의 뛰는 날이면, 점심 먹을 시간 없어서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난 수많은 20대 청춘. 대학생들. 게다가 그는 차갑게 거리 두는 선생님이 아닌가보다. 술로 친해지고, 과제를 내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적극 소통하려는 좋은 선생님이기에 그 많은 제자들로부터 엄청난 소스를 얻었다.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한 에세이와 종강 뒤풀이 술자리에서의 에피소드들이 위 두 서적에 상당한 소스를 제공했으니. "세상에 거저 없다" 

그런데 혹자는 비판한단다. 오찬호 박사의 "사이다 발언"은 시원하면서도 날이 섰지만 대안이 없다고. 그래서 대안을 내놓고자 쓴 책이 바로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이 책에서는 수강생들의 이야기보다 생활인으로서의 오찬호, 12년차 대학강사이자, 점점 유명세를 타는 저술가로서의 오찬호의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한다. 여전히 엄청 쎄게 비판하고, 쏘아대고, "그건 아니지~~!"라고 용감하게 발언한다. 

3권쯤 읽으니 오찬호 박사의 세상 보는 스타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한 번 물면 놓지 않으리라. 무척 부지런하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자부심이 있는 만큼, 세상을 호락호락 넘어가 주지 않는. 

그 지점을  넘어선 사회학이 그에겐 어떤 것일까? 나는 여전히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가 사회고발서로 주효하지, 오찬호 박사가 서문에서 호기롭게 이야기한것처럼 대안으로서의 구체적 실천 지침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강연료를 동의도 없이 미지급 하는 K대 교수나 오찬호 박사더러 "시시껄렁한 책이나 쓴다"고 대놓고 폄하하는 L교수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표정을 지엇을까. 뜨끔은 했겠지. 오찬호 박사 화끈하게 뒤끝 털어내시는 분이구나!  두 다리만 건너면 K대 교수나 L 교수, 좁은 사회학계에서 바로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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