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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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haiku)"를 검색해봅니다. 원했던 답만큼 시원스러운 답변은 아니어서, 여전히 궁금합니다. "하이쿠 소설"이 뭔지. 히라이데 다카시가 쓴 『고양이 손님』이란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겁니다. 평론가들과 번역가가 쏟아낸 말의 향연 중에 "이 작품은 일종의 하이쿠 소설이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찾아본 게지요. 다 보여주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표현으로 계속 몸체를 감추려 하면서 유혹하는 소설이라고 제 식대로 정리해버렸습니다.

제목보고 짐작은 했는데, 『고양이 손님』에는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예뻐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네, 실은 그 주인공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이뻐하다 못해, 별명까지 '딸랑이'로 붙여준 고양이 '치비'는 그들의 고양이도 아닙니다. 같이 세 사는 처지의 가족에게 입양된 하얀 고양이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손님』일 것입니다. 제목이. 손님으로서의 '치비'는 도도하게, 애교 부리는 법도 없이 부부의 집을 들락이면서 마련해 준 잠자리에서 잠도 자고 갑니다. 부부는 '치비'더러 '미인'이라고 하며, 유난히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도도함이 못내 서운하지요. 그래서 고양이는 오로지 자기 주인 앞에서만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법이라며, 주인 아니라 옆집 사는 이웃임을 자위하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 줄거리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게 없는 내용 - 세 들어 살게 된 집에서 다른 세입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제 집에 드나들다 보니 정이 옴팍 들었다가, 고양이가 죽었다 해서 많이 슬퍼한 내용- 인데도, 읽고 나면 가슴 한 수석에 아련한 감동이 남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지칭하는 단어가 고양이일 뿐이지 소설에 등장하는 부부는 고양이 '치비'를, "운명"이라는 단어를 번복해 쓰면서 하늘에서 보내준 자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처럼 대하거든요.

'왔다, 돌아갔다'라고 했던 말투도 어느새 '돌아왔다, 가버렸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둘이 함께 외출했던 날에는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어두침침한 현관 앞 작은방에 앞발을 가지런히 맞추고 부모 기다리던 아이처럼 맞아주는 일도 있었다

- 우리 고양이지.

라고 말하는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층 더 자신에게 보내준, 아주 먼 곳에서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는 기색이었다

『고양이 선물』 85쪽 본문

소설 속 화자인 '나'보다도, 그의 '아내'가 고양이 '치비'에게 보이는 감정의 복잡한 선들은 분명 아기 키우는 엄마의 그것입니다. "나는 공연히 껴안으려 하지 않아. 치비를 자유롭게 놀다 가게 해줄 거야."(48쪽)면서 치비가 놀고 쉬고 먹을 수 있는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예뻐합니다. 심지어는 밥상 앞에서 '갯가재'의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입에 '갯가재' 넣어주는 속도에 발끈한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손을 물자 "이제 절교야!"하면서 화를 내는 모양새가, 꼭 '중2병' 아이 키우는 엄마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루는 그 '아내'가 '치비'를 위해 전갱이를 구워 놨는데 치비가 먹고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차에 치여 죽었다더군요. 그들은 원래 '치비'의 주인이었던 이웃을 찾아가 조문하고, 꽃을 공양하겠다고 성묘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웃집은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데요. 다시금 '치비'를 자식으로 생각하는 그 부부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집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참에 알지도 못했던 그 아이의 또 다른 반쪽의 삶을 갑작스럽게 코앞에 들이댄 것이다. 성묘랍시고 내 집 정원에 불러들여 또 한 명의 '엄마'가 울기 시작하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다

『고양이 손님』 126쪽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 부부는 치비가 죽은 지 10년이 지나도록, 치비가 죽은 날짜를 기억하고 슬퍼하는데 갑자기 3월 11일이 아니라, 3월 10일에 치비가 죽었다는 계산을 하더니 그에 집착하거든요. 3월 10일 밤 10시부터 11일 밤 11시까지, 죽기 전 치비가 "마지막 하루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냈"을 텐데 그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허무했어요. 처음엔. 그러나 다시 곱씹어 보니, '치비'를 "하늘이 보내준 선물" 혹은 "운명," 다시 말해 자신들의 자식으로 생각했던 부부에게는 고양이가 죽기 전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10년이 지났어도 궁금해질 터이겠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래서 부제를 '아이 없는 부부가 자식처럼 사랑한 고양이'로 지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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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9-01-0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