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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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추리력과 상상력을 지닌 전직 마술사이자 화술 하나만으로 상대의 비밀과 이력을 캐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칵테일 바 마스터 블랙 쇼맨가미오 다케시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전작인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와 마찬가지로 모두 세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고, 살인사건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 코지+일상+휴먼 미스터리입니다.

전작의 서평에서 오지랖 넓은 괴짜 탐정의 자발적 구원 미스터리라고 정의한 적 있는데, 이번에도 다케시는 건축사인 조카 마요의 고객 또는 자신의 바 트랩핸드를 찾은 단골들이 맞닥뜨린 큰 고민이나 곤란한 상황들을 타개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기꺼이 기증합니다.

 

천사의 선물

죽은 아들의 전처가 뱃속의 아이를 내세워 유산 상속을 시도하자 고민에 빠진 노부부. 그들을 고객으로 상대했던 마요로부터 사정을 전해들은 다케시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사소한 단서 하나를 통해 추악해 보였던 유산 상속전의 이면을 알아냅니다.

 

피지 않는 나팔꽃

전작의 수록작인 맨션의 여자의 후속 이야기. 자살한 딸의 시신까지 확인했던 노파는 지인으로부터 살아있는 딸을 봤다는 말을 듣곤 충격을 받습니다. 노파의 부탁을 받은 한 남자가 딸이 목격됐던 다케시의 바 트랩핸드를 찾아오자 다케시와 마요는 큰 고민에 빠집니다.

 

마지막 행운

부유한 남자와의 결혼을 목표로 오늘도 바에 남자를 데려와 다케시에게 진품 감정을 부탁하는 진나이 미나. 그런데 그런 미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행운남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꿈같은 미래에 도취된 미나 앞에 예기치 못한 인물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반전됩니다.

 

마요의 아버지의 죽음을 다룬 시리즈 첫 편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이 괴짜 탐정이 풀어가는 살인사건 미스터리였던 반면 이후 출간된 두 편의 단편집은 앞서 언급한대로 코지+일상+휴먼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정교하고 독한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전작의 서평을 그대로 인용하면) “양념이 너무 덜 들어간 듯한 밍밍함”, “담백하고 순한 이야기들로 읽힐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가 형사 시리즈가운데 개인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신참자가 그랬듯이 괴짜 탐정 다케시가 풀어가는 일상 속 미스터리는 자극적이진 않아도 훈훈하고 따뜻한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매 수록작마다 뒤통수를 툭 건드리는 듯한 소소한 반전들은 보너스 이상의 미덕을 지니고 있어서 담백함과 밍밍함을 충분히 보완해주고 있습니다. 세고 독한 양념에 길들여지긴 했어도 저 역시 가끔 특별한 간식처럼 맛보는 이런 소박한 미스터리가 반가운 것은 아마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것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스스로 지금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캐릭터라고 천명한 걸 보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이는데, 바람이라면 다음엔 정통 미스터리를 다룬 장편이거나 단편집이라도 조금은 사건성이 강한 이야기를 다뤘으면 하는 점입니다. 더불어 다케시와 고객들을 중개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조카 마요 역시 지금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미스터리에 개입한다면 더 흥미로운 책읽기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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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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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서 조카 마요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형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쳤던 괴짜 마술사 가미오 다케시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당시 서평에 썼던 다케시의 캐릭터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뛰어난 추리력과 상상력을 지닌 전직 마술사

-어려서부터 초능력에 관심을 가졌고 미국으로 가 사무라이 젠이라는 유명 마술사가 됐음

-실제론 아무 것도 모르면서 화술 하나만으로 상대의 비밀과 이력을 캐낼 수 있음

-거리낌 없이 도청, 속임수, 위증 등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함

-상대가 조카든 경찰이든 밥값에 커피값까지 덤터기씌우곤 하는 빈대 캐릭터

 

전작에도 이미 등장했던 공간인 다케시의 칵테일 바 트랩핸드는 도쿄의 에비스 역 근처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그것도 간판 하나 없이 그저 땅바닥에 ‘TRAPHAND’라고 적힌 블록이 전부인 비밀 기지 같은 곳입니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조금도 안 하지만 트랩핸드에는 매일 같이 사연 많은 단골들이 드나들곤 합니다. 단골들은 그가 전직 마술사라는 점 외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면서도 고민을 술술 풀어놓도록 하는 말솜씨에 빠져들곤 합니다. 농후한 사기꾼 기질에 대책 없는 문제적 캐릭터였던 전작에 비해 아주 얌전해지긴 했지만 괴짜로서의 다케시의 매력은 여전했습니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살인사건 미스터리를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굳이 정의하자면) ‘트랩핸드의 손님들을 상대로 다케시가 펼치는 오지랖 넓은 괴짜 탐정의 자발적 구원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히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곤란에 빠진 손님을 위해 다케시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도움을 준다는 뜻입니다. 두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엽편(葉篇)이 수록돼있고, 그중 한 편에선 조카 마요가 다케시와 콤비 플레이를 펼치기도 합니다.

 

맨션의 여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귀부인이 수십 년간 절연했던 친오빠의 갑작스런 등장과 협박에 당황하자 다케시는 조카 마요와 함께 그녀를 도와줄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깁니다.

 

위기의 여자

첫 데이트를 하는 남녀의 수상쩍은 대화에 귀 기울이던 다케시는 자신의 특기인 마술을 통해 불상사를 막고자 합니다.

 

환상의 여자

아내와 이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가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방황하자 다케시는 그녀를 도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괴짜다운 면모는 많이 축소됐지만 다케시는 화술 하나만으로 상대의 비밀과 이력을 캐내거나 사소한 단서만으로 대단한 추리를 이끌어내는 능력자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칵테일 바 마스터의 일상 미스터리에 가까워서 끔찍한 사건도 없고 충격적인 반전도 없는 담백하고 순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다케시의 매력 덕분에 금세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양념이 너무 덜 들어간 듯한 밍밍함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웠고 그 이유 때문에 별 1개를 빼게 됐는데, 최신간인 시리즈 3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에서는 조금이라도 좋으니 단짠의 맛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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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H 고스 - 리스트 컷 사건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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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에선 2007‘ZOO’(개정판 제목 일곱 번째 방’)가 먼저 출간됐지만, 제가 오츠이치와 처음 만난 건 그 1년 후에 출간된 ‘GOTH 고스’(이하 고스’)를 통해서였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수록작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어도 그 당시 꽤 큰 충격을 받았던 일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여러 필명 중 오츠이치로 발표한 작품 가운데 서평까지 쓴 게 모두 여섯 편인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고스의 서평이 없는 걸 뒤늦게 발견하곤 첫 만남 때의 충격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겸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들었습니다.

 

주인공인 는 한마디로 말하면 순도 100%의 사이코패스입니다. 늘 엽기적인 사건에 마음이 끌리고 그런 사건에 관한 기사를 닥치는대로 모으곤 합니다. 범인에게 친밀감을 느끼는가 하면, 범행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싶어 하고, 범인이 남긴 물리적인 흔적들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그런 뜻밖의 횡재를 하더라도 결코 경찰에 신고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도, 폭력의 희생자가 된 적도 없는, 말 그대로 타고난 사이코패스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말 거라는 비교적 확실한 예감도 갖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 의 성정을 유일하게 꿰뚫어보는 건 같은 반의 모리노 요루뿐입니다. 일체의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모리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을 처형하는 도구나 고문 방법입니다. 엽기적인 사건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모으는 점은 와 닮은꼴입니다. 다만 언젠가 살인을 저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와 달리 모리노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큰, 말하자면 인간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대부분은 엽기적인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와 모리노가 사건의 진상과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와 모리노는 사건 해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각 수록작에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와 모리노는 그들이 이미 저지른 사건이나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흥미를 갖고 지켜보다가 자신들이 만족하는 선에서 방치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범행을 방조하거나 거들진 않지만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는 의무감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이 찾아낸 범인에게 기념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범인이 소장하고 있는 피해자의 훼손된 신체를 훔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을 일부러 살해 위기에 몰아넣고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기괴한 사고방식과 행동은 와 모리노의 행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듭니다.

 

캐릭터도 엽기적이고 특이한데다 사건들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오츠이치가 구사하는 문장들은 무척이나 담담하고 서정적입니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몸과 마음을 찔러대는 불쾌감과 불편함이 극에 달했는데, 지금까지 오츠이치의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고스는 그중에서도 원톱이라고 할 만큼 그 수위가 대단했습니다. 잔혹한 묘사 면에서 더 심한 작품들도 수두룩하지만 고스19금 판정을 받은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스터리와 호러와 판타지가 뒤섞인 미묘한 장르에다 여러 가지 트릭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고스는 오츠이치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 취향이 맞지 않는 독자라면 첫 수록작만 읽고도 책을 덮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반한 독자라면 고스는 몇 번을 거듭 읽어도 매번 새로운 충격을 선사할 만한 명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오츠이치에 관한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 그의 세계에 입문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독자라면 고스를 통해 바로 그 해답(포기할 건지 팬이 될 건지)을 알 수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첫 수록작만이라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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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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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텐더 오가와는 뒤통수에 큰 통증을 느끼면서 의식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 바닥에 누워있음을 깨닫습니다. 눈앞에는 일면식도 없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에 따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취한 알바생을 데려다주고 나오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만 오가와는 사고 직전 아내로부터 출산 진통이 시작됐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더욱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하지만 빈집털이라는 중년남자, 묘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또래 남자, 그리고 자살하기 위해 이 아파트에 왔다는 젊은 여자 등 함께 갇힌 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정전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오가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악몽의 엘리베이터’(2006)2009년에 한국에 소개된 작품으로 기노시타 한타의 데뷔작이자 악몽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악몽 시리즈는 일본에서 2016년까지 모두 10편이 출간됐지만 아쉽게도 한국에는 이 작품과 악몽의 관람차’(2008) 등 두 편밖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자세한 줄거리는 잊었어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그것도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예상대로 그때와 거의 비슷한 흥분과 스릴감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동시에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이 한국에 좀더 많이 소개되지 못한 점은 그 이상으로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의식을 잃은 순간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오가와로서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상황 자체도 놀랍고 당혹스럽지만, 이 상황에 걸맞지 않는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세 사람의 남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집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아침을 맞이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태연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소개를 하자는 둥 끝말잇기 게임을 하자는 둥 도무지 지금 상황을 걱정하는 티라곤 조금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쟁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오가와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비밀 한가지씩을 털어놓자는 진실게임이 시작되면서 오가와는 또 다른 당혹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때 갑작스런 정전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오가와에겐 새로운 공포가 찾아들기 시작합니다.

 

정전 직전까지의 긴박하면서도 미묘한 상황을 다룬 첫 번째 챕터가 끝나자마자 이야기는 변주를 거듭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럭비공마냥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가 하면, 이제 좀 쉬어가려나 싶으면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거나 예측 못한 반전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지만 크든 작든 전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인물에 대해서도, 사건에 대해서도 더는 언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밀실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 코드에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 서사까지 믹스된 독특한 작품으로 오락성에 관한 한 만점을 주고도 남을 만큼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점만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기노시타 한타의 이런 매력은 오사카 관람차에서 벌어진 기괴한 인질극을 그린 악몽의 관람차3인조 은행강도의 위험천만한 행각을 그린 삼분의 일’(‘분수 시리즈중 한 편)에서도 만끽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반면, 가장 최근(2019)에 소개된 ‘GPS 시리즈’(‘키노시타 한타로 검색해야 됩니다)는 첫 편을 읽다가 중도 포기할 정도로 저와는 잘 맞지 않아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원서를 읽을 능력만 된다면 반드시 찾아 읽고 싶은 한국 미출간작들이 꽤 많은데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악몽 시리즈분수 시리즈가 한국에 다시 소개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기노시타 한타의 끝내주는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 스릴러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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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청소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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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집이나 시신이 발견된 집 등 사건 사고가 발생한 집을 청소하는 일을 가리키는 특수청소는 소설이나 영상물의 소재로 여러 차례 활용될 정도로 독특하고 사연 많은 직업입니다. 특히 살인사건이나 고독사 등 죽음이 남긴 흔적들을 청소해야 할 경우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고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닦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남긴 체액과 시취는 물론이거니와 죽은 자의 마지막 감정들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 이오키베 와타루와 두 직원 시라이 히로시, 아키히로 가스미 등 세 명뿐이지만 특수청소업체 엔드 클리너는 나름 빠른 성장세를 달리는 중입니다. 그만큼 특수청소가 필요한 케이스들이 급증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전직 경시청 수사1과 형사인 대표 이오키베는 의뢰인은 물론 망자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배려심 깊은 태도로 일하면서도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현장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예리하게 포착해곤 합니다. 구직난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엔드 클리너에 들어왔지만 1년 넘게 일하며 믿음직한 청소부가 된 히로시와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입사한 신참 직원 가스미는 높은 기본급과 보너스 때문에 고된 일을 겨우 참아내긴 하지만 현장에 출동했을 때는 사명감 이상의 자세로 특수청소를 수행하는 인물들입니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 가스미, 이오키베, 히로시가 돌아가며 한 챕터씩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네 편 모두 고독사 혹은 사망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된 시신을 다루고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답게 네 편 모두 크고 작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엔드 클리너의 멤버들은 고인이 남긴 유품이나 흔적을 통해 죽음 이면의 일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거나 위화감을 느끼곤 합니다. 바닥에 적힌 저주 섞인 문구,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유품, 기구한 사연이 담긴 데모 음원, 비밀금고에 보관된 두 통의 유언장 등이 그것인데, 그것들을 접한 멤버들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진지한 태도로 미스터리를 풀고자 노력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고인을 애도하고 그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무당이 악령을 퇴치하고 승려가 망자의 넋을 달랜다면, 멤버들은 악취와 함께 고인의 갖가지 감정이 서린 집을 정화한다고 할까요?

 

수록작에 따라 사건성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미스터리가 더 강조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사연 많은 죽음을 수습하는 특수청소의 특별함과 멤버들의 사명감입니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과 함께 맛볼 수 있는 애틋한 여운 역시 이 작품의 장점이자 미덕입니다.

나카야마 시치리가 엔드 클리너의 다음 이야기를 계속 집필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두어 편 정도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직 경시청 수사1과 형사인 대표 이오키베의 과거도 궁금하고, 신참인 가스미가 성장하는 모습도 더 지켜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수청소 이면의 특별하고 애틋한 사연들을 좀더 읽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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