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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펠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9월
평점 :
시골마을 오쿠사토에서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를 맞이한 오컬트 마니아 유스케는 학급 게시판 담당을 자청하여 모두가 놀랄 만한 호러와 오컬트 이야기를 게시할 생각이었지만, 뜻밖에도 최고의 모범생인 사쓰키 역시 게시판 담당을 자원하자 당황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1년 전 마을축제 전날 잔혹하게 살해된 사촌언니 마리코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함임을 알곤 더욱 놀랍니다. 살해된 마리코는 ‘오쿠사토 7대 불가사의’라는 문서를 남겼는데, 거기엔 여섯 편의 괴담과 함께 일곱 번째 불가사의를 알면 죽게 된다는 기이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쓰키는 유스케의 도움을 통해 괴담 속 수수께끼를 풀어 일곱 번째 불가사의를 알아낸다면 마리코의 죽음의 진상도 드러날 거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장의 살인 시리즈’로 한국 독자에게 어필했던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신작입니다. ‘시인장의 살인 시리즈’는 제 취향과는 살짝 맞지 않았지만, “호러와 미스터리는 이런 식으로도 만날 수 있다!”는, 띠지에 실린 추천사에 눈길이 끌려 급 관심이 생겼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마무라 마사히로는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무척 궁금해진 것입니다.
주인공은 세 명의 초등학교 6학년생입니다. 모든 게 평균치 캐릭터지만 나름 오컬트 마니아라 자부하는 유스케, 학급회장이자 명문 사립중학교 입학이 확실한 모범생 사쓰키, 그리고 전학 온지 얼마 안 돼 학급 내에서 존재감이 희미한 미나가 이른바 ‘오쿠사토 7대 불가사의’를 추적하고 그 안에 숨은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미제사건으로 남은 마리코의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사고로 죽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터널, 담력테스트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폐건물, 해질녘 참배한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지장보살, 자살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댐 위의 공중전화, 우물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정신줄을 놓아버린 산속 마을 등 마리코가 남긴 문서 속의 여섯 편의 괴담은 언뜻 보면 평범해 보였지만, 세 주인공은 현장에 직접 가보거나 관련된 사람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괴담 속에 숨은 위화감과 수수께끼의 실체를 발견하곤 하는데, 문제는 그 실체들이 하나같이 마리코의 죽음과 연관돼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부터 세 주인공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오컬트 마니아인 유스케가 ‘괴이한 힘’에 의한 범행, 즉 명백한 오컬트적 가설을 내세우는 반면, 모범생인 사쓰키는 (유스케에게 도움을 청하긴 했어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추리로 맞섭니다. 그리고 미나는 두 사람의 주장을 검증하고 허점을 지적하며 판정을 내립니다. “공포와 추리가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는 출판사 소개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은 물과 기름을 섞는 일과 마찬가지로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대체로 ‘호러인 줄 알았는데 실은 미스터리’라는 타협점을 찾는 게 일반적이지만, ‘디스펠’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두 장르를 절묘하게 조합한 작품입니다. ‘오쿠사토 7대 불가사의’라는 문서에 담긴 괴담들은 각각 호러물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사쓰키가 펼치는 합리적인 추리와 미나가 소개하는 각종 미스터리 기법은 이 작품을 본격 미스터리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때문에 선입견을 가질 독자도 있겠지만, ‘디스펠’은 오히려 세 주인공의 캐릭터 덕분에 리얼리티와 긴장감을 더욱 생생하게 품게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 뺨 칠 정도로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점이 간혹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그 또래들만의 고민과 갈등이 소개된 대목에선 이야기가 살짝 느슨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매력적인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미쓰다 신조의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고,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후속편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이마무라 마사히로가 다시 한 번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에 도전한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