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바텐더 오가와는 뒤통수에 큰 통증을 느끼면서 의식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 바닥에 누워있음을 깨닫습니다. 눈앞에는 일면식도 없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에 따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취한 알바생을 데려다주고 나오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만 오가와는 사고 직전 아내로부터 출산 진통이 시작됐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더욱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하지만 빈집털이라는 중년남자, 묘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또래 남자, 그리고 자살하기 위해 이 아파트에 왔다는 젊은 여자 등 함께 갇힌 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정전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오가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악몽의 엘리베이터’(2006)2009년에 한국에 소개된 작품으로 기노시타 한타의 데뷔작이자 악몽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악몽 시리즈는 일본에서 2016년까지 모두 10편이 출간됐지만 아쉽게도 한국에는 이 작품과 악몽의 관람차’(2008) 등 두 편밖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자세한 줄거리는 잊었어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그것도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예상대로 그때와 거의 비슷한 흥분과 스릴감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동시에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이 한국에 좀더 많이 소개되지 못한 점은 그 이상으로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의식을 잃은 순간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오가와로서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상황 자체도 놀랍고 당혹스럽지만, 이 상황에 걸맞지 않는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세 사람의 남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집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아침을 맞이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태연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소개를 하자는 둥 끝말잇기 게임을 하자는 둥 도무지 지금 상황을 걱정하는 티라곤 조금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쟁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오가와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비밀 한가지씩을 털어놓자는 진실게임이 시작되면서 오가와는 또 다른 당혹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때 갑작스런 정전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오가와에겐 새로운 공포가 찾아들기 시작합니다.

 

정전 직전까지의 긴박하면서도 미묘한 상황을 다룬 첫 번째 챕터가 끝나자마자 이야기는 변주를 거듭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럭비공마냥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가 하면, 이제 좀 쉬어가려나 싶으면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거나 예측 못한 반전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지만 크든 작든 전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인물에 대해서도, 사건에 대해서도 더는 언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밀실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 코드에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 서사까지 믹스된 독특한 작품으로 오락성에 관한 한 만점을 주고도 남을 만큼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점만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기노시타 한타의 이런 매력은 오사카 관람차에서 벌어진 기괴한 인질극을 그린 악몽의 관람차3인조 은행강도의 위험천만한 행각을 그린 삼분의 일’(‘분수 시리즈중 한 편)에서도 만끽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반면, 가장 최근(2019)에 소개된 ‘GPS 시리즈’(‘키노시타 한타로 검색해야 됩니다)는 첫 편을 읽다가 중도 포기할 정도로 저와는 잘 맞지 않아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원서를 읽을 능력만 된다면 반드시 찾아 읽고 싶은 한국 미출간작들이 꽤 많은데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악몽 시리즈분수 시리즈가 한국에 다시 소개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기노시타 한타의 끝내주는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 스릴러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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