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필리프 클로델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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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위치한 개의 형상을 닮은 군도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한 화산섬. 외부와 거의 고립되다시피 한 그 섬에 세 구의 흑인의 시신이 파도에 떠밀려오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비극이 시작됩니다. 시장, 의사, 신부 등 섬의 지도층은 성사가 코앞인 온천사업을 지키기 위해 시신들을 화산 구덩이에 은폐합니다. 단 한 명뿐인 섬의 교사는 엄연한 범죄행위에 반대하지만 유일한 외지인인 그가 토박이들의 뜻을 꺾진 못합니다. 하지만 육지에서 온 경찰이 페리선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섬에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그의 태도와 말투에서 마치 시장 일행이 저지른 시신 은폐를 모두 알고 온 듯한 명백한 비난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섬은 불온한 광기에 잠식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문학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외형적으로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자리 한 가상의 화산섬을 배경 삼아 심연 속에 파묻힌 진실을 폭로하는 미스터리지만 동시에 난민 문제를 소재로 한 사회성 짙은 고발물 혹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비꼰 우화이기도 합니다. 또한 섬의 이름은 그저 개의 군도’(이 작품의 원제이기도 합니다)일뿐이고, 등장인물 모두 직업 또는 그 특징으로만 명명될 뿐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으며 화산섬이라는 공간 역시 고정세트 같은 무대처럼 보여서 다분히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어둡고 이기적인 심리는 몇 백 페이지의 장편만큼이나 묵직하고 심도 깊게 그려집니다.

 

화산섬의 비극은 해변에서 세 구의 흑인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극소수의 반발 속에 은폐가 진행되지만 육지에서 온 경찰 한 명 때문에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이어 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비열한 음모가 전개되고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폭주합니다. 하지만 섬의 운명은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파국으로 치달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파국에 동조하듯 화산은 점차 빈번하게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25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지만 무척 다양한 코드를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일부 인용하면 난민 위기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척, 목적을 이루기 위한 권력자들의 권모술수, 매 순간 모든 곳에서 감시당하는 사생활, 대중을 선동하는 가짜 뉴스, ‘아니면 말고식의 마녀사냥,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동등 인간이 일으키는 현대사회의 갖가지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파괴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은 인간을 파괴하고 인간들의 세상을 파괴한다.”(p238)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자체가 딱딱한 다큐멘터리 같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직설적인 화법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대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프랑스 문학 특유의 지독한 풍자와 비유로 채워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장과 경찰(공권력), 의사(과학), 신부(종교), 교사(지식), 노파(방관자) 등 고유한 이름도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몰입하는 대신 객관적인 시선으로 화산섬의 비극을 바라보게 하는 우화적인 설정이라 초반부터 눈길을 끌었습니다. 말하자면 특정인물에게 공감하거나 반감을 갖게 하지도 않고, 선과 정의가 승리하기를 혹은 악과 부패가 응징되기를, 이라는 바람조차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탐욕과 방관과 무지에 휩싸인 화산섬의 인간들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똑바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할까요?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간혹 목격되곤 하는 프랑스 문학 특유의 난해함 또는 모호함입니다. 불편할 정도로 심한 건 아니지만 앞뒤 맥락을 살펴봐야 하거나 같은 문장을 두어 번 되읽어야만 하는 수고를 간간이 반복해야 되곤 합니다. 매번 프랑스 작품을 읽을 때마다 첫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긴장하게 되는 게 사실인데,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 평균보다는 쉽게 읽히는 작품이니 미리 편견을 갖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난 작가라 이름이 생소했지만 검색해보니 이전까지 한국에 소개된 필리프 클로델의 작품이 무려 다섯 편이나 됐습니다. 모두 순문학이나 에세이 등으로 아마 장르물이 아니라서 그동안 제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으로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전작들을 찾아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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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클레이머
르네 나이트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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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15년 같은 출판사와 번역가를 통해 누군가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 있습니다. 서평을 쓴 시점까지도 인터넷 서점에 개정판이라는 정보가 설명돼있지 않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캐서린의 평온했던 일상은 누군가가 자비로 출판한 낯선 사람이라는 소설을 읽은 뒤로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소설을 쓴 누군가가 샬롯이라는 여주인공을 앞세워 20년 전 캐서린이 스페인의 휴양지에서 겪은 일을 상세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20년 동안 비밀로 삼아왔던 그 일이 폭로된다면 직장은 물론 소중한 가족까지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소설을 쓴 자가 누군지는 금세 알아냈지만 캐서린으로서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자가 남편 로버트와 아들 니콜라스에게도 그 소설을 전달하며 캐서린을 완전히 망가뜨리기로 작정했다는 점입니다.

 

작품마다 편차가 크기도 하고 엇비슷한 설정과 캐릭터의 식상함 때문에 기피하게 된 장르가 심리스릴러인데, ‘디스클레이머를 선택한 건 소설의 끔찍한 이야기가 내 과거라면? 나의 비밀이 책이 되어 나타났다.”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에 눈길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세세한 내용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날 오후에 그녀가 입었던 옷의 디자인과 색상, 머리모양까지 정확했다. 그것은 그녀가 기를 쓰고 감추어왔던 삶의 한 토막이었다. 세상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비밀이었다.” (p9)

 

20년 동안 비밀로 삼아온 일이 누군가가 쓴 소설 속에 적나라하게 그려졌다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소설이 우연이 아니라 명백한 의도를 갖고 쓰인 것이라면, 더구나 소설 속에서 자신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또 소설을 쓴 자가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일부러 책을 배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황의 차원을 넘어 공포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캐서린은 20년 전 그 일을 겪은 직후 남편 로버트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않은 걸 후회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소설을 쓴 자의 의도를 파악한 뒤엔 수습책이란 게 전혀 없음을 깨닫곤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무엇보다 당시 5살이었던 아들 니콜라스까지 연루된 일이라 캐서린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니콜라스가 20년 전의 일을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캐서린과 함께 화자를 맡은 건 소설을 쓴 70대 노인 스티븐입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아내 낸시가 자신 몰래 간직해온 노트와 사진을 발견한 뒤 큰 충격에 빠졌고, 결국 그것들을 자료삼아 캐서린의 삶, 가족, 직장을 모조리 부숴버리기 위해 소설을 썼습니다. 성치 않은 몸과 굳어버린 학습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캐서린을 궁지에 몰아붙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그에겐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심리스릴러 서사대로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캐서린과 스티븐,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 등 주요 인물들의 요동치는 심리 묘사에 할애됩니다. 후회와 분노, 의심과 갈등, 배신감, 증오심 등 소설 한 편으로 인해 폭발된 여러 인물들의 격한 감정들이 섬세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묘사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쉴 새 없이 흔들어댑니다. 적잖은 심리스릴러 작품들이 동어반복의 지루함을 피하지 못하지만 디스클레이머는 크고 작은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속도감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분량 자체도 그리 길지 않고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화자를 맡은 챕터들은 짧게 구성돼있으며 문장들은 적확한 단어와 비유로 이뤄져있어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년 간 감춰온 캐서린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이 마지막까지 강력한 페이지 터너로 작동합니다. 예상하기 어렵거나 강력한 반전은 아니지만 막판에 밝혀진 진실은 소설 한 편 때문에 삶의 뿌리까지 뒤흔들렸던 여러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대혼란에 빠뜨립니다.

 

독자에 따라 두 주인공 캐서린과 스티븐의 행동과 태도에 ?”라는 의문점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파국까지 몰고 간 이유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문과 불만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극복해내느냐야말로 심리스릴러로서의 가치와 미덕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생각입니다. 때론 눙치듯 넘어간 대목도 분명 있고, 작가에게 따져 묻고 싶은 장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0,5개를 뺀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론 독자의 의문과 불만을 충분히 잠식시킬 만큼 완성도 높은 심리스릴러라는 생각입니다. 심리스릴러에 지친 독자라도 디스클레이머는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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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주식회사
잭 런던 지음, 한원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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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뉴욕, 죽어 마땅한 악인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단하는 일을 하는 암살국. 어느 날 암살국의 수장인 이반 드라고밀로프는 그 자신을 처단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의뢰자는 암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백만장자 사회주의자청년 윈터 홀. 드라고밀로프와 홀은 불꽃 튀는 논쟁을 펼치고, 결국 도덕광 드라고밀로프는 암살국 해체뿐만 아니라 그 수장인 자기 자신 또한 제거되어야 옳다는 결론에 이른다. 드라고밀로프는 조직원들에게 보스인 자신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뒤 유유히 모습을 감추고, 이상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이며 지성과 체력을 겸비한 조직원들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난 처형자지 살인자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조직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제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사회를 좀먹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었어요.” (p107)

 

출판사의 소개글과 위의 인용문만 보면 그렉 허위츠의 살인 위원회와 비슷하게 특정집단에 의한 사적 제재를 다룬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로 보이지만, ‘암살주식회사는 암살자들의 캐릭터도, 그들이 품은 신념도, 또 그들이 속한 조직의 정체성도 워낙 특이해서 그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독특한 서사를 선보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무정부주의자이자 기업가인 이반 드라고밀로프가 11년 전인 1900년에 설립한 암살국은 미국 곳곳에 지부를 둔 채 그동안 사회를 좀먹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처단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나 정의감이 아니라 광신에 가까운 윤리의식과 도덕감입니다. 모든 살인 청부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그 처형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경우에 한해 행동에 나섭니다. 그리고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의뢰는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철회되지 않습니다.

지성을 겸비한 S급 킬러라는 홍보 카피처럼 암살국 소속 암살자들은 그저 무기를 잘 다루고 완력만 강한 일반적인 암살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들입니다. 교수, 학자, 편집자 등 말 그대로 지성을 갖춘 그들은 드라고밀로프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도덕광들이자 행동하는 무정부주의자이며 미친 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신념과 맹약은 그 누구도 균열 하나 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탄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이은 의문사에 의심을 품은 백만장자 사회주의자윈터 홀이 암살국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던 중 우연한 계기를 통해 드라고밀로프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면전에서 당신을 암살해달라.”라는 충격적인 의뢰를 합니다. 암살국의 정당성에 관한 긴 논쟁은 홀의 승리로 끝나고, 드라고밀로프는 조직 전체에게 자기 자신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 뒤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암살국 전체와 드라고밀로프의 피의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애초 암살국의 해체가 목적이었던 홀은 예상치 못한 이 추격전에 당황합니다. 더구나 드라고밀로프는 암살국의 관리와 자금을 모두 홀에게 맡기고 떠난 터라 어이없게도 홀은 자신이 해체시키려던 암살국의 임시 사무장이 되고 맙니다.

 

스스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 보스와 그 보스를 살해하려는 암살국 전체의 피의 추격전이란 설정만 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흥미진진한 서사가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실은 엄청난 도덕광들이자 행동하는 무정부주의자이며 미친 철학자들이 벌이는 추격전은 한 손에는 철학, 한 손에는 권총이라는 홍보 카피대로 전쟁과 논쟁을 반복하는 특이한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피와 살이 튀는 가운데 도덕과 공의에 관한 철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서로를 죽여야 하는 처지임에도 드라고밀로프와 암살자들은 때로 함께 저녁을 나누며 자신들의 공통된 신념을 찬양하고 호쾌한 웃음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스릴러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 독특함은 독자에 따라 꽤 크게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피의 추격전은 무척이나 리얼하지만 그 와중에 벌어지는 철학적인 논쟁은 다소 난해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론 스릴러의 외피를 쓴 도덕과 공의에 관한 철학서처럼 읽혔는데, 워낙 그 방면으로 취약하다 보니 암살자들의 논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과연 이 독특함이 다른 독자들에겐 어떻게 읽혔을지 무척 궁금한데, 인터넷서점이나 블로그에 이 작품에 관한 서평이 올라오면 꼼꼼히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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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제국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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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7살의 야엘 말랑은 파리의 박제 가게에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거울에 나타난 의문의 그림자와 그것이 보낸 메시지로 인해 그녀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고 맙니다. 우연히 알게 된 프리랜서 기자 토마스와 함께 메시지를 해석하며 그 안의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한 야엘은 세계를 조종하고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구성하는 숨은 권력자, 그림자들의 존재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동시에 그런 자들이 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수수께끼를 낸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집니다. 또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은 물론 자신과 토마스마저 거듭 살해될 위기에 처하자 야엘은 그림자들의 정체와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읽은 지 10년도 훌쩍 넘어 줄거리는 거의 가물가물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이 작품이 처음에(2008) ‘악의 유희라는 제목으로 출간돼서 많은 독자들의 분노를 산 점입니다. 막심 샤탕의 악의 3부작’(또는 조슈아 브롤린 시리즈’)의 후속작으로 여겼던 독자들은 뒤늦게야 출판사가 원제와 전혀 관련 없는 번역제목을 붙였음을, 악의 3부작의 후광을 이용한 얄팍한 상술을 부렸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3년 후인 2011년에 나온 개정판에는 그림자의 제국이라는 새 제목이 붙었는데, ‘Les Arcanes du Chaos’(직역하면 카오스의 비밀’)라는 원제와 거리가 있긴 해도 그나마 수긍할 만한 번역제목이었습니다.

 

서평에 앞서 결론부터 말하면 그림자의 제국은 제가 갖다 붙인 명품재독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입니다. “인상 깊게 읽었다는 기억 자체가 오류였다는 뜻인데, 아마도 악의 3부작직후에 읽은 작품이라 그런 오류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악의 3부작이 조슈아 브롤린이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앞세운 잔혹한 연쇄살인 스릴러였던 반면 그림자의 제국은 이른바 음모론을 전면에 내세운 진실 찾기 추격 스릴러입니다. 야엘이라는 평범한 여성이 그림자들이라는 가공할 집단의 희생양이 되어 철저하게 망가지는 가운데 진실을 찾아 위험천만한 여정을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거울에 나타난 의문의 그림자, 집 여기저기서 들리는 기괴한 소음들, 누군가 자신의 집에 몰래 침입한 것이 분명한 흔적들... 엉망이 된 자신의 삶을 되돌릴 방법은 난해한 문구와 성경 구절이 뒤섞인 그림자들의 메시지와 수수께끼를 푸는 것밖에 없다고 여긴 야엘은 토마스의 도움을 받아 진실 찾기에 나서지만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끊임없이 추격당하자 그림자들의 진의를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집니다.

 

이 작품에 쏟아진 혹평의 대부분은 식상한 음모론에 관한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에 관한 장황한 설명에서부터 1달러 지폐의 상징들, 케네디 암살, 쿠바 공습, 베트남 전쟁, 9.11 테러 등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음모론에 대한 강의식 서사가 독자들을 질리게 한 탓입니다. 또한 주인공 야엘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점 왜 하필 나야?” - 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이 충격이나 반전과는 거리가 먼,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허술했던 점도 혹평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세계를 조종하고 역사를 제 입맛대로 구성하는 자들이 평범한 여성 하나를 놓고 이토록 공을 들여 잔혹한 게임을 벌인 이유가 겨우 이거였어?”라는 한탄이 저절로 튀어나왔는데, 말하자면 5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 전체를 허망하게 만든 엔딩이라고 할까요?

 

애초 막심 샤탕은 기승전결을 갖춘 액션 스릴러 서사가 아니라 음모론에 관한 일장연설, 특히 미국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역사를 조작하고 사익을 위해 공포를 조장했는가를 설명한 한 블로거의 포스트에 온힘을 쏟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론에 관한 강의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내용들이라 어느 지점부터는 저절로 건너뛰게 할 정도로 지루하기만 했고, 안 그래도 비슷한 상황만 반복하고 있는 추격전의 긴장감마저 훅 떨어뜨리는 부작용까지 자아내고 말았습니다.

 

명품재독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놓고 별 3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준건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기억의 오류 때문에 주말 하루를 꼬박 소진한 것도 그저 아깝기만 할뿐입니다. 다만, 야엘과 토마스가 그림자를 상대로 벌이는 진실 찾기 이야기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지만 음모론 자체가 낯설거나 궁금한 독자라면 흥미로운 책읽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참고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구판인 악의 유희로 검색하면 좀더 많은 서평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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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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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앙 산악지대의 한 마을에서 큰 소동이 벌어집니다.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한 남자가 내연녀와 함께 도주극을 벌이는 와중에 102세 할머니 베르트 가비뇰이 경찰에게 총탄을 퍼부으며 두 남녀의 도주를 도왔기 때문입니다. 베테랑 수사반장인 앙드레 벤투라는 연행된 베르트의 심문을 맡곤 그녀가 불법 소지한 독일제 권총의 출처부터 묻습니다. 2차 대전 중 자신을 강간하려던 나치를 죽이고 손에 넣은 권총이란 말에 벤투라는 깜짝 놀라지만 정작 그를 엄청난 충격과 연민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만든 건 그 직후부터 베르트가 들려준 그녀의 연쇄살인 연대기입니다. 그 연대기는 25살이던 1939년에 저지른 첫 살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뒤 지하실에 묻은 수많은 남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021년에 읽은 포커 플레이어 그녀에 반해 곧장 사들였지만 3년이 지나서야 읽게 된 브누아 필리퐁의 루거 총을 든 할머니입니다. 제목만 보면 할머니 탐정이 활약하는 코믹 장르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102세 연쇄살인마 할머니의 평생에 걸친 살인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소재지만 포커 플레이어 그녀에서도 만끽했던 브누아 필리퐁 특유의 지독한 비틀기와 블랙 코미디 코드가 잔혹하면서도 연민을 품을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살인기록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그야말로 희비극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프랑스 문예지 리르는 이 작품에 대해 그녀의 인생은 20세기의 역사, 그리고 육체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운동이 걸어온 단계들과 일치한다.”는 평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수많은 남자들(대부분은 남편들)을 총과 칼로 죽인 뒤 지하실에 묻어버린 비정한 연쇄살인마지만, 베르트는 자신의 행위를 분노와 복수 이상의 정의였다고 믿습니다. 자신을 강간하려던 나치, 여자를 말 잘 듣는 애완동물정도로 여기는 지독한 가부장제의 신봉자들, 아동학대범, 인종차별자 등 그녀의 지하실에 묻힌 남자들은 베르트 입장에서는 법과 사회가 방치한, 그래서 자신의 총과 칼이 아니면 응징할 수 없는 악이자 괴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악과 괴물들의 행위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함부로 여겨지곤 했던 20세기 남성우월주의의 추악한 단면들과 꼭 닮아있는데 그래선지 베르트의 연쇄살인은 진술이 거듭될수록 사이다 이상의 통쾌함을 안겨주곤 합니다. 물론 살인이 반복될 때마다 베르트에게 찾아오는 심신을 갉아 먹는 고통과 악몽은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워 보이지만 말입니다.

 

다른 작가가 베르트의 이야기를 정색하고집필했다면 아마 이 작품은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비극으로 포장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브누아 필리퐁은 심각한 상황에서마저 웃음을 유발하는 기막힌 단어와 문장으로 독자를 쥐락펴락 사로잡습니다. 얄미울 정도로 절묘하게 단어와 문장을 비틀어대기도 하고, 재치 넘치는 비유와 인용으로 독자는 물론 작중 인물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영국식 블랙 유머와는 또 다른 맛을 풍기는 프랑스 스타일의 블랙 코미디 덕분에 베르트의 무겁고 어두운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은 공감과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쉴 틈 없이 맛보게 되는 진정한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사족이지만, ‘루거 총을 든 할머니에는 성()에 관한 꽤 수위 높은 묘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베르트를 함부로 짓밟는 남자들의 폭력인 경우도 있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베르트의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인 행위인 경우도 있습니다. 적나라한 묘사 때문에 독자에 따라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장면들은 베르트가 갈망한 자유와 권리가 무엇인지, 그녀가 구현하려던 정의가 무엇인지를 좀더 생생하고 피부에 와 닿게 전해주는 장치들이란 생각입니다.

 

102세 할머니이자 페미니스트이자 연쇄살인범이며 가차 없는 독설가이기도 한 베르트의 일생을 다룬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연쇄살인 스릴러와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여성소설의 미덕을 골고루 갖춘 명품입니다.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끌진 못한 것 같은데 뒤늦게라도 많은 독자들이 이 명품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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