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중생 샤오원(小雯)이 죽었다. 22층에서 뛰어내려 온몸이 부서졌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샤오원의 언니 아이(阿怡)는 알고 있다. 동생은 살해된 것이다.

샤오원은 세상을 떠나기 전, 성추행 사건을 꾸며냈다며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되어

수많은 누리꾼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억울하게 희생된 샤오원을 위해 아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맹세한다.

그를 위해 기인에 가까운 해커 겸 탐정 아녜(阿涅)의 도움을 받게 된 아이.

그러나 SNS, 인터넷, 스마트폰 등 네트워크 속에 감춰졌던 진실이 베일을 벗을수록,

아이는 자신이 알던 동생 샤오원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13.67’로 홍콩 경찰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던 찬호께이가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소재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전반부가 천재적인 해커이자 까칠한 명탐정 아녜의 도움을 받은 아이가 진실을 찾는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찾아낸 범인을 향한 두 사람의 가차 없는 복수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망내인은 단순한 진실찾기-복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네트워크가 지배한 세상에서 악의가 얼마나 쉽게 싹을 틔우고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네트워크에 의지한 소통이란 얼마나 가볍고 이기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네트워크에 가둔 인간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한 것인지 등

찬호께이다운 묵직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두 주인공은 구시대적 컴맹전지전능한 해커라 할 만큼 대조적인 인물들입니다.

아이는 20대 초반의 여성이지만 도서관 대여프로그램 외엔 컴퓨터와 담을 쌓은데다

스마트폰은 만져본 적도 없고,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이란 문자메시지가 전부입니다.

반면, 아이를 도와 진실 찾기에 나선 아녜는 네트워크 세상의 지배자입니다.

그는 타인의 네트워크에 마음껏 파고들 수 있는 건 물론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불가능 자체를 모르는 지상 최고의 해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녜가 네트워크 속에 숨은 진실들을 하나씩 파헤칠 때마다 아이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드러나는 진실들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 사람이 접하는 정보를 통제할 수 있으면 생각과 감정도 통제할 수 있는”(548p)

네트워크의 파멸적인 힘을 지켜보는 일이 아이에겐 더욱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비열한 익명성을 겸비한 탓에 쉽게 찾아낼 수도, 단죄할 수도 없는 대상이거니와

그저 가학의 희열과 끝없이 샘솟는 관음증만 조장하는 허깨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증오해야 할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넷 뒤에 숨은 인간성의 어두움”(685p)이지만

독자는 아이의 눈을 통해 네트워크가 지배한 세상의 끔찍한 단면을 새삼 재인식하게 됩니다.

사건은 단순하고, 용의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설정됐지만,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설정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네트워크가 지배한 디스토피아라는 철학적 주제에만 천착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 속 미스터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양파껍질처럼 새 진실을 드러냅니다.

자살한 동생은 내가 알던 동생이 맞는가?

동생을 조롱과 모욕의 장으로 내몬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들의 동기는 무엇인가?

진실찾기는 물론 복수의 대리인까지 자처하는 아녜의 정체는 무엇인가?

작가는 크고 작은 미스터리를 사방에 뿌려놓고 아주 천천히 그것들을 풀어나갑니다.

, 그 과정에서 화려한 홍콩의 이면, 안타까운 가족사, 사적 복수의 문제까지 언급되면서

이야기의 볼륨감은 분량에 걸맞게 점차 커져갑니다.

 

이야기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두 주인공 역시 시리즈를 기대하게 할 만큼 매력을 발산합니다.

까칠한 안하무인 성격, 천재적인 해커이자 명탐정, 복수를 상징하는 네메시스라는 필명 등

다양한 캐릭터가 부여된 아녜는 비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시리즈 주인공의 미덕을 모두 갖췄고,

아녜 덕분에 점차 강인한 인물로 성장하는 아이 역시 뒷이야기가 기대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녜와 아이가 콤비를 이룬 후속작을 써달라고 작가에게 조르고 싶을 정도인데,

망내인이 호응을 얻는다면 불가능한 기대도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역시 분량의 문제입니다.

작가 스스로 원래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와 비슷한 분량(312p)으로 쓸 생각이었다. (중략)

탈고했을 때는 30만 자를 넘어 ‘13.67’보다도 길었다. 망했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망내인의 핵심 스토리는 이만한 분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각 인물의 입장과 생각, 그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의도대로

작가는 꽤 많은 분량을 내밀한 묘사를 위해 할애했고,

해킹이나 네트워크의 원리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도 그에 못잖게 곁들이고 있습니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100p 안팎 정도만 줄였다면

지레 분량에 질려서 망내인을 읽을까 말까 주저하는 독자는 없을 거란 생각입니다.

물론, 저처럼 찬호께이의 팬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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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책이좋아 2018-01-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시리즈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