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H 고스 - 리스트 컷 사건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선 2007‘ZOO’(개정판 제목 일곱 번째 방’)가 먼저 출간됐지만, 제가 오츠이치와 처음 만난 건 그 1년 후에 출간된 ‘GOTH 고스’(이하 고스’)를 통해서였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수록작의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어도 그 당시 꽤 큰 충격을 받았던 일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여러 필명 중 오츠이치로 발표한 작품 가운데 서평까지 쓴 게 모두 여섯 편인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고스의 서평이 없는 걸 뒤늦게 발견하곤 첫 만남 때의 충격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겸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들었습니다.

 

주인공인 는 한마디로 말하면 순도 100%의 사이코패스입니다. 늘 엽기적인 사건에 마음이 끌리고 그런 사건에 관한 기사를 닥치는대로 모으곤 합니다. 범인에게 친밀감을 느끼는가 하면, 범행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싶어 하고, 범인이 남긴 물리적인 흔적들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그런 뜻밖의 횡재를 하더라도 결코 경찰에 신고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도, 폭력의 희생자가 된 적도 없는, 말 그대로 타고난 사이코패스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말 거라는 비교적 확실한 예감도 갖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 의 성정을 유일하게 꿰뚫어보는 건 같은 반의 모리노 요루뿐입니다. 일체의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모리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을 처형하는 도구나 고문 방법입니다. 엽기적인 사건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모으는 점은 와 닮은꼴입니다. 다만 언젠가 살인을 저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와 달리 모리노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큰, 말하자면 인간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대부분은 엽기적인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와 모리노가 사건의 진상과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와 모리노는 사건 해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각 수록작에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와 모리노는 그들이 이미 저지른 사건이나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흥미를 갖고 지켜보다가 자신들이 만족하는 선에서 방치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범행을 방조하거나 거들진 않지만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는 의무감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자신이 찾아낸 범인에게 기념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범인이 소장하고 있는 피해자의 훼손된 신체를 훔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을 일부러 살해 위기에 몰아넣고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기괴한 사고방식과 행동은 와 모리노의 행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듭니다.

 

캐릭터도 엽기적이고 특이한데다 사건들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오츠이치가 구사하는 문장들은 무척이나 담담하고 서정적입니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몸과 마음을 찔러대는 불쾌감과 불편함이 극에 달했는데, 지금까지 오츠이치의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고스는 그중에서도 원톱이라고 할 만큼 그 수위가 대단했습니다. 잔혹한 묘사 면에서 더 심한 작품들도 수두룩하지만 고스19금 판정을 받은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스터리와 호러와 판타지가 뒤섞인 미묘한 장르에다 여러 가지 트릭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고스는 오츠이치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 취향이 맞지 않는 독자라면 첫 수록작만 읽고도 책을 덮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반한 독자라면 고스는 몇 번을 거듭 읽어도 매번 새로운 충격을 선사할 만한 명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오츠이치에 관한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 그의 세계에 입문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독자라면 고스를 통해 바로 그 해답(포기할 건지 팬이 될 건지)을 알 수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첫 수록작만이라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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