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과 충돌해 침몰해버린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 제임스 카메론은 그 소재를 차용해 전혀 색다른 영화를 만들어 버렸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영화의 주 테마는 배의 침몰이 아니라 드카프리오(이하 잭)가 칼로부터 애인(로즈)을 빼앗는 것이었다.

칼은 영화 내내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다. 비열하고 따분하며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나쁜 놈. 반면 잭은 재능있고 재미있으며, 매우 신뢰성 있는 인물인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잭이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즈를 빼앗는 게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내가 칼이라고 가정하고, 항변을 해본다.

난 로즈에게 정말 잘해줬다. 세계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도 줬고, 일시적인 탈선도 다 눈감아 줬다. 잭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잘생긴 편이고, 돈많고 지체높은 집안 출신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신랑감이 아닌가? 그런데 태생도 미천한 잭이라는 놈이 자꾸 내 약혼녀에게 집적거린다. 여기서 열을 받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리라. 잭을 미워하고 로즈를 붙잡으려고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야. 로즈가 잘생긴 잭을 만나 일시적으로 마음이 흔들린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니, 가만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잭을 팔에다 수갑을 채워 선실 아래쪽에 묶어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이 로즈를 포기하지 않자 총을 쏘며 쫓아간 거다. 주머니에 총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총을 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돈을 주고 구명보트에 한자리를 예약했음에도, 난 그 자리를 포기한 채 로즈를 찾아나섰다. 어떻게 해서든지 로즈의 마음을 다시 돌려보려고. 그런 내가 나쁜놈인가?

로즈 넌 나를 따분해했고, 귀족 부인들과의 대화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 하지만 우리 가진 자들의 삶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잭과 선실 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춘 게 낭만적으로 느껴진 것은 니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그런 거지, 너처럼 곱게 자란 애가 평생을 그러고 살 수 있겠어? 낭만, 그건 밥을 먹여주지 않아. 잭은 필경 로즈 당신을 고생시킬 거야. 날 보라고. 선원을 매수해 보트에 당신 자리까지 두개를 예약했고, 나중에는 우는 아이를 내 아이인 양 속여서 결국 보트를 탔어. 남들한테는 비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게 바로 생활력이야. 반면 잭은 뭘 했나? 로즈 너만 보트에 태웠어. 자기는 그냥 죽겠다고 하는 거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당신은 결국 보트에서 내렸고, 결국은 둘다 죽을 뻔했지.

배가 침몰하는 건 기정사실이었으니, 잭은 당신과 함께 난간에 매달릴 게 아니라 몸을 띄울 널빤지를 구하는 게 우선이었어. 잭은 죽었지만 당신은 겨우 살아난 게, 장롱 문짝에 몸을 의탁했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낭만은 밥을 먹여주지 않아. 잭과 결혼했다면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나 해? 주머니에 다이아가 있었으니 몇 년은 살 수 있었겠지만.

혹자는 그러더군. 여자는 소유물이 아니라 인격을 갖춘 존재이며, 그녀의 결정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버스는 이미 떠났는데 계속 기다려봤자 소용 없다고. 그런 식이라면, 로즈가 잭이랑 결혼해 잘 살다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드카프리오같은 남자를 만나서 헥까닥 했고, "아 이게 바로 사랑이야!"라고 느꼈다면, 그것도 숭고한 결정이니 곱게 보내줘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 권상우가 <천국의 계단>에서 떠난 버스를 열나게 쫓아가 올라탄 것처럼,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야. 약혼이란 게 뭐야?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잖아? 그렇게 싫으면 아예 약혼을 하지 말던가 할 것이지, 우리같이 지체높은 집안에서 어떻게 파혼을 할 수가 있겠어?

로즈 넌 그러더군. 잭이 "내 영혼을 구해준 존재"라고. 나와 헤어진 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바 없지만, 그래, 나랑 결혼해서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할 수 있나? 미국사회가 당시만 해도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을 정도로 척박했다는 것도 잊지는 말게. 넌 그랬지. 내가 대공황 때 주식이 폭락해서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거 순 거짓말이야. 이야기를 만들려고 카메론이 지어낸 거라구. 나같이 약삭빠르고 생활력 강한 얘가 주식이 폭락할 때까지 넋놓고 기다렸겠어? 절대 아니야. 로즈,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할게. 그 다이아는 왜 바다속에 던지고 그래? 그럴 거면 날 주지...
(이상 저승에서 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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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1-2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이상 저승에서 칼이었나요? 독백이 웃겨요^-^;
하지만 맞는 이야기에요- 칼의 입장에서보면 아주 나쁜사람은 잭이죠-;

추천왕 2012-04-1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야 보고 강력추천.
 

 

 

 

클래식을 보고 감상문을 쓰면서, "준하(원래 이름은 조승우인데, 안유명하니 그냥 준하라고 함)"라고 한 적이 있지요. 그나마도 '조승우'를 '조순우'로 잘못 썼구요.

그랬더니 밑에 이런 답글이 달리더군요. "조승우가 얼마나 유명한데요!"
그래요. 저만 빼고는 모두 조승우를 알고 있더군요.

전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본답니다. 주변에 저처럼 많이 보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요. 그런데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는 것 치고는, 영화에 대해 너무도 무지합니다. 예를 들어 '수잔 서랜든' 하면 주위에서는 "아, 그사람 이러이러한 영화에 나왔었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 영화를 봤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잘 알 수가 있을까요?

전 <스파이더맨>에 MJ로 나오는 여자를 보고 "저런 얘가 어떻게 주연이냐"고 한탄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 보는 배우고, 별로 이쁘지도 않아서 한 소리에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여자가 제가 일전에 봤던 <브링 잇 온>에 나온 여자더군요. 나중에 케이블에서 그 영화를 다시 보면서 '진짜 나왔구나' 하고 중얼거려야 했지요. 남들은 안본 영화의 배우도 다 기억하는데, 저는 왜 봤던 영화의 배우도 모를까요?

대충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왜 이리 무식한지. 다음과 같은 답이 나오더군요.
첫째, 원래 머리가 나쁘다.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 여친도 제가 영화의 줄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험이 반복되자 제가 바보라는 걸 알아채더군요.

둘째, 공부를 안한다. 영화만 본다고 다는 아니죠. 저처럼 영화만 달랑 보고 일어나면 백날 봐도 안되요. 정말 영화에 대해 잘 알려면 <시네 21>같은 영화 잡지도 보고, TV의 영화 프로그램도 봐야하며, 다른 이들이 쓴 영화 감상문도 열심히 읽어야겠죠. 하지만 저는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도 안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지요.

세째, 사람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친구 어머니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 저는 일단 인사를 한 뒤에 "혹시 누구 어머니세요?"라고 묻곤 하지요. 저희 회사 동료들의 얼굴-이름도 아직 외우지 못했답니다.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말에요. <러브 액츄얼리>를 볼 때도 바람 피는 아저씨랑 동급생을 좋아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를 동일인으로 알았지 뭡니까. 요즘 잘나가는 연예인들-비슷하게 생기기도 했지만-의 얼굴은 물론 구별하지 못하지요.

해답이 나왔으니 고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첫번째와 세번째는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두번째는 노력하면 나아지겠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직은 없습니다. 제가 뭐 영화로 일가를 이룰 것도 아니고, 영화에 투자할 여력도 별로 없답니다. 그냥 영화에 대해 문맹인 채로, 시덥지않은 감상문이나 쓰면서 살아가려구요. 체념의 지혜를 발휘하면 인생이 훨씬 편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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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4-01-2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증상인 것 같습니다. ^^ 단, 저는 씨네21나 영화평론도 꽤 읽는 편인데도, 영화배우의 이름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사실은 학교 다닐때 후배들 이름, 입사해서는 직원들 이름 외우는데 애를 먹곤 합니다. 어제도 고향에서 친구들과 뭘 먹고 있는데 후배들 한떼를 우연히 만났는데.. 녀석들 하는 말, "선배~ 우리 이름 한번 말해봐요~" - - ; "어어... 어.. 야.. 날 시험하지마.. 다 알어.. "
아무래도 이름을 기억하는 뇌의 무언가가 기능이 안 좋은게 아닐까 싶어요.. ^^ 마태우스님은 다른 이름들은 잘 기억하시는 편이세요?

마태우스 2004-01-2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저와 증상이 같다니 위안이 되네요. 이름 외우기도 마찬가지죠. 자주 보는 친구 아이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친척 아이들 이름도 잘 못외워,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답니다. 희한하게도 야구선수같이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줄줄 외우거든요. 이게 관심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진/우맘 2004-01-28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름 외우기, 사람 구별하기엔 젬병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나쁘다고 매도 당하기에는 조금 안타까운 상태인걸요~

ceylontea 2004-01-28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책의 주인공 및 기타 인간들의 이름도 형태로만 읽는가 봅니다.. 책 읽을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읽고나면 이름들이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ㅠ.ㅜ

마태우스 2004-01-2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님들의 말씀에 큰 위로가 됩니다. 뭐, 기억 안나면 안나는대로 살면 되게지요^^

노바리 2004-01-2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독과 배우들 이름을 너무 잘 기억해요. 사실은 안본 영화여도 그게 감독이 누군지 배우가 누군지 한번 보면 저절로 외워져요. 스스로도 가끔 놀라지요. 그런데 대신, 숫자엔 젬병이더군요. 아무리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숫자들. 그래서 저는 가끔 제 나이도 헷갈린답니다.
 

애완견을 기르는 집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눈에 넣어도 예쁘지 않을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면 한번쯤 길러보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소외' '삭막' '소통부재' 등의 단어가 화두가 되고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만큼 충직한 친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젊은 느티나무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몰래 퍼옴-

개를 기를 때 성대수술을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단다. 아파트 같은 곳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의 존재는 이웃과의 분쟁을 불러오는 이유가 되니까. 짖지 못하는 개, 이게 과연 개일까? 짖는 게 거의 유일한 의사 표현인 개로서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프기 짝이 없을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대수술은 너무 잔인한 행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개를 기르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럼 고환/불임수술은 어떨까. 물론 난 고환수술에 반대한다. 고환에서 분비되는 성호르몬은 개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별로 과학적이지 못한 믿음을 갖고 있는 탓이다. 그 허황된 믿음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벤지, 개로서는 할아버지인 16세건만, 아직도 '정정하다'는 말을 듣고 산다. 이 나이에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 팔에 대고 자위행위를 하고, 분비물을 배출한다. 처음에야 그게 귀찮았지만, 내 팔을 희생시켜 벤지가 건강하다면, 하는 마음으로 과히 아름답지 못한 장면들을 참아냈다. 지금은 거기에 매우 익숙해져, 벤지가 그짓을 하는 동안 난 한가롭게 독서를 하거나 TV를 본다.

벤지가 남자인 데 반해, 암컷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한 모양이다. 요즘 읽는 <독신>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육개월에 한번씩 생리가 있고나면 한 삼주나 사주쯤이 발정기야. 그때 밖으로 내보내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조금 신경질적이되기는 하지만 다른 변화는 없다구]

주인공은 난소제거수술을 하라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을...그런 자연스럽지 못하고 잔인한 일을.."

친구의 말이다.

"수술을 받는다면...애당초 자신에게 그런 욕망이 있었다는 걸 다 잊고.....어느 편이 더 잔인하다고 생각해?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이면 아예 잊는 편이 좋지 않아?"

하지만 주인공은 끝내 수술을 시키지 않는데, 나중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을 때, 그 개는 주인공을 뿌리치고 길거리의 개와 합궁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쯤되면 과연 수술을 안시키는 게 꼭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딱 한번, 벤지에게 여자를 만나게 해주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벤지의 주치의는 그걸 말렸다.

"한번 그 맛을 보면 집을 나가요. 더이상 애완용으로 기를 수가 없지요"

난 결국 그 생각을 포기했다. 그 때는 벤지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사 따져보면 벤지가 내 곁을 떠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몽정기>를 보면 중학교 애들이 철봉에 매달려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에게는 좀더 자라면 그간 참았던 정력을 쏟아부을 기회가 생기겠지만, 우리 벤지는 죽을 때까지 내 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이쁜 개들을 봤을 때 그라고 하고픈 마음이 없었을까. 그런 걸 보면 우리 벤지도 아예 욕망을 제거하는 게 더 행복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문제에 물론 정답은 없다. 욕망을 아예 모르는 상태와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 허기진 상태 중 어느 것이 좋은지. 하지만 그건 성대수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목소리를 못내더라도 따뜻한 집과 풍부한 음식이 있는 곳을 애완견둘은 더 선호할 지 모르는 일이다. 대답할 수만 있다면 벤지에게 묻고 싶다. 지금 행복하냐고. 대답 대신 벤지는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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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5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자는 어때야 한다는 식의 남녀차별적인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헤어지고 난 뒤 해꼬지를 하는 건 남자로서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여자는 그래도 되냐고 묻는 사람이 반드시 있겠지만 그거야 알아서 판단할 문제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걸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해꼬지는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심은하와 사귀던 남자(여기선 알파라 부르겠다)는 심씨가 자신과 동거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 물론 심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소송을 냈고, 그 남자 또한 자신의 말이 맞다며 맞소송을 냈다. 심은하라는 문화권력을 상대로 소송을 낸 걸 보면 동거를 했던 것이 사실인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왜 그가 뒤늦게 그 사실을 밝혔는지 하는 거다.

돈을 요구했는데 심씨가 응하지 않아서 그랬다는 세간의 의혹을 알파는 철저히 부인했는데, 그럼 왜 이런 발표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알파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진실'이라는 숭고한 단어가 그렇게 모욕당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그렇게 진실을 밝히길 좋아한다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던 분들의 의문사 규명을 돕는 게 어떨까? 이제 와서 그 사실을 알리는 게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일까?

내 친구에게 물어봤다. "네가 심은하랑 동거를 했었어 봐. 너같으면 어쩌겠니?"
잠시 생각하던 내 친구, 이렇게 대답한다. "십만원만 주면 입 다물지."
나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졌다면, 그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일이다. 심은하가 그리 쫀쫀한 사람은 아닌지라 아까 그 친구처럼 10만원만 달라고 했을 때 딱 십만원만 주겠는가. 한 100만원까지도 줄지 모른다. 도대체 알파라는 놈은 얼마를 요구했기에 심은하가 거절을 했을까? 얼마나 거머리같은 근성이 있었기에 뜯기고 뜯기고 또 뜯기느니 같이 죽자고 생각한 걸까? 알파란 놈이 심은하를 사랑하긴 한 건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심은하는 다행히 뛰어난 연기력으로 그 위기를 극복한 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별로 남았지만, 비슷한 경우를 당하고 좌초한 사람도 있다. 진재영이 바로 그러한데, 사건의 전개과정이 심은하랑 다를 바 없다. 그 일로 인해 우리가는 진재영을 TV에서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난데없이 등장해 신선한 마스크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녀, 부산 사투리를 고치기 위해 입에 야쿠르트 병을 물고 살았다는 그녀의 노력이 아깝기 짝이 없다. <색즉시공>에 나오는 등 활동을 재개했지만, 예전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위의 두 남자들을 보면서 내가 같은 남자라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연예인이 데뷔 전에 무슨 일을 했건 문제가 전혀 안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고, 혼전 동거라는 게 마치 큰 죄인양 여겨지는 풍토도 제발 좀 개선되었으면 한다. 그런 일 때문에 노래 잘하는 가수 백지영이 몰락했고, 시원한 미모를 자랑하던 오현경은 이 나라를 떴다. 국내에 돌아와 연예활동을 해볼까 했지만, 제정신이 아닌 우리 사회는 그마저도 막았다. <순풍 산부인과>에서 날 즐겁게 해준 이태란도 하마터면 더이상 못볼 뻔으니 이게 무슨 난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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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2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닌지요? ^^;

마태우스 2004-01-2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들켜버렸다.....

연우주 2004-01-2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의 잣대로, 그 잣대를 윤리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은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해요. 여자 연예인이 연기나 노래만 잘 하면 되었지 다른 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
 

 

 

 

한겨레에서 <허스토리>라는 여성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난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여성지 시장에 뛰어들어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걸까? '차별화' 운운하지만, 신규업체치고 차별화를 들먹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그 말대로 차별화에 성공한 곳은 또 어디 있는가? 자칫하다가는 한겨레에 커다란 부담만 남기고 망해버린 '한겨레리빙'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가 했던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창간호는 판매한 지 얼마 안되어 매진이 되어 버렸고, 2권 역시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단다. 허스토리의 성공비결에 대해 한겨레에서는 선정적인 기사보다는 커리어 우먼을 다루며 차별화에 성공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허스토리>의 돌풍은 사은품 때문이다. 창간호에서는 값비싼 외제 화장품을 구입자에게 줬으며, 그 다음호에서도 외제 향수를 보너스로 주고 있단다. 잡지가 다 팔렸는데 더 찍지 않고 서둘러 '매진'을 선언한 이유가 상품으로 줄 화장품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잡지값보다 비싼 화장품을 부록으로 주니, 잡지가 팔리면 팔릴수록 더 손해를 보는 셈이다. 물론 부수에 따라 광고단가가 높아지니 전체적으로 봐서는 이익이겠지만, 이런 게 한겨레의 이념과 맞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고가경품과 1달 이상의 무가지를 금지한 신문고시가 부활되었을 때, 조중동은 한달내내 그 조치를 비난한 반면, 한겨레는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적절한 행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이후 조중동이 계속적으로 신문고시를 어길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던 것도 다름아닌 한겨레다. 그런 한겨레가 여성지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고가의 경품을 동원해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른 여성지와 차별화를 한다는 것은 기사 내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지, 고가의 화장품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창간호야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쳐도, 두번째 호까지 외제 향수를 뿌려댄다면, 평소 한겨레가 주장했던 '신문시장의 정상화'는 시장점유율이 낮은 매체의 딴지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난 신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자는 한겨레의 주장에 적극 공감하며, 신문들이 경품을 돌리는 행위가 신문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독자들을 버려놓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신문과 달리 여성지에서는 사은품을 주는 것이 관행적인 일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허스토리>가 한겨레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만큼,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지 않을까? 잡지값을 능가하는 외제화장품을 '관행'이라고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한겨레가 자신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조중동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한달 후면 허스토리 3호가 나온다. 그때는 화장품 따위가 아닌, 기사의 질로만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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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1-2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포님! 오랜만이네요! 하시는 일은 잘 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