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합격한 애들과 축하연을 가졌다. 내가 맡은 임무가 시험에 합격하도록 그들을 잘 지도하는 거였으니, 공식적으로는 어제가 그들과의 마지막 만남인 셈이다. 앞으로라고 그들을 못보는 건 아니겠지만, 작년만큼 자주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때는 모든 부담을 털고 좀더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임의 성격이 성격인지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 결과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1) 파산했다: 카드로 긁긴 했는데,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가슴이 무겁다. 다음 월급날까지 사람을 만나지 말고 피해다녀야지.

2) 집에 와서 프리챌 포커를 쳤다. 술마시면 나오는 버릇인데, 어제도 8천만원을 땄으니, 이게 실력인지 술의 힘인지 모르겠다.

3) 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먹고도 라면이 들어갈 구석이 있다는 것은 놀랍기 그지없다. 라면으로 인해 불어난 살을 빼려면 운동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거야?

4) 지하철서 잤다; 눈이 와서 택시가 전혀 안잡혔다. 할수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양재에서 타서 열나게 자기 시작, 깨보니 구파발이었다. 삼십분 가량을 택시를 잡다, 겨우 한대를 구해 집까지 왔다. 있는 돈을 다 털어서 택시비를 냈더니 지갑에 돈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오늘은 집에서 칩거했다.

5) 김치를 꺼내다가 그랬는지, 아침에 깨니까 냉장고 문이 열려 있다. 흐흑. 고장은 안났으려나....

6) 큰소리: 이게 제일 문제다

-서빙하는 여자분이 눈온다고 집에 어찌 가나 걱정을 하기에, 만원이 넘게 남은 내 교통카드를 줘버렸다. "지하철로 가세요"라면서...

-그건 그렇다 치자. 그 여자분이 쌍거플 수술에 관해 물어보기에, 내가 돈 낼테니 친구네 병원에서 같이 하자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졸지에 나까지 수술할 판이다. 쌍거플 없이 지금까지 버텼는데 말도 안되지. 앞으로 그 술집 못갈 것 같다....

술이 웬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연우주 2004-01-23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쌍꺼풀이 없어요. 언젠가 쌍꺼풀이 없는 여자가 미인이 될 거라고 했는데 그 세상 언제 오련지. ^^ 가끔, 눈을 크게 뜨거나 찡그리면 수술에 실패한 쌍꺼풀 같은 쌍꺼풀이 생기긴 해요. 하지만 그 또한 별로 반갑지 않지요.

술버릇이란 참 재미있는 거예요. 완전 무의식의 세상이니. 내가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상.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얘가 <라이언 일병...>을 안봤다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난 오늘 설날 특집으로 MBC에서 해주는 걸 볼 때까지, 비디오로조차 이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영화를 안본 이유는 별 게 아니다. 같이 볼 여자가 없었던 탓. 스물을 넘기고 나서 내 곁에 여자가 없었던 것은 2000년과 2001년, 딱 두 해인데, 이 영화는 아마도 그때 개봉했었을 거다. 지금이야 혼자서 극장을 찾을 정도의 뻔뻔함이 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남녀끼리, 혹은 여여끼리 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영화는 그래서 안봤다고 치자. 그럼 비디오로는 왜 안봤을까? 집에 비디오가 없었으니까! 생활 수준에 비해 우리집에 없는 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디오고, 또하나는 씨디 플레이어다. 후자는 컴퓨터를 사면서 해결이 되었고, 비디오는 2년 전 미국에 가는 누나로부터 가로챘으니 지금은 부족한 게 없다. 욕심이란 게 끝이 없어, 디지털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비디오만큼 절실하진 않다.

 

어찌되었건 궁하면 통한다고, 안보고 버텼더니 이렇게 TV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고보니 <타이타닉>도 작년 추석인가 TV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할 때는 같이볼 여자가 있었지만, 외환위기 직후라 쇼비니즘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 타깃이 직배로 들어온 <타이타닉>이었다. 난 "그 영화를 보면서 고단함을 잊는 관객들을 죄인으로 몰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어딘가에 썼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극장에 갈 용기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난 추석 때 눈물을 흘려가며 그 영화를 보았고,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극장에서 못본 걸 후회했다. 화면이 작은 것도 그렇지만, 우리말로 더빙을 해놓은 걸 보면 영 생동감이 떨어지니까. 그래도 본 게 어딘가. 좌우지간 날 먹여살리는 것은 팔할이 명절이다.

 

다들 알겠지만, 영화는 라이언의 형제 셋이 죽어서 톰 행크스를 비롯한 여덟명이 마지막 남은 라이언을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 하필 그가 있는 곳이 독일군이 우글대는 지역, 한명을 구하러 여덟이 목숨을 건다는 건 그 여덟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높은 분들은 그런 명령을 내리면서 "아, 우리는 정말 인도적인 나라야"라고 스스로 감동할 테고, 생색도 지들이 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톰 행크스를 비롯한 병사들의 희생을 딛고 라이언은 엄마 품으로 돌아간다. 죽을 때 그랬는지, 탐 행크스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살아야 해"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이 된 라이언은 탐의 묘지를 찾는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하면서 살았읍니다. 다리 위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요"

 

갑자기 생각이 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의인들이 있었지. 몸을 던지는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린 사람들이. 그로 인해 살아난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자신이 빚진 몸값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니,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며 자신을 살렸다는 건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 중 하나가 우리가 보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산다면, 그 누군가의 희생은 덧없는 것일까. 아니, 가치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도대체 어떻게 나누어지는 걸까?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 영화를 보고나니 전쟁이란 것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거다. 흥행실적으로 보건대 미국 내에서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많을 터, 그런데 그들은 왜 전쟁이라면 그렇게 환장을 하는 걸까? <라이언...>을 보면서 전쟁의 잔혹함에 대해 느끼는 대신, 라이언 일병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자신을 어떤 경우에도 책임진다는 생각을 해서는 아닌지.  하여간 희한한 애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annerist 2004-02-2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1998년 가을에 개봉했는데요? 제가 98학번이라 정확히 기억합니다. ㅋㅋㅋ...
 

 

 

 

책을 읽는 게 취미이긴 해도, 인터뷰를 할 정도는 아닌지라 웬만하면 안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이 내 책을 내주겠다는 유일한 곳인데다 인터뷰에 응하면 10만원짜리 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혹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냥 가기 뭐해서 무슨 말을 할까 정리를 좀 했는데, 그랬더니 인터뷰 자리에서도 미리 적어간 말만 하게 된 것 같다.

----------------------------------------------------

-책을 주로 언제 읽니?

=직장이 천안이라 4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 동안 책만 읽는다. 흔히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읽는다고 하는데, 사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면 의외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보면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가 늦게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예전에는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기도 했는데, 공사장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진 뒤부터는 자제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책을 읽었니?

=97년부터 읽었으니 얼마 안된다. 그전까지는 정말이지 스포츠서울 같은 것만 보고,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는 책을 읽을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말로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대학입시를 생각하면 책을 읽는 게 사치로 생각된다. 고교생이 소설책을 읽고있어 봐라. 당장 "낼 모레가 시험인데 이따위 책만 읽고있어!"라는 호통이 날라올 거다. 이러다보니 애들이 커서도 책을 안읽게 되고. 나도 사실 중고교 때 삼국지 말고는 읽은 책이 없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우리나라의 독서시장을 위축시키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든다면, 어른들이 책을 안읽으면서 애들한테만 책을 읽으라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

 

-책에 대한 너의 생각은?

=책은 좋은 취미이긴 하지만, 지고지선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남보다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책을 안읽는다고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느낌표>를 보면 책을 안읽는 사람을 굉장히 무안하게 만들던데, 그건 나쁘다고 본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신의 고양이라고 치자. 꼭 책을 읽어야만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악, 미술, 영화, 게임, 인터넷 등 어떤 취미든 열심히 하면 좋은 거 아닌가?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를 쓴 이영미 씨는 어린 시절 TV만 보는 테순이였기에 그렇게 훌륭한 책을 쓴 거다.

 

-감명깊게 읽은 책은?

=그렇게 물으면 다들 최근에 읽은 책을 대지 않나? 나같으면 책을 읽을 때의 감동이 오래가지 않던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섬데이 서울>이란 책이 가장 좋았고, <대한민국사>도 젊은 분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느리게 사는 의미를 강조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건 내가 그렇다는 거고, 정말 책을 읽으려면 자기 스스로 책을 고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읽을 책을 어떻게 고르나?

=옛날에는 책광고나 미디어서평에 의존했었는데, 요즘은 다른 분들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놓은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쟝르는...예전엔 언론개혁, 사회비평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닥치는대로 읽고 있다. 새로나온 책을 뒤지다 보면 읽고 싶다는 필이 온다.

 

-어떤 분이 '책읽기가 왜 취미가 되야 하냐. 밥을 먹는 것과 똑같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지'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좀 오버인 것 같은데...아까도 말했지만 책읽는 게 특별히 우월한 취미는 아니다.

 

-통계를 보니 읽는 사람만 읽고, 성인의 절반 가량이 일년에 한권도 책을 읽지 않았던데..

=모든 취미가 그렇지만, 책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기 마련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게 되고, 읽을 책이 더더욱 많아지고...그렇게 된다. TV 드라마도 안보면 그럭저럭 살아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죽고 못살지 않는가. 다른 취미처럼 책도 지나친 건 안좋은 것 같다. 일년에 300권을 읽는다는 남자의 부인이 라디오에 나왔는데, 자기랑 거의 말도 안하고 책만 본다면서 불만을 터뜨리더라. 책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취미기 때문에 혼자면 모르겠지만 가족이 있다면 너무 책만 봐서는 안될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으니 뭐가 좋니?

=아까도 말했지만 짜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고... 난 처음에 책을 많이 읽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글도 좀 잘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별로 그런 건 아니다. 딱 하나 좋은 건, 말을 하다가 "누구누구가 이렇게 말했는데 말야" 라는 멘트를 하면 내 말에 권위가 부여되고, 듣는 상대는 기가 죽기 마련이다. 옛날에 라인홀드 니버라는 사람이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썼다. 그걸 읽고나서 하는 말마다 그사람 얘기를 했던 유치한 과거도 있다. 하여간 책은 상대를 기죽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할 말은?

=도서상품권은 주는거죠.....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digitalwave 2004-01-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느낌이 모닝355 해피샵 고객 인터뷰틱하군요. 아닌가;;;

연우주 2004-01-2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압권인데요? ^^ 저도 10만원 준다고 하면 당장 응할 텐데, 저는 아직 미약한지라 알라딘이 부를 리 없죠..^^

연우주 2004-01-2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차, 착각. 마태우스님 충분히 자격있으시다는 거 아시죠? ^^
 

 

 

 

극장에서 <매트릭스 2>를 봤을 때, 난 너무도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아는 분들은 전부다 "1편보다 못하"며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한다. 전편을 빌미로 속편을 폄하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재미가 없을까 의문스러웠다. 혹시 매트릭스의 흥행을 방해하려는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나중에 <매트릭스>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1편과 2편을 비디오로 빌려본 결과, 그들의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모든 장면장면이 다 예술인 1편에 비해, 2편의 구도는 너무도 느슨했고, 자주 튀어나오는 액션장면은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2편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건 바로 고속도로에서 싸우는 씬 때문이리라. 웬만한 거 하나만 있으면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액션영화 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그 화려한 액션에 넋이 나갔고, 극장을 나설 때까지 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다.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라는 책을 쓴 이정우는 1편이 "정말이지 뛰어난, 매우 특별한 영화"라며 2편은 "뛰어난 영화와 시시한 영화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교훈적으로 만든 영화 같"고, "여름이면 늘 개봉되는 수많은 블록버스터들 중 한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두편의 차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1) 분위기의 차이

-1편: 시작부터 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논리와 이미지가 연속된다

-2편: 구성이 짜임새가 없고 느슨하며,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2) 대사

-1편: 철학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긴박감 넘치게 전개되며, 대사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면서도 힘이 있다

-2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몰고가는 긴장감이 없고, 대사들 또한 맥 빠진 맥주처럼 싱겁기 그지없다.

3) 운명이란 말

-1편: 매우 묵직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옴. 모피어스와 네오의 첫 만남에서 나온 운명에 대한 대화, 지구 멸망을 이야기하며 모피어스가 말한 운명과 아이러니, 오라클과 네오가 나눈 대사에서의 운명... 관객의 가슴 깊숙이 자리를 잡는다.

-2편: 네오.모피어스.트리니티가 출전할 때 한 젊은이가 와서 네오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며 운명 운운함. 하지만 그 젊은이가 누군지, 어떤 맥락에서 네오에게 운명 운운하는지가 전혀 나와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던져지는 이 대사는 "싱겁"고 "뜬금없다"

4) 모피어스

-1편: 네오는 미지의 세계에 한발짝씩 나아가는 인물이지만 모피어스는 그 모든 것을 주재하며, 1편의 뛰어난 대사들은 거의 대부분 모피어스의 입에서 나온다.

-2편: 시온에서 한 연설이나 마지막 작전을 위해 모인 동지들에게 한 연설은 너무나 진부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책을 보는 느낌

5) 액션

-1편: 액션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개상 필수적,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나오는 트리니티의 액션이 황당한 느낌을 주지만, 영화 전개에 따라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모피어스가 네오를 수련시키는 장면, 네오가 '그'임이 입증되는 장면, 지하철에서의 결투...모든 액션이 설득력 있게 전개됨

-2편: 불필요한 액션들을 너무나 지루하게 늘어놓아,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싸움 장면만 나오는 홍콩액션영화를 연상케 한다. 특히 그런 액션에 익숙한 동북아 관객들한테는 더더욱 지루함을 준다.

6) 편집

-2편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한박자씩 빠르게 편집, 각각의 시퀀스가 가져야 할 감동과 여운이 증발되 버린다. 총알을 맞은 트리니티에게 네오가 기를 불어넣어 살릴 때, "이제 서로 빚을 갚은 셈이야"라는 대사도 맥빠지지만 길게 여운을 끌어야 하는 대목임에도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어 호흡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는다.

7) 새인물

-2편에서 나오는 새 인물들은-페르세포네, 니오베 등...-하나같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인물의 성격이나 영화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불쑥 나타나 액션만 휘두른다.(이상 위의 책에서 베낌)

으...이렇게 베끼다보니, 2편이 형편없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건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일 뿐, 아무 생각없이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아까도 말했지만 고속도로의 액션 장면은 다시봐도 멋지더만. 이야기 전개상 속편이 꼭 필요한 감독들은 1편을 대충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같다. 2편은 나오기만 하면 욕을 먹으니까. 물론 그건 우리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다이하드> 2가 나왔을 때조차 "1편보다 못하다"는 인간을 보면서 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2편을 보기 전에도 이미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날고 기는 영화 전문가들이 늘 혹평만 써대는 것도 그들이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의무적으로 보는데다 단점을 집어낼 준비를 하고 보는데 어찌 재미있을 수가 있겠는가.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 관람이 훨씬 더 즐거울 거다. 특히 2편을 볼 때는 1편의 기억을 다 잊고 전혀 다른 영화를 본다는 기분으로 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에 마이페이퍼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다른 건 힘들겠지만 마이페이퍼 부문은 내가 평정하려 했는데, 다른 분들이 워낙 글을 많이 쓰셔서 도저히 상대가 안될 것 같다, 그래서 마이페이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조용히 살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줄에서 밝혔듯이, 그건 남들로 하여금 방심을 유도하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실제로 난 그 글을 쓰고 난 뒤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댔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달력을 보라. 9일부터 모든 날에 새글이 있음을 알리는 밑줄이 그어져 있지 않는가.

그동안 난 매일같이 마이페이퍼 점수 순위를 체크했다. 이럴수가. 갈수록 순위가 추락한다. 처음에 확인했을 때, 난 22위였다. 톱10에는 못들었지만 톱50이라는 딱지를 붙이긴 조금 아까운 순위, 조금만 더 노력하면 톱10 쯤이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쓰면 쓸수록 순위는 점점 미끄러져 가, 급기야 25명씩 나온 리스트의 첫페이지에서 밀려나 버렸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다음날은 26위에서 27위로 밀려났고, 어젠 28위고, 오늘은 30위다. 톱10 진입은 이미 글렀고, 이젠 톱50을 걱정해야 할 처지.

열심히 쓰는데 계속 순위가 떨어진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방심을 유도했던 내 깜찍한 작전에 그분들은 전혀 말려들지 않았던 거다!!! 엊그제는 순위를 올리기 위해 전에 썼던 글을 여덟편이나 퍼왔는데 말이다. 엊그제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와 상의를 하기까지 했다. "다들 거기에 목숨을 거는 거야" 친구는 이렇게 날 위로했다. "몇달만 있으면 다들 소재가 떨어지지 않을까? 최후의 승리는 니가 될꺼야"

하지만...다들 절륜한 내공을 지닌 분들이라, 소재가 떨어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분들 주위에는 무슨 일들이 그리도 많이 일어나는지. 그래서 난 결심했다. 모든 집착을 버리기로. 이런 말을 두번째 하는거라 남들이 의심을 하겠지만, 이번엔 진짜다. 쓰고 싶으면 쓰고, 쓸 게 없으면 안쓸 것이며, 매일같이 순위를 확인하는 일도 안할 거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왜 그동안 부귀영화에 눈이 멀었었을까. 어느 유명한 야구선수가 마음을 비우니 홈런이 더 잘나온다고 했다. 혹시 아는가.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톱10의 딱지가 날라들지. 그런데...나만 이런 걸까, 아니면 다른 분들도 나처럼 마우스가 닳도록 순위를 확인하는 걸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1-2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위까지 체크하시며 열심히 썼었군요. 존경~
맨날 놀러와서 재미있게 읽다 가는데요. 포기하지 말고 계속 재미있는 글 올려주시라는 의미에서, 추천 왕창 누릅니다. 저의 추천이 순위를 끌어올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어쩐지 코믹 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