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밥을 무척 빨리 먹는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넷이 마주앉아 밥을 먹으면 꼭 1등으로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쓸데없는 것에 경쟁심을 갖는 내 심리 탓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같이 먹는 사람 중 나만큼 빨리 먹는 사람이 있다면 밥먹는 속도가 더 빨라지니깐.

대학 때도, 졸업한 이후에도 난 밥을 빨리 먹었다. 빨리 먹으면 살찐다던데, 지금의 퉁퉁한 내 몸매는 밥을 빨리 먹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밥을 혼자먹는 걸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테지만, 사실 난 혼자먹는 걸 좋아한다. 물론 혼자 먹는 경우가 거의 없긴해도, 혹시라도 혼자 먹게 될 땐 난 평소보다 더 빨리 밥을 먹는다. 그러니깐 내가 밥을 빨리 먹는 건, 남들이 뺏어먹을까봐 그러는 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학생 때, 조교 때만 해도 밥을 빨리먹는다고 해서 문제될 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다 드셨는데, 을 먹어야 하는 내 동료가 안스럽게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내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밥을 빨리 먹는 건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되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직 밥이 많이 남았음에도 조교들은 숟가락을 놓는다. 몇번 그러고 나서부터는 내 나름대로 천천히 먹으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늘 1등이다.

소설가 장정일이 쓴 '식습관'이란 글을 보고 많이 웃었다. 길게 인용한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먼저 숟가락을 놓는다....단 한번, 계명대학교 앞의 어떤
분식집에서 나보다 먼저 숟가락을 놓는 인간이 있었다.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차 하는 순간의 급습이었다.
나보다 배나 더 빨랐던 그이 숟가락질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잔뜩 부아가 나서 페어플레이 스피릿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 같았던 그에게 따졌다.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니? 씹지도 않고 먹니?"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냥 넘기면 되지 밥을 왜 씹는데?" 대단한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나는 뜨거운 음식도 수정과 마시듯 훌훌 삼켜대는 기술이 있으니, 언제 이 친구를 뜨거운 국밥집이나 칼국수 집으로 데려가 본때를 보여줄까?'라고 벼르던 것이 한 6-7년 전의 일이다(61-62p, [화두 혹은 코드, 강금실 외])

장정일이 보통 사람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걸 읽고 나니 언제 한번 밥 빨리먹기로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장정일을 꺾은 그 친구를 잘 아는 선배의 말에 의하면 "그친구, 집안구성이 복잡해서 식사 때 식구들을 안보려고 빨리 먹는 버릇이 생겼을 꺼"란다. 그말을 듣고보니 내가 빨리 먹게 된 것도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어릴 적, 난 호랑이같은 아버님 밑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두들겨 맞으면서 자랐다. 잘못한 게 없어도 "맞은지 일주일 되었지?"라면서 우리를 집합시켰다. 밥먹는 시간은 늘 혼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밥먹다 말고 방으로 가 운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장정일을 꺾은 친구처럼, 그런 게 나로 하여금 밥을 빨리 먹게 하지 않았을까.

빨리 밥을 먹는 게 유리한 적도 있다. 실험을 하다보면 '10분간 실온에서 방치'같은 과정이 있다. 남들은 엄두를 못낼 그 시간에 난 유유히 밥을 먹고 올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좀 빠른가. 그런 거 말고는, 밥을 빨리 먹는 건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니다. 혹시 자녀를 키운다면, 밥먹을 때는 절대 야단치지 말자. 식사를 즐겁게 해야 건강한 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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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언젠가 났던 한겨레 기사다.
[황금가지 출판사가 출간한 셜록 홈스 시리즈가 한달 새에 12만부나 팔려나갔다는 소식이다. 모처럼 추리소설이 장기 불황을 벗어날 조짐을 보여서인지 까치, 황금가지, 태동, 샘터 출판사가 앞다투어 뤼팽 시리즈를 펴낸다는 얘기도 들린다]
추리소설 하면 당연히 옛날 추억이 떠오른다. 남들도 다 그랬겠지만, 어릴적 난 추리소설을 퍽이나 좋아했다. 특히나 셜록 홈즈 시리즈는 내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소설로, 먼 훗날 내가 말도 안되는 탐정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리스 르블랑이 쓴 <괴도루팡>의 '거인 대 괴인'을 보면, 영국의 명탐정 헤록 숌즈와 루팡이 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웬 헤록 숌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르블랑이 <괴도루팡>에서 자신의 주인공 홈즈를 등장시키자 코난 도일이 화를 냈고, 할수없이 셜록 홈즈에서 앞의 S와 뒤의 H를 바꾸는 편법을 쓴 것. 그 책의 결말 부분에 가면 이렇게 끝을 맺는다. "괴인 대 거인, 둘은 누가 이긴 것도 아니다. 비겼다" 말이 비겼지, 루팡에게 숌즈는 번번히 골탕만 먹는데, 그럼에도 비겼다고 한 건 역시 코난도일을 의식한 것이리라.

누군가의 말이다. 셜록홈즈의 소설 중 가장 기발한 소설은 <붉은머리 클럽>이라고. 그말을 듣고보니 그런 것 같아, 다른 곳에 가서는 마치 내 의견인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붉은머리 클럽이 가장 훌륭하지"
런던에 가면 셜록홈즈의 집이 있어 홈즈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는데,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하니 장사수완도 참 대단하다. 정말 웃기는 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편지가 세계 각지에서 수천통이 넘게 쇄도한다는 것. 사람들도 참....

나이가 들면서 포우라든지,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다른 추리 작가들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한국의 김성종이다. 우리 나라 추리소설의 선구자격인 그는 <제5의 사나이>, <최후의 증인> <7개의 장미송이> 등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소설은 범인이 책 앞부분에 이미 노출되어 있는지라 엄밀한 의미에서 추리소설이라고 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그 책을 탐독했던 건, 그의 책이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고 싶다>는 도대체 추리소설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정사신만 나온다 (거기다 동성애까지...) 물론 그가 썼던 <최후의 증인>과 <여명의 눈동자>는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을 보면 맛이 간 흔적이 역력하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그녀의 작품을 읽던 초기 난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하지만 좀 많이 읽다보니 순 엉터리다. 추리소설을 읽는 건 탐정이 독자와 더불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일진데, 그놈의 포와르는 단서를 지혼자 다 갖고 있다가 막판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면서 사건을 해설해 준다. 이건, 무협지다!

나혼자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라, 소설가 김형경 씨는 자전적 소설인 <세월>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여자가 싫어하는 추리작가가 하나 있다. 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그녀는 늘 사람들을 외딴 산장이나 망망대해의 배 같은 고립된 공간에 가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아무 단서도, 아무런 실마리도 제공해주지 않고, 아니 그것들을 더 꽁꽁 감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소설이 거의 끝날 때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만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모든 인물을 다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다가, 가장 나중에 가서야 선심 쓰듯, 혹은 독자들을 비웃듯, 모든 범행 방식과 범행 동기와 범행 내용들을 한꺼번에 설명한다. 작가 혼자서 신나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늘 속은 느낌이
든다. 그런 추리소설은 재미없다 (1권, 188p)]

<고양이>를 쓴 포우는 추리라기보다는 괴기에 가깝고, 을 쓴 앨러리 퀸은 귀가 안들리는 탐정을 등장시키는데, 그 탐정이 독순술을 익혀 입술 모양을 보고 상대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럴 바에는 뭐하러 탐정을 귀머거리로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커가면서 추리소설을 안읽게 되는 건 추리소설이 지닌 이런저런 한계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우리 나라의 추리소설은 정말 척박한 환경에 있는지라,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대라고 한다면 몇명이나 답을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진짜로 할일이 없어서 2권으로 된 이상우 씨의 추리소설-남한산성 어쩌고 하는 제목이었다-을 읽었는데, 어찌나 재미가 없는지 얽히고 섥힌 애정관계임에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했다. 범인이 잡혔을 때 하나도 놀랍지 않는 추리소설을 쓰는 건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궁금한 것 하나. 추리소설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까? 웬지 그럴법 해 보이는 그 말은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둘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아이큐가 150이 넘는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추리소설을 좋아했냐는 질문을 했는데, 단 한명도 좋아한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리소설을 읽으며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는 루머를 접하고 나면 추리소설과 머리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머리야 타고나는 것 아닌가. 참고로 아이큐가 200이 넘던 JS 밀은 어릴 적 순 인문, 철학 책만 읽었다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도 죽고, 코난도일도 죽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외국에서도 그들을 능가하는 뛰어난 추리작가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서점에 들를 때 추리소설 분야는 잘 안가서 그러는지 몰라도, 요즘 들어 뜨는 추리작가를 난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다시금 추리소설 붐이 이는 건 왜일까? 한겨레 기사를 읽어봤더니 결론은 없고 이렇게만 나와있다.
[따라서 팬터지 소설의 한계를 탈피해보려는 출판사들이 억척스레 몸부림친다거나, 비비 꼬여들기만 하는 정치인들의 비리에 식상한 젊은 독자층이 쾌도난마식 해결책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만족스런 대답은 아닌 듯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잘 모르겠다. 어렵게 쓰는 건 별 내용이 없을 때 취하는 태도인데 말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부패가 얽히고설켜 답답한 시대 떴다 추리소설" 그러니깐 작가는 우리 나라의 부패가 추리붐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부패가 만연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이제 웬만한 부패에도 놀라지 않게 된 우리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부패와 추리소설을 연결시키는 건 좀 우습다.


부패와 추리소설은 별 상관이 없다. 그저 일시적 유행일 뿐인 걸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건 더욱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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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연구면에서의 업적은 우리 나라 학자들 중 최정상을 달리는 분으로, 누굴 만나든지 학문적인 얘기만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억지로 끌려간 룸사롱에서 여종업원에게 "당신, 로마의 역사를 아슈?"라면서 시이저가 어떻고 네로가 어떤지를 설파하시는 걸 보고 다들 질려버렸다고 한다.

그날 그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학문적 의문점들을 선생님께서는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납득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파편이 튀었다는 게 문제였다. 선생님의 앞에 놓인 불고기 접시에 특히나 많은 파편이 튀는 걸 보고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는데, 식사를 반쯤 했을 때 그 선생님은 내게 이러신다.
"불고기좀 먹지 왜 손도 안대?" "아, 네" 하고 얼머부리려고 했지만, 자상하신 그 선생님은 불고기 접시를 들더니 내 밥에다 전부 넣어 주셨다. 눈 딱 감고 다 먹긴 했지만, 다음부터 그 선생님과 밥을 먹을 땐 맛있는 건 내 앞으로 미리 갖다놔야겠다.

두번째 사례. 공항터미널에서 아는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주례가 내가 모시고 있는 노교수님이었다. 그래도 제자인데... 하는 생각에 좀 어렵지만 선생님을 모시고 스테이크를 먹었다. 같은 테이블에 마침 또다른 선생님 제자가 앉았기에, 노교수님은 주로 그쪽을 보고 많은 말씀을 하셨다. 파편은 식사 중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부산물일까. 간간이 나오는 무수한 파편을 애써 외면하며 식사를 하는데, 선생님이 좀 흥분하셨는지 언성이 높아지더만 커다란 양상치 조각이 튀어나오는 거다... 공항터미널 식사는 내가 가장 맛있게 생각하는 거지만, 이레적으로 그날 난 스테이크를 몇조각 남겼다.

역시 말이 많은 나도 그런 파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난 안그러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하고, 혹시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정말 미안해 한다. 양상치 덩어리를 뱉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말씀을 계속하시는 우리 선생님을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에 무감각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역시 나이드는 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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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어떤 여자애를 좋아하는데, 그 여자애가 어느날 갑자기 주인공한테 월요일에 집에 같이 가자고 한다. 물론 여자애는 그럴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만,  주인공은 마냥 신나서 그애를 맞을 차비를 한다.
"가장 적당한 산책로를 골라 두려고 하루종일 숲속을 헤맸다"

그뿐이 아니다. 여자애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여섯가지의 특별 쇼를 준비하며,
"부엌 싱크대에서 과자를 조금 훔쳐 내오고...구두상자에 넣어 가지고 일요일 오후에 한 나뭇가지 위에 숨겨 두었다"

여기에 더해 주인공은 "그애를 웃게 만들 이야기를" 준비해 둔다. 이 모든 걸 준비하면서 주인공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신이 나 죽겠다. 다음 대목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수업 시간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집중을 해서 선생님이 내게 방과 후에 남으라는 말씀을 절대로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드디어 방과 후. 여자 애들만 수업을 한시간 더받는 바람에 주인공은 한시간을 마냥 기다려야 했는데, 그게 전혀 지루한 게 아니다.
"나는 앉아서 기다리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한 행복감에 젖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애는 내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얘! 너 나 기다렸니?"
"그래" 내가 말했다.
"얘! 나 오늘 너랑 같이 안가. 엄마 친구가 아프대. 그래서 엄마가 거기 안간데.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한참 동안 변명이 이어졌지만 갑자기 이상하게 귀가 멍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것을  머리에 기억해 두기는커녕 제대로 듣지도 못하였다]

읽는 내가 다 안타깝다. 아니 못가면 못간다고 진작 얘기를 하던가. 하지만 그 여자애에게는 주인공과 같이 가는 게 별로 대수로운 게 아니었는지라, 미리 말할 건덕지가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늘 말하지만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언제나 약자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먼저 나와 기다리고, 비를 맞으면서 영화표를 예약하고, 귀찮아하는 애인을 졸라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내며, 피곤하다는 사람을 붙잡고 더 있자고 조른다.
<좀머씨>의 여자애는 "나 오늘 너랑 같이 안가"라고 말하면 끝이지만, 주인공의
가슴엔 커다란 멍이 든다. 여자애는 누구랑 같이 가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지만, 주인공은 한번 같이 가기 위해 이틀을 투자해 준비를 한다. 둘다 사랑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인생이 피곤하다. 커플에 비해 솔로가 편한 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차사고가 무서워 차를 안살 수는 없듯이 더 사랑해서 손해를 볼까봐 사랑 자체를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들이 보기에 주인공의 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괜한짓이 되어 버렸지만, 최소한 그 행동을 하면서 주인공은 마냥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은 버림받을 게 두려워 아예 사랑을 시작하지 않은 이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위험이 높을수록 쟁취할만한 가치가 더 생기는 법이며, 그래서 사랑은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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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프랑스의 보건원에서는 술과 히로뽕을 1급 마약, 담배를 2급 마약, 대마초를 3급 마약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분류 기준은 '중독성'이었는데, 술이 담배보다 더 끊기 힘들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주위를 돌아보면 술을 끊은 사람이 거의 없긴 해도, 끊으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담배 쪽에 훨씬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꼭 그렇게 단순화시킬 건 아니다. 외국 같으면 틀림없이 알콜중독으로 분류되었을 나만해도 며칠씩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낸 기간이 여러번인데, 그 기간동안 술이 부족해 무슨 문제를 일으킨 바가 없다. 반면 흡연자는 조금만 담배를 못피워도 안절부절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동일선상에서 비교되는 술과 담배, 그 해악에 관해 몇자 적어 본다.

1. 질병
담배만큼 질병과의 관계가 잘 정립된 게 있을까. 내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담배는 폐암 뿐 아니라 위궤양의 원인이 되며, 입담배를 피우는 경우 구강암까지도 유발한다. 반면 술은 어떤가. 내가 잘먹는 참이슬 병에는 "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우리 나라 암의 대부분이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게 아닌가. 알코올성 간경화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담배만큼 해롭진 않다.

2. 담배
담배가 나쁜 건, 피우는 사람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흡연자가 있으면 공기가 탁해져 나처럼 호흡기가 안좋은 경우 굉장히 괴롭다. 흡연자의 특징은 환기시설이 있건없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간접흡연도 직접 피우는 것의 3분의 1 정도 해를 준다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은 대개 그런 걸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길을 가다 앞사람이 피우는 담배연기에 짜증이 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흡연자가 손에 든 담배 때문에 손등을 데거나 옷이 뚫어진 적까지 있을 정도다. 담배로 인한 쓰레기도 문제다.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재와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걸 당연시한다. MT를 갔을 때 음료수를 마시려고 사둔 종이컵이 몽땅 재떨이로 변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일테고, 맥주병에다가도 꽁초를 버려 재활용을 방해하기도 한다. 흡연의 부수적 효과로 침-그것도 누런 침을!-을 자주 뱉게 되는 것도 담배의 해로움이다.

3. 술
술은 자신의 몸은 망가뜨릴지언정,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간혹 강제로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인간성이 나쁜 탓이지 술탓은 결코 아니다. 혹자는 술의 부작용으로 음주운전이나 범죄의 증가를 들지만, 그것 역시 음주자의 인격 문제지 술 때문은 아니다. 음주운전을 가지고 술을 비난한다면, 멀쩡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과속운전은 그럼 무엇 때문인가. 나 개인의 경험을 말한다면 술을 먹다가 정신을 잃어 같이 마시던 친구들을 고생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친구들이 그런 걸 감수하고라도 술을 먹겠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니, 민폐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싸움이 일어나거나 공중전화 부스가 깨지는 걸 술 핑계로 돌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범죄는 술과 별 관계가 없다. 술먹고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4. 담배
흡연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흡연자들의 권리도 생각해 줘야 되는 게 아니냐고. '딴지일보'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기억도 난다. 공항에서 담배를 못피우게 할 게 아니라, 환기 시설을 잘하면 될 게 아니냐고.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세상의 범죄 중 절반이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 논리라면 "카드빚을 진 사람에게 무조건 은행대출을 많이 해줘야 한다"거나, "과속을 단속할 게 아니라 과속해도 사고가 안나게끔 도로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흡연자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건, 그간 흡연자들의 행태가 지나치게 안하무인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흡연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흡연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까지 안좋지는 않을 것이다. 공중전화를 걸거나,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그 짧은 순간, 꼭 담배를 피워야 할까. 대부분의 남자 변소는 화장실 냄새와 담배냄새가 어우러져 형언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나며, 공중전화 부스의 냄새 역시 견디기 힘든 수준이다.
5. 술
술을 먹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오버이트'를 하는 경우다. 택시에서 하는 오버이트는 아저씨의 하루 수입을 날려 버리고, 인도의 오버이트는 두고두고 보행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기에 관해 변명을 하자면, 오버이트는 자기 능력보다 과하게 술을 먹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 반면 담배의 폐해는 담배를 과하게 피우건 아니건간에 별 차이가 없다. 하루 한갑 이하로 피우는 내 친구 녀석은 테니스를 치는 내내 코트에 침을 뱉어, 공이 그쪽으로 갔을 때 몸을 날리기가 꺼려질 정도다. 담배가 담배인삼공사 직원들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데 반해 술은 막대한 경제효과를 파생시킨다 (물론 담배값 중에 일부가 보험료도 충당되지만, 그렇게 따지면 담배세보다는 주세가 훨씬 더 많다). 즉, 주류 회사 뿐 아니라 술집 주인들을 먹고살게 하며, 종업원들과 도매상들 등 술에 관련된 종사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6. 결론
이렇듯 술은 담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술과 담배를 똑같이 취급하는 이상한 풍토가 남아 있다. 그런 시각 때문에 우리가 1인당 음주량에서 슬로베니아에 뒤진 게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술은 담배와 다르다. 술에는 꿈과 사랑이 있고,  낭만이 있다. 담배 한 대를 같이 피울 때 우리집 뒷산만큼의 우정이 생긴다면, 술을 한번 같이 마시면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술이 없었던들 우리가 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어찌 살았겠는가. 이런 술을 욕하지 말자. 술은 우리의 좋은 벗이며, 스승이기도 하다. 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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