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판사 분 두분, 디자이너 두분과 술자리를 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여자분인줄 알았는데 남자인데다 아주 험상궃게 생겼다. 외모와 디자인 능력은 별 상관이 없음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좀 한심했다. 그와 열심히 술대결을 벌였는데, 막판에 그가 술 먹는 시간이 길어지고 혀도 꼬인 걸로 보아 나의 승리였다.

지갑을 잃어버리니 영 불편하다. 어젠 내가 계산을 해야 했는데, 카드가 없어서 중간중간 화장실 하는 척하고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나가서 확인하곤 했다. 카드 발급까진 10일 정도가 걸린다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람들이 그랬다. 주민등록증 재발급은 만원이고, 신청하면 바로 나온다고. 근데 내가 신청하러 갔더니 20일이나 걸린다고 하고, 가격도 5천원이었다. 그래서 임시 주민증을 발급받았는데, 이 종이 쪼가리만이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습다. 나는 난데....

술을 하도 먹었더니 금단증상이 생기려고 한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손목을 꺾었더니 이젠 근무시간에도 저절로 손목이 까닥까닥한다. 아까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주면서 '사모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라고 써야 할 것을 '안주 전해주세요'라고 써버렸다....

오늘은 치과를 하는 후배랑 한판 붙는다. 그 인간은 주량이 다섯병이라 원래는 버거운 상대지만, 자기 말로는 요즘 술을 통 안마셔 한병밖에 못마신단다. 혹시 댓병으로 한병이 아닐까 의심이 가지만, 그래도 한판 붙어볼 생각이다. 간김에 스켈링도 하고....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루 2004-02-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주 전해주세요' 큭!!

비로그인 2004-02-2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요새 마태우스님의 빡빡한 술일기 스케줄에 제가 다 정신이 어~찔합니다. 조만간 재충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ㅎㅎ부디 오늘도 몸조심 하세요~~

쎈연필 2004-02-2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주동의 문주반생기와 변영로의 명정40년이 생각납니다. 대단하세요. '안주 전해주세요'는 압권이군요!

sunnyside 2004-02-2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민등록증 잃어버리고도 2년 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운전면허증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어서 못본지 오래..
근데.. '일곱개의 금단지'라니, 알라딘의 검색 엔진은 정말 대단하군요!

마태우스 2004-02-2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아닌게 아니라 오늘은 몸조심 좀 하려고 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
자두상자님/그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죠. 갑자기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서니사이드님/'금단'으로 검색하니 그책이 나오더군요^^
 

 

 

 

 

 

내 소원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너무 좋아 펄펄 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기고, 내가 꿈꿔오던대로 대응을 했는데, 기분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지 않다. 큰 범죄를 저지른 듯 가슴이 뛰고,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 아침,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조선일보 기자가 책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그때부터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하구 많은 신문들 중 왜 하필 조선일보람? 조선일보의 지대한 영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극우냉전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숱한 왜곡과 거짓말을 하는 그 신문에 대한 안티운동에 난 오래 전에 서명한 뒤였다. "한번만 해주시면 안될까요?"라는 출판사의 부탁을 난 겨우 뿌리쳤다.
"그건..제 영혼을 파는 일이거든요"

사실이 그랬다. 내 홈피에 조선일보에 대해 써놓은 욕이 얼만데 그 신문과 인터뷰를 한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문부식을 내가 얼마나 씹었었는데? 무엇보다 홈피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날 어찌 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인터뷰란 도무지 말이 안됐다.

몇시간 후, 조선일보 기자가 드디어 전화를 했다. 인터뷰 때문에 좀 만나잔다.
"도와주시려는 건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요, 제가 사정상 인터뷰를 할 수가 없거든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미안했다. '저 기자가 나쁜 건 아닌데' 하는 맘 때문에.
기자가 묻는다.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까?"
아따 그사람, 눈치도 빠르네.
"네, 제가 안티조선이라서요"
기자는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고, 그때부터 내 가슴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다.

미안하긴 하다. 기자한테도, 그리고 '일등신문'에 실려 책을 좀 팔고픈 출판사에도. 하지만 내가 인터뷰에 응했다면 겪어야 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거절은 백번 잘한 일이다. 책이 좀 안팔리면 어떤가. 내 영혼의 값어치가 그깟 책 몇십, 몇백권과 맞바꿀 성질은 아닐터다. 그래, 신문에 안실리더라도 내가 다 사면 되지 않는가? 보라, 내 책이 알라딘 문학베스트 9위다! 이문열이 새로 낸 <산들메> 어쩌고를 제꼈다^^. 조선일보야, 난 너희 도움 필요없고, 그냥 내 힘으로 할께. 니들 덕분에 오늘 나 소원성취했다.
-----------------------
인터뷰를 거절한 직후 기차에서 쓴 글입니다. 글을 옮기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거절할 수 있었던 건 책이 안팔려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에 대한 황석영의 거부와 공선옥의 거부는 분명 다른 차원의 거부일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어떤 작가가 조선일보를 거부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성석제가 동인문학상을 탔을 때, 그에 대한 비판 글들이 여럿 올랐었죠. 하지만 성석제처럼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에게 작가적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조선일보 거부'를 강요하는 게 합당한 일일까요? 그런 강요가 가능하려면 공선옥처럼 어려운 처지에도 조선일보를 거부한 작가의 책을 조금이라도 팔아 줘야 할텐데 그런 건 없고 그저 "니 잘했다"라는 말 뿐이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대급부도 없는데 조선일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만 해도 그 달콤한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던데, 전업작가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써 봤습니다 (갑자기 걱정...혹시...제 책을 사달라는 칭얼거림으로 읽히진 않겠죠?)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02-24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_ 2004-02-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결정하셨네요. 얼마전에 고종석씨의 '과연 내가 먹고사는데 급급했다면 조선일보의 기고 요청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을까?'라는 글이 떠오르는 군요.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정말 돈과 자기이념과의 괴리는 무시하지 못하나 봐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정말 공선옥씨 같은 분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마태우스님의 결정이 그에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

문학베스트 10위권에 진입하시는데 제가 일조하지는 못했으나, 정말 축하드립니다. ^^

갈대 2004-02-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 멋집니다!!

paviana 2004-02-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 정말 마태우스님 대단하시네요..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셨어도 자기 이득에 조금이라도 손해되는 일이라면 안 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니까요..마태우스님도 안티조선이시군요..반갑네요.근데 그 기자 그런일 자주 겪나봐요.눈치빠르게 알아채다니..^^

chaire 2004-02-2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서없이 쓴 글이라지만, 참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유명 작가인 공선옥보다도,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는데도(소설판에선 아직 신참이시니^^), 담담히 "제가 안티조선이거든요"라고 말씀하시다니...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막 둘러대긴 했겠지만, "제가.. 인터뷰를 워낙.. 무서워하는지라..." 어쩌구 하면서... 암튼 마음깊이 박수칩니다.

nrim 2004-02-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려운 결정 하셨네요. 남의 일에 배나라 감나라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신념을 지킨다는 일이 쉽지는 않은듯. 저도 문학 베스트 10 진입 축하드립니다. ^^

그루 2004-02-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까?" 보고선 제가 섬찟 놀랐네요. 어려운 결정에 마음 보냅니다. 축하드리구요. ^^

가을산 2004-02-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전 인터뷰가 아니라 구독권유하는 전화만 거절하고도 의기양양한데.. ^^;;
'조선일보 안봅니다' 하면 알아서 포기하더군요.

비로그인 2004-02-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조선일보의 파워란 그렇게 막강한 것이었군요. 전 잘 몰랐답니다. ^^;; 그래두 마태우스님 지조있는 모습 멋진데요~ ^^

쎈연필 2004-02-2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소설집에 님도 서평을 쓰셨던 걸 기억합니다. '너그러운 자유주의자'에 대한 논쟁이 그 소설집에 있었지요. 쉬운 일이 아닌데... 마태우스님 멋지십니다^^

mannerist 2004-02-2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마태우스님 브라보~!!

2004-02-24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4-02-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개월 무료때문에 남편눈치보면서 조선일보로 바꿨습니다..그전에 보던 ㅈ 신문이 배달사고가 자꾸 생겨서..남편에게는 "나쁜신문이라지만 얼마나 나쁜지 한번 보도록 하자"했지요..
그런데..조금 심하긴 하더군요..조선일보..매일 읽다보면 우리나라 큰일날것같은 불안감이 들어요...

찌리릿 2004-02-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

저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상업성'과 '조선일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느낍니다. 회사 PR용 보도자료를 돌릴 때 당연히 빼놓지 못하는게 조선일보이고, 일단 나왔다하면 가장 영향력이 느껴지는게 조선일봅니다.

제가 사장 정도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보도자료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방침을 정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이니...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저와 관련된 회사 PR이 조선일보에 이따만큼하게 크게 나왔을 때...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여튼.. 출판시장은 조선일보의 신간소개가 필수라고 할만큼 큰 부분이고, 마태우스님처럼 조선일보에 의도적으로 PR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 '그냥 뚜벅뚜벅' 성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과 기생충>.. 갑자기, 꼭, 기필코 읽고 싶어집니다. ^^


연우주 2004-02-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용기에 박수, 박수, 박수~~~
아, 그리고 저 간만에 페이퍼 썼습니다. 읽고도 코멘트 달아주세요...흑.
중요한 글인데 제가 글 안 쓴다고 해서 그런지 안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흑흑.

마태우스 2004-02-2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도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내주셨군요. 제가 한 일이 그리도 대단한 일이라니, 제가 더 놀랍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평론가들의 정의는 좀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좋은 영화란 그저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내 것인양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생기고 돈많고 싸움질도 잘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같은 사람 말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와이키키>에 나오는 음악가처럼 여기저기서 찬밥 취급을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버스 정류장>은 내게 '좋은 영화'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중반까지는 참 재미있게 봤다.

주인공으로 나온 김태우는 남들과 떨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외로움을 자청하는 것 같지만 몸파는 여자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곤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학원강사인 그는 고3인 김민정을 사랑하게 되는데, 차는커녕 면허조차 없던 그가 "드라이브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잽싸게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장면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나도 김정은이 술한번 같이 마셔준다고 하면 연구 열심히 할지도?

그런데 김민정이 애를 밴 걸 고백하고, 같이 애를 지우러 간다. 김민정은 밤새 울지만 김태우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그리고는 김민정이 떠나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다. 서로 연락을 기다렸다나. 그리곤 갑자기 김태우가 쪼그리고 앉아 오열을 하고, 그런 식으로 영화가 끝난다. 난 김태우가 왜 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이해가 가야지 공감을 하고, 공감을 해야 뭔가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울음이 너무 뜬금없어, 난 김태우가 오버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다.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 아무리 삐딱한 남자도 이쁜 여자만 보면 넘어간다?

대개의 감독들은 데뷔 작품이 다 훌륭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 때문이라는데, 이미연 감독은 미리부터 롱런을 의식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지 모르겠지만, 애써 긍정적인 면모를 찾자면 김민정이라는 미녀를 알게 된 것 정도? 영화가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었는데, 그때 참길 잘했다. 이 영화의 OST가 무지 잘팔리다가 영화가 개봉함과 동시에 안팔리기 시작했다는데, 그 이유도 알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02-23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2-2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요, 이제 무슨 얘기가 좀 시작되려나-했더니 끝이더라나요. 그래도 뭔가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한번쯤 더 봐볼까-하는 생각을 남기더라는데...한마디로 묘한 영화인거 같네요~ ^^
 

 

 

 

 

 

시어머니에 좋은 시어머니가 있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어머님은 좋은 시어머니다. 어머님이 돈이 많으셔서 며느리에게 집을 사줬다든지 하신 건 아니다. 그렇다고 며느리를 친딸보다 더 사랑한다든지 하는 것도 아니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우리 어머님도 제수씨의 어떤 점을 못마땅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 때와 명절 때, 제수씨의 노동력을 착취하신다. 그럼에도 내가 우리 어머님을 좋은 시어머니로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인생의 경험이 쌓여 가면서 내린 결론인데, 그건 어머님께서 나름의 삶을 사시기 때문이다. 다른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괴롭히는 건-난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함께 있는 자체를 괴롭힌다고 정의한다-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하니까 누굴 불러다 시중을 들게 할 생각도 나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전에도 언급했던 모 사모님의 말씀은 자꾸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내가 쟤네들(아들 내외) 주말 중 하루는 못오게 해요" 호호, 그러니까 그 며느리는 매주 그 집에 온다는 얘기잖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말 중 하루는 쉬게 해주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로 알고 있으니, 한숨이 나온다. 그집의 둘째가 좋은 직업에도 불구하고 노총각으로 늙는 이유가 혹시????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바쁘시다. 내가 친구 많다고 떠벌이고 다니지만, 어머님에 비하면 적수가 되지 못한다. 바쁘게 생활하시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지난날 생각이 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어머님의 청춘과, 가장 까다로운 환자셨던 아버님의 병수발을 드느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3년의 세월이. 자식이 넷이나 있었건만, 어머님은 간이 침대에서 4시간씩 주무시며 아버님의 병수발을 전담했었지. 그래서 나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가 너무 즐겁게 사시는 거 아냐?"라고 흉을 보던 철없는 여동생을 쥐어박고 싶다. 인생이란 즐겁게 살아도 짧은 것이며, 그간 어머님의 삶이 거의 사는 게 아니었다는 걸 동생도 모르지 않을텐데.

그래서 어머님은 남동생 혹은 며느리가 "가겠다"고 할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오지 말라고 한다. 보통은 그냥 한번 거절해 보는 것이겠지만, 우리 어머님은 진심이다. 그들의 방문으로 어머님이 짜놓은 스케줄이 차질을 빚을까봐서. 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가장 잘해주는 건 같이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진짜 엄마같아요"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있다. 물론 다 거짓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바로 옆집이 시댁인데,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많은가보다.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친구 부인은 어머님이 고향인 목포로 내려간 이후 얼굴빛이 너무 환해져서, 얼마 전 가서 만났을 때 눈이 부실 정도였다. 또 다른 동창 하나는 시댁과 대판 싸운 뒤 발을 끊었는데, 그 뒤부터 인생이 아름답다고 한다. 마지막 예야 좀 극단적이지만, 시어머니가 그 존재만으로 며느리에게 부담이 되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 않을까?

우리 시어머니들도 나름의 삶을 사셔야 한다. 딸만 그런 게 아니라 아들도 출가외인, 아들을 보내고 나면 자기들끼리 잘 살라고 내버려두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사는 게 진짜 멋진 시어머니다. 우리 어머니처럼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ooninara 2004-02-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느리니까..이런말 하긴 그렇지만...정말 100% 찬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어머님이 시골분이라서 저는 일년에 몇번 안내려가구요..
시댁 내려가면 차 트렁크 채워서 올라온답니다..한마디로 시집 잘간거지요^^
시댁 가까운분들..자주 찾아뵈도 눈치보이고..(더 자주 못간게 미안해서)
시댁에서 싸주는것도 없고..어머님들 수준 높아서 선물 사드리기도 힘들고...
주변 친구들보니까..힘들어 하더군요...
마태우스님 어머님은 1등급 시어머님이시군요
(그런데 아이 맡기고 싶어하는 며느리라면 조금 문제가 있겠군요^^)

paviana 2004-02-2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어머님 같은 분은 제가 삶의 지표로 삼을만한 분이시네요..제 생각은 자식에게 받을 수 있는 효도의 70%는 3살이전에 다 받는다는 주의입니다..넘 욕심부리면 저도 자식도 불행해지겠지요.

superfrog 2004-02-24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다 퍼주고 말년에 기댈 생각 말고 할 만큼만 해준 담에
너희들은 너희들, 우리는 우리로 노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젊어서 고생해서 늙어서 병들거나,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도 없이 며느리들, 자식들, 손주들만 보며 온갖 것 챙기고 간섭하면 서로 힘들잖아요..

마태우스 2004-02-25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그렇죠^^ 그런데 전 세살 이전에 효도한 기억이 없어서요...
물장구치는금붕어님/근데 그게 막상 하려면 어렵겠죠... 사실은 저두 자신 없답니다.
 

 

 

 

 

 

컴퓨터 방에서 벌레가 나온 건 벌써 3주쯤 전의 일이었다. 벤지를 위해 가져다 놓은 물그릇에 검은색의 벌레가 빠져 있다. 그릇을 닦고 다시금 물을 담아 줬지만, 잠시 후 보니 물에는 또다시 벌레가 떠있다. 이번엔 한마리가 아니라 서너마리쯤이고, 그릇 옆에도 두세 마리가 더 붙어 있다. 벌레가 무서운 것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전략 때문이리라. 난 슬슬 무서움을 느꼈고, 그 후부터는 벤지 물그릇을 방에 들여놓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고 벌레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문득, 방바닥을 들여다본 나는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난 살충제를 가져다가 방안에다 뿌렸는데, 잠시 후 들어가보니 수많은 벌레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이 벌레들과 더불어 컴퓨터를 썼다니, 갑자기 몸이 가려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후부터 컴퓨터를 쓸 때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고, 오래 붙어있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수없이 살충제를 뿌렸지만 벌레들은 계속 나왔다. 벤지가 왜 그방에 있기를 싫어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언제나 내 곁에 누워있던 그 녀석은 내가 그방에 있을 때는 문밖에 나와 있었는데, 난 단순히 그걸 방이 더워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벤지를 위해 깔아준 이불을 들춰보니, 벌레가 장난이 아니게 나온다. 얘길 하지 그랬니... 미안해진 난 녀석을 깨끗이 목욕시켜 줬고, 그 참에 나도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며칠 전부터 벌레는 좁은 컴퓨터방을 탈출해 드넓은 마루로 진출했다. 마루에 있는 벤지 물그릇에서는 어렵지 않게 벌레를 관찰할 수 있었고,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벌레를 죽여봐도 말짱 허사였다.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시스코'라는 데 연락을 하면 된단다. 인터넷에서 시스코를 찾아봤다. '미국의 식품도매 회사'란다. 아, 식품회사에서 그런 벌레를 다루는구나.  좀더 찾아보니 '네트워크 장비' 어쩌고 하는 말만 나오지, 벌레 얘기는 안나온다.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넌 뭐야???"

이상한 건 내 귀였다. 오늘 아침, 난 '세스코'에 전화를 걸어 청소를 예약했다. 드넓은 평수에 따르는 높은 비용에 잠시 망설여졌지만,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어여쁜 목소리와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라는 단호한 그녀의 말, 그리고 그 집은 나와 어머니, 벤지가 앞으로도 쭉 살아갈 터전이라는 생각에 하겠다고 했다. 몇주간 벌레와 동거를 했으면서도, 막상 신청을 하고 나니 어서 빨리 그 날이 와서 벌레가 멸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벌레가 꼬인 건 내가 환경을 청결하지 못하게 한 탓이다. 세스코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벌레는 물기가 있는 곳에 잘 번식한다는데, 벤지가 물을 먹다가 흘린 물이 진원지가 되었나보다. 바퀴벌레보다야 낫지만, 어찌되었건 벌레는 무섭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4-02-2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벌레보다 벌레를 잡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초등학교 때 짖궂은 친구 하나가 굉장히 큰 메뚜기를 책으로 펑! 때려잡는 걸 본 이후로, 벌레가 터져 죽는 것을 보면...으으으...진저리가 납니다. 그래서 내 손등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도 못 때려잡고 지켜 보는 바보가 되었지요.
그/런/데 확실히,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더군요. 내 새끼 피 빤 모기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게 되었으니...^^

비로그인 2004-02-2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모기는 때려잡는데, 다른 벌레는 정말 무서워요.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소름끼치지만, 바퀴벌레가 나타나는 순간 너무 무서워서 얼어버리죠. 그리고 공포에 찬 목소리로 외친답니다. "엄마~아빠~바퀴벌레가 나타났어요~잡아주세요~"ㅜㅠ

마태우스 2004-02-2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강하시군요...
앤티크님/연약하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