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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한국 사회문화사 01
이효인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 평론가들이 쓰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새디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글을 그리도 어렵게 쓰는지, 도대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서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를 폄하할 때는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같고, 과연 감독이 그런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할 정도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걸 보면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난 영화평론가들이 높은 별점을 주는 영화는 의도적으로 피하는데, 나처럼 하는 관객도 꽤 많은 것 같다.
유명 영화평론가가 쓴 책답지 않게 이 책은 비교적 잘 읽힌다. 문화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만큼 그 당시 영화들이 드러내주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저자가 요약해준, 그당시 영화들의 줄거리를 읽는 재미도 여간 쏠쏠하다. 영화평론가가 쓴 책 치고 쉽다는 거지, 그렇다고 마냥 책장을 넘길 책은 아니다. 영화 한편의 의미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 읽다가 지루해질 때마다 '이건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 공부하려고 읽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예컨대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두편의 영화에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찌 알았겠는가.
[일반 대중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회적 비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두고 정의와 부정의를 따지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간접적으로 설파하는 것이 <공공의 적>과 <투캅스>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전략이다(67쪽)]
책과 음반 등 다른 문화장르가 쇠퇴하는 와중에도 우리 영화는 무럭무럭 성장,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는 평론가들의 노력, 젊은 감독들의 활약, 틈나는 대로 영화를 봐준 관객들의 힘이 작용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 스크린쿼터제다. 치타와 사람이 100미터를 달리는 게 말이 안되듯, 수천억원을 영화 한편에다 쏟아붓는 헐리우드와 50억이 넘으면 '거액영화'로 분류되는 우리가 무한경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를 사랑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스크린쿼터제를 없애자고 입에 거품을 무는 건 슬픈 코미디다. 그 사람들의 말대로 스크린쿼터제가 없어지고, 한국영화가 가물에 콩나듯 극장에 걸리는 날의 풍경은 얼마나 쓸쓸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