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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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라는 사람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고 '기인이 한명 탄생했구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가 <지구영웅 전설>을 냈을 때 곧바로 사서 읽었지만,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실망 그 자체였다. 발상의 신선함을 소설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살 때 여러번의 망설임을 거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에 대한 모든 우려를 불식시켜 줬고, 난 박민규를 '책을 낼 때마다 무조건 사는 작가'의 리스트에 등재했다. 쉼표를 정신없이 사용하며 사람을 웃기는 성석제와는 달리, 박민규는 '.....했다. 고는 하지만, 실제로는....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고도 하지만....'이라는 문장으로 날 웃겼는데, 난 지하철 안이라는 것도 잊은 채 폭소를 터뜨려야 했다. 그 바람에 승객들로부터 혹시 어떻게 된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우리 사회에서 며칠간을 헤헤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은 결코 야구 얘기가 아닌, 야구를 빙자한 인생 얘기지만, 나처럼 프로야구를 좋아했고,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 슈퍼스타식의 야구, 이 책을 읽으면서 난 훌륭한 연구자로서의 꿈을 진작에 접어버리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는 나 자신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278쪽)'이란 말에 적극 공감한 것은, 나 역시 삼미 슈퍼스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서이리라.

하지만 책을 덮고난 뒤 내 주위를 살펴보니 모두들 앞으로 달려나가느라 정신이 없고, 경쟁에서 뒤쳐진 내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작가가 찬양해 마지않는 삼미식의 야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엔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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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한국 사회문화사 01
이효인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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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들이 쓰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새디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글을 그리도 어렵게 쓰는지, 도대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서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를 폄하할 때는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같고, 과연 감독이 그런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할 정도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걸 보면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난 영화평론가들이 높은 별점을 주는 영화는 의도적으로 피하는데, 나처럼 하는 관객도 꽤 많은 것 같다.

유명 영화평론가가 쓴 책답지 않게 이 책은 비교적 잘 읽힌다. 문화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만큼 그 당시 영화들이 드러내주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들여다 볼 수 있고, 저자가 요약해준, 그당시 영화들의 줄거리를 읽는 재미도 여간 쏠쏠하다. 영화평론가가 쓴 책 치고 쉽다는 거지, 그렇다고 마냥 책장을 넘길 책은 아니다. 영화 한편의 의미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 읽다가 지루해질 때마다 '이건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 공부하려고 읽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예컨대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두편의 영화에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찌 알았겠는가.

[일반 대중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회적 비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두고 정의와 부정의를 따지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간접적으로 설파하는 것이 <공공의 적>과 <투캅스>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전략이다(67쪽)]

책과 음반 등 다른 문화장르가 쇠퇴하는 와중에도 우리 영화는 무럭무럭 성장,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는 평론가들의 노력, 젊은 감독들의 활약, 틈나는 대로 영화를 봐준 관객들의 힘이 작용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 스크린쿼터제다. 치타와 사람이 100미터를 달리는 게 말이 안되듯, 수천억원을 영화 한편에다 쏟아붓는 헐리우드와 50억이 넘으면 '거액영화'로 분류되는 우리가 무한경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를 사랑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스크린쿼터제를 없애자고 입에 거품을 무는 건 슬픈 코미디다. 그 사람들의 말대로 스크린쿼터제가 없어지고, 한국영화가 가물에 콩나듯 극장에 걸리는 날의 풍경은 얼마나 쓸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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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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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사회에는 각종 음모론이 횡행했다. 특히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인해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루머가 크게 각광을 받았는데,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하늘이여 땅이여>라는 책을 펴내 시중에 떠돌던 음모론을 기정사실화했다. 음모론에 기대면 마음은 더없이 편해진다. 모든 게 음모고 남의 탓이니, 우리 책임은 실종되어 버린다. 책임이 없으니 반성도 없고, 반성이 없으니 위기가 지나간 뒤 과오는 되풀이된다.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과학적 사고와 회의주의를 가질 것을, 그리고 온갖 음모론을 배격할 것을 유려한 문체로 주장하고 있다. 그의 글은 분명 문장력이 뛰어나고, 구구절절 옳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무지하게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489쪽에 이르는 이 책을 난 거의 두달에 걸쳐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책 몇권을 읽은 것만큼이나 기뻤다. 길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면 너무 심할까? 하여튼 인내심이 웬만큼 있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음모론에 심취하는 건 음모론은 이해가 쉽고 흥미롭지만, 진실을 말하는 책은 이렇듯 골치가 아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야구 경기 중 3할을 치는 이승엽이 앞선 세번의 타석 중 안타가 없으면 아나운서가 이런다. '하나쯤 칠 때가 됐어요' 하지만 이승엽이 세타석에서 안타를 못친 다음 타석의 타율을 분석해 보면 똑같이 3할에 불과하며, 결코 더 높지 않다. 딸만 셋을 낳은 사람이 또 애를 낳았을 때, 아들일 확률이 절반에 불과하듯이. 하지만 TV나 컴퓨터를 오래 하면 눈이 나빠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비과학적인 사실은 언제나 진실보다 믿음직스럽고, 사람을 곧잘 현혹시킨다.

저자가 어느 잡지에 미국 학생들의 지적 수준이 일본, 한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 떨어진다는 글을 기고했는데, 그에 대한 고교생들의 답변 중 이런 게 있다. '다른 나라가 더 잘한다고 해서 뭔가 문제냐. 그들 대부분은 미국으로 건너오고 싶어할 텐데?' 이 대목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해버렸다. '니 잘났다!' 잘사는 나라의 학생들이 갖고 있는 오만을 보면서 '니들이 언제까지 잘사나 보자'고 해보지만, 음모론만 횡행하는 우리 사회를 보니 적어도 내가 살아 생전 우리가 미국보다 잘살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개방성과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사고는 민주주의와 일맥상통하며, 과학의 발달은 민주주의의 정착을 가져온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직까지 민주화가 공고화되지 못한 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과학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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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4-07-2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그 음모론에 기대서 책 팔아 먹는 것 같아 김진명을 싫어합니다
2. 이 책의 명성을 나중에 알고 구하려고 애를 썼는데 품절이라 출판사에 전화하고 헌책방까지 뒤졌지만 못 구했습니다 결국 도서관에서 발견했는데, 기뻐한 것도 잠시, 어찌나 옳은 말들을 지루하게 서술하던지... 그렇지만 정말 좋은 책이죠^^

마태우스 2004-07-2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나나님. 이 책 읽느라 정말 고생하셨지요? 지루한 게 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더군요. 그래도 좋은 책 맞습니다. 그리고..저두 김진명 무지무지 싫어합니다.

시프트 2005-01-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의 확률에 자주등장하는 기대허수의 법칙이죠.....

싸이런스 2006-07-14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더 먼저군 쩝.. 페이퍼보다는 리뷰를 처음엔 많이 썼네요? 그럼 처음처럼은 아닌가. 변심했나보네요.
 
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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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출중한 유머감각을 갖춘 성석제는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극을 비롯해 옛날 얘기를 싫어하는지라 초반부가 약간 지루하긴 했지만, 이야기의 감이 잡히고 난 중반부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간 여지없이 환자로 몰릴 판이다. 예컨대 다음 대목을 보자.

[동구는 환도(가보로 내려온 칼)를 칼집에서 뽑으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가자꾸나...때가 왔다!' 그런데 환도가 녹이 슬었는지 종내 칼집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84쪽)]

주인공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겠구나, 하고 기대했던 내 입에서 '그럼 그렇지!'란 말이 나온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끝은 아무것도 아닌, 그런 스토리가 성석제 유머의 매력 아닌가. 다음 구절도 참으로 웃긴다.

[(단식투쟁을 하는 동구를 찾아온 현감은) 동구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살피고는 고개를 꼬았다....안색에 혈기가 남아 있었고, 앉은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거다. 현감은...입속으로 '낮에는 굶고 밤에는 사슴 육포라도 먹는 거 아닌가' 하고 궁시렁거리다가 .........(193쪽)]

이괄의 난을 진압하려 부지런히 서울로 가니 이미 난이 진압되고, '죽을 고생을 해가며 강화도에 도착했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한 것을 알고는 땅을 쳤다'는 등, 주인공의 행동은 꼭 돈키호테를 연상케 한다. 일관된 행동이 결국 뭔가를 이루지만,'나도 수없이 생각해봤네만 아직 모르겠네'라고 말한 외숙의 말처럼, 주인공 동구의 일생은 적어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돈키호테>를 통해 시대에 뒤떨어진 기사들을 풍자했던 세르반테스처럼, 성석제 또한 공리공론만 일삼아 화를 자초했던 당시의 양반들을 비웃고자 한 게 아닐까? 하지만 마지막 장을 읽고나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인간의 힘>이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끝까지 변함없이 신념을 지킨 것'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글쎄다. 신념도 신념 나름이지,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신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 곳곳에 촌철살인의 유머가 번뜩이지만, 난 이 책을 편한 마음으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명나라에서는 인조반정을 왕권 찬탈로 보고 책봉을 미루어 반정 주역들을 애타게 했는데(110쪽)'라는 구절은 5.16 쿠테타 때 반란군의 주역들이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해 애를 태웠던 사건을 상기시키고, 명나라를 임금으로 섬기던 조선의 분위기는 지난 수십년간 '반미'가 용공으로 치부되던 우리의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오랑캐 우두머리 앞에서 인조가 머리를 9번이나 땅에 찧는 치욕을 당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이 미국의 침략전쟁에 서둘러 파병을 하는 후손들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인간의 힘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라의 힘을 기르자. 우리의 후손들도 우리처럼 살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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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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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여자가 있다. 어떻게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녀는 관심도 없다. 이럴 때 남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선화공주를 꼬시고자 한 무왕처럼 터무니없는 루머를 퍼뜨릴 수도 있겠고, 죽자고 따라다니는 스토킹을 감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쉬운 것은 그녀를 마녀로 모는 거다. '저 포도는 시어서 못먹을 꺼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 여우처럼, 이쁜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있어 멋모르고 사귀면 파멸할 것이라는 팜므파탈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이 취해온 방법이었다. 얼굴이 반반한 여자에게 '쟤가 그렇게 헤프대!'라고 하는 말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저자는 팜므 파탈의 신화를 세기말 페미니즘이 대두한 데 따른 불안감으로 보지만, 페미니즘 이전에도 팜므 파탈은 언제나 존재했다. 팜므 파탈의 신화는 소설, 시, 연극 등 각종 예술 장르를 통해 확대재생산됐는데, 그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에는 팜므 파탈의 제물이 된 29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미술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에 얽힌 얘기들이 너무도 재미있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아쉽기까지 했다. 그림에 대한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여져, 읽고 난 뒤 머리가 꽉 찬 느낌마저 주는, 한마디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요즘이라고 해서 팜므 파탈의 신화가 끝난 건 아니다. 샤론 스톤이 나오는 '원초적 본능'이 선풍적 인기를 끈 것처럼, 팜므 파탈은 여전히 가장 잘 다루어지는 매력적인 소재다. 미인이 워낙 드물었던 예전과 달리, 성형수술의 발달로 미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지금은 그만둘 만도 한데, 아직까지 그러는 이유가 뭘까? 비록 내 여자가 아닐지라도, 난 미녀들을 보면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미녀들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삶의 고달픔을 견뎠을까? 미녀는 사회를 밝게 빛나게 해주는 존재, 팜므 파탈이니 뭐니 하면서 미녀들을 괴롭히는 짓은 제발 좀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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