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어머니에 좋은 시어머니가 있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어머님은 좋은 시어머니다. 어머님이 돈이 많으셔서 며느리에게 집을 사줬다든지 하신 건 아니다. 그렇다고 며느리를 친딸보다 더 사랑한다든지 하는 것도 아니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우리 어머님도 제수씨의 어떤 점을 못마땅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 때와 명절 때, 제수씨의 노동력을 착취하신다. 그럼에도 내가 우리 어머님을 좋은 시어머니로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인생의 경험이 쌓여 가면서 내린 결론인데, 그건 어머님께서 나름의 삶을 사시기 때문이다. 다른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괴롭히는 건-난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함께 있는 자체를 괴롭힌다고 정의한다-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하니까 누굴 불러다 시중을 들게 할 생각도 나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전에도 언급했던 모 사모님의 말씀은 자꾸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내가 쟤네들(아들 내외) 주말 중 하루는 못오게 해요" 호호, 그러니까 그 며느리는 매주 그 집에 온다는 얘기잖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말 중 하루는 쉬게 해주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로 알고 있으니, 한숨이 나온다. 그집의 둘째가 좋은 직업에도 불구하고 노총각으로 늙는 이유가 혹시????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바쁘시다. 내가 친구 많다고 떠벌이고 다니지만, 어머님에 비하면 적수가 되지 못한다. 바쁘게 생활하시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지난날 생각이 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어머님의 청춘과, 가장 까다로운 환자셨던 아버님의 병수발을 드느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3년의 세월이. 자식이 넷이나 있었건만, 어머님은 간이 침대에서 4시간씩 주무시며 아버님의 병수발을 전담했었지. 그래서 나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가 너무 즐겁게 사시는 거 아냐?"라고 흉을 보던 철없는 여동생을 쥐어박고 싶다. 인생이란 즐겁게 살아도 짧은 것이며, 그간 어머님의 삶이 거의 사는 게 아니었다는 걸 동생도 모르지 않을텐데.
그래서 어머님은 남동생 혹은 며느리가 "가겠다"고 할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오지 말라고 한다. 보통은 그냥 한번 거절해 보는 것이겠지만, 우리 어머님은 진심이다. 그들의 방문으로 어머님이 짜놓은 스케줄이 차질을 빚을까봐서. 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가장 잘해주는 건 같이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진짜 엄마같아요"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있다. 물론 다 거짓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바로 옆집이 시댁인데,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많은가보다.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친구 부인은 어머님이 고향인 목포로 내려간 이후 얼굴빛이 너무 환해져서, 얼마 전 가서 만났을 때 눈이 부실 정도였다. 또 다른 동창 하나는 시댁과 대판 싸운 뒤 발을 끊었는데, 그 뒤부터 인생이 아름답다고 한다. 마지막 예야 좀 극단적이지만, 시어머니가 그 존재만으로 며느리에게 부담이 되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 않을까?
우리 시어머니들도 나름의 삶을 사셔야 한다. 딸만 그런 게 아니라 아들도 출가외인, 아들을 보내고 나면 자기들끼리 잘 살라고 내버려두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사는 게 진짜 멋진 시어머니다. 우리 어머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