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론가들의 정의는 좀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좋은 영화란 그저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내 것인양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잘생기고 돈많고 싸움질도 잘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같은 사람 말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와이키키>에 나오는 음악가처럼 여기저기서 찬밥 취급을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버스 정류장>은 내게 '좋은 영화'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중반까지는 참 재미있게 봤다.
주인공으로 나온 김태우는 남들과 떨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외로움을 자청하는 것 같지만 몸파는 여자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곤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학원강사인 그는 고3인 김민정을 사랑하게 되는데, 차는커녕 면허조차 없던 그가 "드라이브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잽싸게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장면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나도 김정은이 술한번 같이 마셔준다고 하면 연구 열심히 할지도?
그런데 김민정이 애를 밴 걸 고백하고, 같이 애를 지우러 간다. 김민정은 밤새 울지만 김태우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그리고는 김민정이 떠나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다. 서로 연락을 기다렸다나. 그리곤 갑자기 김태우가 쪼그리고 앉아 오열을 하고, 그런 식으로 영화가 끝난다. 난 김태우가 왜 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이해가 가야지 공감을 하고, 공감을 해야 뭔가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울음이 너무 뜬금없어, 난 김태우가 오버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다.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 아무리 삐딱한 남자도 이쁜 여자만 보면 넘어간다?
대개의 감독들은 데뷔 작품이 다 훌륭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 때문이라는데, 이미연 감독은 미리부터 롱런을 의식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지 모르겠지만, 애써 긍정적인 면모를 찾자면 김민정이라는 미녀를 알게 된 것 정도? 영화가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었는데, 그때 참길 잘했다. 이 영화의 OST가 무지 잘팔리다가 영화가 개봉함과 동시에 안팔리기 시작했다는데, 그 이유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