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너무 좋아 펄펄 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기고, 내가 꿈꿔오던대로 대응을 했는데, 기분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지 않다. 큰 범죄를 저지른 듯 가슴이 뛰고,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 아침,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조선일보 기자가 책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그때부터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하구 많은 신문들 중 왜 하필 조선일보람? 조선일보의 지대한 영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극우냉전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숱한 왜곡과 거짓말을 하는 그 신문에 대한 안티운동에 난 오래 전에 서명한 뒤였다. "한번만 해주시면 안될까요?"라는 출판사의 부탁을 난 겨우 뿌리쳤다.
"그건..제 영혼을 파는 일이거든요"

사실이 그랬다. 내 홈피에 조선일보에 대해 써놓은 욕이 얼만데 그 신문과 인터뷰를 한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문부식을 내가 얼마나 씹었었는데? 무엇보다 홈피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날 어찌 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인터뷰란 도무지 말이 안됐다.

몇시간 후, 조선일보 기자가 드디어 전화를 했다. 인터뷰 때문에 좀 만나잔다.
"도와주시려는 건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요, 제가 사정상 인터뷰를 할 수가 없거든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미안했다. '저 기자가 나쁜 건 아닌데' 하는 맘 때문에.
기자가 묻는다.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까?"
아따 그사람, 눈치도 빠르네.
"네, 제가 안티조선이라서요"
기자는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고, 그때부터 내 가슴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다.

미안하긴 하다. 기자한테도, 그리고 '일등신문'에 실려 책을 좀 팔고픈 출판사에도. 하지만 내가 인터뷰에 응했다면 겪어야 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거절은 백번 잘한 일이다. 책이 좀 안팔리면 어떤가. 내 영혼의 값어치가 그깟 책 몇십, 몇백권과 맞바꿀 성질은 아닐터다. 그래, 신문에 안실리더라도 내가 다 사면 되지 않는가? 보라, 내 책이 알라딘 문학베스트 9위다! 이문열이 새로 낸 <산들메> 어쩌고를 제꼈다^^. 조선일보야, 난 너희 도움 필요없고, 그냥 내 힘으로 할께. 니들 덕분에 오늘 나 소원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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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거절한 직후 기차에서 쓴 글입니다. 글을 옮기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거절할 수 있었던 건 책이 안팔려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에 대한 황석영의 거부와 공선옥의 거부는 분명 다른 차원의 거부일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어떤 작가가 조선일보를 거부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성석제가 동인문학상을 탔을 때, 그에 대한 비판 글들이 여럿 올랐었죠. 하지만 성석제처럼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에게 작가적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조선일보 거부'를 강요하는 게 합당한 일일까요? 그런 강요가 가능하려면 공선옥처럼 어려운 처지에도 조선일보를 거부한 작가의 책을 조금이라도 팔아 줘야 할텐데 그런 건 없고 그저 "니 잘했다"라는 말 뿐이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대급부도 없는데 조선일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만 해도 그 달콤한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던데, 전업작가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써 봤습니다 (갑자기 걱정...혹시...제 책을 사달라는 칭얼거림으로 읽히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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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4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_ 2004-02-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결정하셨네요. 얼마전에 고종석씨의 '과연 내가 먹고사는데 급급했다면 조선일보의 기고 요청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을까?'라는 글이 떠오르는 군요.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정말 돈과 자기이념과의 괴리는 무시하지 못하나 봐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정말 공선옥씨 같은 분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마태우스님의 결정이 그에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

문학베스트 10위권에 진입하시는데 제가 일조하지는 못했으나, 정말 축하드립니다. ^^

갈대 2004-02-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 멋집니다!!

paviana 2004-02-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 정말 마태우스님 대단하시네요..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셨어도 자기 이득에 조금이라도 손해되는 일이라면 안 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니까요..마태우스님도 안티조선이시군요..반갑네요.근데 그 기자 그런일 자주 겪나봐요.눈치빠르게 알아채다니..^^

chaire 2004-02-2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서없이 쓴 글이라지만, 참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유명 작가인 공선옥보다도,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는데도(소설판에선 아직 신참이시니^^), 담담히 "제가 안티조선이거든요"라고 말씀하시다니...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막 둘러대긴 했겠지만, "제가.. 인터뷰를 워낙.. 무서워하는지라..." 어쩌구 하면서... 암튼 마음깊이 박수칩니다.

nrim 2004-02-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려운 결정 하셨네요. 남의 일에 배나라 감나라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신념을 지킨다는 일이 쉽지는 않은듯. 저도 문학 베스트 10 진입 축하드립니다. ^^

그루 2004-02-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겁니까?" 보고선 제가 섬찟 놀랐네요. 어려운 결정에 마음 보냅니다. 축하드리구요. ^^

가을산 2004-02-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전 인터뷰가 아니라 구독권유하는 전화만 거절하고도 의기양양한데.. ^^;;
'조선일보 안봅니다' 하면 알아서 포기하더군요.

비로그인 2004-02-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조선일보의 파워란 그렇게 막강한 것이었군요. 전 잘 몰랐답니다. ^^;; 그래두 마태우스님 지조있는 모습 멋진데요~ ^^

쎈연필 2004-02-2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소설집에 님도 서평을 쓰셨던 걸 기억합니다. '너그러운 자유주의자'에 대한 논쟁이 그 소설집에 있었지요. 쉬운 일이 아닌데... 마태우스님 멋지십니다^^

mannerist 2004-02-2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마태우스님 브라보~!!

2004-02-24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4-02-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개월 무료때문에 남편눈치보면서 조선일보로 바꿨습니다..그전에 보던 ㅈ 신문이 배달사고가 자꾸 생겨서..남편에게는 "나쁜신문이라지만 얼마나 나쁜지 한번 보도록 하자"했지요..
그런데..조금 심하긴 하더군요..조선일보..매일 읽다보면 우리나라 큰일날것같은 불안감이 들어요...

찌리릿 2004-02-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

저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상업성'과 '조선일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느낍니다. 회사 PR용 보도자료를 돌릴 때 당연히 빼놓지 못하는게 조선일보이고, 일단 나왔다하면 가장 영향력이 느껴지는게 조선일봅니다.

제가 사장 정도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보도자료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방침을 정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이니...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저와 관련된 회사 PR이 조선일보에 이따만큼하게 크게 나왔을 때...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여튼.. 출판시장은 조선일보의 신간소개가 필수라고 할만큼 큰 부분이고, 마태우스님처럼 조선일보에 의도적으로 PR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 '그냥 뚜벅뚜벅' 성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과 기생충>.. 갑자기, 꼭, 기필코 읽고 싶어집니다. ^^


연우주 2004-02-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용기에 박수, 박수, 박수~~~
아, 그리고 저 간만에 페이퍼 썼습니다. 읽고도 코멘트 달아주세요...흑.
중요한 글인데 제가 글 안 쓴다고 해서 그런지 안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흑흑.

마태우스 2004-02-2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도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내주셨군요. 제가 한 일이 그리도 대단한 일이라니, 제가 더 놀랍습니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