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읽는 법 -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감상의 기술
이종수 지음 / 유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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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이 불편한 요즘. 그냥 동양미술에 꽂히기로 했다. 그래봐야 기초교양수준을 보는 것이지만. 너무 몰라서인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공공도서관도 문을 닫은 시국이라 집안에 쟁여놓은 서재의 책들중 이 소재만 가려 보고 있다. 의외로 좀 있었다. 동양미술에도 부채의식을 다소 갖고 있었나보다.

 사실 한국인은 한국인이면서도 동양화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 당연한 것이 우리 미술교육에서 단원이나 제재의 80%가 서양미술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거의 10여년 이상전 부터 국악이 제자와 단원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건만 미술은 서예와, 수묵화 관련 단원 하나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기초를 다루는 이책의 내용조차 거의 몰랐다. 다들 나와 비슷할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글을 남긴다.

 

1. 산수화

 우리 옛 그림의 갈래는 크게 네 가진인데 산수화와 인물화, 화조화, 풍속화다. 이 중 가장 으뜸으로 쳤고 지금도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남은 것이 산수화다. 산수화는 지배계층인 양반과 문인들이 좋아했기에 수요가 놓았고 당대의 대가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산수화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산수화는 글자 그래도 산과 물을 그린 것으로 중국의 남북조 시대인 대략 4-5세기 경 시작된 것으로 사려된다. 당시 중국의 종명이란 자가 자신의 늙고 병듬을 한탄하며 더 이상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집에 누워서 풍경을 대리만족 하고자 산수를 그리고 감상하기 시작 한것을 산수화의 시작으로 본다.

 이처럼 산수화는 집에서 산수를 감상하는 것이 목적이다보니 구체적이고 특정한 지역을 그리기보다는 그럴싸하고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산수를 작품으로 나타냈다. 실경이 아닌 관념적이거나 이상화된 산수가 산수화의 소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이런 관념산수화가 주류였다. 변화가 시작 된 것은 17세기로 중국이 아닌 조선의 실경을 그리는 실경산수화와 진경산수화가 등장한다. 이런 변화의 이유로는 우선 명의 멸망으로 조선을 유일한 문명국으로 여기는 소중화 사상으로 인해 중국의 산수만을 그리던 방식에서 조선의 산수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있다. 그리고 명대부터 유행했던 문인들의 산수유람이 조선에도 영향을 미쳐 그리 되었다는 설도 있다.

 

2. 실경산수화와 진경산수화

 조선의 유명한 화가로는 문인출신인 삼재와 직업화가인 도화서 출신의 삼원이 있다. 삼재는 호를 따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를 말한다. 삼원은 단원 김홍도와 그 제자인 혜원 신윤복, 그리고 오원 장승업이다. 이중 이 책은 겸재 정선에 주목했다. 우리 그림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기법이나 관념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중국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장르를 구축한 것은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이 유일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진경산수화가 전통적인 관념산수화에서 벗어나 조선의 실경을 그려낸 것으로 실학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실 진경산수화는 실경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실경을 그려낸 것을 실경산수화로 정선 이전부터 다수의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이 있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관념이 아닌 실제의 실경을 그리되 화가의 주관이나 멋을 더해 실경 이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는 한 시점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드러나는 다시점형태를 띤다. 금강산을 그린 그의 만폭동 작품에서는 정선이 보고 나타내고 싶은 금강산의 전부가 나타나 있다.

 이런 차이로 인해 진경산수화는 실경산수화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3. 수묵화를 볼때 몰랐던 것들

수묵화는 크게 종이나 비단에 그린 것들이 많다. 비단은 재료가 더 고급이고 화려한 맛을 주지만 배경이 너무 화려할 경우 그림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주로 상아색이나 담황색을 썼다. 하지만 종이보다 오래가지 않아, 비단작품의 경우 오래되면 작품자체가 어둡게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의 그림은 캔버스에 그려 항상 펼쳐진 형태로 보관하지만 우리 그림은 가로나 세로로 둘둘마는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전시관이나 사진에서 모두 펼쳐놓아서 그런 상상이 잘 들지 않지만 과거 조상들은 둘둘 말린 그림을 조금씩 펴보는 형태로 감상했다고 한다.

 이런 감상형태는 당연히 표현에도 영향을 미쳤다. 화가들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서를 생각하며 공간을 드러내는 형태로 그림을 그렸고, 심지어 펴는 방향에 따라 시간에 따른 변화를 주는 것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것도 모르고 활짝 편채로 동양화를 감상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그렇다.

 서양의 그림에는 거의 반드시 제목이 있는 편이지만 동양의 그림엔 사실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제목은 작가 자신이 붙이는 경우가 적었으며 그냥 표현한 것 자체가 제목이 되거나 후일 감상자에 의해 제목이 붙은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작가를 표시하는 관지라는 것을 썼는데 자신의 본명보다는 호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추사 김정희는 무려 200여개의 호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과거 사람들은 세월에 따른 자신의 내면 변화나 외면 변화에 따라 호를 꾸준히 변경했다. 동일작가의 관지가 제각각 다를수 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에 왕의 어진이나 고관대작의 인물화의 경우 감히 관지를 넣을 수 가 없으니 여러 사료에 의해 작가를 찾아야 했다.

 관지말고 동양의 그림은 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 그림의 여백의 미는 애초에 이런 글을 위해 남긴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에 쓰는 이런 글을 화제라고 하는데 주로 제사나 찬들이 많았다. 이는 작품과 하나가 되어 작품을 빛내기도 하는데 그림을 감상한 사람이 후일에 쓰는 경우도 있었고, 요즘 동화책의 글과 그림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애초에 그림과 글을 협업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더 재밌는 부분은 인장이다. 인장은 그림에 남기는 도장인데 화가 자신이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작품의 소유주나 후일에 돌아가며 감상한 사람이 남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 인주의 인장이 그림 여기저기를 점령한 경우도 많다. 그림반 도장 반이다. 이는 그림을 훼손시키는 행위갔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는 그림을 높은 고관대작이나 중요한 문인에게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누가 인장을 찍은 그림이냐가 매우 중요했던 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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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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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 책 '세한도'를 읽고 추사 김정희에 대해 관심이 더 생겨났다. 세한도도 좋은 책이었지만 좀 얇았고 자세하진 않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추사 김정희란 책을 사놓은게 생각났다. 그래서 집었는데 생각보다 두껍고 요즘 직장일이 번잡해 좀처럼 읽히질 않았다. 김정희는 세한도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림보다는 서예로 유명한 학자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보단 한문글자가 무척 많다.

 우리 조상들은 글씨가 마음과 학식을 반영한다 하여 무척 중시했는데 그 흔적이 남아 어릴적 국대시절 글씨쓰기 대회나 글씨 못쓰는 이유로 고통을 받았다. 자칭 우리반 5대악필이었는데 글씨를 못쓰면 담탱이님께 성의가 없거나 대충했다는걸로 여겨져 혼나거나 숙제를 다시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시절 숙제는 노력을 요하는게 많았다. 뭔가를 무척 많이 쓴다든지 하는 것들.

 의외로 추사 김정희에 대해 우리 학계는 일제시대 학자인 후지쓰카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청대공부를 하며 청대 유수의 학자들과 김정희의 교류를 알게 되었고, 김정희를 청대학문연구의 일인자로 칭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각종 유물과 작품들을 많이 모으게 되었고, 책 세한도와 책 추사 김정희도 그의 연구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후지쓰카의 아들은 만년에 아버지가 소장하던 많은 김정희의 작품을 한국에 기증하니 뜻 깊은 일이다.

 하여튼 김정희는 정조 10년인 1786년에 태어난다. 영조와 사위를 맺은 월성위 집안으로 왕실의 외척인 경주김씨이기에 귀공자였다. 백부인 김노영이 자식이 없기에 출가하여 양자가 되었고, 친부는 김노경이다. 아버지 김노경은 무려 40세인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하였음에도 불과 20년의 관직 경력에 각종 판서와 주요 지방의 감사직을 두루 지냈다. 추사는 그런 집안의 자제였고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박제가라는 당대 실학자의 제자여서 북학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정조는 중국의 문물을 따라잡고 우리 것으로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청의 서책을 사들였고, 이로 인해 연경에 가는 사신들도 많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정희는 자연스레 연경에 동경을 품게 된다.

 당시엔 연경에 주요 대신들의 자제가 자제군관으로 같이 가는 특혜가 있었는데 아버지 김노경의 첫연행시엔 너무 어렸고 두번째 연행때는 24세의 나이가 되어 연행에 동참한다. 거기서 그는 청의 대학자인 옹방강과 완원 등을 만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연행이고 2-3달의 체류였지만 그간의 경험이 평생 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옹방강이나 완원역시 김정희에 강한 인상을 받고 거의 제자로 삼는다.

 조선에 돌아와 예술과 학업에 매진하던 그는 마침내 34세의 나이에 대과에 오른다. 2대 연속의 벼슬살이로 집안은 탄탄했고 같은 경주 김씨인 정순왕후가 있었다. 김정희 역시 아버지 만큼 요직을 거치진 못했지만 높은 벼슬살이를 했으며 이를 통해 연경과의 교류도 계속되었고 청의 서책과 문물을 계속 접한다. 또한 그는 금석문에 관심이 많아 진흥왕 순수비를 찾거나 조선의 각종 명승지와 산들, 유적을 탐색한다. 일종의 학자이자 지리역사학자 및 고고학자의 성향이 강했던 것. 요즘으로 치자면 종합예술학자느낌이다. 김정희는 독특하게도 불교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이론적으로 통달했는데 그래서 그는 사찰의 현판에 글을 많이 남기기도 했고, 스님들과의 이론 논쟁 및 교류도 많았다. 조선시대 유학자치곤 매우 드문일이었다. 젊어서는 그는 자신만의 소신과 지론이 강한 편이었고 이로 인해 남들과 오해 및 다툼도 잦았는데 맞다고 생각하는 말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평소 생각이었다. 그래서 훗날 김정희를 모함하는 안동김씨 세력의 김우명을 암행어사 시절 고발해 파면시키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김정희가 벼슬에서 물러나고 조정엔 안동김씨 세력이 득세한다. 그들은 경쟁세력인 경주김씨를 못마땅히 여기고 조정을 장악하고자 공격을 시작한다.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은 벼슬에서 물러나자마자 상소로 공격을 받았고 급기야는 고금도로 유배된다. 추사는 독특하게도 왕실의 행차에 꽹과리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격식과 법도를 중시하면서도 맞다면 과감히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갖는 추사의 개성을 보여주는 면목이었다. 이후에도 안동김씨 세력의 공격은 계속되어 부친 김노경은 사후에 관작이 박탈되고 공격은 김정희에게 이어져 억울한 상황임에도 그는 무려 제주도의 대정현으로 위리안치된다.

 조선시대 귀양은 주로 천사와 부처, 안치로 구분하는데 천사는 고향에서 천리밖으로 이주시키는 것으로 고향에서 쫓아내는 것이고 부처는 중도부처의 준말로 죄인을 정상참작하여 귀양지로 가는 도중 그냥 도중의 한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었다. 안치는 이중 가장 가혹한 것으로 상황에 따라 고향이나 개인 별장, 혹은 유배지를 스스로 택할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절도안치와 위리안치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절도안치는 글자그대로 섬에, 위리안치는 집 주위에 가시울타리를 스스로 치고 그안에 갇히는 것이었다. 추사는 가장 먼 제주도에 그것도 위리안치된다.

 귀양길에서도 추사는 원교의 글씨를 폄하하고, 서예가인 창암 이상만의 글도 높이 치지 않는등 고고한 모습을 보인다. 제주에 도달해서도 귀공자로 자란 탓에 토착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으로 보내는 편지에 여러 음식의 조달을 부탁한다. 하지만 워낙 먼곳이라 상당수의 음식이 썩어 도착하고 장맛도 변하여 도착하는등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귀향 초기엔 벽파스님과 벌인 논쟁에서도 상당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귀양 생활은 상당히 고달팠는데 음식과 기후, 물등 모든 것이 그와 맞지 않았던듯 하다. 제주의 풍광은 아름다울진데 위리안치 신세니 나가지도 못하였다. 오랜 귀양생활중 학문의 일가를 이룬 정약용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지만 그의 학예는 좁은 곳에서도 할수 있는것이기에 다행이었다. 거기서도 연경의 소식을 접하고 지안들과 서신을 주고 받았으며 심지어 제자를 기르기도 하며 천거까지 한다. 세한도는 당시 연경을 오가던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움에서 준 것이며 이상적은 세한도를 가져가 연경학자들로부터 그림에 대한 시를 받아 이를 책으로 엮기까지 한다.

 오랜 귀양생활로 추사의 생각과 성격은 많이 변화한다. 이전의 날카로움은 많이 사라졌고 관용적인 면과 토착적인 면, 인간적인 면이 더욱 많아진다. 귀양이 풀려 돌아오면서 과거 자신이 폄하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이야기하며 그들의 작품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오랜 유배생활로 집안은 예전만 못했다. 가세가 기울어 호화롭던 월성위궁은 이미 팔렸고, 추사는 서울 용상으니 강상에 머문다. 거기서 학예에 다시 집중하고 여러 사람과의 교류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다시 모함을 받아 지난번과 정반대로 북방인 북청에 유배된다. 북청은 매우 추웠지만 중국과 가깝게 큰 고을이기에 제주만큼 힘겹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60이 넘은 몸에 두번의 큰 유배생활은 그에게 큰 충격을 준다.

 돌아와선 과천에 자리잡는다. 과거 부친 김노경이 별장을 세운 곳으로 그곳에서 말년 생활을 한다. 추사는 석파 이하응과도 교류가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흥선대원군이다. 대원군은 난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그의 난 그리기는 추사로부터 배운 것이다. 추사는 이하응에게 난 그리기를 가르치기도 했고 난 그림을 묶은 서책을 보내기도 했다. 과천에서 많은 작품과 제자들을 남기고 있던 그는 71세의 나이에 죽는다. 죽기 3일전에도 큰 글씨를 남겼는데 평생 열개의 벼루의 바닥을 보고 수천개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든 만큼 끊임 없이 학예에 매진하던 그의 모습다웠다.

 추사의 글씨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중국과 일본에서도 찾는 이가 많았으며 실제 추사 자신도 살아생전 여러 사람에게 글씨를 청탁받았다. 그리고 상당수 서예가들이 입고와 출신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반면 추사는 입고와 출신을 완벽히 통달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입고는 옛글씨를 학습하는 것으로 주로 금석학인데, 입고에 치중하다보면 새로운 것을 만다는 출신이 약했고, 출신이 강하다보면 근본이 없어져 입고가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추사는 금석과 과거의 비문을 많이 연구한 사람으로 입고에서 출신이 나온 학자였다. 그래서 추사의 글씨는 추사체라는 새로운 장르로 확립된다.

 책을 읽으며 한문을 잘 모르고 서예도 모르기에 그의 작품들이 아름다움이나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굴곡진 삶에서 변해가는 글씨를 보며 한 사람의 삶이 느껴졌고 거기서 오는 울림이 있었다. 책엔 부록으로 대표 작품집 책자도 있었는데 책을 완독하고 보니 이런 식의 부록을 준비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가는 부분이 있었다. 저자 유홍준도 나이대별로 그의 삶에 따라 변화한 그의 글씨가 감명깊었던 것이다. 유홍준은 말년에 이르러 삶을 관조하고 낭만적이며 주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한 추사의 글씨는 마치 어린아이의 글씨처럼 돌아갔다고 했다. 추사가 어릴적 글을 썼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말이다. 돌고 돌아 처음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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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교육 사용 설명서 - 학생 주도 수업을 위한
전상현 지음 / 테크빌교육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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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산업혁명을 앞두고 다양한 교육방법이 등장하는 가운데 주목받는 하나가 메이커 교육이다. 메이커교육은 글자그대로 학생이 도구를 이용해서 자신이 생각한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방법이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학생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식을 체계화하고 창의적으로 구체적인 결과를 배우는 가정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다.

 메이커 교육의 3요소는 매체와 학습자, 교사다.

 매체는 학생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과 지식을 쌓는데 쓰일수 있는도구라면 뭐든지 괜찮다. 종이부터 최신 3d 프린터까지 모두 포함된다.

 학습자는 관찰을 통해 선지식과 선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정보를 구성하고 학습한다. 자신의 생각과 글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모둠원과 이야기하는 과정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수정해나가며 학습하는 것이다.

 교사는 학습자의 자유로운 생각이 허용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생각의 가지치기를 도우며 협업을 위한 의사소통을 중재한다. 즉 코칭이나 퍼실리테이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메이커 교육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종이를 통한 페이퍼 크래프트, 오븐에 넣으면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종이인 슈링클스, 종이전자회로, 트러스구조를 통한 무게 견디기 실험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메이커 교육엔 두가지가 힘들다고 한다. 우선 무언가를 계획하고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과 학생들 간에 서로 다른 배경지식이다. 이 두가지를 수업 사전에 자신이 만들거나 유투브등을 활용한 디딤영상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무척 인상적인 교육이지만 문제점도 보인다. 우선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만들기 활동엔 많은 시수가 필요하니 여러 교과를 함께 통합해 편성한다. 그러다보니 일부 교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위계를 잃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많은 만들기 활동을 통해 다양한 역량을 함양하겠지만 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쌓아갈수 있을지도 다소 의문이었다. 하여튼 이런 생각도 고리타분하게 느낄만큼 알찬 책이었다. 메이커 교육에 관심있는 분께 추천한다. 마냥 어렵게 느껴질수 있는 메이커 교육을 사례중심으로 잘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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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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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와 교육만능주의 그리고 서구에 대한 지적의존으로 인해 교육지옥과 힘의추구라는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지난 백여년간 사회 자체와 그 속의 개인이 엄청난 정체성 변화를 겪었음에도 자신들을 성찰하는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 독특한 한국인의 정체성의 변천에 대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담은 것이 이 책이다. 다 읽어보니 총 두권인것 같은데 '한국인의 탄생' 편에서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를 다루고 다음편에서 현대편이 이어지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체성 변천을 연구하려다보니 저자는 곧 어려움에 봉착한다.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을 담아놓은 체계적 저술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상당기간동안 부재했던 것이다. 이는 거대한 혼란기로 인함인데 자신들이 신봉하던 성리학이 부정당하고, 서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며, 일제에 강점당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래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소설이다. 소설에 담겨진 인물상과 저자의 의도 파악을 통해 당대 한국인의 변화를 살펴볼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먼저 근대 이전의 소설에 주목하는데 우선 홍길동전이다.

 

1. 근대이전(홍길동전)

 한국인이 언제나 마음편하게 자신들의 작은 문제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소환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홍길동일 것이다. 홍길동이 비교적 편한 해결책인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아이같은 외모와 폭력없이 상대를 해치우는 강력한 도술이다.

 작가인 허균은 연산시절의 혼란함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따왔음에도 홍길동전의 시대를 하필 세종대로 설정했다. 이는 홍길동이 시대가 불러낸 영웅이 아닌 그런 것과 상관없는 천상의 영웅임을 설정하기 위해서이고 영웅의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허균은 사실 역성혁명을 하기 위한 대리목적으로 홍길동을 만들어낸 것이지만 당시 역성혁명은 성리학에 반하는 것이고 이에 물든 백성들의 정서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균은 충분히 역성이 가능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홍길동이 단지 율도국 하나만을 세우게 함으로써 혁명의 가능성만을 보여준다. 더구나 홍길동은 도술이 무척 뛰어나 적들을 농락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폭력성과 혁명의 거칠음이 없기에 이후에도 한국인들은 부담없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홍길동을 쉽게 소환할 수 있게 된다.

 근대이전엔 소설엔 개인이 없다. 있다해도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갇혀있고 선인과 악인으로 뚜렷히 구분되며 이렇다할 내면 표현도 적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영웅이나 특별한 주인공으로 그래서 제목도 대부분 - - 전이다. 내용도 권선징악이나 교훈을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2. 근대소설의 등장

 서구에서 근대소설이 등장한다. 서구근대소설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라는 시대가 낳은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로 근대소설엔 개인에 등장하며 개인을 부각시키는 다양한 도구가 등장한다(내면묘사) 그래서 근대소설은 어떤 개인의 생애를 기술하기 위한 문학형식인 경우가 많으며 그 안에서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과 공동체에 대항하여 맞서 갈등을 일으킨다. 근대소설은 아름다운 문체를 추구하지 않으며 천박한 문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주의를 추구하는데 이는 진짜 사실이 아닌 없는 인물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사실성의 추구다. 대표적인 예로 돈키호테, 파우스트, 돈후앙, 로빈슨크루스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개인주의의 신화적 영웅들이다.

 서구 역시 자본주의 등장 이전인 근대엔 서사시나 비극, 영웅담이 소설의 주류였으며 주인공은 개인이라기보단 우리의 경우처럼 공동체나 민족의 염원, 꿈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이였다. 그럼에도 근대 이전의 주인공들은 홍길동처럼 아이다운 경우가 많았으며 근대소설의 개인들은 성숙한 남성성을 표출한다. 그만큼 영웅에 아닌 개인으로서 세상에 부딪히는게 거칠고 힘들기 때문이다.

 

3. 구한말-대한제국까지(신소설-혈의 누, 치악산, 화세계)

  [피동적이고 주체성없는 약한 피해자 한국인]

 구한말에서 대한제국까지의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시기중 하나였다. 사회의 시스템과 전통적인 공동체 질서는 완전히 붕괴했고, 외세의 침략이 눈앞에 있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기였다. 정계에선 매관매직이 판을 쳤고, 조정은 나라보단 자신의 살길을 찾았으니 일반백성들의 삶이야 어떠했을까. 

 이런 시기 서구 근대소설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 신소설이 등장한다. 이인직의 혈의누가 최초이고 귀와 성, 치악상등이 잇달아 등장한다. 작품엔 공통점이 있는데 주인공이 김옥련, 길순이, 이씨부인으로 모두 여성이며 각자 다른 처지지만 모두 끔찍한 운명에 처했고, 성격상 주체성이나 자의식 개성없이 끌려만 다닌다는 것이다. 이들은 피동적이고 내용이 없는 껍데기의 여성피해자로 우리나라 소설상 최초의 근대인이다. 강한 남성이 개인주의적 영웅으로 등장하는 서구와는 딴판으로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이유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물질적 성공을 위해 전통적인 의를 무시하고 악행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시기 소설은 아직 한국인의 금기인 비극으로 치닫진 못하고 끔찍한 운명에도 어떻게든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드로 작품을 끝내는 경향을 보인다.

 1910년경에 이르러서는 주체성과 개성없이 피해만 입던 주인공들은 이 시기에 적응하여 영약하고 합리적인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쨌든 당시 사람들은 혼란한 홉스식의 자연상태에 높인 상황에서 강한 국가를 원했고, 그래서 이상스레 대원군의 인기가 오래도록 신화처럼 이어진다. 개화가 이어지며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은 더욱 드러났고, 반작용으로 오히려 일본과의 사회계약을 통해 강한 정부를 세우려는 일진회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일진회는 한일합방후 총독부의 명령으로 허망하게 사라질때까지 무려 100만에 달하는 회원을 가진 활발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을사늑약과 친일파들의 부역행위가 드러나며 일진회는 그 인기를 잃어간다. 반작용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과는 구분되는 조선인의 차별성이 부각되었다. 조선인은 구시대적 표현이었으며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국민과도 대비되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었다. 다음은 이 민족주의자의 탄생이다.

 

4. 1910년대까지(근대소설-무정)

[민족주의자의 탄생]

우리 민족이란 개념은 고통속에 탄생했다. 구한말 조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차 부정에 그 반작용으로 새로운 강한 권력을 찾았던 일진회를 포함한 친일행위에 대한 이차 부정이라는 이중의 부정속에서 탄생한 개념이었다. 국가가 없던 시기에 탄생했기에 대부분의 다른 국가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일치하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이같은 성향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민족주의자들은 1880년대부터 백성의 교육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러일전쟁과 일진회의 행위에 대한 반작용, 민영황의 자결로 인한 고취는 개화민족주의를 형성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한 서구와 같은 사회건설이 목표였다. 반면 여기에 일제에 대한 강한 투쟁을 포함하는 것이 저항민족주의다.

 이 같은 분위기를 한국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에 반영된다. 무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형식은 한국 최초로 내면을 갖춘 근대적 인물이다. 내면을 가졌으므로 개인은 욕망을 가진 주체이자 그것을 자제하는 주체가 된다. 구한말의 주체없는 인물에서 진일보 한것이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민족개화를 위한 지식이 필요했으나 이는 조선자체가 아닌 유학이라는 밖에서부터 얻어지는 것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이것에 목말라 했으나 그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조선안에 있던 모든 지식과 문화가 부정되고 외세에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던 당시 상황은 지식과 체계를 모두 서구에 의존하는 지식의존주를 낳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한국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본인들이 민족주의자이면서도 아직 민족을 강력하게 경험하지 못했고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정엔 이형식이 사랑을 통해 민족주의자로 눈을 뜨고 유학길에 오르지만 그들에게 환호하는 조선사람들은 아직 민족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민족이 강력하게 등장한 것은 3.1운동이다. 3.1운동으로 민족이 비로서 확실히 등장했고, 일진회나 여러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선 모든 이가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

 

5. 1920년대(김동인의 소설들)

[강한 조선인의 추구]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대초기까지 조선인은 피해자였고, 약자였다. 하지만 민족주의자가 등장하고 민족개념이 등장하며 비로소 강한 조선인 상이 요구되었다. 이 시기는 이런 강한 조선인을 소설상에 어떻게 상정할지를 고민한 시기로 평가된다.

 1920년대인 김동인이 있었다. 주로 연애소설을 쓴 것으로 평가되지만 저자가 보기엔 김동인은 약한 한국인과 강한 한국인을 대비시켜 강한 한국인을 꾸준히 발견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김동인은 -다로 끝나는 현대 한국어 문어체를 확립했다. 기존엔 -더라, -라. 등의 표현이 많았는데 -다의 표현이 자리잡아 화자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어가 확실히 주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김동인은 또한 그 또는 그녀라는 3인칭 표현을 확립하여 화자의 사고 구조를 근대화하였다. 그리고 이광수가 만들어낸 내면을 서간체와 고백체, 일기체등의 도입으로 더욱 소설안에 확립하였다.

 김동인은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위를 남의 행위를 의식함으로 인해 하게되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김동인은 인간을 나누는 기준으로 약함과 강함을 독창적으로 제시하였고 약함의 이유로 당시 등장한 모더니즘 도시사회의 남을 의식하는 허영에서 찾아냈다. 그는 1920년대 말부터 소설에서 꾸준히 강한자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강한 조선인은 약한자에 비해 내면도 없고 말과 생각없이 그저 강하게만 행동하는 괴물같은 존재였다.

 

6. 1930-40년대

[강한 조선인의 등장]

 1930년대에서 40년대를 거치며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한다. 인구는 40만에서 100만에 달했고,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익명의 대중사회가 되었다. 1910년대에서 민족개화의 의무를 띄었던 지식인들은 이젠 넘쳐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민족개화는 커녕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에 시달렸다. 이런 모습은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와 이상의 날개에 잘 등장한다. 

 이 시기에 등장한 이광수의 유정은 한국에서 최초로 결말이 비극인 소설이다. 주인공인 최석은 지식인이자 부유하고 경성학교의 교장으로 지인의 딸을 키우게 된다. 문제는 주인공과 지인의 딸이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교장인 최석은 실제론 사랑을 자제했음에도 모함을 받고 모든 것을 잃게된다. 가족에게서도 제자들에게도 비난받는다. 만주와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런 사랑안에서의 갈등이 강한 조선인을 탄생시킨 비결이었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랑을 상정해 갈등과 고뇌를 겪게 하고 이성과 욕망사이에서 두 힘의 갈등이 최대화해 강한 조선인이 탄생하는 식이었다.

 보다 제대로된 강한 민족주의자로서 강한 조선인은 임꺽정에서 등장한다. 임꺽정은 홍길동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따라 한국인의 필요에 따라 현재도 소환된다. 차이가 있다면 홍길동은 무해함과 비전복성으로 주로 생활문제의 해결을 맞는다면 임꺽정은 체제를 전복시키는 거친인물로 필요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 임꺽정은 홍길동과는 다르게 거친 외모에 백정출신이고, 홍길동의 말도안되는 도술정도는 아니고 현실적인 힘을 갖는 편이다. 또한 왠지 현실적이지 않은 홍길동과는 다르게 소설에서 강하게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임꺽정 자체는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가족과 그의 동료들이 처한 비참한 조선의 현실은 매우 현실적이기에 꺽정도 자연스레 현실성을 얻는다.

  임꺽정에 등장하는 또 다른 두개의 독특함은 반지성주의와 민중이다. 민중은 오래전에 등장한 말로 서구의 개념이 아니고 동북아 삼국의 지식인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특유의 아나키스트적인 뜻으로 말이 탄생한 중국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좌우파의 공격으로 사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임꺽정이란 소설에서 살아남아 오랜 세월을 묶다 민주화의 시기에 폭발하여 자리잡게 된다. 반지성주의는 역설적으로 당대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지식을 통해 개화가 되고 무언가 이루어질줄 알았지만 상황은 무기력하게만 흘러갔다. 민중은 개화되지 않고 식민지 조선은 해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일본은 더욱 강대해져만 갔다. 일부 지식인들은 친일로 돌아서기까지 한다. 그런 무력감에 반지성주의가 작품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임꺽정에서 꺽정은 글을 모른다. 심지어 언문조차 모르며 글을 배우려는 시도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알것을 다 알고 일을 처리해내가며 두목이다. 힘이 가장 센자가 두목이 되는 것은 좀 이례적인 것으로 로빈훗이나 양산박에서도 두목은 무력순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력과 두뇌가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임꺽정에선 무력순이다. 반지성주의가 더욱 드러나는 점은 무리중 글을 유일하게 아는 서림이 잔학하고, 세속적이며 악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하여튼 강한 조선인은 해방을 앞두고 마침내 등장한다. 전통문화에서 개인이 부재하고 영웅만있던 시점에서 구한말의 시대적 혼란으로 주체성 없는 피해자 개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자도생에 성공해 영악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조선의 부정과 일본이라는 강한 권력의 부정이라는 이중 부정을 통해 민족주의가 탄생한다. 민족주의자는 지식인이었으며 3.1운동을 통해 민족도 탄생한다. 그리고 민족을 이끌 강한 조선인 상이 요구되며 약함과 강함의 대비과정에서 강한 조선인이 탄생하고 이는 임꺽정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강한 조선인의 등장과 그 강함이 해방으로 연결되지 못한 상황과 반지성주의는 해방후 시대적 혼란속에서 반지성주의적 상황에서 힘을 추구하는 문제상황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지식과 지식인에 불신과 의혹, 증오와 질투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큰 장애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개화주의자들의 교육만능주의는 이와 결합해 현재의 최악의 교육지옥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분석이다.

 책을 읽으며 근대의 역사적 상황과 소설을 통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한 한국인 상의 변천을 느낄수 있었다. 재밌고 흥미로웠다. 다음권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다소 작위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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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2-01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이 개화기에 서양책을 번역하면서 번역하기 가장 어려웠던 단어 중 하나가 individual 이라고 하더라구요. ㅎㅎ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동체 중시의 동양에게 개인주의 개념은 전혀 없었을 것 같습니다. ^^

닷슈 2021-02-01 22:42   좋아요 0 | URL
전체를 강조하는 동양에서 개인은 지금도 사실 어색하고 비판 받는 개념이죠. 이 책 다음작은 한국인의 발견에서는 아무래도 개인에 대한 부분이 자본주의 및 민족주의와 관련해서 나올 법한데 아직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교육정책 스포트라이트 vol. 1 - 미래형 교육전문가를 위한 교육 이슈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팀 지음 / 테크빌교육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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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교사와 장학사, 연구원등 여러명이 모여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엮어낸 책이다. 경력도 다양해서 3년차부터 수십년차까지 폭이 넓었다. 교육의 3주체를 말하면 보통 교사와 학생, 학부모다. 그런데 그동안 교육정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교수진과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현장감이 없고, 정권의 입맛에 휘둘리며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정책을 양산했다.

 그래서 교육의 실패 그 첫번째 책임은 이들에게 정책을 맡긴 정부에 있다. 두번째 책임은 교사다. 잘못된 정책임을 알면서도 수수방관해왔다. 사실 교사집단엔 오랜기간 정책을 수용하고 시행하며 상명하복하는 자세만이 요구되어왔으며 이를 수동적을 수용해왔다. 마지막은 학부모다. 우리 학부모는 학교교육에서 경쟁을 필요악으로 여기며, 과정보다는 항상 결과를 중시하고, 학교교육에서 공동체적 삶보다는 내 아이의 성장만을 중시해왔다. 이런 사고속에 올바른 교육시스템도 왜곡시키고, 좋은 교육정책도 반대하는 행위를 해왔다. 전면적인 의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책에 나온 교육정책중 우선 독서교육에 눈이 갔다. 현행 독서교육은 독서를 학력향상에 이용하고 지나치게 많은 전시성 행사를 진행하고, 너무 많은 도서목록을 제시해 학생들로 하여금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대부분의 독서교육이 독후활동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그 독후활동도 토론이나 논술등의 형태로 주로 주지활동형태에 국한된다.

 때문에 독서교육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학력향상보다는 독서자체를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독서는 호기심을 해결하고, 사고력을 신장시키며 높은 정서적 만족감과 지적 만족감을 제공한다. 학력의 도구로 독서교육을 진행하면 대부분의 인구가 그런것처럼 학교졸업과 동시에 독서도 끊기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동아리형태의 활성화도 추천된다. 독서에 보다 관심을 갖는 학생들을 모아 수업외 동아리로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다. 다음은 독서 전 활동과 독서중 활동의 강화다. 독서 전 활동은 책을 읽기전 도서를 선정하는 과정으로 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살피는 과정이다. 독서중 활동은 더욱 깊은 활동으로 윤독이나 통독으로 독서과정을 함께하여 서로 모르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게 된다.

 다음으로 관심간 정책이슈는 자유학기제다. 자유학기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진로탐색과 다양한 교육활동 및 자기성찰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만든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좋은 정책 중 드물게 짧은 시간내에 높은 지지를 받으며 안착한 느낌이다. 물론 내실이 있진 않다.

 자유학기는 다양한 활동으로 학생을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고, 자유학기중 국가수준의 성취기준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교사로하여금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릴수 있게 하였다. 또한 교육활동을 채워넣기 위해 교사들간의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활성하하였고, 이로 인해 학교간 교육과정도 다양화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활동을 보장할순 없기에 학생선택권 보장엔 여전히 한계가 있고, 도입된지 얼마되지 않아 운영프로그램의 전문성 문제가 있다. 그리고 자유학기에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운영되던 교육과정이 이후엔 그전에 고리타분한 교육과정으로 돌아가 연계성 문제가 발생하며, 아직 경쟁적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자유학기중 학생들의 학력을 염려하는 문제가 있다.

 마지막은 학습생태계다. 20세기는 대량생산체제로 학교도 이에 걸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식주입위주의 표준화 교육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르다.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지역과 학교, 학급, 개인의 분절성을 극복하고 학습을 둘러싼 학교와 지역사회의 작용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을 학습공간으로 여기는것이 학습생태계다. 현재 각 지역에서 운용하는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공동체, 꿈의 학교, 꿈의 대학이 그 예다. 즉, 보육과 교육, 복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학습생태계는 공공성과 지역성, 앎과 삶의 일치성, 공동체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은 영재교육, 대안교육, 돌봄정책, 초등3교시 하교정책, 학부모교육방안, 고교진로교육, 학교생활종합기록부 등 많은 정책을 담고 있다. 초등과 중등, 교육3주체의 각 방안이 있다보니 책의 저자들 대담처럼 많은 부분을 넘나들수 있다. 교육정책에 관한 관심은 항상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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