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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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열 번의 계절'을 거치며 글을 써 책을 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요즘 같은 (물신주의) 세상에, 불모지 한국에서 천문학으로 학위를 하며,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며, 학위 후에는 계약직 맞벌이 엄마로 생활하며 연구하는 젊은 천문학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글은 매우 솔직하게, 천문학과 학부생 때 일화부터 행성학자로서 타이탄과 달에 대해 연구하며 겪었던 일과 느꼈던 생각을 잘 풀어낸다. 이과생이 이런 글솜씨 갖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학창시절 백일장에 나갔다면 수상을 여러 번 했을 것 같다. 김상욱 교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탄이 나오는 글솜씨임에는 틀림없다.


흥미로운 것이, 천문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나마 언급되는 것은 그림과 사진이 대부분인 과학잡지 <뉴턴>인데, 이마저도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얘기한다. 재미있게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아직 다 읽지 못했다고 고백하는데, 이것 참, 세대차를 느낀다고 해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여러모로 재미와 감탄을 자아낸다. 예컨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글에서는, 보이저 탐사선이 태양계를 떠나며 찍은 지구 사진 얘기와 엮어 자신과 아이의 어른으로의 성장에 대한 감상을 풀어낸다.


지구를 떠난 탐사선처럼, 내가 나의 삶을 향해 가열차게 나아갈수록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든다. 그렇게 점차 멀어져만 가는 것이다. (154 페이지)

보이저는...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 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156 페이지)


한 구절만 더 인용한다.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259페이지)


여러가지로 재능 있는 젊은 연구자의 앞길에 밝은 미래가 함께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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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에서 연주시차에 대한 고등학교 시절의 일화를 언급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아 기록해 놓는다. 선생님이 칠판에 점 두 개를 가깝게 찍어 놓고, 맨 뒤에 앉은 학생에게 몇 개냐고 물었더니 '한 개'라는 대답을 얻었고, 맨 앞에 앉은 학생에게는 '두 개'라는 답을 얻었다는 것이다(10 페이지). 그러고는 연주시차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이 일화가 왜 연주시차의 예가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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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r (Paperback)
John Edward Williams / New York Review of 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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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환경, 우정, 결혼, 사랑, 자녀, 그리고 학문과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스토너의 소망이었던 선생이라는 일과 대학의 기능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다시 읽으면 다른 부분에 눈길이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 읽으며 가장 감동 받았던 부분은 역시 핀치와의 우정과 드리스콜과의 사랑이었다. 그는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열심히 산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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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리즈
김사업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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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이란 제목이 좀 잘못 붙여진 느낌이 든다. 이 책은 불교 신도들에게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물론 불교 교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되지만, 지속적으로 나오는 불교 용어들이 설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 와 닿을 때가 있다. 


불교는 이 세상이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이 받아들이는 만큼만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철학적으로 매우 매력적이다. 흥미로운 인식론과 심리학 이론이기도 하다. 물론 종교이기도 하다. '말나식末那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용어가 기억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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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루 욘더님
추석 연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ʕ ̳• · • ̳ʔ
/ づ🌖 =͟͟͞͞🌖
해피 추석~

blueyonder 2021-09-20 10:11   좋아요 1 | URL
scott님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시기 바래요~ 감사합니다! ^^
 
The Conquering Tide: War in the Pacific Islands, 1942-1944 (Hardcover)
Ian W. Toll / W W Norton & Co Inc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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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8월 미군의 과달카날 공격부터 1944년 6월~7월 마리아나 제도(사이판, 티니안, 괌) 점령까지를 다룬다. 1943년으로 들어가며 미국의 군수 시스템이 작동, 압도적 물량으로 일본군을 밀어부치게 되지만, 결코 일본군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고 미군으로서도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수세에 몰린 일본 해군이 했던 생각(함대 결전)과, 절대방어선이라는 사이판이 결국 함락되며 이제 협상을 통한 평화를 희망(망상)하기 시작한 일본 내부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몰고 오는 현대전에서, 당연하겠지만,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특히, 이념이 전쟁에 개입하면, 끝내야 할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의미 없는 희생만 늘어감을 일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하늘이 내린 민족'이라고 믿으며 자신들의 전쟁을 '성전'이라고 불렀다. 패배가 명확해진 전투에서 '텐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돌진하여 몰살 당했다. 이들은 이러한 죽음을 '옥쇄玉碎'라고 미화하여 불렀다. '옥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름답게' 죽었다는 뜻이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음을 바친 히로히토는 전후 책임을 면제 받으며 천황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면죄부가 도덕적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히로히토는 사이판이 가망 없다는 보고를 받고도 어떻게든 지키라고 군부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전범으로 처단당한 총리대신 도조가 직권으로 이 작전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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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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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읽다가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어서 원문을 찾아보며 십여 페이지를 봤는데, 번역이 맘에 안 든다. 일단 과거와 대과거를 구분 없이 번역해서 시점이 헷갈린다. 책의 제일 앞에 나오는 내용이 아이젠하워와 드골의 만남을 기술하며 전날 있었던 드골의 파리 행진 때 일을 언급하는 것인데, 시점이 섞여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 하지만 파리 탈환 작전 내내 게로의 지시를 한 귀로 흘렸던 르클레르는 당일 파리 북쪽 생드니 인근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휘하 부대 일부를 행사에 참가시켰다.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을 모두 가져가버렸기 때문에 파리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14 페이지)


위를 얼핏 보면 행사[드골의 파리 행진]에 르클레르의 부대가 참석했고, 파리의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 그냥 연결되어 보인다. 행사에 사람이 별로 없었나? 헷갈리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 Leclerc had ignored Gerow throughout the liberation of the capital, but that morning he had sent part of his division north out of the city against German positions around Saint-Denis.

  The streets of Paris were empty because the retreating Germans had seized almost every vehicle that could move. 


원문은 행진 때 일과 아이젠하워의 다음 날 파리 방문을 대과거와 과거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거리가 텅 빈 것은 행진 다음 날인 것이다. 모든 것을 구별 없이 번역하면 원문에서 중간 중간 섞어 나오는 대과거 구절들이 완전히 혼동된다. 우리 말에는 대과거와 과거의 구분이 없지만, 불명확할 경우 시점을 명시하는 말을 넣어서라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르클레르가 한 일에 대한 번역("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휘하 부대 일부를 행사에 참가시켰다")도 오역의 혐의가 있다.


계속하여, 같은 문단에 (미군이)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야"라는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데, 아니 해방군인 미군에게 왜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쁘다고 했냐는 의문이 든다. 원문은 "it would not be long before the Parisians started muttering 'Pire que les boches' -- 'worse than the Boches'"이다.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기보다는 '독일 놈들 보다 더 나쁘다'가 맞을 것이다. 파리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문단에 "'빛의 도시'라고 불리던 파리가 이제는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촛불 정도로 쇠락했다."는 문장이 있다. 원문은 "the so-called 'City of Light' was reduced to candles bought on the black market."이다. 이 말은 '빛의 도시'라고 일컬어졌던 파리가 암시장에서 산 초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는 의미이다. 전력 사정이 안 좋기 때문이다. 앞에 전력 사정이 안 좋아 전차 운행이 불안정하다는 문장 다음에 오는 것이라서 실제적 의미인데 상징적 의미로 바꿔 버렸다.


23페이지에서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지칭하며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정치군인에 가까운"이라고 번역한다. 우리 말의 '정치군인'은 정치에 개입하는 군인이다. 완전한 오역이라고 본다. 원문은 'a military statesman rather than a warlord'이다. '최고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는 군사 정치가'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이런 식의 번역이라 읽다가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잘 안 읽힌다. 나만의 문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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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제가 왜 읽다 포기 해 버렸는지 욘더님 분석 읽고 알게 되었네요
전문가가 감수 해도 이런 오류를,,,,

욘더님 오늘 날씨 청명 화창!!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

blueyonder 2021-09-03 20:06   좋아요 1 | URL
네 오늘 정말 날씨가 청명 화창하더군요. 파란 하늘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scott님도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

케로로 2022-05-09 01:40   좋아요 0 | URL
이 책 감수한 양반이 감수한 또다른 책 <미드웨이> 보셨나요? 보시면 장난 아닙니다... 쩝.

blueyonder 2022-05-31 11:36   좋아요 0 | URL
<미드웨이> 조금 살펴봤습니다. 감수란 것도 이름만 걸지 말고 실제 내용을 봐주면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