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성의 고리라는 SF적인 제목과 어느 소설가의 추천사 때문에 읽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10년이 지난 이제야 다 읽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해체에 좀 더 가까워졌고, 그래서 해체와 몰락의 이야기인 이 글을 좀 더 읽을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독일인인 화자는 영국 동부를 도보여행 하며, 만나는 장소에 얽힌 현실인지 소설인지 모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죽은 이들, 그리고 퇴락하는 것들도시, 건물,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온다. 2차 세계대전부터 서태후, 양잠까지... 영국으로 이민 와서 사는 한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 느낌이 든다.

 

토성의 고리라는 문구는 본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제일 앞의 인용구에서만 언급된다. 토성의 고리가 토성의 인력에 의해 부서진 위성의 잔해라는 구절인데, 이 글의 주제인 부서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무엇이든 결국은 해체된다. 인간은 물론이고, 여러 세대에 걸친 가문도, 문명도, 그리고 심지어는 자연조차도... ‘불멸의 원자라는 표현이 있는데, 원자조차도 영원히 불멸은 아닐 것이다. 영원은... 상상할 수 없다. 수학은 논리로 무한을 다루지만.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일, 그리고 때때로 제발트처럼 애도하는 일. 또는 시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일. ‘생명이란 위대한 것이다. 사라짐으로, 또 다시 태어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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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1-05-10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을 읽었어요. 카프카 문학에 대해 말해보라면 한 마디도 못할 제가 카프카 좋아하는 것처럼 제발트의 그 단편소설집에 대해 말해보라면 한 마디도 못하겠지만 그 책이 너무 좋았어요. 토성의 고리도 곧 읽을 예정이어서 반가운 리뷰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blueyonder 2021-05-10 18: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사실 일반적 소설은 아니어서 술술 읽히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글이 뭔가 아련합니다.
 
시사IN 제712호 : 2021.05.11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모병제, 백신 권고 등 시의적절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를 싣는 주간지의 장점을 다시 한 번 발휘한다. 굽시니스트의 만화 등 즐겨 읽는 연재들이 풍성함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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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1-05-15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호의 굽시니스트 만화: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537
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의 아시아 태평양 순방에 맞추어, 20세기 초 미국 ‘대백색함대‘ 얘기가 나온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죽지 않는 사람들>은 불사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로마 시대의 군단장이었던 주인공 마르코 플리미니오 루포는 불사의 강 하구에 있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 나선다. 갖은 고초 끝에 드디어 그는 강물을 마시고 불사의 인간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이집트의 불락 교외에서 <아라비안나이트>의 어떤 이야기를 필사했고, 사마르칸트 감옥 마당에서 수없이 장기를 두었으며, 보헤미아에서 점성학을 연구하며 수많은 생을 살게 된다(<알렙>, 민음사, 1996, 13~35쪽).

  불사의 삶을 찾고자 한 것은 진시황만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미라가 되어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서 사후의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것도 잘 알다시피 불사와 영생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영원성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적 꿈으로부터 레닌의 방부 처리된 시신까지 모두 이 불사의 삶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다. 영생이야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향하여 생명의 길이를 늘리는 것 또한 이런 욕망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면, 수명을 연장하고 노화를 방지하려는 현대 과학자들의 집요한 노력 역시 '영생'이라는 '종교적' 단어와 공명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보르헤스가 말한 루포의 불사의 삶이란, 생각해보면 '윤회'라는 관념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불락에서 <아라비안나이트>를 필사하다 사마르칸트에 가고, 다시 보헤미아에 가서 점성학을 연구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천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이어가는 것은 그 상이한 삶 사이에 '죽음'이라는 사건을 끼워 넣으면, 우리가 익히 아는 윤회하는 삶이 된다... 사실 윤회 안에서 죽음은 결코 삶의 중단을 뜻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변환의 문턱일 뿐이다... 보르헤스는 말한다. '죽음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사실 불사의 존재'라고. 컴컴한 어둠 앞에서 느끼는 공포 때문에, '죽음'이란 두려운 관념 때문에 우리는 죽는 것이라고. (201~202 페이지)

... 윤회는 근본적인 죽음의 불가능성에 대한 교설이다. 거기 불사에 대한 욕망과 반대로 죽음의 불가능성 앞에서 출현하는 절망, 즉 죽어도 죽지 못하고, 죽고자 해도 죽을 수 없는 기이한 무능력에 대한 사유가 깃들어 있다. (203 페이지)

  '피안'이라는 말이 야기할 오해를 넘어서기 위해 피안 없는 차안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을 것을 가르치고, 윤회의 중단이란 말이 야기할 오해를 깨기 위해 윤회 없는 해탈이 아니라 윤회하는 삶 속에서 해탈할 것을 가르쳤던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전환은 분명 이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깨달음이란 번뇌 안에서 얻는 것이며 번뇌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부처란 중생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중생 자신임을 설하는 것도 모두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이란 물질이 없는 세계(무색계)에서 얻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세계(색계) 그 자체 안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는 개념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윤회하는 삶은 떠나야 할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장으로 긍정된다. 그러나 그것은 업이란 이름으로 주어진 것을 참고 견디라는 인고의 가르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가라는 가르침으로써 긍정된다. (212~2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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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유물론자, 탈레스

  탈레스의 위대함은 '최초의 철학자'였다는 점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물론 그는 최초의 철학자였지만, 당시만 해도 과학과 철학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그는 우선 무언가를 덧붙이거나 그 너머를 탐구하기에는,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자연, 즉 '퓌시스(physis)'에 집착하는 '자연철학자'였다. 그는 늘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했다. 요컨대 그는 유물론자이며 물질주의자였다. 어쩌면 그리스 사상가들은 물질과 정신을 미처 구분하거나 분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탈레스와 그를 따르는 학파에게 물질은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에 이들은 이것을 생명과 혼동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모든 물질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그러므로 이들 학자들을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유물론자'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들에게는 물질과 비물질의 차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념론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을 유물론자라고 분류했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은 원시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다. 훗날 그리스인들은 이들 이오니아 출신 학자들을 가리켜 물활론자, 즉 물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각하는 자들, 혹은 이 세계에서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의 모습으로 왔고,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에 내재적이며,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의 반응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2권, 127~128 페이지)

고대 유물론자들의 사라진 저서들

이오니아 사상과 탈레스 학파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물질적 요소에 기반을 둔 역동적인 세계관을 지향했다.

  이오니아인들의 유물론은 자연에 대해 합당하지만 매우 순진한 직관, 즉, 자연을 영원하고 무한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물질의 덩어리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직관(입증된 과학 지식이 축적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직관만이 가능했다)은 기원전 5세기에 데모크리토스에게 계승되면서 더욱 섬세하고 명확해졌다.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은 그와 탈레스를 갈라놓는 한 세기라는 시간 속에서 파르메니데스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도전을 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파르메니데스 학파는 모든 것은 안정, 곧 움직임의 부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헤라클레토스는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반대 의견을 반박함으로써, 또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뛰어넘음으로써 데모크리토스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갔으며 나름대로 자연의 체계를 정립해갔다. (2권, 134~135 페이지)


플라톤 관념론의 반대편에 선 유물론자

플라톤은 물질세계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감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계를 비존재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위에, 자신 너머에 이상적 형태로 이루어진 세계를 창조했으며, 이 세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접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우선 자신의 눈으로 보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원자론을 제시한 대선배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물리학을 완성했다. 이 세상에는 원자들과 이들의 움직임, 그리고 공백이 있을 뿐이다. 모든 현실, 즉 우리가 보는 물체와 존재들은 물론, 작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물체와 존재들을 모두 포함하는 현실의 모든 종은 예외 없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영혼은 존재한다. 플라톤식 신화에서 지나치게 칭송을 받은 영혼, 시인이면서 철학자인 플라톤에 의해 허망한 불멸을 약속받거나, 죄를 저질러 악마의 불구덩이로 떨어지거나, 어쨌거나 영혼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며, 자신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타고난 해체의 운명을 잘 받아들인다면 기쁨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3권, 570~57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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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들리는 그의 <The Dream Universe>에서 다양한 책을 언급하며, 그가 말하는 과학, 물리학의 의의에 대하여 탐구한다. 다음은 그 (일부) 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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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ming the Universe: A Quantum Computer Scientist Takes on the Cosmos (Paperback)
Lloyd, Seth / Vintage Books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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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음, 이무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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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Roads to Quantum Gravity (Paperback, 3, Revised)
Lee Smolin / Basic Books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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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리 스몰린이 들려주는 물리학 혁명의 최전선
리 스몰린 지음, 김낙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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