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721호 : 2021.07.1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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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이런 글을 보니 매우 신선하다. 다음은 <시사인> 이종태 편집국장이 권두에 독자에게 보내는 글("편집국장의 편지")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란 것'이 크게 두 가지 용도로 활용되어왔습니다. 하나는 국가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이념입니다. 한국의 시민들 대다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국가·사회를 재조직하는 '역사적 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1987년의 시민항쟁 이후 본격화된 이 운동의 이념적 지침은 자유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걸출한 아이디어의 모음이거든요. 예컨대 삼권분립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을 행정·입법·사법으로 분리해 서로 싸우게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죠. 법치주의 역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국가권력의 침해를 통제하기 위한 아이디어입니다. 이 운동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란 것'의 또 다른 용도는 정치적 선전선동의 수단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전두환은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명분 삼았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흔히 '극우'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나서곤 했습니다. 이분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양심의 자유' '삼권분립' '법치주의' 같은 본래의 이념적 원리들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6월 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라며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자유를 뺀 민주주의'가 정말 뭔지 모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인민민주주의'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이 표방했거나 표방 중인 체제로, 공산당(노동당)이 인민 전체의 '진정한' 이익을 '알고' 대변한다는 사고방식을 주춧돌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노동당)이 법률 위에서 사실상 선거 없이 영구 집권하며 삼권분립도 법치주의도 대의제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체제를 시행 중이거나 앞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명망 높은 자유민주주의 매체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조사기관으로부터도 '완전한 민주국가'로 불릴 정도의 나라입니다. 저는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장면을 보며 '저 이야기 또 나오네' 유의 지루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페이지)


트럼프만 욕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계에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 레토릭만 남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번 주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 '100년 중공':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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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간 정도 읽고 있는데, 초반부에 그가 주 전공인 물리 얘기할 때보다 재미가 덜하다. 그의 문장은, 심하게 얘기하면, '잘난 척'이 배어 나온다. 미국은 '똑똑함'을 숭상하는 사회임을 다시 실감한다. 반면 우리는 '겸양'을 숭상하는 사회. 미국은 '재능'을 숭상하는 사회, 우리는 '평등'을 숭상하는 사회. 로벨리의 글을 읽어보니 유럽도 미국보다는 우리에 가깝다.


그의 글 한 구절. 


  "사실이나 상상을 다루든, 또는 상징이나 있는 그대로를 다루든, 이야기하는 충동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며, 정합성을 추구하고 가능성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패턴을 찾고 패턴을 발명하며 패턴을 상상한다. 이야기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것을 명확히 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배열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지속하는 과정이다. 실제든 상상이든, 친숙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인간이 관여하는 가상의 우주를 제공하여 우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행동을 정교하게 만든다. 먼 미래 언젠가, 만약 우리가 먼 세상에서 온 방문자를 드디어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의 과학적 서사는 이들도 아마 발견했을 진실을 포함할 것이어서, 이들에게 별로 제공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서사는, 피카드와 타마리안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들에게 얘기해 줄 것이다."


  Whether dealing with fact or fiction, the symbolic or the literal, the storytelling impulse is a human universal. We take in the world through our senses, and in pursuing coherence and envisioning possibility we seek patterns, we invent patterns, and we imagine patterns. With story we articulate what we find. It is an ongoing process that is central to how we arrange our lives and make sense of existence. Stories of characters, real and fanciful, responding to situations familiar and extraordinary, provide a virtual universe of human engagement that infuses our responses and refines our actions. Sometime in the far future, if we finally host to visitors from a distant world, our scientific narratives will contain truths they will have likely discovered too, and so will have little to offer. Our human narratives, as with Picard and the Tamarians, will tell them who we are. (p. 181)


피카드는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트렉에 나오는 함장의 이름이고 타마리안 사람들은 피카드 함장이 맞닥뜨리게 되는 외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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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문득 생각나 찾아보니 로벨리의 생각이 바로 여기에...


  우리는 지금 '관계'의 담론을 인식의 문제, 사람의 문제로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관계'는 '세계'의 본질입니다. '세계는 관계입니다.' 세계는 불변의 객관적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양자물리학이 입증하고 있는 세계상입니다. 세계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은 뉴턴 시대의 세계관입니다. 입자와 같은 불변의 궁극적 물질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입자이면서 파동이기도 하고 파동이면서 꿈틀대는 에너지의 끈(string)이기도 합니다... 불변의 존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존재는 확률이고 가능성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세계관입니다... 대상은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주체와 대상 역시 관계를 통하여 통일됩니다. 관계는 존재의 기본 형식입니다. 불변의 독립적인 물질성 자체가 그 존립 근거를 잃고 있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확률과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식이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역시 관계입니다. (281~2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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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Crucible: War at Sea in the Pacific, 1941-1942 (Hardcover)
Ian W. Toll / W W Norton & Co Inc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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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기습에서 미드웨이 해전까지 다룬다. 다양한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어떨 때는 전쟁사 책을 읽은 후 복잡한 전황과 숫자만 읽었다는 느낌만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전쟁사 통사에서는 잘 접하지 못했던 참전자의 생생한 증언을 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클라이맥스인 미드웨이 해전의 기술은 다른 미드웨이 해전만을 다룬 책만큼 자세하지 않아 살짝 아쉽다. 하지만 다른 책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해전 이후의 상황도 다루고 있어 좋다. 책에 전혀 오류가 없지는 않은데(예: 시간 표기 잘못), 혹여 있을 사소한 단점을 장점이 100배 상쇄한다.


미드웨이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는 인명과 물량의 긴 소모전이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정신이 미국의 물량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또는 희망했다. 잔인한 소모전이 계속되면 나약한 미국민은 전의를 상실하리라 생각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 희망은 부질없었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가 개전 전에 예측했듯이, 일본의 돌격은 6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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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일인칭의 관점이냐, 삼인칭의 관점이냐, 즉 주관적 서술이냐 객관적 서술이냐고 했을 때, 당연히 객관적 서술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객관적 서술이 불가능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로벨리는 관계적 해석을 통해 객관성이 단지 환상이며, 세상의 본질은 '상호작용'임을 강조한다. 물리학도 본질적으로 주관적 서술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파동함수의 붕괴를 일으키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문제는 (적어도 미시 세계에서) 객관적 실재라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세상은 실체가 없다는 차원에서 '공'이 본질인가? 


사실 의식은 양자역학과는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 Typhoons and volcanoes, as far as we know, don't have subjective worlds of inner experience. We aren't missing first-person accounts. But for anything conscious, that is precisely what our objective third-party description lacks. (Greene, p. 126)

  Thomas Nagel, in a celebrated article, asked the question, "What is it like to be a bat?" He argued that this question is meaningful but escapes natural science. The mistake, here, is to assume that physics is the description of things in the third person. On the contrary, the relational perspective shows that physics is always a first-person description of reality, from one perspective. (Rovelli, p. 183)

... He [David Chalmers] argued that not only are we lacking a bridge from mindless particles to mindful experience, if we try to build one using a reductionist blueprint--making use of the particles and laws that constitute the fundamental basis of science as we know it--we will fail. (Greene, 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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