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설계도를 훔친 남자
스튜어트 클라크 지음, 김성훈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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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서 근대 과학으로 넘어가는 세계관의 전환기를 그린 역사 소설이다.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주인공인데, 등장인물 중 조연급 추기경 1명만 창조된 인물이고 나머지는 모두 실존 인물이며, 역사 기록을 참고하여 최대한 사실을 드러내려고 애썼다고 한다.


과학철학입문서인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에서 다뤘던 17세기 과학혁명의 시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책 표지에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을 언급하며 띄워보려 했던 시도가 보이는데, 댄 브라운의 책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과학적으로 정확한 내용을 다룬다. 가톨릭에서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억압하는 부분은 차라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대화의 번역이 살짝 아쉬워 별 하나(사실은 0.5개?)를 뺀다. 소설이니 여러 대화가 나오는데, 존대말, 반말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어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주요 배경 중 하나가 체코의 프라하인데, 사실 티코 브라헤나 케플러의 주요 활동지 중 하나가 이곳인지 잘 몰랐다. 프라하에 가면 브라헤나 케플러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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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은 그가 받았던 다음의 질문을 인용하며, 개인과 인류, 더 나아가 정신(의식)의 존재 의의에 대해 숙고한다:


"다음 중 어떤 질문이 당신을 더 흔들어 놓습니까? 당신은 앞으로 1년 밖에 못 삽니다. 1년 후 지구는 멸망합니다."


그린은 첫 번째 질문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지만, 두 번째 질문은 삶의 무상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1년 후 지구의 멸망과 궁극의 시간 후 우주에는 아무런 정신도 남지 않는다는 것 사이에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다고 말하며, 아름다운 수학 정리나 물리 법칙을 알아줄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우주, 그리고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의 영원함에 대한 갈망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플라톤주의자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머리말에서 내가 느낀 것과 다르다), 그는 여전히 영원함을 갈망한다. 그의--인류의-- 업적을 누군가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린의 말이다.


"나 자신이 죽을 날을 알았을 때 보일 반응과 [지구가 멸망할 날을 알았을 때 보일 반응의] 대비는 놀랍다. 하나는 삶의 가치를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것의 가치를 없애버린다. 이 깨달음 이후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다. 수학과 물리학의 능력이 시간을 초월한다는 어릴 때의 깨달음을 오래 동안 지녀오며, 나는 미래의 존재 의의를 이미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에 대한 내 이미지는 추상적이었다. 내 미래는 방정식과 정리와 법칙의 나라이고 바위와 나무와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플라톤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학이 시간 뿐만 아니라 물질 세계의 속박을 초월한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했었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질문은 이러한 내 생각을 수정해서, 방정식과 정리와 법칙이 근원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어떠한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줬다. 결국 이것들은 칠판과 출판된 저널과 교과서에 위에 그려진 선과 꼬부랑 글씨의 모음일 뿐이다. 이것들의 가치는 이것들이 머무는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I found the contrast with how I would react to learning the date of my own demise surprising. While one realization seemed to intensify awareness of life's value, the other seemed to drain it away. In the years since, this realization has helped shaped my thinking about the future. I had long since had my youthful epiphany regarding the capacity of mathematics and physics to transcend time; I was already convinced of the existential significance of the future. But my image of that future was abstract. It was a land of equations and theorems and laws, not a place populated with rocks and trees and people. I am not a Platonist but, still, I implicitly envisioned mathematics and physics transcending not only time, but also the usual trappings of material reality. The doomsday scenario refined my thinking, making it patently evident that our equations and theorems and laws, even if they tap into fundamental truths, have no intrinsic value. They are, after all, a collection of lines and squiggles drawn on blackboards and printed journals and textbooks. Their value derives from the minds they inhabit. (p. 319)


위의 글은 한 이론 물리학자의 내밀한 고백이다. 모든 이들이 그린의 상념--무상함--을 공유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죽는 것, 인류가 멸망하는 것, 마지막 남은 의식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무상함만을 강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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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ving Universe (Paperback) -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원서
브라이언 그린 / Vintage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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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초끈 이론가인 저자에게 편견이 있었다. 그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물리를 '확신에 차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은 지금 그런 인상이 많이 사라졌다. 어찌 보면 영원을 동경하던 젊은이이기에는 그도 나이를 먹었는지 모른다. 그는 상당히 솔직하게, 가설은 가설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빅뱅 직후의 인플레이션 이론과 함께 그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순환 우주론도 논의하는 점에서 솔직히 놀랐다.


책 자체는 거의 빅 히스토리이다. 우주의 시작인 빅뱅부터 시작해서 생명, 정신, 언어, 종교를 거쳐 우주에 거의 아무런 구조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 시간의 끝[10^(10^68) 년 정도]까지 다룬다[*]. 책에 초끈 이론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이미 그의 이전 책에서 충분히 논의했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물리학자인 그는 역시 물리 얘기를 할 때 가장 빛난다. 중간에 정신, 언어, 종교 등을 얘기할 때는, 솔직히, 지루했다. 나의 관심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를 소화해서 얘기하는 그의 설명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열역학 제2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어떻게 태양이나 생명이 그 존재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엔트로피의 2단계entropic two-step"라고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불렀는데, 태양이나 생명을 증기기관을 통해 얻은 개념으로 기술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시간의 끝에 대해 설명하는 후반부로 가면 다시 물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며 잘 읽히는데, '생명도 어떠한 구조도 남지 않는 우주'란 불가피한 결론에 그는 꽤 허무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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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0^68) 년은 1 다음에 0이 10^68개 나오는 숫자이다.


So we must leave to future research, theoretical and observational, a more definitive answer for how a small region of space became uniformly filled with an inflaton field, thus setting off a burst of spatial expansion. For now, we will simply assume that one way or another, the early universe transitioned into this low-entropy, highly ordered configuration, sparking the bang and allowing us to declare that the rest is history. (p. 55)

Our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support the view that when a quantum system is prodded--whether the prodder is a conscious being or a mindless probe--the system snaps out of the probabilistic quantum haze and assumes a definite reality. Interactions--not consciousness--coax the emergence of a definite reality. Of course, to verify this, or anything else for that matter, I need to bring my consciousness to bear; I can't be aware of a result without my conscious mind participating in the process. So there is no foolproof argument that consciousness does not play a special quantum role. (p. 145)

Much like Newton, Schrödinger leaves no room for free will. (p. 149)

  In recent years, cyclic cosmology has emerged as a main competitor to the inflationary theory. Although both can explain cosmological observations, including the all-important  temperature variations in the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the inflationary theory continues to dominate cosmological research. In part this reflects the uphill battle to interest physicists in an alternative to a theory that over the course of four decades has propelled cosmology into a mature and precise science. That ours is called the golden age of cosmology is largely attributable to the inflationary theory. Of course, truth in science is not determined by polls or popularity. It is determined by experiments, observations, and evidence. And the inflationary and cyclic theories do make one significantly different observational prediction, which may one day figure prominently in adjudicating between them: The burst of inflationary expansion at the big bang would likely have so vigorously disturbed the fabric of space that the gravitational waves produced might still be detectable. The more gentle expansion of the cyclic model results in gravitational waves too mild to be observed. In the not-too-distant future, observations may thus have the capacity to tip the balance between the two cosmological approaches. (p.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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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ybk 2023-09-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원서로보는 님 영어실력이 더 대단한것 같아요 ㅎㅎ

blueyonder 2023-09-08 21:32   좋아요 0 | URL
^^;;
 















  인도에서 공사상을 선양해간 중관파의 시조 용수는 그의 저작 <인연심론석>에서 윤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윤회란 이전 생의 오온(정신과 육체)을 원인으로 하여 또 다른 오온이라는 결과가 생한다고 하는 태어남의 반복을 뜻하지만,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옮겨가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인과관계에 의한 새로운 오온의 이어짐은 있으나, 아뜨만과 같이 다음 생으로 변함없이 영속하는 연속체는 없다는 말이다. (200 페이지)

  부파(=소승) 불교가 이상으로 하는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은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끊은 결과,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소멸하여 이 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대승불교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이상으로 한다. 그것은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세계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러한 열반이다. 단적으로 말해, 윤회와 열반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열반이다. (206~2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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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것에 자성이 있다면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없이 일체는 항상 그대로 있게 된다. 따라서 자연의 변화라든가 눈앞에 펼쳐지는 생멸 현상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자성을 인정하게 되면 불교의 기본 교리인 무상無常도 부정되며, 중생은 아무리 수행을 해도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과오도 범한다. 자성인 고苦와 번뇌를 무슨 수로 없앨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용수는 『중론』 제24장 제14게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이 타당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타당하다. 공이 타당하지 않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타당하지 않다." (180~181 페이지)


자연의 변화는 자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인데, 논리적으로 볼 때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


  하지만 이 색즉시공의 길 끝에서 공즉시색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한순간에 저절로 이루어진다. 색즉시공은 대사일번大死一番, 즉 한번 내가 크게 죽는 길이다. 본인이 자진해서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철저히 놓아버리는 것이며, 백지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철저하고 완전하게 죽는 것에 의해 도리어 모든 것이 참된 진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을 선에서는 절후소생絶後蘇生이라고 한다. 공즉시생은 절후소생에 해당한다. 

  중생인 우리는 색즉시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공즉시색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과거의 내가 죽지 않고는 만물은 진실한 모습으로 되살아나지 못한다. (183 페이지)


종교는 모두 '내'가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도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야(born again) 한다고 말한다. 배경이 되는 철학은 다르지만, 겉모습의 결론은 같다. 하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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