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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외국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어학전문 서적이 아니라도 책 제목에 언어가 들어가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번 책도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페르시아어'
이란의 언어이기도 한 페르시아어는 그 언어의 이름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면 문화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 생각하는데
이런 소설을 읽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한 번도 공부해 본 적도 없는 언어이지만
이 책 한 권으로 페르시아어에 대한 공부 의지를 불태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궁금하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차례
첫 장의 이야기부터 충격적이었다.
이 이야기는 절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저자 마리암 마지디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란 혁명을 겪으며 저자의 부모님은 위험이 존재하고,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더 이상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고 판단해 프랑스로 망명을 결정한다.
사실, 프랑스 망명은 아버지의 결정이었다.
어머니는 시위에 참가하느라 잠시 중단했던 의대를 다시 다니고 싶어 했으나
그 시대는 그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
결국 딸인 마리암을 데리고 프랑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먼저 프랑스로 갔고, 약 7개월 후 어머니와 마리암이 프랑스로 갔다.
그러나 프랑스로 떠나기 위해 간 공항에서 마리암은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일은 망명 후에도 그녀를 괴롭히게 된다.
성인이 되어 다시 그녀가 태어난 나라로 돌아오는 그날, 그 순간에도.
p.34~35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멋진 이야기들을.
수집한 이야기들을 가방에 담아 다니다가 적당한 순간이 오면 주의 깊게 듣는 귀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드는 눈을 보고 싶었다.
모든 이의 귓가에 이야기의 씨를 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싹을 틔우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꽃이 사라진 자리를 가득 메우기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골레 마리암 꽃들을 대신하기를 원했다.
망명 후 마리암의 가족은 이란에서와는 다른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가장 어려움을 주었던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프랑스어를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일을 구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했으니 당장 구한 일자리들은 대부분은 육체노동이 필요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자신의 꿈을 되찾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탓에
시위에 참가했을 때처럼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지 못했다.
그들의 딸, 겨우 6살인 마리암 또한 그녀가 아끼던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낯선 곳에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p.164
우리의 얼굴에는 흉터가 있었다.
조국을 떠남으로써 두 동강 나버린 흉터다.
나는 그 흉터를 감쪽같이 붙여서 남들과 똑같아지고 진짜 프랑스인이 되어
내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었다.
많은 어려움과 갈등 끝에 터져버린 마리암의 프랑스어.
그녀의 부모는 감격한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딸이 '진짜 프랑스인'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프랑스에서의 삶이 익숙해졌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들의 아이는 프랑스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아버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딸이 그들의 뿌리를 잊을까 걱정했다.
뿌리를 위해 페르시아어를 공부하라고 했다.
아이는 다른 프랑스인이 있는 자리에서 어설픈 프랑스어를 하는 부모가 부끄러웠다.
그녀는 뿌리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지 않았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244페이지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마리암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무거웠다.
마리암의 삶에는 네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6살이 되기 전 이란에서의 삶.
프랑스에서 망명자로 살았던 삶.
성인이 되어 찾아간 이란에서의 생활.
이란을 방문한 후 다시 돌아온 프랑스에서의 삶.
이러한 변화들을 겪으며 마리암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많은 곳에서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정체성을 찾았다기보다는 타협점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 중간에 마리암이 반팔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부모님이 지켜보며
이란에서 였다면 절대 저런 모습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들은 딸의 미래가
한 인간으로서, 또한 여성으로서도
자유롭기를 바랐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딸이 겪지 않기를 바랐다.
마리암의 어머니가 임신한 채로 시위에 참여하고, 도망 다니며 목격한 장면들은
익히 뉴스 등에서 보고 들은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었다.
p.42
할머니처럼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점은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내가 넘겨져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내가 그들 자식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유용한 물건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이었다.
p.45
나는 글을 통해 죽은 자들을 무덤에서 파낸다.
~
그리고 고통스럽고 아픈 추억과 일화와 이야기를 파낸다.
죽음과 과거의 냄새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라고 졸라대는 죽은 자들.
p.47
눈은 내리깔거나 감아야 하고, 가는 길을 보지 말고,
아무거도 확인하지 말고, 귀도 닫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야 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아무것도 자백할 수 없도록.
마리암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거나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어쩌면 마리암의 가족과 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 역시 여러 사정으로 인해 태어난 나라를 떠나왔을 것이고
처음에는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언어를 익혀야 했을 것이고
후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하게 될 것 같았다.
그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책의 후반부에
마리암이 이란에 있는 친척을 찾아가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
자신이 지켜주었던 어린 첫 손녀를 그렇게 떠나보낸 할머니가
긴 세월이 지나 다 자란 손녀를 다시 보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을 다 읽은 후
기대했던 바대로 페르시아어, 아랍어를 한번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마리암이 언급한 이란의 시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랍권 문학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