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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 유쾌발랄 사기꾼의 복권 당첨금 수령 프로젝트
마리사 스태플리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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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는 소개 줄거리가 너무 흥미로워 선택한 책이다. 무려 5천억 원이 넘는 복권에 당첨됐지만 당첨금을 수령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 여자 주인공! 이 문구만 봐도 다음 이야기와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가. 저자는 이 책을 어머니께 바친다고 했는데, 용감하고 굳건하게 사는 법을 배웠지만 사기 치는 법은 혼자 공부해야 했다고 한다. 첫 문구부터 느껴지는 위트, 뭔가 심상치 않은 작가가 쓴 수상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그 직감은 맞아 떨어졌다. <럭키>를 손에 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순식간에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엄청난 몰입도,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건들의 과거와 현재. 이 모든 조각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며 완성되어가는 순간 느끼는 감동까지. 이 소설은 재미와 감동,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럭키>는 럭키 암스트롱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럭키>는 1982년 2월, 뉴욕시의 한 수녀원 앞에서 사기꾼 수녀 '마거릿 진'과 아이의 울음 소리로 시작한다. 분홍색 담요에 싸여 떨고있는 작은 주먹, 그러나 이내 사내가 찾아온다. 아기를 안고 계단을 올라오는 그 남자는 무척 잘 생겼다.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앓아 아이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수녀원에서 아이를 찾았다고, 그리고 먹을 것과 분유를 사기 위해 '마거릿 진'의 금 목걸이를 구걸한다. 이 목걸이는 럭키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금 십자가가 되었다. 럭키가 자기 소유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물건, 엄마로부터 받았다는 십자가 목걸이.



럭키 암스트롱의 아버지 '존 암스트롱'은 사기꾼이다. 럭키 또한 사기꾼의 딸로 자라 사기꾼이 되었다. 그러나 사기꾼 수녀가 그랬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다. 아이러니하다.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이면서 안타까운 사람을 보면 돈을 주고, 유기견 베티를 사랑하고 아낀다. 항상 정착을 원하지만 떠나야 한다. 사기를 쳤고 들통나면 잡혀가니까.

럭키는 '앨레이나'라는 가명을 버리고 또 떠난다. 그리고 항상 주유소 휴게소에 들러 복권을 사던 아빠처럼 복권을 산다. 어릴 때 재미 삼아 골랐던 숫자들, 그 모든 숫자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이제 럭키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남자 '케리'와 함께 남은 돈을 챙겨 먼 섬나라로 떠나고자 한다. 멋진 바닷가에 집을 사서 개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럭키는 기억하는 모든 순간 아빠와 함께 사기를 쳤다. 심지어 정말 친구가 되고 싶은 여자아이를 만났지만 아빠때문에 그녀는 '표적'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엄마가 부자인 과부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큰 돈을 벌고 나면 럭키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항상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 가고 싶지만 반강제로 홈스쿨링(아빠의 말에 따르자면 로드 스쿨링)을 해야 한다. 차의 뒷자석에는 도서관에서 빌렸지만 돌려주지 못하는 어려운 책들이 가득하다. 또래 아이들이 읽는 책이 아니라 어려운 책을 쉽게 읽으면서도 럭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아빠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럭키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매번 말한다. 운이 바뀌면 럭키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케리'는 혼자 남은 럭키에게 사기를 치고 떠나 버렸다. 모든 돈을 챙겨, 럭키에게는 커다란 누명을 씌우고 알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아빠가 그렇게 당부했건만, 럭키는 사랑에 눈이 멀어 또는 외로움에 휩싸여 그녀 자신이 '표적'이 되고 만 것이다. 어렸을 때는 아빠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잘랐는데, 이제 그 싫은 일을 자신의 실수 때문에 스스로 해야 한다. 머리를 자르고 갈색으로 염색하고 프리랜서 기고가를 행세하며 사기를 친다.

태어나면서부터 사기에 연루되어 사기꾼 아빠의 손에 자라 사기꾼이 된 럭키. 사기꾼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복권에 당첨됐는데도 범죄자가 되어 당첨금을 찾지도 못한다. 훔친 돈 때문에 여기저기서 위협을 당하고 또 그 위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 하지만 럭키는 언제나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을 잊지 않는 마음 따뜻한 사기꾼이다. 럭키는 이 커다란 함정에서 빠져나와 복권 당첨금을 받아 꿈에 그리던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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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
이윤호 지음 / 박영스토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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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기발한 사기꾼들의 이야기


많은 분들이 영화 <나우유씨미>와 <도둑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법에 걸리기 때문에 내가 도둑질을 하지는 못하지만 기발한 방법으로 도둑질을 하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은 언제나 통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도둑'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입니다.


<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은 바로 그 사기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흥미롭기 때문에 이 책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사기'는 결코 저질러서는 안될 범죄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유사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의도도 함께 잇다고 밝혔습니다.



<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에는 여러 유명한 사기꾼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티비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나 영화에서 봤던 사기꾼들의 이야기도 종종 눈에 보입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였던 '아나스타샤'를 사칭한 여인 애나 앤더슨이라든가, 에펠탑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팔아먹은 사기꾼 '빅토르 뤼스티그', 그리고 평범한 뼛조각을 원시인류의 화석으로 뒤바꾼 '도슨과 우드워드', 립싱크로 그래미 상을 받은 '밀리 바닐리' 등입니다.


대체로 이들은 작은 거짓말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기를 치고 또 치면서 이런 책에 나올 만한 거대한 사기를 벌리게 되고 마침내 많은 사람들을 속이거나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기꾼들은 대체로 입담이 좋고 여러 나라의 말을 구사하기도 하며 외모도 매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몇몇 이들은 '괴도 루팡'을 떠올리게 할 정도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혀를 내두를만한 노력을 하기도 하고(그렇지만 결국 사기입니다) 기발한 속임수를 쓰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이제까지 어떤 사기를 어떤 방식으로 저질렀고 사람들이 왜 그들에게 속았나 알고 싶다면 <세기와 세상을 풍미한 사기꾼들>을 읽으면서 쫘악 한번 정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사기꾼들 각각의 특징과 함께 사기 방법이 나와 있고 일부는 현재에도 쓰이기 때문에 꽤 유용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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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후작 에놀라 홈즈 시리즈 1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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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라진 후작-에놀라 홈즈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1887년 영국의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시리즈를 출판한 이후 여전히 홈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책은 물론이고 베네딕트 컴퍼베치를 주인공으로 하여 전 세계인들을 홈즈 시리즈에 푹 빠지게 만든 영국 드라마 <셜록>,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뻔뻔스럽고 재치있는 연기를 보여준 영화 <셜록 홈즈> 등 갖가지 2차 창작물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스핀오프같은 버전의 다른 소설인가 싶었다. '에놀라'라는 어감을 봤을 때 여자의 이름이었고, 성이 홈즈인 것을 생각했을 때 홈즈의 누나 또는 여동생인가보다 했다. 알고 보니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낸시 스프링어라는 작가가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라는 인물을 만들어 여자 버전 홈즈의 기똥찬 추리 소설을 쓴 것이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보고 가장 반가웠던 점은 바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인물이 '소녀'라는 사실이었다. 이상하게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 여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몇몇 소설이 떠오르긴 하지만 남자가 주도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유명 추리물 시리즈들을 생각하면 그 비율이 너무 적다. 아마 20세기까지 제한된 여성의 사회적 위치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셜록 홈즈>를 읽어 보거나 영드 <셜록> 등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겠지만 셜록은 냉정한 논리주의자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다. 오죽하면 영드에서 셜록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스스로를 두고 '나는 소시오패스야'라고 말할까. 그의 형으로 나오는 마이크로프트의 성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에놀라 홈즈'는 그들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 물론 세세한 단서들을 캐치하고 추리력이 뛰어나며, 자기 주도적인 점은 그녀의 오빠들과 유사하다. 에놀라 홈즈는 셜록이나 마이크로프트와 전혀 다른 피가 흐르는 것처럼 사려 깊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캐치해 내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탐정은 냉철한 논리주의자여야 한다는 관념과 배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여성은 피해자나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다른 추리 소설과도 차별화된다. 고작 14살의 나이에 그녀는 꽉 막힌 꼰대같은 오빠들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 독립하려고 하는 캐릭터이다.


<에놀라 홈즈>시리즈는 총 6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사라진 후작>이다. 재미있게도 <에놀라 홈즈>는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된다. '에놀라 Enola'라는 그녀의 이름부터 소개되는데 거꾸로 읽으면 바로 alone의 뜻이다. 철저히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오빠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키려면 alone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그리고 에놀라의 어머니는 항상 어린 에놀라에게 '넌 혼자서도 매우 잘해나갈 거야'라고 말했다. 어느 날 다른 짐은 거의 챙기지도 않고 남자들의 복장을 하고 유령처럼 사라져버린 에놀라의 어머니! 결국 에놀라는 두 오빠들에게 전보를 부치고 그들은 허겁지겁 에놀라의 집에 방문한다. 홈즈는 시시 때때로 에놀라의 지능을 무시하고, 마이크로프트는 그녀에게 숨쉬기조차 힘든 코르셋을 입히고 숙녀 교육을 시키기 위해 강제적으로 여자 기숙학교에 집어 넣으려고 한다. 전형적인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그녀를 판단하는 오빠들, 에놀라는 왜 어머니가 오빠들을 피해 몸을 숨겼는지 그리고 왜 오빠들과 자주 보지 않았는지 바로 깨닫는다.


재미있는 것은 에놀라의 어머니가 그 동안 가짜 생활비 내역서를 장남인 마이크로프트에게 보내 많은 돈을 모았던 것이다. 너무 완벽한 내역서에 홈즈와 마이크로프트는 그 돈의 쓰임새를 상상도 못하고 지불했고, 어머니는 암호책을 통해 그 돈이 어디에 있는지 에놀라에게 알려준다.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보면 에놀라는 당시 시대적 기준으로 숙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코르셋으로 몸매관리도 전혀 하지 않은, 그야말로 야생마처럼 자란 말괄량이이다.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그리고 세상사람들의 고정관념은 그녀를 억누르고자 하는 '코르셋'과도 같은 존재이다. 홈즈와 동일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에놀라'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가의 의도가 대충 짐작된다. 억압된 여성상에 반기를 들고, 홈즈와 마이크로프트와 다른 방식으로 실마리를 훌륭하게 풀어나가는 에놀라의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뿌듯해진다. 오빠들보다 훨씬 멋진 에놀라가 혼자서 어려운 사건을 쓱쓱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 푹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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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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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여우이야기-이솝우화보다 더 재미있는 여우 우화들


 


한국에는 호랑이와 자라를 놀리는 영악한 토끼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늑대와 인간을 속이는 지혜로운 여우가 있다고 한다. <여우 이야기>는 오랜 세월동안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읽어주는 유명한 우화라고 한다. 인간 사회를 동물들에 빗대 풍자했으며 유머와 함께 여우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여우를 지칭하는 이름 '르나르'였다. 게르만어 ragin(충고)dhk hart(강한)의 합성어에서 생긴 말로, 지혜로운 자 또는 유력한 충고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영어를 계속 공부하고 프랑스어 기초를 시작할까 생각하면서 어원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프롤로그이다. 프롤로그 전부를 여기에 옮겨놓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금단의 사과를 먹고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의 이야기였다. 신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아담과 이브를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 노인의 모습으로 둘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지팡이를 아담에게 주면서 이브는 절대 지팡이를 손 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브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대표하는 자로서 교활한 뱀의 속임수에 넘어가 금단의 사과를 먹자고 유혹한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여인이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아담이 물을 휘젓자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가축 양이 나오지만 이브가 물을 휘젓자(아담은 이브가 설득하자 금방 넘어간다.) 늑대가 나타나 양에게 달라들었다. 아담이 깜짝 놀라 지팡이를 빼앗아 바닷물을 휘젓자 개가 나오고 이 충직한 개는 늑대를 내쫓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재미가 없지, 마지막으로 아담이 잠이 든 틈을 노려 이브가 지팡이를 휘젓자 여우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로도 아담은 암소, 거위, 닭 등과 같은 동물들을 나타나게 만들었는데 고양이는 이브가 꺼냈는지 아담이 꺼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내 생각엔, 왠지 이브가 고양이를 꺼냈을 것 같다.


이렇게 탄생한 여우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존재이자 골칫거리이기도 하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우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모든 것을 원하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늑대처럼-

 
   

 

한국의 토끼는 열심히 산중의 왕인 호랑이와 용왕의 충실한 신하 자라를 속였지만, 프랑스의 여우의 주 라이벌은 늑대와 인간들이다. 먹을 것이 없는지 프랑스의 여우는 대체로 굼주린 상태인데 때로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늑대를 등쳐먹기도 하고 인간을 속여서 먹을 것을 훔치기도 한다. 늑대 이장그랭이 바로 여우에게 항상 당하는 주인공이다. 톰과 제리에서 '톰'의 역할과 매우 흡사하다. 둘은 가끔 협력을 하기도 하는데 여우가 꿍꿍이가 있어서 늑대를 고의로 속였을 때이다. 가끔 진짜 협력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이상적인 상황은 항상 늑대의 과도한 욕심으로 마무리된다. 굶주린 채로 수도원의 작은 구멍을 통해 숨어들었다가 여우는 먹이를 조절해서 잘 빠져나오는데 절제 없이 잔뜩 먹은 늑대는 배가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인간들에게 두들겨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과 프랑스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데도 비슷한 화소가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우가 늑대를 속여 한 겨울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며 얼음 구멍으로 꼬리를 넣게 만드는 장면인데, 토끼가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를 혼내주는 방법과 몹시 유사하다. 늑대가 잡은 먹이를 홀랑 독차지하자 여우가 날아다니던 독수리를 시켜 먹이를 빼앗게 한 이야기도 전래동화에서 들어본 듯한 내용이다. 물론 문화가 다른만큼 차이점도 있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수도원과 사제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우가 햄을 훔쳐 사제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하자 늑대가 사제가 되려고 시도하는 점이나, 수도원에 먹이를 훔치러 가서 술에 취한 늑대가 머리를 깎고 사제복을 훔쳐 입는 장면도 있다.


닭, 오리, 거위 등 소중한 가축들을 훔쳐가는 여우는 인간들의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여우를 경계하거나 또는 잡아서 가죽을 벗겨 팔아버리려고 하고 여우는 맛있는 것들을 잔뜩 저장해둔 채 먹이를 나눠주지 않으며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들을 증오한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의 편이 아니라 오히려 교활한 좀도둑인 여우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어찌나 인간들을 잘 속여넘기는지 감탄할 정도이다. 죽은 척을 해서 인간들의 마차에 올라타 먹이를 잔뜩 훔쳐먹는다든가 여우의 가죽을 노리는 농부를 속여 햄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우화가 많은 이유는 지상의 모든 자원들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사용하고 남용하는 인간들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오늘 밤에는 익숙한 이솝우화가 아니라 훨씬 재미있고 기발한 이야기가 잔뜩 있는, 프랑스의 <여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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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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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트콤-질풍노도의 시기, 십대여 마음껏 발버둥쳐라



어디선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본 듯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백민석 소설가가 손에서 놓을 수 없어 원고를 온갖 곳에 들고 다니며 읽었다는 이야기, 바로 자음과 모음 경장편 소설 수상작 <시트콤>이다. <시트콤>은 1990년 제주도 출생의 젊은 작가가 쓴 십대들의 이야기이다. 전교 1등인 연아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숨 막히는 삶(타인의 의지대로만 사는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에서 탈출하고 싶어 벌이는 사건이 중심인데, 작가가 태어난 도시 '제주도'에서 한국 최대규모의 국제 학교 부지가 있으며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을 생각하면 뭔가 참 그렇다. 유흥 시설도 없고 부모가 차로 태워다주지 않으면 거의 번화가에도 갈 수 없는 환경, 참 가둬놓고 공부시키기 좋았다.


첫 전개는 그야말로 황당했다. 여자친구와 섹스 한 번 하고 싶어 다른 사람들이 찾지 않던 교실을 찾은 고등학생, 어떻게 거사를 치러 보려고 교복 셔츠까지 벗어 먼지를 털어내지만 갑작스럽게 들어온 선생님들 때문에 미처 바지 지퍼를 다 올리지도 못하고 테이블 아래로 숨는다. 겨우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을 잡았나 했더니 역시 섹스를 하러 온 젊은 남녀 선생님들 때문에 무산된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생각하는 게 크게 다르지 않나보다. 하지만 그들도 연아의 담임교사와 연아의 어머니 상담때문에 테이블 밑으로 다급하게 숨게되고, 엉겹결에 넷은 테이블 밑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 이후로 쭉 이어지는 연아의 이야기. 연아는 그 고등학교의 전교 1등이며 시간이 가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단 한번도 엄마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다. 엄마가 학원 뺑뺑이를 돌리면 그렇게 했고 전교 1등을 하라면 역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강원도 철원에 있는 기숙학원을 가라고 통보받는 순간 반기를 든다. 과외와 학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전국 모의고사1등 또는 서울대를 반드시 가기 위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연아가 정한 것이 아니라 늘 엄마가 정한다.  연아가 어떤 걸 잘 하고 어떤 게 부족한지 다 꿰뚫고 있다며 막무가내인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말리려고 해 보지만 아빠의 목소리는 두 모녀의 설전에 허망하게 묻히고 만다.


   
   

내가 나 좋으라고 이래? 네가 서울대를 안 가면 뭘 어쩔 건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연예인처럼 예쁜 것도 아니고, 머리 좀 좋은 거 빼고는 네가 잘난게 뭐가 있냐고!


난 너 낳고 내 인생을 버렸어. 네가 태어난 날 이 엄만 죽었다고.


-시트콤 중 연아 엄마의 대사-

 
   

 

 


세상에 이렇게 현실적일 수가.

현재 어느 집 부모와 자녀가 싸우는 장면을 그대로 복사 붙여놓기 해 놓은 것 같다. 헛웃음을 치며 읽게 되는데, 어찌나 현실 반영을 잘 하는지 억지로 자녀 공부를 시키는 수많은 부모의 발언을 보는 줄 알았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부모가 정해 놓은 길을 가라며 꼭두각시처럼 자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시트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엄마가 너무했네, 또는 이런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자기가 이렇게 행동하는 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자녀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며 부모의 마지막 말엔 꼭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다 너 좋으라고 이러는 거야."


연아 또한 이번에는 질 수 없는지 엄마의 김치싸다귀에도 강경하게 나간다. 집 있고 밥 먹여주고 등 따뜻하니 배가 불러 이런다는 엄마의 말에 김치에 절은 티셔츠를 입고 가출을 강행한 것! 지갑도 가지고 나오지 않아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겨우 택시비를 치르고 전혀 로열같지 않은 '로열 불가마방'에 머물게 된다. 과연 엄마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한 십대 '연아'의 대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트콤>의 책 뒤편에는 여러 소설가와 사회비평가의 멘트가 나와 있는데 그 중 박권일 씨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십대 자녀가 있는 어느 집에서나 있는 일인데, 정말 이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는지 결말도 기상천외한 방법을 이용한다.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쉬웠으나 애초에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부모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이런 방식으로 교육을 강요하는 부모가 이런 책을 굳이 찾아읽지 않으며 읽는다 하더라도 '소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결론 방식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시트콤>을 쓴 배준 작가는 어떤 10대 시절을 보냈을지 매우 궁금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며 10대를 보냈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어렵고 따분한 건 질색이라 재미를 먼저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 실제로 <시트콤>이라는 소설은 가볍고 재미있지만  메시지는 확실히 담았다.


빨리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 싶은 한국 학부모님들, 이 책 좀 읽으세요. 재미있고 따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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