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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쇼샤> 읽고 있으니 너무 우울해져서 기분도 전환할겸 아들에게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반찬들 꺼내고 아이스쿨러백에 아이스팩 넣어 우체국 택배로 보내고 다시 카페에 와서 앉아있다.

좀 전에 어느 알라디너님 글 보고나니 여기 이곳을 잠시 벗어나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막막 솟구쳐 오른다.

집 안에 앉아 있으면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좋은데
어떨땐 세상에 나혼자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아파트에 살땐 위에서 아래서 들려오는 생활소음들이 그렇게 거슬리더니, 여기 이곳에선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 내가 앉아있는 이 방만 먼 우주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캡슐 로켓인것만 같아 괜히 외로워질때가 있다. 얼마 전 읽었던 김보영 작가의 <당신에게 가고 있어>가 떠오르면서 주인공
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 그저 막막해지는 것이다.

<쇼샤>는 백치에 가까운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는 순수한 영혼이기도 하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이 폴란드 유대인들에게 점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은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혼돈 속에서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다. 희곡작품은 소득없이 엎어져 버리고
작품을 쓰지도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주인공의 허랑방탕한 모습을 읽고 있으니 속만 답답하다.

지금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면 안된다구..
하면서 양 어깨를 잡고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 주고 싶다. (ㅎㅎ 별 걱정을. 결론은 이미 나 있는데.. 내가 지금 모를뿐인거겠지? )

주인공 아론이 쇼샤의 영혼을 병들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폴란드의 유대인은 덫에 갇혔어요. 작가클럽에서 그 말을 하자 나를 공격하더군요. 그들은 멍청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어요.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 끝장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폴란드의 비유대인들은 우리를 제거하려 하고 있어요. 그들은
우리를 손수 없앨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요. 하지만
히틀러가 대신 그 일을 해준다면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거예요. 스탈린도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않을
거예요. (190)

아론이 현실감각이 떨어진건 아닌데 왜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을까. 비유대인들은 자신들도 히틀러에 의해 끝장나리란걸 몰랐을까

팔레스타인에 대해 말하자면 세상은 우리가 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더 쓰라린 진실은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이 더 이상 유대인이고자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완전히 동화되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다가오는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건 우리를 제거할 거예요.(191)

그 멍청한 쇼샤를 책임지기로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쉽게 미국으로 갈 수도 있을 거예요. 그곳에서는
유대인들이 아직도 그럭저럭 헤쳐나가고 있어요.
나는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요.(191)

쇼샤를 책임지기로 했으면서도 계속 다른 여자들과 유부녀들과 애인 있는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이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한편으론 정말 역겹다.


나의 독서 친구들께 보내는 라떼하트♡♡♡
연말 잘 보내세요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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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2-3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떼아트 하트 너무 보기 좋습니다! 연말 따뜻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은하수 2022-12-30 21:11   좋아요 1 | URL
친구들께 보내는 제 마음입니다
서곡님을 비롯해서요^^
연말 잘 보내세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첫문장을 보니 ...
내가 그동안 거의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고,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문화권의 이야기가
펼쳐지리란걸 예측할수 있다. 생소하고 결코 가벼운
주제의 이야기가 아니란 정도만 아는데 그래도 유머가 넘칠지도 모르니까 얼른 읽어보기로 하자.


아이작 B. 싱어는 폴란드 태생의 세계적 작가이다. 그는 동유럽 유대인들의 언어인 이디시어로 작품을 썼고 197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주로 폴란드와 미국 내 유대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그의 소설에는 아이러니와 역설과 유머가 넘쳐나며, 꿈과 몽상, 그리고 초자연적인 세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역자후기 중)

꼭 다 읽고 반납하자!!!


1
나는 히브리어와 아람어 (옛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사용되던 언어와 이디시어 (독일어, 히브리어 등의 혼성 언어) (어떤 사람들은 이디시어를 언어로 여기지 않는다)라는 세 가지 죽은언어와 바빌론에서 형성된 탈무드의 문화 속에서 자랐다. 내가 공부한 예배당은 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잠을 자며 그의아내가 요리를 하는 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수와 지리, 물리와 화학,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대신 축일에 낳은 달걀에 대한 법칙과 2천년 전에 파괴된 성전에서 드렸던 희생제를 공부했다. 나의 선조들은 내가 태어나기 약 6~7백 년전 폴란드에 정착했지만 나는 폴란드어는 몇 마디밖에 할 줄몰랐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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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를 읽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의 감동이 너무 커서
오늘은 잠시 쉬면서 그 여운을 길게 느껴볼까 하다
생각보다 기온이 높은 듯하여 산책 겸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원두를 사러 가기로 했다.
날이 따뜻했던 11월까지도 자주 찾던 곳인데
올핸 12월부터 어찌나 추운지 걸어서 온단 생각도 품을수가 없었다.
옷 단단히 챙겨입고 책 챙겨서 1시간만 있다 오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작년 11월 이사온 우리 동네는 집에서 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동네인데, 나같은 게으름뱅이가
산책하기 딱 좋은 코스가 여럿 있다.
이 카페도 그 중 한 코스인데 가까워서 사실 제일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일부러 논두렁길을 걸어서 눈 밟으며 걸어봤다.
싹둑 벼베기한 논이 눈을 한껏 덮고 있어 너무 좋아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어마어마한 로스팅실~~
커피는 역시 이 곳이 맛있다!
걸어와도 금방인 이 길을 차로 오려니 웃긴거 같아
계속 미루다 오늘은 맘먹고 걸어왔다.
덕분에 걸음수도 늘리고.
금방 추워질테니 얼른 가야한다.

책 읽기 좋은 테이블
우리집 썬룸에도 놓고 싶다.



*첫문장
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안 지 30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몇 년 전 11월의 어느 날까지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의사들의 명령에 따라 건강 회복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는데,
그날은 내가 쓴 책에 대해 다른 작가와 대담을 하기 위해 런던에서 케임브리지로 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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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2-28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의 감동이 어느정도셨는지 궁금하네요

커피집은 그냥 시설만 봐도 맛있을거 같아요~!!

은하수 2022-12-29 09:22   좋아요 1 | URL
그 동안 왜 이책을 피해 다녔나 후회가 되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자연의 묘사도 좋았고 극적인 줄거리 없이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런 전개가
이야기의 몰입을 높인다는게 믿기지 않지만 그렇더군요 13권까지 완독하고 싶어요 중간에 그만둔다는 생각을 할수가 없어요^^

책읽는나무 2022-12-2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 넘 멋진 곳 아닌가요??
안과 밖이 모두모두요^^
정말 산책하기 좋은 곳이네요.
어느 카페에서 책을 읽으시나? 했더니
이렇게 멋진 곳에서!!!!!!^^
저도 지난 달, 집에서 좀 떨어진 동네 카페 갔었는데 온통 논뷰였는데 은근 이쁘더라구요.
눈이 덮이니 더 예쁘네요^^

은하수 2022-12-29 09:26   좋아요 1 | URL
그쵸~~ 논뷰~~
전 아침마다 눈뜨면 제 방 창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이거든요! 겨울엔 사실 이 집이 추운데도 이런 풍경들은 정말 포기가 안돼요. 제가 있는곳이 전원주택이 많은 약간 외곽이라 큰 카페가 주위에 많이 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니는데 남들은 신선놀음 하냐고 그러는데... 얻는게 있었다면 포기한 것도 있겠지요?^^
 

오늘도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니 에르노의 또 다른 작품 <부끄러움> 읽기 시작했다.
좀 오래 앉아 있었더니 숨이 막힐듯하다.
오늘은 히터가 너무 강하다.
낮시간 동안 소란스럽던 카페는 이 시간엔 한산하고 조용하다. 바깥 풍경도 다른 어느 날 못지않게 아름다워서 힐링되는 기분인데 건조한 공기 때문에 더 있기 힘들어 ㅠㅠ
집에 가야겠다. 시간도 꽤 됐고.


[첫문장]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평소처럼 12시 15 분 전에 미사를드리러 갔었다. 나는 과자를 사러 전쟁이 끝난 후 재건 중인 건물들이 완공될 때까지 임시로 가설된 건물들이 모인 종합시장 안에 자리 잡은 제과점에 가야 했다.  - P23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되리라 확신한 나는 언제 그 장면이 다시 일어날지를 몇 달, 어쩌면 몇 년 동안 기다렸던것 같다. 손님들이 있으면 안심했고, 저녁이나 일요일 오후 우리 가족만 남게 되는 순간이 두려웠다. 부모님 사이에서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바짝 긴장이 되고 아버지의 얼굴과 손을 감시했다. 갑자기 정적이 감돌면 불행이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에 있을 때에도 집에 돌아가면 일이 이미 벌어져 있는 걸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생각이 들었다. - P29

그 비극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십오년 후 6월, 그날처럼 일요일이었던 어느 날에 돌아가셨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나의 부모님은 이미 그 일요일의 장면, 그리고 아버지의 행동을 다시 끄집어내어 해명혹은 사과를 주고받고 나서 전부 잊기로 결정했는지도모른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밤 정사를 나눈 뒤에 말이다.
그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다른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이생각도 너무 한참 뒤에야 떠올랐다. 이런 생각은 그 일요일이 내게 의미했던 언어 없는 공포를, 그 부재감을 저울삼아 가늠하는 데에나 쓰일까, 지금은 아무 소용도 없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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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결말이어서 참 좋다.
유튜브 뮤직으로 영화 캐롤 ost 들으며 마지막까지
읽었는데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책 내용과 매치가 잘 되면서 어떤 부분인지 다 알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을 떠올릴 때면 영화의 장면들이 앞으로 계속 떠오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품이 주는 메시지도 또 두 여배우의 모습도 깊게
각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차차...
그런데 책은 교정을 어찌 한건지...
윽...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좀 실망... 이 정도면 전공과 상관없이 눈에 거슬릴듯 하다.



테레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는 텅 비었다. "우리를 따라온다고요? 우리랑 같이 있다는 거예요?"
"지금 탐정이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호텔마다 뒤지고 다닐 거야. 이 일이 되게 더러워, 자기야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캐롤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불안히 앉아 있었다. "차라리 널 기차에 태워서 먼저 집으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좋아요. 만약 그게 최선이라면요."


*불안불안한 행복의 시간들이다.ㅠㅠ
미행을 붙이다니... - P326

"담배 좀 피울까." 캐롤은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대신 붙여 테레즈에게 건네주었다. "네가 알아챈 거 저 남자가 모르지?"
"몰라요."
"그럼 끝까지 숨기자." 캐롤은 테레즈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탐정이 있는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그냥 편안히 있어." 캐롤은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말했다.
말은 쉬웠다. 다음에 탐정을 보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으리라 착각하기는 쉬웠다. 얼굴에 폭탄을 맞은 기분이 드는데 애써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 P343

탐정이 차에서 내렸다.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바람이불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때?" 캐롤이 간격을 조금 더 좁혔다. "갖고 있는 거다 내놓으시지, 딕터폰 테이프든 뭐든."
하늘색 눈동자 위로 그려진 탐정의 눈썹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펜더에 몸을 기댄 채 얄팍하고 큰 입술로 이죽거렸다. 테레즈를 쳐다보다가 다시 캐롤을 쳐다보았다. "전부 다 보냈는데, 수중엔 메모 몇 개밖에 없소. 언제 어디를갔었는지 적은 것뿐인데."
"좋아, 그럼 그거라도 내놔."
"그럼 지금 그걸 사겠다는 소린가?"
"난 그런 말한 적 없어. 그냥 내놓으라고 했지. 팔고 싶은 건 당신이잖아?"
"난 당신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 P359

 캐롤이 떠올랐다. 이제 1,600킬로미터 멀리 있는 그녀.
오늘 밤은 혼자 자야 한다. 테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이 보였다. 어느 날 아침 캐롤이 휴지와 치약을 샀던 곳이다. 그리고 저 코너에서 캐롤이 고개를들고 도로표지판을 읽었다. ‘5번가와 네브래스카가.‘ 테레즈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캐롤이 떠난 후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맛을 느꼈
다. 그간 잊고 지낸 혼자라는 상태를 음미했다. 그저 몸만 떨어져 있을 뿐, 혼자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 P378

캐롤은 잠시 테이블 옆에 서서 테레즈를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만나줘서 고마워."
"그런 말 말아요."
웨이터가 왔다. 캐롤은 차를 시켰다. 테레즈도 아무 생각 없이 같은 걸로 시켰다.
"나 밉지, 테레즈?" 캐롤이 물었다.
"아뇨." 캐롤의 향수 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익숙했던단내였는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낯설었다. 전에 느끼던 그런감정이 일지 않아서였다. 테레즈는 성냥갑 뚜껑을 만지작거리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어떻게 당신을 미워할 수 있겠어요. 캐롤?"
"날 미워하는 줄 알았어. 한동안 날 미워한 건 사실이잖아." 캐롤은 사실이라고 못박아 말했다.
"미워한다고요? 당신을요? 아니에요." 별로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캐롤이 두 눈으로 테레즈의 표정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 P436

"아주 좋아 보여" 캐롤이 말했다. "갑자기 등장했는데,
그 이유가 내게서 벗어나려고 그런 거야?"
"아뇨." 테레즈는 바로 반박했다. 좋아하지도 않은 차를시켜놓고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캐롤이 
‘등장‘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새로 태어난 기분도 들고 부끄럽기도 했다.
맞다. 캐롤이 떠난 후 테레즈는 새로 태어났다. 도서관에 걸린 초상화를 보는 순간 새로 태어났다. 그때 터진 울음은 신생아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으로 끌려 나오며 우는 것과 동일했다. 테레즈는 캐롤을 바라보았다. "수폴스 도서관에 그림이 걸려 있었어요." 테레즈는 말했다. 그리고 감정을 섞지 않고 남 얘기 하듯 사연을 털어놓았다.
- P437

테레즈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백화점에서 캐롤의 전화를 처음 받던 날 같았다. 테레즈의 의지와 다르게 몸이 반응했다. 그럴 수 있다면 행복하고 뿌듯할 것 같았다. 캐롤이 용기를 내 이렇게 일을 벌인 게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 것도 흐뭇했다. 캐롤이 앞으로도 이렇게 용기를 내리라는 사실도 기뻤다. 대범했던 캐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골 도로에서 탐정과 맞서던 용기. 테레즈는 침을 삼키면서 요동치는 심박 소리까지 같이 삼키려고 애를 썼다. 캐롤은 아예 테레즈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재떨이에 담배 끝을 비비고있었다. 캐롤과 같이 산다니. 그건 그동안 불가능한 일인 동시에 테레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던 바였다. 캐롤과 같이 살고 일상을 공유하는 일. 여름과 겨울을 보내고 같이 산책하고 책을 읽고 여행하기. 캐롤을 원망하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캐롤이 이런 얘기를 꺼내면 테레즈는 거절하는 상상을 했었다. - P442

테레즈는 입구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피아노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조명이 밝지 않아서 처음에는 캐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진저쪽에 캐롤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캐롤은 테레즈를 보지 못했다.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보였다. 누구인지 테레즈는 알지 못했다. 캐롤이 천천히 손을 들어 머리 한쪽을 쓸어내리더니 반대편도 한 번 더 쓸어내렸다. 테레즈는 미소를 지었다. 저게 바로 캐롤 특유의 동작이다. 저 모습이 바로 테레즈가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모습이다. 이제는 좀 달라질 것이다. 테레즈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캐롤을 온전히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럼에도 캐롤은 그 누구도 아닌 여전히 캐롤이며, 앞으로도 캐롤일 것이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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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2-2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캐롤 영화로 보았었는데요.
정말 강렬하여 기억에 많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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