썅년의 미학 썅년의 미학
민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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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보고서는 무척이나 '쎈' 내용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책을 손에 쥐기까지는 적잖은 고민과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았더니, 내가 상상했듯이 그렇게 '쎈'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생각에도 지극히 상식적인,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들이 드러나 있었다. 내가 만약 '여자'였더라도, 여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었다. 


예를 들면, 긴 생머리를 기르면 좋겠다는 남자, 이상형이니 전화번호를 달라는 남자, 예의상 웃음을 관심으로 착각하는 남자, 자기는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남자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남자, 콘돔 없이 섹스하자는 남자... 이런 남자들에게 '싫다', '됐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말이다. 


책을 읽으며 "뭐 이런 내용에 '썅년'이라는 표현까지 달았지?"라고 되묻는 내게도 이미 사회구조적 우월관계가 내재되어 있었다. 달리 말하면, 남자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고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여자들이 말하려면 '썅년'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남녀차별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상식'을 위해 모진 욕을 들으면서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책을 읽으며 남자라서 몰랐던 점을 새삼 짚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 착각을 하며 판타지를 꿈꾼다는 것(이 대목에서는 나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여자 화장실벽에 그렇게 구멍이 많다는 것(거길 한 번도 가본적이 없으니), 여자 혼자 택시를 타면 기사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희롱과 언어폭력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혼자 밤길을 걸을 때 - 이를테면, 내가 아주 낯선 이국의 거리를 혼자 배회하는 것과 같은 - 공포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여자들에게 주입하였던 몸가짐이나 태도, 자세에 관한 교육들이 이제 남자들에게로 이전되어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좋다면 때리지 말고 더 잘 해주어야 하고, 너에게 친절하다고 해서 너와 사귀고 싶다는 것은 아니며, 상대가 원치 않는 섹스는 범죄이고,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여자가 '썅년'이 아니라는 것을... 

착각은 자유지만 내 책임은 아니란다. - 16

아무리 봐도 러브 코미디 영화, 로맨스 드라마, 순정만화를 맨날 ‘여자’ 장르라며 폄하하면서도 누구보다 그 환상에 목마른 건 남자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 남에게 피해만 안 준다면 뭐가 문제겠나. 그 화려한 망상을 자꾸 실존하는 여성에게 풀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고 피해자가 생기는 거지. - 25

이런, 딱 한 개에만 들어 있다고 말했는데도 나머지 컵케이크도 안 먹겠다니, 컵케이크에 대한 일반화가 심하시네요.
이건 다른 평범한 컵케이크에 대한 폭력입니다!
컵케이크들에게 사과하세요! - 44

그들은 여성의 가장 사적인 순간, 즉, 여성이 배설하는 장면을 보거나 여성의 생식기를 보는 행위를 통해 비틀린 지배욕을 맛본다고 한다. 제 아무리 잘난 여자라도 이런 곳에서 아랫도리를 다 드러내놓고 ‘몰카’나 찍힌다는 사실에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성의 수치심이 곧 자신의 흥분제가 된다는 것. 아아, 도대체 어떤 지질한 인생을 살기에 겨우 그런 거로 흥분하는 걸까? (아, 물론 너희 인생 따위 전혀 안 궁금하다.) - 93

대부분의 여자는, 섹스 하는 와중에 머리 한구석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궁!)
예를 들면 아까 집에 나올 때 고데기를 끄고 나왔나, 이따 집에 가는 길에 화장 솜 사야지, 같은 생각 말이다. 어떨 때는 한창 섹스를 하는 와중에 천장 벽지의 무늬를 세기도 한다. 남자가 빨리 ‘싸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남자가 사정하면 비로소 섹스는 끝난다. 그럼 여자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앉아, 소변이 쓰라린 그곳을 따끔따끔 스치는 걸 느끼며 생각한다.
아, X발, 내가 이걸 왜 했지. - 163

사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를.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더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여자들이 자신들이 겪어온 일이 폭력이라는 걸 아는 게. 그걸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자신이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거고, 도마 위에 오르게 되기에 필사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거다. 마지막 발악 같은 거랄까. 하지만 어쩌나, 이미 시계는 돌아가고,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 222, 223

과거부터 현재까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항하는 방식이나 전략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코르셋의 범주에 관해서도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성 개인에게 가해지는 압박도 제각각이고, 그 때문에 그걸 벗기 위한 노력의 정도나 한계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적은 모두 같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개인의 자유를 찾는 것이다. 결국,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자신이 억압이라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탈코르셋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노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그 노력을 한다고, 혹은 하지 않는다고 개인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 234

여성만 화장해야 하는 사회는 여성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여성이 어떤 옷차림을 했을 때 수동적으로 보이는 것은 여성 개인의 탓이 아니다. 남성은 꾸미지 않아도, 어느 정도 살이 쪄도 용인되지만, 여성은 죽어라 다이어트를 하고 온갖 모진 소리를 들으며 꾸며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느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현대의 사회는 여성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그 때문에 현재 여성이 하는 모든 시도들, 심지어 ‘탈코르셋’마저도 그 당위성을 의심받는 것이다. - 234, 235

정말 비난하고 싸워야 하는 상대는 여성에게 정형화된 틀을 강요하는 사회이지, 그 사회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개인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우리 모두가 잘 살기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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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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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야기의 핵심을 잘 모르겠다. 그냥 '소극적 저항'을 하는 특이한 사람(고문관)에 대한 에피소드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소통의 문제(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한 이야기인지. 소설 속에서 그렇게 강조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굳이 선택 혹은 의지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는 어떠한 철학적 함의가 있는 것인지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어떤 직종에 종사하여 누군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노동자의 입장이라면, 그 노무의 핵심적인 일에 대해 거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지 않을텐데,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던 바틀비의 저항이 어떠한 연유에서 기인한 것인지, 안 하는 편을 택하는 선택권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가 고용인에게 노무를 제공하겠다고 한 계약에 근거해야 할 터인데 일이 맞지 않아 퇴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에 수반하는 중대한 업무는 거부한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직관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의 도움을 받아 억지스럽게 씹어보지만 소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책에서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라고 번역한 'I prefer not to'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거나 작품 속에서 바틀비가 이 말을 하는 상황에서 예측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말을 반복한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를 부정한다기보다, 그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즉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이 두 가지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에는 '부정(否定)'의 선택 그리고 '선택'할 권리의 주장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 101, 102쪽


가끔 꿈보다 해석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데, 이 소설을 읽고 이런 해설을 달았다면 철학이란, 평론이란 내 평범한 생각과는 유리되어 있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잠재성과 생명의 잠재성?


"조르조 아감벤에 의하면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는 바틀비의 말은 '존재하거나 행동할 잠재성'과 '존재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을 잠재성' 사이에 있는 일종의 '비무장 지대'를 개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경사 바틀비>에는 전체적으로 죽음이 배경음처럼 깔려 있다. 성벽처럼 월 스트리트에 실제로 높이 세워졌던 벽, 사무실의 벽, 고층 건물의 외벽, 구치소의 벽, 이 모든 벽들로 둘러싸인 곳의 바틀비는 유령과 시체처럼 묘사된다.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한다. 유령처럼 '건물 여기저기에 출몰'한다. '주검같이 맥없고 침울한 그의 대답'은 '안 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바틀비의 말은 죽음의 잠재성과 생명의 잠재성이 동시에 접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필경사 바틀비>는 여러 철학적인 논의에 동원되기도 한다. - 102쪽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 - 38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겠다고?"
"안 하는 편을 택한다고요." - 41

하지만 이 수수께끼 같은 필경사의 온순한 뻔뻔함에 대항해 무기력한 반항심이 불쑥 일어나 쑤셔댔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통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나의 적개심을 해제한 것은, 말하자면 나를 거세한 것은 주로 그의 훌륭한 온순함이었다. - 44

내가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순전한 우울과 진심 어린 동정심이었다. 그러나 바틀비의 쓸쓸함이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져갈수록, 그만큼 바로 그 우울은 두려움으로, 그 동정심은 혐오감으로 녹아들었다.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나 비참한 광경은 어느 선까지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동시에 끔찍한 진실이다. 그 이유가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탓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 50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그날 아침에 본 것으로 인해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장애의 희생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물질적인 원조를 줄 수 있겠지만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육신이 아니었다.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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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1~2 세트-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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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더 이상 읽지 않기 시작했다. 기발하다고들 하는 그의 이야기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루해졌고, 매번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쓰며 그의 저작들을 극찬해 마지 않는 분위기도 적잖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몇 년간 <카산드라의 거울>이나 <제3인류>, <잠>을 다 거르고 나서야 그에 대한 심드렁한 마음도 조금 줄어들었는지, 소설은 읽고 싶은데 가벼운 것을 찾던 중 <고양이>를 골랐다. 


옮긴이의 말에서는 "<제3인류>에서 지구와 인간의 소통을, <잠>에서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다룬 작가는 이번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소통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책들은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이 책 역시도 베르베르가 강조하는 그 '소통'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구나. 고양이인 바스테트와 집사 나탈리의 소통, 펠릭스 같은 다른 고양이들과의 소통, 휴대폰을 부착한 피타고라스와 인간과의 소통 실험. 그러나 정작 소통하지 않는 인간들 사이의 전쟁. 결국 이것은 소통되지 않는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 아닌 이종(異種)들과의 소통을 그린 것이었구나.


고양이의 시선, 고양이의 생각일 것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생각,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역사 등 낯설게 바라보거나 새롭게 읽을 꺼리가 풍부했던 1편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고양이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의 생활과 문화를 해석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반론.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집착. 어쩌면 이처럼 단순한 제3자적 시선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무지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와 관련하여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류 역사상 종교는 전쟁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발현되고 있었으므로.


무엇이 우리를 멸망시키고, 무엇이 우리를 구할 것인가, 저자는 묻고 있다. 외계의 침략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멸망시키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도 아니고, 첨단과학의 발전도 아니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곁에서 동시에 생존하고 있는 다른 존재,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미미한 존재들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해 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 작자 미상 – 7

모든 행위에는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그걸 좋아하는 쪽이 있으면 싫어하는 쪽도 있다. 생명체의 모든 행위는 필연적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 74

"우리 고양이들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인간들은 자유를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싫어서 신을 만든 것 같아. 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면 자신들이 섬기는 주인한테 복종만 하면 되니까. 자신들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신의 뜻>이 되니까. 신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종교인들이 심약한 영혼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방식이기도 하지. 인간과 달리 고양이는 스스로의 행동을 책임질 줄 알고 자유를 두려워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거대한 고양이가 하늘에서 지켜본다는 상상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 - 101, 102

"종교가 인간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호기롭게 한마디 던진다.
"종교? 바로 그 종교가 지금 인간들을 갉아먹고 자기 파괴로 내몰고 있어." - 125

지식은 의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편협한 세계관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 - 136

"폭력이 없으면 삶이 지루해질지도 몰라. 비슷비슷한 날들이 계속될 테니까. 생각해 봐, 매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된다고 좋기만 할까? 폭력은 천둥이나 번개와 흡사한 구석이 있어.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키는 거니까. 전기가 완전히 방전되면 먹구름이 빗방울로 변하고, 이 빗방울이 다 떨어지고 나면 비가 멈추고 다시 맑은 날씨가 되지.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해. 식물끼리도 싸우는걸. 담쟁이덩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숨을 못 쉬게 만들잖아. 잎들이 서로 햇빛을 받으려고 경쟁을 벌이고 자리 다툼을 하지." - 174

<거짓에 익숙해지면 진실이 의심스럽게 보인다>는 표현이 이런 세뇌 과정을 잘 요약한 말일 거야. - 177

"난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는 삶의 원칙을 세웠어."
"나랑 사랑을 나누고 나면 고통스러워질까 봐 두려워?"
"엄청난 쾌락을 느껴 너에게 구속될까 봐 두려운 거야. 나는 자유롭고 해탈한 존재로서 만족을 느끼거든. 어느 누구도 세상 그 어떤 것도 내게 절대적인 의미가 될 수 없어. 이게 내 자긍심의 원천이야." - 184

"물론이야. 자신이 가진 걸 소중히 여길 줄 알면 행복하고 자신이 갖지 않은 걸 갖고 싶어 하면 불행하지. 난 원하는 걸 다 가졌어."
"전쟁이 두렵지 않아?"
"나는 내 능력을 충분히 못 쓸까 봐 두렵지 다른 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비가 오고 날이 개고 천둥이 치고 무지개가 뜨고 전쟁이 일어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 200

"너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다 너를 위한 거야. 닥치는 상황에 적응해 나가면 돼." - 207

"네 적들과 네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들은 너의 저항력을 알게 해줘. 심각해 보이는 문제들도 사실은 네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기회일 뿐이야." - 208

"현실이 견딜 수 없게 인간을 짓누를 때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바로 상상력이야. 이 영화를 보면 뉴스가 지닌 불안과 공포의 위력과는 전혀 다른 위안의 힘을 허구가 지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 221

"우리는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니까. 어쨌든 넌 케이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네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잖아!" - 2권, 22

"행복해지기 위해 절대 남에게 의존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이 실험에서 깨달았어" - 23, 24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어. 내가 두려운 건 한 가지뿐이야. 소유되는 것. 그래서 금욕하는 거야,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으려고." - 24

"누구든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돼 있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 85

나는 하나의 생각이다. 이것이 나의 확신이 되는 순간 타자들은 내가 차별화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나는 스스로 온전한 하나라고 믿는다.
나는 스스로 유일무이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유일무이하다.
나는... 내가 믿는 것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 105

"나한테 사랑은, 혼자 있을 때만큼 함께 있을 때도 좋은 거야." - 135

내일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존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후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존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에 안주하고 몸의 안위만 추구하는 존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내 몸의 시련을 선택했다. 그 시련들을 통해 내 정신은 성장한다. 예기치 못한 고난과 실패, 절망을 통해 빚어진 나의 정신은 스스로에 대해 알아 가면서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깨닫는다. -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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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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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을 통해 더 나은 삶에 대한 성찰을 얻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기회를 발견하겠다는 야심찬(?) 의도로 저자가 했던 강연을 12개의 장(발자국)으로 재편한 책이다. 그러나 '정재승'이라는 이름과 '뇌과학'이라는 수식어를 보고, 그것에만 너무 편중된 기대를 하였다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복잡한 전공 이야기보다는 대중성을 겨냥한 책이어서 그렇겠지만, 그 이전에 '듣기 쉽고 재미 있게 이야기 하는 것'과 '전문적인 것을 쉽게 풀어 이해시키 것'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장을 펼치면서 "이제 '뇌과학의 맛'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기대를 해서였는지, 첫 번째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의사결정의 완벽성의 추구가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의 설명은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지만, 결핍 없는 욕망이나 놀이, 미신에 활용된 사례들은 행동경제학이나 진화심리학에서 익히 들어본 바 있는 것들이어서 그리 큰 인상을 받지 못한 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물론 뇌과학이 이러한 학문들 또한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선택과 결정, 욕망, 놀이, 미신, 성공, 행복, 미래... 뇌과학에 대한 강의 치고 진폭이 너무 넓어 집중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뇌과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제2부에서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미래학의 요소들과 확 타올랐다가 벌써 시들해져버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저자는 비트코인과 관련된 100분 토론의 예를 통하여, 자신이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던 그 토론을 시청한 사람들 다수의 인식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사전에 제거되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 같다. 말 그대로 4차 산업혁명을 '혁명'으로 인식하는 저자는 혁명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꽤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그런 중에 미래를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에게만 가능성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혁명에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할 것인데, 한국에는 왜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같은 스타트업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를 분석하면서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이 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한다(이 대목에서도 저자만의 독창적인 분석을 기대했지만...). 그러면서도 혁신과 창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빌 게이츠의 사례를 들면서 그가 무턱대고 모험을 감수한 것이 아니라 창업 기반을 마련하고 하버드 자퇴가 아닌 휴학을 한 사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의 부모에게 알린 사실, 실패 후 학교로 복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는 사실 등을 열거하며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주장에 대한 대안, 즉 혁신을 위한 실행력과 섣부른 시도의 경계 사이에서 섬세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찌보면 지금까지 저자의 설명을 듣고 학습하고 행동패턴을 바꾸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것들을 모두 무(無)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라는거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덮는다. 물론 이 책 한권을 통하여 막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저자에게 내 미래에 대한 모든 질문을 신탁하려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25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순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전략이 다시 바뀌게 됩니다. 무직 상태이거나 학교도 안 다녀서 빨리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앞에서 본 마시멜로 챌린지의 인센티브 실험처럼 시야가 좁아지고 취직 자체가 중요해져버려 꿈꾸던 무언가에 도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터널 비전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의 자리가 싫다면, 뭘 꿈꿔야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45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떨어집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걸 잘 못하게 돼요. 의사결정이 빨라졌으니까 잘못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졌을 텐데, 고집스럽게 안 바꾸니까 자신의 성공사례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거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말하는 이른바 ‘휴브리스(hubris, 지나친 자기과신)’가 바로 이런 겁니다. 영웅은 결국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경험에 발목이 잡히는 거죠. - 50, 51

우리는 평소에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58

그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합니다. 대학 때까지는 부모 품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에요. 자신만의 지도를 그린 경험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대면할 기회도 없었던 거죠. - 82

독서는 습관이 되기 힘듭니다. 독서가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쾌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스스로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 102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닌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 154

자신이 성공할 확률이 낮을수록, 선수들은 더 많은 징크스를 만들어냅니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강한데 자신이 상황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신이라는 엉뚱한 인과관계를 넣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 169, 170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겁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박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 179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에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됩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과거의 한 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엔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 275, 276

혁신적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람들은 위험 감수 성향보다는 위함 관리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 말입니다. 그들은 모호한 상황에서는 쉽게 의사를 결정하지 않으며, 그 확률을 제대로 계산하려고 애씁니다. 계산 결과 확률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보수적으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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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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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변덕스러운 마음이 교차했던 책읽기였다.


지만 본다면, 그다지 사서 읽어보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디자인이 꽤 촌스럽기 때문이다. 표지가 내용의 충실함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표지가 내용을 깎아내릴 수는 있다. 그럼에도 제목이 주는 느낌이 괜찮아 책을 집었다. 프로필을 통해 '수유너머'에서 공부하였다는 정보를 접하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녹록치 않은 내공을 느꼈다. 그러나 많이 읽고 공부한 티를 너무 내는 것인지 불필요하게 자주 등장하는 인용구(플라톤이 말했듯이, 그것은 니체의 말인데...)는 몰입을 방해했다. 자기의 생각은 없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 때쯤이면 한번씩 자신만의 경험을 등장시켜 내 불만을 상쇄시켜주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어디서 들었음직한 아포리즘의 변형(질문은 욕망을 내포하고, 삶은 명사가 아닌 동사라는...)이다. 여자, 삶, 사랑, 일이라는 주제별로 경험과 생각을 모아놓은 글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에 많은 밑줄을 치며 공감 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허탈하다. 에세이를 읽은 것인지, 잠언집을 읽은 것인지. 

나는 싸움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공격 대상이 모호했다. 날마다 가슴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혼자 치르는 전투에서 나는 매일 전사했고 꿈처럼 깨어나 오늘을 살았다. 시(詩)가 무기였다. - 6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무엇이든 그 자체 단독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미이고, 그것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비열함이다. 이혼도 그런 것 같다. 비열한 이혼도 아름다운 이혼도 있다. 그러니 권장할 일도 배척할 일도 아니다. 삶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골격을 짜는 하나의 과정으로 아픈 선택일 뿐이다. 삶의 어느 국면에서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 24

나에게 엄마로 사는 건 인격의 물오르는 경험이 아니었다. 외려 내 안의 야만과 마주하는 기회였다. 태아가 물컹한 분비물과 함께 나오는 출산의 아수라장을 경험하는 것부터 그랬다. 그 생명체가 제 앞가림할 때까지 나는 혼자 있을 권리, 차분히 먹을 권리, 푹 잘 권리, 느리게 걸을 권리 같은 기본권을 몽땅 빼앗겼다. 그런 전면적이고 장기적인 실존의 침해를 감내하다 보면 피폐해진다. 성격 삐뚤어지고 교양 허물어진다. 육아의 보람과 기쁨을 위안으로 삼기엔 그것과 맞바꿀 대가가 너무 크고 길다. 그 사실을 경험하기 전에는 모른다. - 31

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 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 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그나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통의 자산화가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 32

모든 물음은 질문자의 입장과 욕망을 내포하는 법이다. 나의 물음은 그간 얼마나 진화했는가. - 35

왜 엄마들에게 행복은 늘 충족 유예 상태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삶. 자식을 위해 당신은 포기하는 삶... 워낙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러신 줄은 안다. 그래도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가 호강 한번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나의 일신의 호강은 주체적으로 ‘지금 여기서’ 챙겨야 한다는 것. 그 엄정한 사실 말이다. - 101

힘든 일 포기하고 떠난다고 자유롭지 않다. 그건 자유에 대한 환영이고 망상이다. 넘지 못할 것 같은 산도 한 걸음 내디디면서 다리 힘이 길러지고 그러면 다음 봉우리는 더 쉽게 건널 수 있다. 근육이 튼튼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면 삶의 어느 고비에서도 성큼성큼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궁극적으로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면 걸린 데서 또 걸린다. 살아보니 그랬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좋기만 한 관계는 가짜이고,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은 무탈한 일상이 행복은 아니었다. - 102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 - 118, 119

술 없는 친교 활동은 불가능해보였다. 그걸 보면서 남자에게 술은 해방 기제가 아닌 억압 기제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사회적 개인들의 결속의 장, 술자리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자기 위치 측정이 안 되는 거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며 살고 어디로 가는지. 술은 인생 마라톤을 위해 고용한 페이스메이커. 무리에서 낙오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해, 고단한 그 길이 외롭지 않기 위해 마시는 듯도 보였다. 가엾고 얄궂다. - 133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 154

한 움큼 부끄러움을 삼키며 나는 배웠다. 동정이든 차별이든 그 아래 깔린 근본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걸. 어떤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에 없는 분리된 존재로 취급하는 것(고아들이 불쌍하다), 한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특정한 면만 부각시켜 인격화하는 것(장애인은 무능하다), 자신은 결코 되지 않을 이질적 대상으로 상대를 보는 것(공부 안 하면 노숙인 된다). 하나같이 타자화하는 말들이다. - 169

<마담 보바리>는 출간 당시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악덕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불륜 예찬 작품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세상 여자들이 엠마처럼 살면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엠마처럼 살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커다란 착각이다. 사랑에 투신하는 용기, 삶을 지탱시키는 열기는 아무나 갖고 있지 못하다. 계산적으로 사느라 용쓰는 동안 본래적 열정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 194

왜 우리는 생생한 아픔보다 시든 행복을 택하는가. - 195

"난 그렇게 이성이 판단하기 이전에 몸이 저지르는 사건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지나 결심마저 무화시키는 소용돌이. 어떤 격정." "그런 거 없더. 다 자기의 판단과 선택이야." - 207

니체가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라고 가르쳐주었듯이, 속물 대마왕 홍상수가 사랑의 사이비 신도였던 나를 일깨운다. 사랑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 209

"이제 연세가 있는데 좀 쉬시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그러더라. 가만히 있으면 뭐하느냐고, 사람은 ‘나쁜 짓’이라도 해야 한다고, 그래야 하나라도 배울 게 있다고." - 231

원래 돈은 속삭인다. 나를 줄 테니 너의 모든 것을 달라고. 그래서 특히 젊은 나이에 첫 직장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의 쓰임이 곧 삶의 자세이다. 젊을 때부터 나를 던져 돈과 삶을 ‘거래’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돈의 흐름에 따라 허겁지겁 쫓아가게 된다. 내 정신으로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다. - 237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삶을 한 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에 간다면 난 얼마나 다르게 살 것인가. 아파하고 아파하는 이를 알아보면서 이 아픔의 전승 구조에 몸을 싣고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 같다. 그것밖에 힘이 없다. 누구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다. - 262

장르는 갈래다. 장르 자체가 작품의 고귀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이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266

나는 밥벌이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거기에 붙들릴까 염려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무너질까 두려워할 때 발생하는 것이 ‘불안’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강고해질까봐 두렵다. 김수영의 시구대로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그런 어리석음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인생이다. - 269

타자를 변화시키는 힘은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다. - 275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배울 때 기쁨을 느끼지 않는 자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것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 - 276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었다. -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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