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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뇌과학을 통해 더 나은 삶에 대한 성찰을 얻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기회를 발견하겠다는 야심찬(?) 의도로 저자가 했던 강연을 12개의 장(발자국)으로 재편한 책이다. 그러나 '정재승'이라는 이름과 '뇌과학'이라는 수식어를 보고, 그것에만 너무 편중된 기대를 하였다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복잡한 전공 이야기보다는 대중성을 겨냥한 책이어서 그렇겠지만, 그 이전에 '듣기 쉽고 재미 있게 이야기 하는 것'과 '전문적인 것을 쉽게 풀어 이해시키 것'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장을 펼치면서 "이제 '뇌과학의 맛'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기대를 해서였는지, 첫 번째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의사결정의 완벽성의 추구가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의 설명은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지만, 결핍 없는 욕망이나 놀이, 미신에 활용된 사례들은 행동경제학이나 진화심리학에서 익히 들어본 바 있는 것들이어서 그리 큰 인상을 받지 못한 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물론 뇌과학이 이러한 학문들 또한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선택과 결정, 욕망, 놀이, 미신, 성공, 행복, 미래... 뇌과학에 대한 강의 치고 진폭이 너무 넓어 집중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뇌과학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제2부에서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미래학의 요소들과 확 타올랐다가 벌써 시들해져버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저자는 비트코인과 관련된 100분 토론의 예를 통하여, 자신이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던 그 토론을 시청한 사람들 다수의 인식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사전에 제거되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 같다. 말 그대로 4차 산업혁명을 '혁명'으로 인식하는 저자는 혁명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꽤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그런 중에 미래를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에게만 가능성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혁명에는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할 것인데, 한국에는 왜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같은 스타트업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를 분석하면서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이 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한다(이 대목에서도 저자만의 독창적인 분석을 기대했지만...). 그러면서도 혁신과 창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빌 게이츠의 사례를 들면서 그가 무턱대고 모험을 감수한 것이 아니라 창업 기반을 마련하고 하버드 자퇴가 아닌 휴학을 한 사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의 부모에게 알린 사실, 실패 후 학교로 복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는 사실 등을 열거하며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다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주장에 대한 대안, 즉 혁신을 위한 실행력과 섣부른 시도의 경계 사이에서 섬세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찌보면 지금까지 저자의 설명을 듣고 학습하고 행동패턴을 바꾸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것들을 모두 무(無)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라는거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덮는다. 물론 이 책 한권을 통하여 막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저자에게 내 미래에 대한 모든 질문을 신탁하려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25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순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전략이 다시 바뀌게 됩니다. 무직 상태이거나 학교도 안 다녀서 빨리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앞에서 본 마시멜로 챌린지의 인센티브 실험처럼 시야가 좁아지고 취직 자체가 중요해져버려 꿈꾸던 무언가에 도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터널 비전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의 자리가 싫다면, 뭘 꿈꿔야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45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떨어집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걸 잘 못하게 돼요. 의사결정이 빨라졌으니까 잘못될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졌을 텐데, 고집스럽게 안 바꾸니까 자신의 성공사례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거죠.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말하는 이른바 ‘휴브리스(hubris, 지나친 자기과신)’가 바로 이런 겁니다. 영웅은 결국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경험에 발목이 잡히는 거죠. - 50, 51
우리는 평소에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58
그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합니다. 대학 때까지는 부모 품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에요. 자신만의 지도를 그린 경험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대면할 기회도 없었던 거죠. - 82
독서는 습관이 되기 힘듭니다. 독서가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쾌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스스로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 102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닌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 154
자신이 성공할 확률이 낮을수록, 선수들은 더 많은 징크스를 만들어냅니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강한데 자신이 상황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신이라는 엉뚱한 인과관계를 넣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 169, 170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겁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박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 179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에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됩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과거의 한 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엔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 275, 276
혁신적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람들은 위험 감수 성향보다는 위함 관리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 말입니다. 그들은 모호한 상황에서는 쉽게 의사를 결정하지 않으며, 그 확률을 제대로 계산하려고 애씁니다. 계산 결과 확률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보수적으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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