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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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야기의 핵심을 잘 모르겠다. 그냥 '소극적 저항'을 하는 특이한 사람(고문관)에 대한 에피소드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소통의 문제(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한 이야기인지. 소설 속에서 그렇게 강조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굳이 선택 혹은 의지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는 어떠한 철학적 함의가 있는 것인지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어떤 직종에 종사하여 누군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노동자의 입장이라면, 그 노무의 핵심적인 일에 대해 거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지 않을텐데,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던 바틀비의 저항이 어떠한 연유에서 기인한 것인지, 안 하는 편을 택하는 선택권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가 고용인에게 노무를 제공하겠다고 한 계약에 근거해야 할 터인데 일이 맞지 않아 퇴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에 수반하는 중대한 업무는 거부한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직관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의 도움을 받아 억지스럽게 씹어보지만 소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책에서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라고 번역한 'I prefer not to'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거나 작품 속에서 바틀비가 이 말을 하는 상황에서 예측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말을 반복한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를 부정한다기보다, 그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즉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이 두 가지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에는 '부정(否定)'의 선택 그리고 '선택'할 권리의 주장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 101, 102쪽


가끔 꿈보다 해석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데, 이 소설을 읽고 이런 해설을 달았다면 철학이란, 평론이란 내 평범한 생각과는 유리되어 있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잠재성과 생명의 잠재성?


"조르조 아감벤에 의하면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는 바틀비의 말은 '존재하거나 행동할 잠재성'과 '존재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을 잠재성' 사이에 있는 일종의 '비무장 지대'를 개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경사 바틀비>에는 전체적으로 죽음이 배경음처럼 깔려 있다. 성벽처럼 월 스트리트에 실제로 높이 세워졌던 벽, 사무실의 벽, 고층 건물의 외벽, 구치소의 벽, 이 모든 벽들로 둘러싸인 곳의 바틀비는 유령과 시체처럼 묘사된다.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한다. 유령처럼 '건물 여기저기에 출몰'한다. '주검같이 맥없고 침울한 그의 대답'은 '안 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바틀비의 말은 죽음의 잠재성과 생명의 잠재성이 동시에 접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필경사 바틀비>는 여러 철학적인 논의에 동원되기도 한다. - 102쪽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 - 38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안 하겠다고?"
"안 하는 편을 택한다고요." - 41

하지만 이 수수께끼 같은 필경사의 온순한 뻔뻔함에 대항해 무기력한 반항심이 불쑥 일어나 쑤셔댔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통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나의 적개심을 해제한 것은, 말하자면 나를 거세한 것은 주로 그의 훌륭한 온순함이었다. - 44

내가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순전한 우울과 진심 어린 동정심이었다. 그러나 바틀비의 쓸쓸함이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져갈수록, 그만큼 바로 그 우울은 두려움으로, 그 동정심은 혐오감으로 녹아들었다. 비참함에 대한 생각이나 비참한 광경은 어느 선까지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동시에 끔찍한 진실이다. 그 이유가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탓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과도한 구조적 악을 고칠 희망이 없다는 데 기인한다. - 50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그날 아침에 본 것으로 인해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장애의 희생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물질적인 원조를 줄 수 있겠지만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육신이 아니었다.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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