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p.92

 

   며칠 전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글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요즈음 저 자신에 대해서 좀 깊이 묵상하고 있는터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연말 몸담고 일하고 있는 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제가 너무 '일방통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좀 느슨하면 좋을텐데 너무 타이트하다는 불평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리더는 먼저 자신을 무장하고 자신을 콘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던 모양입니다. 문제가 터진 만큼 수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오래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제가 변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 자신을 설득해 가고 있습니다.

  원칙과 소신과 명분을 지켜온 저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것들이 많이 섭섭하고 회의가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요구는 맡은 일을 제때 하지 못해도 그럴 사정이 있었거니 넘어가 달라거나 자신들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취달라는 것이고 저는 일을 하는 이상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렇게 서로 '일방통행'으로 왔으니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터진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한동안 저 자신을 자책하고 많이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니 저의 원칙, 소신, 명분, 이런 것들이 저라는 나무를 지탱해 온 힘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무가 수직으로 서기위한 '존재의 뼈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난 연말 그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지요. 이 책에는 나무의 바깥쪽 10분의 1이 나무의 생명을 유지해간다고 말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10분의 1일 바로 '소통'이 아닐까 하는 깨닫음이 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운동을 갔다가 이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이튿날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들입니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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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나무 중심부가 정말로 저렇게 생겼군요!
생명의 기능은 소멸하였지만 나무를 수직으로 세워주는 힘!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지해주는 글이라서 더 기뻐요.

gimssim 2012-02-08 20:40   좋아요 0 | URL
나무 안의 흔 부분들은 이미 생명은 소멸되었다는 말이지요.
만져보니 아주 단단했습니다. 그 부분이 나무를 지탱해준답니다.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2-02-0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인용글 보니, 김훈의 '내 젊은날의 숲'이 생각나요.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
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 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 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

저는 생명있음의 소통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죽는다. 무위의 존재는 뼈대다...라는 구절,

저도 읽은 책, 읽은 구절인데도...오래 머물다가게 하는걸요~^^

gimssim 2012-02-08 20:43   좋아요 0 | URL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은 아직 안읽어봐서...그런 구절이 있었군요.

소통과 소신을 겸비할 수 있도록 도를 더 닦아야 하나 봅니다.
아무래도 아직은 '하산'할 때가 아닌 모양이지요.

마녀고양이 2012-02-0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관성있는 리더가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일관성'에 관련된 규칙이, 제게 설명되고 납득될 필요는 있는게 아닐까 해요.
그래야만 일하고 따를 맛이 나더라구요. 하지만,, 언니는, 진짜 멋진 리더실거 같아요.
(저도 밑에 써주세요... 헤헤.)

gimssim 2012-02-08 20:46   좋아요 0 | URL
저는 일관성은 있어도 유연성을 없는 모양입니다.
둘 다 겸비하는 건 무리이겠지만 그래도 생각의 물꼬는 조금씩 터봐야겠어요.

숲노래 2012-02-09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를 버티는 나무줄기라기보다
나뭇가지를 버티는 나무줄기라고 해야겠지요.
정작 나무를 버티는 곳은 뿌리일 테니까요.

나무도 너무 딱딱하거나 곧으면 비바람에 뚝 하고 부러지고,
나무도 비바람에 살살 흔들리며 바람결에 몸을 맡기기도 하면
어떤 어려움도 찬찬히 견디거나 이기거나 받아들이리라 생각해요.

gimssim 2012-02-09 06:23   좋아요 0 | URL
저는 생명이 다한 것이라고 필요없는 것은 아니구나,로 이해했어요.
저의,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부분도 '나'를 구성하는 저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위로를 받았드랬습니다.

순오기 2012-02-16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과 글을 같이 보니 제대로 이해가 되어요.
내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도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네요.
깊이 생각하게 하는 페이퍼에요~ 고맙습니다!

gimssim 2012-02-20 21:34   좋아요 0 | URL
그래요.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자신을 보듬은 일에 좀 더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와 대중문화 이해
박종균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불 꺼진 창, 시대의 아픔

 

   

 

 지난 가을 학기에 시간을 내어 밤시간에 두 시간씩 강의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강좌였습니다.

교회 '장로'인 두 전현직 대통령 때문에 '안티' 기독교가 팽배해 있지만 본질로 돌아가면 '예수님의 기독교'는 지금 행해지는 교회의 사역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을 높이시고 높은 곳을 낮추시고자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강물은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고(다스리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마에 흘린 땀으로 정직하게 살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공법이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관심사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그 뜻대로 살아간다면 '자연'은 절대 사람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학기 공부를 하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사실은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쟁이인 저의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의 제일 관심사는 바로 '사람'입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요즈음은 인간의 존엄성은 그저 빛 바랜 구호처럼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즈음 가족의 부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가족은 있어도 가정은 없습니다. 불 꺼진 창에 다시 환하게 불을 밝힐 수 있어야 가정이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어야 사회가 치유되고, 사회가 치유되어야 국가가 힘을 얻습니다.

국민소득이 몇 만불이 된들, 가장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어린 학생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젊은이들은 몇 년 째 취업 재수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허상 위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100의 일을 다섯 명이 합니다. 한 사람당 백만원의 월급을 받습니다. 그 사람은 그 백만원으로 아이들 공부를 시키고 가정을 꾸려갑니다. 어머니는 열심히 살림을 합니다. 검소하게 살며 절약을 해서 조금씩 저축도 합니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언제든지 엄마가 맞아줍니다. 하일없이 거리를 방황할 필요도 없습니다. 친구들을 데려가서 놀기도 합니다. 그런 세월이 분명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작은 냉장고인데 옆집에서 새로나온 양문 냉장고를 샀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양문 냉장고를 샀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화면이 큰 텔레비전을 샀습니다. 그러자 옆집에서는 우리집보다 더 큰 텔레비젼을 샀습니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드럼 세탁기를 사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돈을 벌러 나갑니다. 옆집에서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를 샀습니다. 우리집 아이는 거의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로 말합니다. "엄마, 우리 집은?"

그래서 아들도, 딸도 다 돈을 벌러 나갑니다.

그쯤되자 100의 일을 스무 명이 하겠다고 덤빕니다. 회사에서는 한 사람당 백만원을 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육십만원, 칠십만원으로도 얼마든지 일할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현대의 소비는 생산의 과잉성을 필요한 생산으로 바꾸고 더 큰 과잉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의사생산이며 필요소비가 아닌 과잉소비만이 진정한 소비가 된다. 이러한 의사소비를 위한 전략이 욕구와 욕망을 조직해 나가는 소비사회의 자본전략으로 등장하게 된다.

 

 

저는 불꺼진 창에 다시 불을 밝히는 것이 가정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꼭 어머니가 집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집안 구성원 중 누구라도 바깥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바깥일을 하면 됩니다. 아버지가 살림을 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돌아보아야 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는 양문냉장고, 더 선명한 텔레비전, 드럼세탁기, 더 좋은 스마트폰을 사느라 쉴 틈이 없이 일을 합니다.

그것들을 갖고 나면 기업에서는 더 좋은 물건들을 개발하여 소비를 부추일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갖지 못한다면 너는 사회적인 낙오자, 실패자라고 끊임없이 괴롭힐 것입니다.

 

소비자는 물건 자체가 갖는 물리적 효용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건의 모습을 바깥으로 들어내보여주는 디자인(외형, 외관, 모습), 물건에 붙은 라벨과 브랜드네임, 물건을 쓸 때 만들어지는 분위기와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건이 보내는 신호와 자신과 물건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함께 소비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 개인이 욕망을 함께 소비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 개인의 욕망이 함께 연소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소비사회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물리적 특성을 가진 상품자체가 아니라 의미, 기호, 상징, 이미지,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다.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저는 누구 한사람이라도 - 아버지나 어머니가 - 가정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혼자 벌어서는 살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풍족하게'는 살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욕망을 다스리면 조금 모자란 듯이,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일 터입니다.

무분별한 소비, 과소비는 우리의 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맙니다.

더 좋은 것, 더 편리한 것, 더 빠른 것을 추구하는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궁극에 우리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온 가족이 다 나가서 돈을 벌어야 사는 세상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지치고 상한 마음으로 귀가했을 때, 불을 밝히고 있다가 맞아줄 따뜻한 손길이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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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2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8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12-01-1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입니다. 저도 어머니(때에 따라서는 아버지)가 집에서 가족들을 맞아주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 물질의 빈곤을 감수하고서라도 맞바꿀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소신대로 그렇게 살려고 일을 고를 때도 온종일 매여야 하는 일보다는 시간이 자유로운 걸 더 우선시 했고요....20년 그렇게 가족 돌보며 살았는데 정작 우리애들은 엄마가 곁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엄마가 얼마나 희생을 치루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어요 ㅎㅎ 아직 철이 안 든거지요. 철 들려면 마흔은 넘어야 할 듯.
'불 밝힌 집'- 다 좋은데 단점이라면, 애들이 아무래도 독립심이라든지 생활의지가 약한 것 같고 철이 늦게 드는 것 같아요....이긍...ㅡ.ㅡ;;

gimssim 2012-01-18 20:44   좋아요 0 | URL
엄마가 하신 위대한 일들을 아이들이 알고는 있겠죠.
좀 당연한 듯이 여기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사회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불꺼진 창' 때문이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잠자는 아이디어 깨우기
잭 포스터 지음, 정상수 옮김 / 해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세상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고지식'한 아줌마이다.

근면, 성실을 타고 났지만 창의력, 순발력은 바닥을 헤멘다.

그나마 지구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버티며 온 것이다.

남편은 한 술 더 뜨고, 아들은 거기에서 한술 더 뜬다.

우리 가족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있으면 '문명의 발달'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발명가, 탐험가, 발견가(이런 단어도 있나?)를 존경한다.

 

'재수없으면' 살아내야 하는' 백 살'을 나는 반 가까이 남겨놓고 있다.

새해를 맞으며 '고지식'한 버전으로 살아내야 하는 나머지 생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재방에 있는 책을 살피다가 찾아낸 책이 바로 이것이다.

아마 이 책을 샀을 때쯤에도 답답한 내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글이 우선 짧고 선명하다.

그래서 잘 읽힌다.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나의 굳은 머리를 자주 담궈봐야겠다.

 

그러다가 마음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조지 에이드는 금세기 초에 활약한 다작 작가다. 일전에 그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인터뷰를 한 사람은 그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조지의 작품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댔다. 스타일의 변덕이 심하며, 구성도 탄탄하지 않고, 인물들의 성격 묘사가 피상적이라는 등 매우 버릇없이 비평을 했다. 엄청난 혹평이었다.

하지만 조지 에이드의 어머니는 , 우리 아들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그 애는 쓴답니다

그 애는 쓴답니다라는 그 말은 이 세상의 누가 말한 것보다 가장 멋진 대답이다.

두 단어만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과 스피드의 시대에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구를 떠나지 않은 것은 '그래도' 더딘 걸음으로나마 걷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런 힘겨운 노력을 하는 내가 너무 가상하다. 아줌마 만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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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1-0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고난 근면, 성실만한 무기가 있을까요? 순발력, 창의력은 보너스이고 진짜 비장의 무기는 부지런함이라고 봐요.
'하지만 그 애는 쓴답니다'를 강조하신 뜻을 알것 같아요. 한결같음, 그게 고지식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누가 뭐래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 아닐까, 싶네요.

gimssim 2012-01-06 07:08   좋아요 0 | URL
그래요. 내가 어때서? 라고 말하며 씩씩하게 나아갈 참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김영갑 - 김영갑 5주기를 추모하며
양인자 외 지음, 김영갑 사진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아홉 명의 아줌마들이 제주도에 다녀왔다.
한 달에 한 번, 부부동반으로 남편의 고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었다.
몇 년 동안 우정을 다지며 모임을 가졌드랬는데 어느 날 요즘 아이들 말로 하자면 남자들이 배신을 때렸다.
부인들이 끼여 있으니 저녁식사를 하고 좀 진한(?) 진도를 나가기가 어려웠는지 여자들을 따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남자들의 좁은 소견(내 생각에는 그렇다는 말이다)에 몇 번 모이다가 말겠지, 생각을 했을 터이다. 그런데 이 여자들이 너무 재미있게 모임을 이끌어 오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남자들 모임이 시들해지는 조짐을 보였다.
두해 쯤 지나자 다시 합치자는 것이었다.
물론 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높였다. “아, 됐거든!”
그 여자들이 뭉쳐서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번에 제주도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정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가 보는 것이었다.
김영갑은 1957년 부여에서 태어났지만 제주도를 사랑하여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사진가이다.
그는 루게릭 병으로 갔지만 나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그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있지 못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주의 중산간을 찍은 그의 사진들을 보면 신의 비밀의 문에 들어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영혼과 열정이 부러웠다. 그래서 며칠동안 몸살을 앓았다. 
 생전의 그의 방 

주인장의 인사

그를 기념하며
그를 기념하며 

이 책은 그의 저서는 아니고, 그의 5주기를 추모하며 그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 쓴 글이다.
한 사람을 두고,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꺼낸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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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2-15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는 못 가봤지만,
<그 섬에 그가 있었네>를 읽은 독자로서 그를 사랑합니다~

남편 친구들 부인끼리의 모임이라니 너무 좋은데요. '아~됐거든'에 완전 동감!ㅋㅋㅋ

gimssim 2011-02-15 20:03   좋아요 0 | URL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아껴두고 있어요.
제주도 가시는 길이 있으면 꼭 들려보시기를 ...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아줌마들이랑 가다보니
영 마음 내켜하지 않길래 하루 저 혼자만 빼서 가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모두들 다녀왔답니다.
완전 감동 그 자체였어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함께 걷기에는 조금 힘든

서영은은 <먼 그대>로 나에게 깊이 있게 다가온 작가이다.
사실 이십 대 초반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보다 이삼 십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 읽을 때의 맛이 훨씬 깊다. 이 소설의 저력이다.

그 세월의 중간중간에 산문집을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출간한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결었다』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많이 실망스러웠다.
프로 작가인데 앞뒤의 사족스러운(?) 사실들을 너무 길게 쓰고 있다. 그리고 동행과의 자질구레한 부딪침에 대한 지나치게 세밀한 설명도 거슬린다. 더 심하게 말하면 어느 부분에서 또 어떤 마찰을 빚을까 불안하기조차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부분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그 정도였다면 작가의 성격에 맞게 결별을 하고 혼자서 순례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싶으면 마음속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산티아고의 순례를 통해 절대자의 음성을 듣고 내면의 길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은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해도 ‘유언장’은 좀 부담스럽다.
‘물리적인’ 산티아고의 길은 이미 많은 순례자들로 인해 검증된 길이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꼭 책에서 그런 내용들을 밝혀야했을까 하는 의아함이 든다.
아무리 글로 표현하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내면에 묻어두고 혼자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앞뒤의 사족(내가 느끼기에)을 빼고, 동행과의 부딪침에 대한 알뜰한 설명을 줄이고 순례의 여정이나 내면의 음성에 좀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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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제 블로그 어딘가에,박기영이 쓴 '산티아고 가는 길'과 비교 페이퍼도 남겼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나 봐요.
저도 그 부분이 참 많이 아쉬웠었 거든요~^^

gimssim 2010-11-17 11:40   좋아요 0 | URL
작가의 뜻인지, 출판사의 메케팅인지...
좀 그런 느낌이 있지요?
저는 제가 너무 까다로운가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