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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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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는 <인연>에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오기까지 만난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길 위에서 만난 이름 모를 인연들까지 기억을 떠올리며 따뜻하지만 다소 낮은 톤으로 서술하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슬픔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지만, 슬픔의 손아귀가 너무나 단단하여 우리를 꽁꽁 붙잡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 슬픔 앞에 조금 더 겸허해질 수 있다면 슬픔은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희망의 여린 불빛으로 피어날지도 모른다. p.66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살아가면서 생기는 감정이나 인연은 모자이크이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의 그림을 만드는 모자이크다. 모자이크 조각 하나하나는 작은 개체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그게 필요한 자리에 맞춰 들어갈 때까지 그 가치에 대해 소홀할 수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픔이나 어려움, 고통들도 어쩌면 신이 준비해둔 장치들이 아닐는지. 그래서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 의미와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이 그러하다는 걸 안다. 죽음은 너무나 당황스런 떠남이지만, 오래 기다린 죽음은 그제야 출발하게 되는 먼 여행과도 같을 것이다. 미리 떠나서 긴 시간을 기다려준 사람들의 자리로 고개를 긁적이며 찾아가는 쑥스러운 여행길. p143


   그런 의미에서 최인호의 인연은 그전의 산문들과 많이 다르다. 그전의 산문은 맑은 시냇물의 통통 튀는, 자잘하게 부서지는 경쾌함이었다면 <인연>은 그 시냇물이 건너와 눕는 긴 강의 안도함, 홀가분함, 너그러움이 느껴진다. 경쾌함 대신 삶을 바라보는 원숙한 시선이 자리 잡았다.

 그것은 작가의 연배가 가질 수 있는 세월의 편안함일 수도 있겠고,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을 한번 쯤 정리하고 돌아보아야 하는 작가의 형편과 사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요구되는 힘은 학문에 토대를 둔 이론이나 철학적 담론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심한 삶을 살아낸 보통사람들에게서 도출된, 검증된, 합의된, 그런 작은 지혜들이다.

내 서재에 있는 최인호의 다른 산문집  

저녁이 다가오면 쓸쓸f해지는 짐승은 인간만이 아니라고 한다. 저녁이 오면, 대자연의 모든 식물과 짐승들의 눈빛이 순해지고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외로운 그 눈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p27

최인호의 <인연>은 삶의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밟으며 건너온 자가 쓴 아름다운 자기 고백이다.

담담하고 무심하다. 따뜻하고 그윽하다.

저녁 무렵에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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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 - 그림쟁이 박재동이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들
박재동 글.그림 / 열림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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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도 의사들이 청진기를 쓰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병원에 가면 의사는 아이의 윗도리를 들치고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댔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아이의 가슴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진단을 내렸다.

박재동의 짧은 글과 그림을 보며 그 모습을 떠올린 것은 왜일까. 사회의 구석구석을 조망하는 그의 마음의 눈을 감지해서일 것이다.
박재동의 <인생만화>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한겨레신문>에 '박재동의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그림과 글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그의 그림과 글에는 “진짜‘ 사람이 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잘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미리 예행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밥 먹는 자리에 있으면 그저 슬그머니 다가가서 남은 숟가락을 들고 함께 먹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을 그런 사람이 있다.
또 그의 그림과 글에는 꽃도 있고, 꽃게도 있고, 광어도 있고, 너구리도 있고, 한라봉도 있다.

일어서는 도로를 헤치고 ‘퇴근길’을 지나면 다음날, 황금빛 황홀경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나면 꿈결인양 달빛 데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 박재동은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소외당하고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괜찮아, 넌 날 이길 수없어!’

그리고 또 그림을 따라 가노라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도 있고, ‘부처님 말씀’도 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 남편은 보던 지방 신문을 끊고 그 신문을 신청했다. 그동안 여기저기 숱하게 이사를 다녔지만 신문을 바꾼 적이 없다. 하물며 어느 곳에서는 한겨레신문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배달불가!’의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 늦게 받는 것을 조건으로 신문을 보기도 했다. 하루 늦게 보는 신문이 무슨 신문이람!

사실 이 책에 실린 것은 신문에서 거의 다 본 것들이다. 그러나 한권으로 묶여진 책으로 소장할 가치가 있다. 사진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때로 영감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사고도 노력하지 않으면, 편식하는 사람이 영양불균형에 걸리듯 외곬수가 되기 싶다. 그전에는 앞만 보고, 내 기호와 소신대로 사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여하한 노력으로도 고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큰 강에 어느 정도의 지류가 있어야 건강한 강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끔 별 용무는 없지만 대여섯 집을 지나서 있는 우체국에 간다. 우체국에서 조,중,동을 훑어본다. 대충 제목을 보고 몇 개의 칼럼을 읽는다. 같은 사안을 그렇게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박재동은 세상을 현미경으로 본다. 그리고 망원경으로도 본다. 나는 그의 그림과 글의 힘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을, 사물을, 또 그 사이의 관계에 왜곡이 없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세상이라는 우물에 두레박을 담그고 살아있는 우물물을 퍼내시는 당신께 박수를 보낸다. 






 

 

 

 

 

  

 

 

 

   

욜해 연초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아마 선생의 최근 모습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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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 산문집
이지상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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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서 읽기를 좋아한다.  

내가 가본, 혹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가슴 뛰는 설렘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독한 길치여서, 자동차를 운전해서 다니기는 하지만 갔던 길, 익숙한 길로만 다닌다. 여행자를 꿈꾸기에는 치명적인 결격사유이다.
뒤집어 보면, 그래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여행서 읽기를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몸은 내 집 안에 있지만 마음은 대문 밖의 길에 있다.

자신을 ‘오래된 여행자’라고 지칭하는 이지상은 네 개의 짧은 문장으로 여행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 한다.

떠나다/ 만남과 이별/ 돌아오다/ 다시 떠나다

사실 여행의 큰 흐름은 이것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풍경들과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신의 상념들이 보태어져 하나의 나이테가 되어 남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간결하고 담백한, 그렇지만 가슴의 열망을 조금씩 풀어내는 문체도 호감이 가지만 간간히 내밀고 있는 사진에 더 마음이 간다.
특별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저 그곳의 일상적인 사진들이지만 말로서 풀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말들을 하고 있다.

전문 여행자인 이지상은 ‘떠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지만 생활자인 우리는 돌아 온 이후의 삶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길은 길로서 통하지만 내가 떠난 곳은 결국 그 길의 어딘가에 내가 거하는 지점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떠나는 삶이든 머물러 있는 삶이든 ‘카르페 디엠!(현재에 몰입하라, 삶을 즐겨라)’이어야 하지 않을까.
길 위에서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은 머물러 살면서 느끼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결국 ‘떠남’을 통해서 깨달은 삶에 대한 진정성은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한 또 하나의 ‘비움’ 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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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1-2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행서 읽는걸 좋아해요~. 떠남은 또하나의 비움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 기억할게요,,,어쩌면 인생도 여행에 비유할 수 있잖아요,,,여행은 어쩌면 작은 인생같아요,,,,,우리의 인생도 비움이 늘 전제되어야 하겠죠,,,

gimssim 2010-01-26 20:37   좋아요 0 | URL
유성용의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자>도 구매해 놓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어요. 정말 비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 부터...옷, 그릇, 신발 등등 정리해야 할 것이 많네요.
 
꿈을 찍는 사진관 - 강소천 아동문학전집 01, 단편 동화
강소천 지음, 소천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 엮음, 이은천 그림 / 함께자람(교학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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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소천은 1963년에 작고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이 동화를 읽을 무렵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이 분이 살아계신 듯한 착각이 든다.
마치 동화 속의 순이가 12살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나도 동화 속으로 들어가면 이 책을 처음 읽던 초등학고 저학년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이제 좀 천천히 살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가지고 보니 불현듯 오래 전에 읽었던 이 동화가 생각났다. 어린 나이였던 그 때도 꿈을 찍는다니, 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따스한 봄날, 주인공이 살구꽃 활짝 핀 고향 뒷산에서 봄볕을 쬐며 함께 놀던 순이를 그리워하며 꿈을 꾸는 이야기이다.
꿈을 꾸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꿈도 사람의 마음대로 꿀 수 없는 것이니 애틋한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그 꿈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꿈을 찍는 사진기가 ‘철커덕’ 그 꿈을 찍어준다는 것이다.

추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추억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것은 현재와 잇닿아 있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마치 주인공의 노란 민들레꽃 카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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