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년 전 쯤 텔레비전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 하시는 모습을 뵈었다.
마악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직후인 것 같았다.
평소에도 이 분의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으면 특유의 달변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단한 집중력을 가지게 한다.
신문 보도를 통해서 선생님의 소식을 접한 터라 세기의 지성이고, 거칠 것이 없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잠깐 본 텔레비전에서도 굉장한 설득력으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 그에 대한 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기다렸다.

알라딘에서 신간 안내 메일이 왔다. 바로 주문했다.

그 책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담담한 필지로 내면의 소리를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직선적이고, 분명하고 솔직한 것은 여전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당장에 바뀌는 것은 없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그 영혼은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게 된다. 말하자면 중생이다. 거듭나는 삶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성화의 삶이다. 그 다음이 영화의 삶이다.  한발짝씩 간다. 거기에 절대 월반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다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들을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오른 쪽 아래 귀퉁이에는 이런 그림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주제는 이 그림이 다 말해주고 있다.  
   


책을 읽다가 선생님이 젊은 시절에 자코메티 조각처럼 말랐다는 대목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서재를 뒤져 선생의 20대의 초상을 찾아내었다. 고뇌하는 청년의 모습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유연해 보인다. 

오래 전에 밑줄을 쳐가며 읽던 선생님의 책이다.

 

 

 

  

 

 




 

책의 처음은 교토에서 시작한다.
혼자 있으면서 따님으로 인해 자신에게 바짝 접근하기 시작하는 예수님을 거리를 두고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단상이 잡힌다. ‘골목길의 어둠’, ‘예수님의 옷자락 소리’ 같은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각본은 너무 치밀하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꼭 맞는 방법으로 접근을 한다. 사유하고, 분석하는 것이 주특기는 선생님에게는 예수님은 그렇게 '작업'을 거신다. 좀 단순무식한 분들은 다리나 팔 하나 정도 부러뜨려 놓으실 지도 모른다. 딸의 고난의 삶을 통해서 '아버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셨다. 이것은 예수쟁이로서의 나의 고백이다.
딸이 거의 맹목에 가깝게 믿는 '영' 의 아버지와 자신인 '육'의 아버지에 대한 사유 내지는 분석에서 진도가 많이 나갔다. 그런데 몸이 서울로 돌아오면서 그의 내면의 울림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서울에 돌아와 나는 옛날의 나로 돌아와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내가 먹을 법을 내 손으로 지어먹거나 쌀자루를 메고 밤길을 걸어 빈방을 찾아가는 그런 허망한 일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117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원위치가 아니다. 그 영혼에 신의 흔적은 남아있다. 우리가 결핵을 앓고나서 나아도 그 흔적이 남듯이 우리 영혼에도 흔적이 남는다. 

잠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회의 모습도 언급되어 있다.

한국의 어떤 교회가 이렇게 초라하고 가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도 그들은 모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달 라고 빕니다.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아이나 어른이나 늙은이나 젊은 사람이나 살찐 사람이나 야윈 사람이나 엎드려 기도를 드립니다. 122 

따님을 따라서 가본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교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의 교회는 ‘교회이기주의’ ‘물량주의’, 더 나아가서 ‘예수’ 가 없는 교회로 지탄 받고 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실 때에 말구유에 몸을 누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가장 낮고, 힘 없고,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다. 더 낮아질수 없을 만큼.
지금, 우리 사회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낮은 자를 높이고 한껏 높아있는 자를 낮출 것이다.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의 법칙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여지게. 

아마 이런 문제들이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하고, 예수님의 지상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요인일 것이다.
그런 머뭇거림이 책에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가슴이 폭발하는 기쁨과 함께 가슴이 천근 무게로 철썩 떨어지는 불안을 동시에 느꼈지요. 망막박리로 실명하리라던 민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빛을 잃지 않게 되었다 하니 그랬고 또 다른 면에서는 민아가 실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내 여생을 바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26

그리고 선생님이 고뇌하는 인간다운 모습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아는 사람들과도 사랑을 제대로 못한 내가 어떻게 영성을 지닌 낯선 것들과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방황하게 하소서. 내 거처를 찾을 때까지 길에 노숙자로 버려두지 마시도 옛집 뜨락에서 조금만 더 머물 수 있도록 하락해 주소서 136

성 어거스틴도 회심하고 기독교에 귀의하고자 작정하면서 이런 절규를 했다하지 않는가.
‘나를 온전하신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소서. 그러나 아직은 마소서, 아직은 마소서’ 

   


책은 이렇게 5부로 나누어져 있다.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293 

선생님은 이렇게 지금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지만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행보가 기대된다. 

4부는 선생님의 딸 이민아씨의 간증으로 되어있다. 고난을 통해서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모든 주제는 이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0-03-1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참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gimssim 2010-03-15 20:36   좋아요 0 | URL
좋게 읽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진짜' 예수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0-03-1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쟁이 -를 붙이는 말이 좋지 않은 말인데(비하하는 말이라서) 저도 글쟁이란 말이 좋습니다.
진짜 글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

gimssim 2010-03-19 13:50   좋아요 0 | URL
'~쟁이'는 어느 분야에서건 '프로'에게 붙이는 말이 아닌지요.
한 번 알아볼 참입니다.
그러거나, 아니거나, 저는 예수쟁이, 글쟁이, 사진쟁이...로 갑니다.ㅎㅎ
 
기적의 기도 : 당신의 모든 기도가 응답 받는 - 개정판
김점옥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1월
절판


처음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은 채 그 원인을 찾다가 함정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처음부터 문제의 이유를 설명 받고 기도하려는 유혹을 피하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도 일단 마음속에 묻어두라. "왜?" 라는 물음은 우리를 하나님께 다가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29쪽

우리는 기도 응답의 다른 기초를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을 행함으로 얻는 율법에 기초를 두고 얻는 것이 아니다.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를 두는 것이다.
-40쪽

예수님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신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뜻이다. 이 관계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시작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며, 기도 응답을 확신하는 기초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하고 찾고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리는 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41쪽

예수님은 기도를 한낱 필요한 것을 구하는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을 근거로 그분의 모든 은총들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하나의 징표로 설명하고 계신다. 결국 기도한 구원받은 백성들의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한 언약적 의무이다.
-47쪽

우리는 또한 기도가 단지 하나님께 무엇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죄와 사탄과 싸움을 치르는 전쟁임을 알게 된다.
-99쪽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오는 것은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역상이다. 인간의 본성은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한다. 기도는 오직 성령의 감동과 감화 없이는 우리의 생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103쪽

사실 오늘날 우리의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응답받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통해 기도 제목을 정하는 영적인 신중함과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120쪽

자신의 기도 제목에 대해 강한 확신을 얻어야 한다. 자신의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며, 자신의 신앙 성장에 유익이 된다는 확신으로 가득해야 기도 응답의 확신을 소유할 수 있다.
-122쪽

처음부터 사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내놓기 보다는 자신의 가치 판단 없이 문제의 사실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이 감동하셔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향으로 기도의 제목을 정하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의 가치 판단을 하나님이 하시도록 그 권한을 위임해 드리는 것이 겸손한 기도의 출발점이다. 마치 자신이 문제의 답을 아는 것처럼,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내놓은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126쪽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안정감이 있고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의 기초와 근거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154쪽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읽지 않고, 믿지 못하는 게으름과 불신앙 때문에 우리에게서 기도가 사라지고 있으며 응답의 확신이 없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도란 있을 수 없다
-168쪽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생각에 평강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생각은 마음과 달리 어떤 노리나 목적이나 체제를 가진다. 이것은 자신이 세운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나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으며, 신학적으로 옳은지, 자신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실제적인 유익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 보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에 논리적인 모순이 없어야 평강이 찾아온다.
-172쪽

사탄은 성도를 유혹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호소하되 하나님의 사랑과 원래 목적을 의심하게 한다. 그 말씀으로 인해 넘어지게 만들고, 말씀을 기도 제목으로 삼아 잘못된 기도를 드리도록 역사할 수 있다.
-181쪽

우리는 하나님이 그 분의 목적애 따라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232쪽

하나님은 이 목적에 맞을 때 그것을 ‘선’(good things)이라고 부르신다. 이 개념은 단지 인간이 행복하게 된다든지, 물질적인 축복을 누린다든지, 육체적인 건강이나 성공을 얻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선은 오직 하나님의 목적과 기준에 맞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역사하신다는 뜻이다.
-232쪽

모든 성도는 주의 선하심을 기대하고 환영하고 갈망한다. 그런데 모두들 한 가지 커다란 오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선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을 선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관점과 맞을 때 선이 될 수 있으며, 원래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된다.
-23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cm 예술
김점선 지음, 그림 / 마음산책 / 2002년 7월
품절


온몸으로 살다가 간 그림쟁이 김점선을 알아가기 위한 길잡이 같은 책이다.
사방 10cm 그림 64점으로 통해 그녀의 삶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그 많은 그림 중에 오늘 나는 이 그림에 마음이 간다.
<만세를 부르자>
나의 시각, 나의 생각으로 바라본 사회를 향해 나도, 오른쪽 빨간 스웨터와 팔랑팔랑 봄빛 연두색 치마를 입고 천사의 날개가 달린 '김점선'이고 싶다.
그러나 '사대 강'도, '세종시'도, '대학등록금'도, '복지국가'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도 다 '빵꾸똥꾸'이고 '꾸질꾸질'이다.
오늘의 나는 검정색 상복의 '김점선'이다.

나의 마음의 동지였던 '김점선'은 갔다.

그래서 나는 '김점선'이 그립다.

사진 파일을 뒤져서 다른 사진 하나를 찾아냈다.
'김점선' 이 외롭지 않도록.
만세를 부르는 여신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0-03-10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대학로에서 김점선님의 컴퓨터 그래픽 작품 하나 사서 걸어두었습니다.
장영희 교수님 책 축복에 나왔던 그림....
저두 그립습니다.

gimssim 2010-03-10 22:45   좋아요 0 | URL
김점선님, 장영희님...
참 대단한 분들이시죠?
장영희님의 <내 생애 단한 번만> 책에 실린
<하필이면>이란 수필을 좋아합니다.
참 긍정적이고 따뜻한 분들입니다.

비로그인 2010-03-1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십견으로 그림을 그만두어야 했지만 컴퓨터로 고집스럽게 그림을 그리던 분이죠?
김점선님 그림에 대해 뭐라 말할 능력은 없지만, 그 열정과 타고난 의지는 정말 높이 사고 싶더라고요.

다시는 뵐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그나저나 중전님 처음 뵙죠? 인사드려요 (_ _)

gimssim 2010-03-10 22:48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는 초기 작품을 잘 못봤고
컴퓨터로 그린 그림들을 먼저 만났어요.
저는 그저껜가 바람결님의 서재를 방문한 기억이 납니다.
정식으로 인사 드립니다. 꾸벅^^
좋은 봄, 되시기 바래요.
 
따뜻한 슬픔 - 조병준, 사진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2008년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장바구니담기


조병준의 사진과 짧은 글은 많은 암시를 준다.
우리의 삶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을 찍어서 마음 속에 감춘다.
그것들이 쌓여서 도저히 감추어지지 않으면 조금씩 조금씩 내어놓은다.
그리고 그것은 따뜻하게 변해있다.
느끼는 것은 나의 몫이다.

사진은 시간의 풍경이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고 삶의 여운이 녹아있다.
떠 있는 많은 배 들 중에 하나.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어부의 뒷모습에 눈이 간다.
마음 따뜻해지지만 다른 한 켠은 아리다.

사진은 말이다.
삶의 지도이다.
내가 가야하는 길, 건널목은 어디있까?

사진은 간구다.
마음 속의 외침을 그대로 전한다.
여인의 깊은 고독은 그대로 기도가 된다.

사진은 맹목이다.
신은 내 속에 들어와 있고
나는 세상 속에 있다.
그것은 십자가이다

사진은 길다.
오랜 세월이다.
나무도, 사람도 끝이 없다.

사진은 소리이다.
영혼의 귀를 열면
두 모자의 나직한 대화가 들린다.

사진은 문이다.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단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사진은 슬픔이다.
영혼의 정화작용이다.
그래서 온기가 있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어깨를 기대면
그러면 슬픔도 따뜻해진다.
때로, 슬픔도 힘이 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0-02-2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우리 교회에 다니시는 교인의 남편 되는 분을 떠나보내고 왔다.
아내인 할머니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셨지만 할아버지는 문중과 동네사람의 시선들, 말년에는 작은 배로 생계를 이어갔기에 뱃사람 특유의 무속적인 것 때문에 신앙이 제대로,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고 황망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할아버지도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응급실로 갔었는데 수술 도중에 사망하셨다.
그리고 3일장을 치렀는데, 화장장에 도착하여 잠시 예배를 드리고 저편의 세상 속으로 사라지기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으로 오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우선 성인이 되기까지 자라나야 하고, 남녀가 만나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결혼해야 하고, 생명을 잉태해야 하고, 그리고 열 달을 기다려야 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죽음은 순식간의 일이다.
그리고 그 가족과 이웃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삶은 연습이 없다. 마찬가지로 삶의 마지막 과정인 죽음도 연습이 없다.
우리는 2박 3일의 여행을 떠나도 며칠 동안 준비를 한다. 하물며 인생의 마지막을 살고 나면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1000명이 넘는 말기 환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쓴 책이다.
죽음 앞에 선 환자들의 마지막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후회’들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았더라도 주어진 시간의 마지막에 서면 후회가 없을 수는 없다.
그 누구의 삶도 크고 작던 간에 후회의 조각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삶의 굽이굽이에서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의 지표를 마련할 수 있다면, 정말 인생의 끝자락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다 하는 후회를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스물다섯 가지의 ‘후회’들은 물론 우리들이 다 아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아는 것만으로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점검하고 그래서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교회의 할아버지도 그리 짧지 않은 75세의 삶을 사셨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에 남은 가족의 슬픔은 클 수밖에 없어 보였다.
할머니도 참 열심히 세상을 살아오셨고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친지들에게, 이웃에게 덕을 끼치며 사셨다. 남편에게도 참 잘 하신 분이다.
그런데도 화장장 벽에 머리를 찧으시며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갑자기 갈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할 걸, 좀 더 잘할 걸.” 하며 안타깝게 우셨다.

작가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모든 일을 지금하세요. 바로 지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0-02-1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멘토 모리!! 저도 지금까지 인생은 되는대로 살았어서 앞으로 남은 반평생을 잘 준비하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네요~. 하지만 작가가 쓴 마지막 쳅터처럼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다면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그 안에 그가 말하는 다른 24가지가 다 포함되는 듯 해서요~.^^;;;

gimssim 2010-02-18 17:21   좋아요 0 | URL
지난 연말 동창 모임에 갔더니 제 옆에 앉은 한 친구가 말했어요.
"얘, 우린 재수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
모두들 우리가 살아야 할 백살에 동의하는 얼굴들이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이들도 다키웠고, 남편도 더 키울 것 없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좀 마음이 무거웠어요.
앞으로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2010-02-1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8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