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진짜 문학을 읽는다. 번역된 외국소설인데도 맛깔나는 문장이 가득해 한 자 한 자 놓칠세라 문장을 꼭꼭 되씹는다.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설 때문에 체코어를 배워볼까. 소설을 늘 읽지만 요즘은 '문학'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주인공 한탸의 생각과 몸짓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공감할 만하다. 다른 이들이 볼 때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삶처럼 여기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그저, 좋아하는 책 속에나 파묻혀 살라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내내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사로잡히다' 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또 읽는다. 읽어도 계속 읽고 싶다. 내용이 짧은 것이 못내 아쉬워 자꾸만 손이 가는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바로 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문장들이 있는데 이 소설의 모든 문장이 그렇다. 맹렬히 달려드는 파리떼를 묘사한 문장이 유독 눈에 띈다. "폭풍우 속에 버티고 선 버드나무 가지들처럼 얼굴을 후려치는 푸르뎅뎅한 파리떼를 잽싸게 몰아냈다." 이 글귀를 읽는데 기형도 시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늙은 압축공의 삶이 이토록 매혹적일 줄이야. 본디 노동이라는 게 중독적인 맛이 있기는 해도 눈부신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비참하기 짝이 없는 열악한 환경을 즐길 자신은 없건마는. 제일 좋아하는 것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까울쏘냐. 기꺼이 나를 내어주마. 해온 한탸의 반복된 서른 다섯 해 노동에 경의를 보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내 무엇을 내어줄 수 있을까.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화를 내고 불이익을 받으면 달려들어 따지고 드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여기저기에서 쌈닭처럼 쪼아대고... 그러고나면 곧 허무해지고 만다. 


최근에 '심봤다!' 는 기분에 이것이 필시 꿈인가본가 실감이 안 날 만큼 신나는(?) 곳, 인문학 공부방에서 만난 이들이 날 보자마자 묻는다. 내가 막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스스럼없이 묻는 것일텐데...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게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다며 철없이 떠들어대는 일 말고 다 재끼고(?) 하나에 걸어볼 무엇을 여태 찾지 못했다. 한탸처럼 질기게 그것만을 찾아 미치게 사랑하고 싶어라. 이것저것 여기저기 깔짝대는 방황(?)을 끝내고 그러려고 태어난 것 아니냐. 할 만한 것을 찾아 그놈(?)에게 빠져볼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모마일 2017-03-1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제목이 독특한데다 언론, 독자평이 좋아서 구매한 책이네요. 늙은 압축공의 삶에 한번 빠져봐야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7-03-18 23:45   좋아요 0 | URL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ㅠㅠ
 
낙원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존속살해 기사를 봤는데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고 댓글 1위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집에나 개새끼가 태어난다.' 이 댓글에 '좋아요'가 수 백개가 달려있었다. 내 60세 절친과 통화하면서 이 얘기를 하며 서로 공감했다. 둘 다 가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곡절 많은(?) 가족사를 거쳐온 까닭에 서로의 핏줄에 끼어있는 개새끼들 얘기를 하며 키득거렸다.

 

가족이어서 이해하기를, 용서하기를 강요받아 온 시간과 고뇌가 지금와서 보면 우리 형부네 동네(전주) 말로는 '머더러' 이다. 형부의 아내인 언니말로는 '멀라고' 이고. 그러게 뭘 그리 참으며 가슴 속에 켜켜이 묻어뒀는지. 8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바로 위 언니와 이런 얘기들을 곧잘 주고 받는다.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인 나는 잘 참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더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내내 견뎌온 언니가, 이제는 속끓여가며 싫은 사람과 굳이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용케 잘도 지내왔다고, 그래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머리로는 나와 네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수행하고자 하나, 우린 뭐 부처도 성인도 아니니. 가족이라는 굴레로 코뚜레를 씌우는 이데올로기(?)에 그만 엮일란다.

 

이 책은 어느 집에나 태어난다는 개새끼 얘기다. 직접 단죄하는 것이 옳은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가.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강자에게 친하기 마련인 법 따위 너나 먹으라며 내 손으로 해결하려 들 듯싶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부모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너끈히 이해된다. 낭만적(?)인 누군가는 10대의 교화가능성을 주장하겠지만 성장통을 끙끙 앓는 중2병이 아니라, 악랄하기만 한 중2병은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 일명 미미여사 소설은 늘 조금씩 부족한 느낌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재미 마저 적다. 그리 길지 않은 얘기를 너무 길게 늘여놓은 듯하다. '낙원'이라는 제목도 그다지 와닿지 않고. 작가의 말에 뭐라고 나와있긴 한데 공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어디에도 없는' 곳을 말하기 위함일까.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주인공이 성경에 나오는 낙원 얘기를 슬쩍 들이미는데 이또한 뭐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야기의 발단이 된 히토시의 초능력(?)과 히토시의 엄마 도시코라는 인물이 마음에 든다. 그러고 보니 도시코 집안에도 개새끼가 있구나. 하아, 어느 집에나 있는(물론 없는 집도 있겠지) 강렬한 존재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병원에 안 오고 그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이 들어맞는 모순된 현실이여.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3-04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9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4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9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17-03-0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만큼 따분했던 작품이었다는...ㅠㅠ

samadhi(眞我) 2017-03-05 04:52   좋아요 1 | URL
다작하는 작가들이 대충 쓴 듯한 느낌이더군요.
책을 내기만 하면 팔리니까.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 선재 스님의 삶에서 배우는 사찰음식 이야기 선재 스님 사찰음식 시리즈 2
선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사면 띠지부터 떼어내는데 이 책은 선재 스님 사진이 있어 차마 떼어내지 못 하였다. 책을 보다가 어느덧 띠지가 위로 올라갔는데 띠지 있던 자리에 예쁜 그릇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엔 탐스럽고 귀여운 무랑 버섯 그림이 있고. 푸릇한 풀을 배경으로 한 스님의 웃음이 푸르다.

 

스님의 얘기가 뭉클해 책을 읽다보면 이쪽 저쪽에서 눈물이 와락 터져나온다. 안 그래도 눈물 많은 수도꼭지인데 나이가 들어 그런지 부쩍 울음이 잦다. 마음을 살짝만 톡 건드려도 구멍난 둑처럼 눈물이 샌다.

 

홍신자의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무슨 일을 하든 그 한 가지 일에 온 마음을 써서 집중하라고.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는 일만 생각하라고. 선재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러하다. 불가에서 말하는 'Vipassana' , 호흡을 의식하라는 말. 언제나 깨어있어 지금을 살라는 가르침.

 

얼마 전 괴물쥐라 불리는 뉴트리아 쓸개즙에서 곰 보다 2~3배 많은 웅담성분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뒤 뉴트리아 포획이 늘어나 동이날 지경이라고 한다. 이러다가 생태계 파괴를 일으키는 뉴트리아를 사육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몸에 좋다면 어떤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의 행태에 씁쓸해 하며,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게 아니라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스님의 말씀에 새롭게 공감하였다. 스님처럼 모두가 욕심없이, 지혜롭게 살 수는 없을까.

 

며칠 전 처음으로 대장 내시경과 위 내시경 검사를 했다. 위 내시경 검사는 한 끼만 먹지 않고 바로 할 수 있었는데 대장 내시경 검사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다. 두 번 했다가 사람 피 말려 죽이겠다. 전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에 설사약(관장약)과 물 2L를 30분 간격으로 2시간 만에 먹고 장을 비워내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건강염려증인 내 우려와 달리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와 남편이 "거 봐. 아무 이상 없다잖아." 라며 잔뜩 핀잔을 주었다. 음식이 삶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시간이다. 평소에 식이조절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왔다면 굳이 고통스러운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혀로 느끼는 입맛에만 유독 가탈하게 구는 어리석음을 되돌아본다. 여기저기 맛있는 곳만 찾아다니려 하는 내 안 가득한 욕심을 들여다보고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채우려 한 것인지 살핀다. 음식이 삶의 바탕이고 인생이고 수행임을 깨우쳐나가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새긴다.

 

조용히 앉아 명상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 깨끗한-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음식을 정성껏 조리해 천천히 맛보며 먹는 것도 수행임을 잊고 산다. 현대의 속도에 따라 급하게, 빨리 바로 입에 털어넣을 수 있는 음식을 반성없이 먹어치운 내 몸에게 미안해하며 다독인다. 자연을 닮아 햇볕 담은 음식을 시간을 들여 조리하고 꼭꼭 씹으며 음식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모든 여정과 수고에 감사를 보내는 마음도 수행이다.

 

1년 과정이라는 선재 스님 사찰음식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 사찰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에 깃드는 병을 살펴보고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은 수행이다. 음식도 수행이다. 먹으며 도닷가보리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2-2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5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7-02-25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장내시경 그건 참 ㅠ 고생많으셨어요.
먹는게 건강을 좌우한다는 걸 저도 새삼 느낍니다. 선재스님의 사찰음식... 저도 관심이 부쩍 생기네요..

samadhi(眞我) 2017-02-25 11:13   좋아요 0 | URL
대장 내시경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자연식 먹고 많이 움직이고 병원 근처로 가지 말기를 권합니다. ㅎㅎ
 

보트다: 물이 말라서 없어지다(전남)


거의 3주째 잠 못 자고있다. 안 그래도 물기없는 피부가 푸석해지고 여기저기 쑤시고 결린다. 거의 이십 년을 불면이 나를 좀먹는다. 어쩌다 며칠 잘 자는 행운(?)에 잠시 마음을 놓으면 금세 불면이 불청객처럼 여어~! 하고 찾아온다. 이 밉살스런 손님(?)이 친한 척 다가올 때마다 저항하지 못하고 나를 내어주고 만다. 그렇게 오래 불면을 앓았으면서도 낫는 법을 조금도 배우지 못했다. 시나브로 물러가기를 빌어볼 밖에...

오랜 연구와 노력으로(?) 잠 좀(?) 잘 자는 남편은 내가 자려고 애쓰지 않는다며 수면법 강의를 해보지만 그게 잘 안 먹힌다.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겹치고 겹쳐서 의식이 또렷해진다. 그러다보면 힘을 줘 눈을 꼭 감고 인상은 찌푸려지고
잠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잠이 깨버리니 이럴 때는 책 읽을 생각을 버리려 한다.(그게 잘 안 되긴 하지만)

대학 때, 동아리방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선배가 가르쳐 준 노랫말이 앞부분만 맴돌아 기억해내려 기를 쓰다 없던 잠이 더 달아났다. 비장한 노랫말이 새겨져 많이도 불러댔던 그 노래가 정호승의 시였음을 뒤늦게 안다. 기를 쓰고 누워 참다참다 분연히(?) 일어나 찾아보고는 노랫말이 다 기억나 속으로(옆에서 색색 자는 낭군님 깰까봐 소리내지 않고) 입술을 달싹이며 불러본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정호승, 부치지 않은 편지

잠 다 잤다. 그대(잠) 잘 가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모마일 2017-01-08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김광석 가수의 부치지 않은 편지 가사가 정호성 시인이 원작시였네요. 좋아하는 노래라고 자부해놓고 원작자도 몰랐다니...ㅜㅜ 시가 운율이 아름다워서 노랫말로 많이 쓰이나 봅니다.

samadhi(眞我) 2017-01-08 12:42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저도 이제 알았지 뭐예요. 김광석이 썼거니 생각하고, 역시 김광석 그러면서요.ㅎㅎ 정말 오래 전에 부르고 잊고 지내던 노래였는데...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요한 게 또 뭐가 있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지식쇼핑 검색에 들어간다. 낮은 가격순으로 검색하며 파는 곳마다 들어가 상품평을 꼼꼼이 읽는다. 꼭 필요한 물건인지 따져보지 않고 금방 혹해서는, '나중에라도 쓸거니까 사자' 하며 '구매하기' 버튼을 누른다.

 

보통 사람들보다 가구를 몇 개쯤 적게 가지고 있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가진 게 좀 적다고 으스대면서. TV와 소파를 가져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침대와 장롱 없이도 지냈는데 아랫녘으로 이사오면서 언니가 사줬다. "공간만 차지하는 침대가 싫어" 했으면서 이제는 "침대 없이는 잘 못 자" 게 됐다.

 

야구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야구하는 계절이면 날마다 컴퓨터로 야구중계를 본다. 그때마다 남편이, "소파에 누워 커다란 화면으로 야구를 본다고 생각해봐, 신나겠지?"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한다.  "고. 화. 질!" 이라며 한번 더 강조하는 남편에게 하마터면 넘어갈 뻔 한 적이 많았다. 책 말고는 더이상 소유물을 늘리는게 두렵고 싫어 버텨왔지만 야구 생각만 하면 흔들리는 이 마음을 어이할거나. 야구에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소유의 다른 모습일 수 있음을 안다. 그래도 아직은 사는 재미마저 내던질 자신이 없으니 이건 그대로 두자.  

 

이 책을 읽다 말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무얼 줄여볼까 궁리한다. 이 책을 워낙 여러 번 읽어서 읽을 때마다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준 물건이 꽤 된다. 그만큼 새로 생겨난 물건들이 조금씩 늘어나기도 하지만 물건을 줄이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조금 전에도 엄마께 드리려고 안 쓰는 살림살이와 장식용 책을 모으는 친구에게 줄 책 몇 권을  주섬주섬 챙겨두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정리정돈을 하거나 뭔가 버릴 것들을 찾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대, 이 책의 마력을 믿슙니까?'    

 

물건씨의 집세까지 내지 말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놀랍고 신선하다. 이건 생각도 못해 본 일인걸. 집안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 '무엇'의 몫까지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니. 없어도 되는 물건을 줄이고 나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휑하게 넓어지겠다. 작가가 더 좁은 집으로 이사했다는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 나도나도! 그래야지. 해보지만 이 놈(?)의 책.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르는 책욕심을 어찌할거나. 책을 사서 쟁여두고도 또 새로운 책에 눈독들여 보관함에 담아두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하다 기어이 사고 만다.

 

언제부턴가 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게 되었다. 있는 책이나 다 읽고 사라는 남편 잔소리를 뒤로 하고 어느새 새로운 책을 고르고 있다. 촌스러운(?) 구닥다리라 전자책은 눈에 안 들어와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 맛 이라며 책을 끌어안고 쓰다듬는다. 책장 가득 꽂힌 책들을 훑으며 흐뭇하게 씨익 웃는다. 이 애욕(?)덩어리를 언젠가 처분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작가가 인용한 스피노자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법정스님이 지내시던 산골오두막으로, 소로우가 머물다 간 월든호숫가로 달려가고 있다네. 

 

그러고보니 '보관'이라는 개념도 깨져버렸다. 냉장고를 비워야겠다. 곧 쓸거라며 쌓아두고 쟁여두기를 당연하게 여겼는데 '지금', '바로' 쓰지 않을거라면 '쓸데없는' 짐이 될 뿐이다.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면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거잖아.

 

이 작가 솔찮하시(전라도 말로 굉장하다는 뜻)! 소유가 불필요 함을 딱 들어맞게 쉽고도 분명히 말한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해 무심코 행동한 일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버리고 나서 행복을 찾은 작가가 구하는 단순한 삶이 수행과도 닿아 있어 가만히 눈을 감는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행복하자 2017-01-06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도 비어있고 옷장도 비어있고 그릇
장도 거의 비어있는데 집이 항상 꽉차 있어요. 책상. 책장. 책... 그리고 덩치 큰 애들... 텅 빈 집에서 살고 싶어요 ㅎㅎ

궁극적으로 비워야 할 건.. 제 머리 속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samadhi(眞我) 2017-01-06 08:07   좋아요 0 | URL
냉장고 옷장 그릇장 비어있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럽네요.

텅 빈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려 용을 써야겠어요.

지금행복하자 2017-01-06 08:11   좋아요 0 | URL
ㅋ 냉장고가 비어있어 아이들이 먹을것이 없다고 투덜대요~ ㅎㅎ
냉장고속 음식 하루이틀 지나면 결국 안 먹게 되요~ 몇번 버리다보니 안 채우게 되더라고요~

samadhi(眞我) 2017-01-06 09:20   좋아요 0 | URL
‘이건 뭐 사람을 키우는지 소를 키우는지...‘ 하게 되는 식신들이겠네요. 한창 자랄 때라 ㅋㅋㅋ

울언니도 날마다 10대 짐승(?)들을 사육하며 자신도 마구 먹어댄다고 합디다.

버리다보니 자꾸 채우지 말아야 하는데도 음식물을 채워넣고 또 버리는 무한지옥에 빠져서 못 헤어나오네요.
버리기 귀찮아서 쌓아두는 것도 있고요. ㅋㅋ

yureka01 2017-01-06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미니멀라이즘^^..

samadhi(眞我) 2017-01-06 08:59   좋아요 2 | URL
단순 명쾌하지요.

겨울호랑이 2017-01-06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TV를 치웠더니 여러모로 얻는게 많네요.^^: 이것도 단순하게 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ㅋ

samadhi(眞我) 2017-01-06 10:02   좋아요 2 | URL
TV에 정신을 빼앗기게 되는 게 싫더라구요. 우리집에 티비 없는 거 알고 남편 선배가 자취할 때 쓰던 걸 줬는데 연결도 하지 않고 처박아 두다가 자취하는 남편 친구에게 줬답니다.
참, 수신료도 안 내구요.
한동안 자동으로 빠져나갔던 거 한전에 연락해서 받아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1-06 10:07   좋아요 2 | URL
문장에서 주어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ㅋ제가 실수 했네요 저희 집도 TV 를 치웠답니다. 그래서 samadhi님 의견에 적극 공감합니다^^

samadhi(眞我) 2017-01-06 10:09   좋아요 2 | URL
연의 때문에 마음먹으신 것 같은데 연의가 처음엔 서운해하지 않았나요? ㅋㅋ 아님 아빠가 더 많이 놀아줄 수밖에 없으니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겨울호랑이 2017-01-06 10:14   좋아요 2 | URL
^^: 아이들은 아직 습관이 되기 전이라 적응도 빠른 것 같아요. 밖에서 신나게 놀지요. 정작 타격은 저와 아내가 받았다는 ㅋㅋ

samadhi(眞我) 2017-01-06 10:16   좋아요 2 | URL
눈에 선하게 그려져요. 쩔쩔매는 두 분을 보며 천진하게 웃음터뜨릴 연의의 모습이 ㅋㅋㅋㅋㅋ
욕보시네요.

samadhi(眞我) 2017-01-06 10:22   좋아요 2 | URL
참, 호랑이님이 실수하셨다고 생각 안 했는데요. 잘 알아묵었^^거든요. 오히려 제 댓글 때문에 그렇게 느끼셨으려나 싶네요.

겨울호랑이 2017-01-06 10:22   좋아요 1 | URL
^^: 쓰고 난 후 읽어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듯해서요^^: samadhi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samadhi(眞我) 2017-01-06 10:41   좋아요 2 | URL
네. 연의아버님도 불타는 금요일에 연의랑 뜨겁게 놀아주세요. 고생하실 게 뻔한데 제가 너무 심하게 놀려대는거죠? ^^
호랑이님이 그림을 그리신 이유를 알게 됐네요.

하나 2017-01-0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속도와 책 사는 속도의 차이 저도 요즘 느끼고 있죠... ㅎㅎ 정말 못내려놓을 책... ㅎㅎ

samadhi(眞我) 2017-01-06 10:10   좋아요 0 | URL
멍하게 있다가 속수무책 당해버린 느낌이에요. ㅋ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