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동 사람들
박건웅 지음 / 우리나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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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와 내용 모두에 있어 ‘어둠 속에서 빛을 파내는’ 박건웅 작가의 신작이자 대작. 이승만 정권 시기 군경에 의한 금정굴 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한 추모와 정명 회복의 마음을 담았다. 죽어 있는 이의 꿈과 삶(역사), 살아 있는 이의 꿈과 삶, 다시 죽어 있는 자의 삶(오늘)을 오가며 ‘미스터리’와 ‘추적’, ‘환타지’의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쌓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담백하면서도 분명하게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작가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안타까운 역사의 ‘진실’은 많은 경우 말과 기억으로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권력과 자본과 패권의 논리는 이를 흩어버리거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끊임없이 내몰려고 한다. 비록 작은 저항일지라도, 말과 기억를 이미지와 글로 만들어 가시적으로 보존하고 또 다른 이들의 기억에 전승될 수 있도록 이야기로 만들어 표현해내는 일은 참으로 값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역사와 기억은 결국에는 행동과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분단과 전쟁과 학살로 인해 희생된, 지금도 희생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하나하나의 사연을 가진 소중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생활 또는 권력의 이름으로 이러한 이들과 사건을 잊도록 강요하는 모든 것들에 맞서 인간다운 마음을 지키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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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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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저널리스트이자 만화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정수란 옮김, 2012, 글논그림밭). 지금의 사태를 제대로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책이다. 절판되었을뿐더러 중고책도 구하기 쉽지 않다. 빨리 보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는 게 좋다.
- 원제는 FOOTNOTES IN GAZA(2009). 소위 주류가 ‘각주’로 다뤄버린, 하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팔레스타인 가자 사람들의 뜨거운 독립 의지와 투쟁, 희망과 기쁨, 절망과 슬픔, 용기와 고뇌 등 모든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역사의 중요한 자리에 기록하고 더 알리겠다며 발로 뛴 작가의 의지가 담긴 제목이다.
- 현재(2002~2003년)와 과거(1956년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와 라파에서의 학살)가 교차하며 내용이 진행된다. “그때가 더했나, 지금이 더하나”라는 소챕터 제목처럼, 이스라엘(과 미국)의 잔인한 가자 지구 봉쇄라는 현재와 과거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잇닿아 제시된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인티파다의 피가 흐른다”는 외침이 어떠한 역사적 연원을 지니는지, 그것이 왜 정당한 것일 수밖에 없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저자가 묘사한 상황이 유지, 악화되며 20년의 시간이 더 흐른 게 현재다).
- 저자의 현지 조력자인 아베드, 칼레드, 하니, 아슈라프는 하마스라고 볼 수는 없고, 진보적 PLO 정도로 성향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비교하자면, 민족주의자에게서 사회주의자로, 장년에서 청년으로 주도 세력이 바뀌어 나가던 1920년대 초중반에 일종의 가교 역할을 했던 성향의 인물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중 칼레드는 수배 중으로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겪는 일상 속에서의 수많은 고통들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난데없는 사격, 가옥 파괴(여러 의미로 집은 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공간이다), 검문으로 인한 교통 체증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이른바 ‘땅굴’이 왜 생겨날 수밖에 없고, ‘무장투쟁’이 왜 점점 더 격화되는지 알 수 있다.
- 저자는 당시 방식의 무장투쟁에 대해 긍정하는 듯 보이지는 않으나,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그보다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여러 삶과 목소리 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동시에 이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부정적인 현실과 구조적인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 1956년 학살에서는 4.3, 노근리, 골령골, 광주 등 우리의 현대사 속 사건들의 여러 장면들과 겹치는 상황과 장면 들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폭력 검속과 발포로 특징지어 지는 가자에서의 ‘역사적 사건’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저자는 사태의 본질을 온전히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오래된 일은 오래됐기 때문에, 정치적 논쟁에 덜 휘말리며 명확한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
-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저자는 비록 특유의 자조적인 어투로 자신의 부족함(또는 위악)을 드러내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성의 있는 태도로 대했다.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환했던 그들의 말을 옮기고 그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 있어서, 저자 스스로의 직업 윤리를 최대한 동원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기 때문에, 이들 하나하나를 생동하는 사람으로 그려냈다는 점 자체가 저자의 노력과 윤리성을 보여준다).
-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남으로써,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이스라엘의 학살과 전쟁 범죄를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하며, 지금의 전쟁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외치게 만드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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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2-2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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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읽어냈다. 이 탁월한 역사서는 지금까지 참 많이 오독되어왔구나(이 책의 ‘제목’은 그것을 현재의 차원에서는 해체하자는 반어이고, 진정으로 재구축하자는 차원에서는 도전적인 제언인데, 그저 ‘현재의 차원에서의 반어’로만 해석된 측면이 있다. 물론 그의 반대 진영에서 일부러 그래왔다는 생각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역사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며 그렇기에 역사에게 길을 묻는다는, 역사서의 본질을 훌륭하게 구현한 역작이다. 촘촘히 찾아낸 사실들을 기반으로 진실을 발굴하고 ‘올바른 이야기’를 구성해내고자 도전하는 것이 역사를 살아가는 것 또는 역사적 상상력의 해방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훌륭한 역사서는 문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면서, 수많은 함정과 난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엄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인 이유다). 언젠가 한 번 큰 품을 들여서 독후감에 도전해보고 싶다.
- 그의 감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건(전반적으로 매우 지적이고 차분한 책이다) 318쪽이라고 생각한다.
- ‘6월의 진실’에 대한 그의 잠정적인 의견은 340쪽에 있다.
- 한국전쟁이 미국에게 준 커다란 충격의 실체는 530쪽부터 설명되어 있다.
- 한국전쟁의 진정한 성격에 대한 그의 최종 의견(이른바 ‘정명’)은 543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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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과 칼 - 침묵하는 지식인에게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4
에드워드 W. 사이드.데이비드 버사미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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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구절이 많았던 에드워드 사이드 인터뷰집 <펜과 칼>. 팔레스타인 출신으로서의 정체성과 정치적 견해, 지식인의 자세와 사회참여를 다뤘다. 지식인의 꼿꼿한 기개를 많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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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미동맹 - 미국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이유 지금+여기 12
김성해 지음 / 개마고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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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이고 급진적인 듯 보이면서도, 사실은 ‘주권’의 확립이라는 측면과 세계 정세의 흐름을 고려하면 충분히 대중적으로 나올 만한 주장인 “한미동맹 해체”를 다루고 있다. 미국이라는 패권 제국주의 국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한민국”을 왜 ‘건설’했으며 어떻게 ‘양육’했는지, 수많은 기관, 조직, 수단을 통해 자신에 순응하는 내부 권력층을 양산하고(이른바 지배 받는 지배자), 이들이 동맹의 ‘호위무사’가 되어 ‘반공십자군’을 자처하는 것까지 아주 많은 자료를 제시하며 밝히고 있다. 《지식패권》의 저자답게, 다양하게 형성된 ‘제국의 식민 지배 기구와 경로’(책을 보면 이 표현이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형성되는 ‘정신적 지배’ 양상을 특히 잘 짚어내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의 패권을 과시하는 냉전의 ‘모델 하우스’로 기획된 것이 대한민국이고, 마치 유사 부모-자식 관계처럼 형성된 한미 관계가 곧 한미동맹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제목과 핵심 주장에 비해 내용 전반은 유순한 편이다. 즉, 저자는 한미동맹의 ‘빛’을 많이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그림자’가 훨씬 크며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짚는다. 저자는 한미동맹의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한미동맹의 민낯, 즉 벌거벗은 실체를 확인하고) 우리 민족(남과 북) 스스로의 자주적인 행로를 열어나가자고, 미국과 헤어질 결심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일극 패권 이후의 다극세계가 출현하고 있는 지금의 시기, 분단으로 인한 전쟁 위험이 ‘신냉전’과 함께 더 큰 범위에서 증폭되며 여전한 안보 위협 속에 살아가는 한반도의 우리에게 특히 필요한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다룬 책이다.
이른바 ‘분단복합체’를 형성했다고 할 만한 보수진영의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맹렬하게 비판한 반면, 진보진영(특히 노무현 정부)의 ‘친미’사대주의에는 애써 관대하다는 점은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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