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 독립 저널리스트이자 만화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정수란 옮김, 2012, 글논그림밭). 지금의 사태를 제대로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책이다. 절판되었을뿐더러 중고책도 구하기 쉽지 않다. 빨리 보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는 게 좋다.
- 원제는 FOOTNOTES IN GAZA(2009). 소위 주류가 ‘각주’로 다뤄버린, 하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팔레스타인 가자 사람들의 뜨거운 독립 의지와 투쟁, 희망과 기쁨, 절망과 슬픔, 용기와 고뇌 등 모든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역사의 중요한 자리에 기록하고 더 알리겠다며 발로 뛴 작가의 의지가 담긴 제목이다.
- 현재(2002~2003년)와 과거(1956년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와 라파에서의 학살)가 교차하며 내용이 진행된다. “그때가 더했나, 지금이 더하나”라는 소챕터 제목처럼, 이스라엘(과 미국)의 잔인한 가자 지구 봉쇄라는 현재와 과거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잇닿아 제시된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인티파다의 피가 흐른다”는 외침이 어떠한 역사적 연원을 지니는지, 그것이 왜 정당한 것일 수밖에 없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저자가 묘사한 상황이 유지, 악화되며 20년의 시간이 더 흐른 게 현재다).
- 저자의 현지 조력자인 아베드, 칼레드, 하니, 아슈라프는 하마스라고 볼 수는 없고, 진보적 PLO 정도로 성향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비교하자면, 민족주의자에게서 사회주의자로, 장년에서 청년으로 주도 세력이 바뀌어 나가던 1920년대 초중반에 일종의 가교 역할을 했던 성향의 인물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중 칼레드는 수배 중으로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겪는 일상 속에서의 수많은 고통들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난데없는 사격, 가옥 파괴(여러 의미로 집은 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공간이다), 검문으로 인한 교통 체증이 중요하게 제시된다. 이른바 ‘땅굴’이 왜 생겨날 수밖에 없고, ‘무장투쟁’이 왜 점점 더 격화되는지 알 수 있다.
- 저자는 당시 방식의 무장투쟁에 대해 긍정하는 듯 보이지는 않으나,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그보다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여러 삶과 목소리 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동시에 이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부정적인 현실과 구조적인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 1956년 학살에서는 4.3, 노근리, 골령골, 광주 등 우리의 현대사 속 사건들의 여러 장면들과 겹치는 상황과 장면 들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폭력 검속과 발포로 특징지어 지는 가자에서의 ‘역사적 사건’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저자는 사태의 본질을 온전히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오래된 일은 오래됐기 때문에, 정치적 논쟁에 덜 휘말리며 명확한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
-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저자는 비록 특유의 자조적인 어투로 자신의 부족함(또는 위악)을 드러내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성의 있는 태도로 대했다.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환했던 그들의 말을 옮기고 그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 있어서, 저자 스스로의 직업 윤리를 최대한 동원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기 때문에, 이들 하나하나를 생동하는 사람으로 그려냈다는 점 자체가 저자의 노력과 윤리성을 보여준다).
-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남으로써,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이스라엘의 학살과 전쟁 범죄를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하며, 지금의 전쟁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외치게 만드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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