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심지연 지음 / 소나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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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2년간 복역한 장기수(이자 한학자) 노촌 이구영 선생님의 회고록(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 고전, 서예 스승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의미의 선비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정의감과 책임감으로 항일 운동(일제 강점기)부터 자주 독립과 사회 혁명(미 군정기), 통일 실현(분단 고착 이후)을 위해 노력한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전향을 거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켜낸 것을 포함하여, 존재만으로도 거대한 역사의 풍랑 속에서 꿋꿋했던 자랑할 만한(?) 이야기임에도(책에 나오듯 그는 1950년대 북한 사회주의를 실제로 살아본 사람이기도 하다), 소박하고 허심탄회하게 술회해나가는 진실된 화자의 태도에서 더 깊은 감동이 인다. 민족사와 사회 혁명의 여러 풍경들, 특히 그간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정직한 사람들’의 이야기(그 반대항 역시)가 많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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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김화영 옮김 / 피플사이언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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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세의 인류학자인 토드는 자신의 인류학적(특히 가족 구성) 지식을 토대로 세계를 분석하고 있다. 소련의 해체, 미국 패권의 위기 등을 ‘예언’하여 각광받았으나, 주류에 편입되지는 않았다. 좌, 우로 나눌 수 없는 성향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세 예측은 도전적이면서도 정확하다. 나토의 동진, 우크라이나의 무장화 및 네오 나치화,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대러 전략과 젤렌스키 정권의 폭주가 ‘유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정하고, 러시아와 서방 양측 모두 피해를 보고 있지만 서방의 피해를 훨씬 결정적인 것으로 파악하며, 다극화의 촉매제가 될 것임을 당시 시점에서 예언하였다. 전쟁 능력은 결국 진정한 경제 능력을 기반으로 두는데(무기 생산이든 보급 보장이든 후방의 여론적 지원이든), 여기에는 은행 시스템과 금융이 아니라 생산 활동을 의미하는 엔지니어, 기술자, 숙련 노동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 점에서 서방 전체와 비교해도 우위다.
- 그는 궁극적으로, 서방의 정신적 타락이 이 전쟁의 기원이라고 단언한다. 일극 패권 자본주의의 폭주는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허무주의적 경향으로 침잠하고 이는 내외적으로 파국적인 결말로 향한다는 것. 특히 중산계급의 이러한 성향이 파국을 부르는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 물론 이는 최상층부로부터 기획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미국은 ‘누가 지도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러한 미국이 자기 체제의 구성 성분이 되어버렸다고도 할 만한 ‘전쟁‘으로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전 세계의 전쟁을 통해 지배를 구축해왔고, 지금도 그러려는 듯 보인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그가 보기에 미국이 예전처럼 압도적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결국에는 살아남고 승리하던 상황과는 다르다는 점에 있다. 부도덕을 넘어선 ‘절멸‘, ‘3차 세계대전‘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다.)
- 반면 여러 판단들의 기반으로 쓰이는 인류학적 주장들은 방향성과 엄밀성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특히 부권이 강한 사회가 공동체적이고 안정적이며 가장 발전적인 형태라는 부분(그는 농경사회가 산업-자본주의-사회보다 더 안정적인-인류학적 차원에서 선진적인- 사회라고 보는 듯하다). 단, 개인주의 사회를 사회 발전의 퇴보적 양상으로 보고(그래서 서양 사회는 핵가족으로 인해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 유지에 주목하는 주장에는 눈길이 간다. 여러 차원에서 생각해보자는 차원으로 접근하면 시사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 이러한 판단을 통해 서방은 ‘자유주의 과두정’, 중국이나 러시아는 ‘권위주의 민주제’라는 규정을 한다.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는 소수에 대한 태도에 있는 반면, 과두정과 민주제의 차이는 다수의 이익을 실현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서방의 방식’을 통해 서방을 엄청나게 강력하게 비판한다는 점에서 피케티와도 통한다(피케티는 자본주의적 경제 통계를 통해 반자본주의적 결말을 이야기한다). 미국과 거리를 두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한 흐름일 수 있겠다. 그의 다음 저작이 <서방의 패배>라고 하는데(아직 번역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기본 얼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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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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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나 또는 우리라는 어른의 세계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해주는 사려 깊은 이야기들. 엄정하면서도 따뜻하다. 결국 우리의 그릇만큼 어린이도 보인다. 칼럼 같은 글 모음인데도 구성이 상당히 짜임새가 있다. 독서교실에서 만날 수 없는 어린이들(또는 어른들)의 세계는 또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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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1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바이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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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정의롭고 정확하게 그리고 최대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쓴 책. 작가의 관련 주제 책들은 읽어보면 큰 각성과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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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아이우통 크레나키 지음, 박이대승.박수경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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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브라질)의 원주민 운동가 아이우통 크레나키의 발표문 3개를 기본으로 엮은 책이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 문명의 500년 침략에 저항해온 원주민의 역사에 기반하여 ‘인류’, ‘세계’, ‘종말’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서방, 자본주의, 근대와 현대, 제국주의가 규정하는 개념 및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과 도전으로, 이러한 ‘문명적 인식’을 최근 학계에서는 “역-인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인식에서는 “문명인이 곧 세계의 종말”이다.
최근 기후 재앙, ‘신냉전’ 등의 여파 속에서 ‘세계의 종말’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어났다. 저자 역시 그러한 문제들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 인류, 세계, 종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규정된다. ⓵ 서방의 문명화된 ‘인류’ 개념은 사실상 패권으로의 동화와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의 일체화를 의미할 뿐이며 ⓶ 분리할 수 없는 대지와 인간을 대상화된 ‘자연’으로 나눠서 착취한 세계 인식은 근본에서 틀렸으며 ⓷ 이미 500년 전부터 무수한 ‘종말’과 ‘추락’이 발생했고(‘이미 무수한 세계의 문이 닫혀버렸다’)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문명인’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위협이 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곳곳의 저항은 그러한 ‘종말’을 지연하고 있다. ⓷은, 이 책의 제목이 종말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늦추기 위한” 것이 되는 첫 번째 이유다. 주체를 전환하여 바라보면, 이미 세상은 500년 전부터 계속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냉정한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다 죽자’, ‘어차피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밀림의 시민성”을 말한다. 이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것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 패권주의와 자본주의(특히 상품화, 물신화)를 부정하고 다양한 민족, 종족, 공동체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더 잘 추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은 “잠재된 다른 세계를 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이 “더 잘 추락”하는 것이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인식을 특히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이 주장은 ‘극복’으로 ‘영생’을 꿈꾸는 것, 모순을 끌어안지 못하고 자기 존재 중심으로 죽음과 소멸을 거부하고 생에 집착하는 것 그 자체가 현대-서방의 세계관이라는 그의 인식에 기반을 둔 것으로 내게는 보였다. 그는 “잠재된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은 현세대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어쩌면 소멸될 수도 있는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없어질지라도 지속될 대지와 우주의 역사를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자신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죽음과 소멸에 대해서는 초연해져야 한다는 것(이 책 제목의 두 번째 이유). 죽음과 소멸(또는 부재와 상실)에 대해, 수많은 종족, 민족의 투쟁과 저항,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고 살펴온 그는 ‘자본주의 문명’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통상적인 ‘말’, ‘글’, ‘책’으로 그의 사상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책이 종종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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