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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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나카 요시키. 솔직히 말해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SF 소설계의 전설 같은 그의 대표작 <은하영웅전설> 제목은 들어봤다. 물론 구판으로 10권, 이번에 이타카 출판사에서 완판으로 나온다는 15권의 분량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은하영웅전설> 집필 막바지에 쓰기 시작했다는 <일곱 도시 이야기>에는 정말 주목할 만한 주제들이 차고 넘친다.

우선 다나카 요시키는 지구의 지축이 뒤틀린 대전도 이후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설정한다. 마치 올림포스의 신처럼 군림하는 지구인보다 월등한 기술력의 월면도시인들은 지상 500m 이상 비행을 허용하지 않고 지상인들의 감시를 위해 소위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한다. 갑자기 조지 오웰의 ‘빅 브러더’가 연상된다. 아무리 지구인들이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신들에게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법. 공중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수송 수단은 육상과 해상으로 제한된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모두 일곱 개의 도시국가로 재편된 지구의 균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치 오래전 제갈공명이 세발 달린 솥의 정세처럼 정교하게 짜인 틀로 삼국정립을 설파했다면, 다나카 요시키는 7개의 도시국가들이 서로 균형과 견제의 교묘한 틀을 제공한다.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여전히 각국의 관심인 지하자원에 대한 이권다툼과 정쟁 때문에 아퀼로니아와 뉴 카멜롯의 전쟁으로 시작된 이야기(もの-がたり:모노가타리)는 AAA(알마릭 아스발 오브 아퀼로니아), 케네스 길포드, 귄터 노르트 그리고 유리 크루건 같은 쟁쟁한 전략가들의 등장으로 그 재미가 배가된다.

인류의 역사 이래 끊이지 않고 계속된 전쟁에 대한 새로운 다나카 요시키 스타일의 해석도 그렇지만, 고사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토사구팽 같은 반복되는 역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나라의 숙적 부차를 패퇴시킨 월왕 구천의 품성을 진작 알아차리고 고생과 환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 못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한 명재상 범려처럼 뉴 카멜롯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아퀼로니아의 참모 류 웨이는 타 도시로 망명한다.

허황된 세계정복을 꿈꾸며 프린스 헤럴드를 침공하려는 부에노스 존데의 독재자 에곤 라우드푸드 편에서도 반대파는 그를 두고 혹한의 모스크바에서 참패한 나폴레옹 1세를 뒤따르려는 건지 아니면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스당에서 포로가 된 황제의 조카 나폴레옹 3세의 전범을 뒤따르려는 거냐고 비아냥거린다. 명나라 시대의 상승장군 척계광까지 등장시키는 저자의 빼어난 식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다나카 요시키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시시콜콜한 역사와 전략적인 측면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공화정 시스템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페루 해협 공방전에서 다른 여섯 개 도시의 원정군을 막아내고, 사랑하는 아내의 복수마저 끝낸 귄터 노르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독재자 에곤 대시 새로운 독재자를 원하는 부에노스 존데에 염증을 느끼고 류 웨이처럼 타 도시로 역시 망명한다. 세기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하고, 지지한 것이 바로 우리네 같은 보통의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다나카 요시키는 SF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냉정하게 되짚는다.

책을 읽기 전에 솔직히 일본 작가라는 점 때문에 일본적 색깔이나 일본을 옹호하는 점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하고 우려가 됐다. 하지만, 그건 정말 독자의 부질없는 노파심이었다. 저자도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그런 점은 말끔하게 배제됐다. 역설적으로 전쟁을 통한 다나카 요시키의 반전 메시지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통해 멋지게 재현된다. 공격과 방어라는 전쟁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소위 선빵을 날린 도시의 완패가 이어지지만, 도시의 위정자들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보는 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라고 했다지만, 이들은 모두가 보는 진실조차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점이야말로 다나카 요시키 식의 현대정치 비평이 아닐까 싶다.

<일곱 도시 이야기>는 다나카 요시키 특유의 블랙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엄청난 적군의 내습 앞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도시 방어를 맡은 사령부 전체가 사령관 부인이 만든 젤리 샐러드 때문에 집단 식중독으로 지휘가 마비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프린스 헤럴드 방어의 전권을 젊은 세대가 맡게 된다는 설정이다. 아퀼로니아나 뉴 카멜롯의 경우에도 뛰어난 명장들은 하나같이 젊은 세대다. 버블의 거품이 빠지고 난 다음 세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거는 작가의 기대와 희망의 단초를 보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매력적인 작품의 스토리라인과 등장인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후배 작가들이 15년이 지난 후에, 속편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를 썼다고 하는데 그 작품도 기개가 된다. 다나카 요시키와의 첫 만남은 정말 아스트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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