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전쟁 - 야만과 문명이 맞선 인류 최초의 게릴라전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에 조금씩 읽고 있던 배리 스트라우스 교수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다 읽었다. 이 작품으로 저자는 <트로이 전쟁>, <살라미스 해전>으로 이어지는 고전 3부작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다른 작품도 곧 읽을 계획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는 커크 더글러스와 32세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그리고 최근에는 동명의 미드로 잘 알려진 노예검투사 출신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소재로 다룬 역사서다. 다만, 원체 오래전의 사건이다 보니 사료(史料)의 절대적 부족으로 저자는 추측과 짐작을 적절하게 섞은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한다.

스트라우스 교수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플루타르코스와 아피아누스의 기록을 통해 그리스 트라키아 출신의 이 노예검투사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스파르타쿠스가 한 때 로마군단의 보조병으로 군역을 이행한 피정복민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반기를 들었으면서도, 로마군의 장단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로마군이 장기로 삼는 평원에서의 회전 대신 기습과 매복 같은 게릴라전으로 정규 로마군을 괴롭혔을 거라고 썼다. 로마인의 관용(클레멘티아)은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을 진 모르겠지만, 로마 세계를 잘 아는 이들의 내부 반란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구스투스의 게르마니아 정복을 토이토부르크에서 좌절시킨 25세의 아르미니우스 역시 로마군 출신이었다.

빵과 서커스(bread & circus)로 대변되는 로마 공화정 말기, 아레나에서 피와 살이 튀는 검투사 간의 목숨을 건 결투에 로마인들은 열광했다. 일찍이 무장한 검투사의 위험을 간파한 로마인들은 검투사들을 로마 밖에서 양성했다. 로마 시민 렌툴루스 바티아는 캄파니아 지방의 카푸아에서 시합에 소용될 검투사를 길렀는데, 바로 여기서 반란의 싹이 텄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조롱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영예로운 죽음을 택한 스파르타쿠스의 전설이 시작됐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바로 이 전설적 영웅을 관통하는 영혼의 위대함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변변치 않은 무기로 봉기한 검투사들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와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이름 모를 트라키아 여인의 존재에 주목한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던 이 여인은 예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반란에 어떤 신성성을 부여했다. 켈트족과 게르만족 그리고 트라키아족으로 구성된 다국 반란 집단의 ‘족장’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 여인의 예언대로 해방자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한편, 기원전 73년 로마는 공화국의 동쪽과 서쪽에서 양면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로마 정예군은 모두 동쪽에서 벌어진 미트리다테스 전쟁과 에스파냐의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해 있었고, 본국은 치안 부재의 상태였다. 이런 시기에 로마는 남부를 휩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할 여력이 없었다. 그 결과, 급조한 로마 군단은 반란군에게 연전연패한다. 이런 스파르타쿠스가 이룩한 초기의 성공이 바로 그의 파멸의 전주곡이었다는 참 역설적이다.

뛰어난 현실감각을 지닌 전략가였던 스파르타쿠스는 비록 초반의 승리로 반란군이 승기를 잡았지만, 로마 정규군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고향 트라키아로 탈출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동과 서 양쪽 전선에 방대한 병력을 투입한 로마가 노예 반란에 대처할 새로운 대규모 병력을 모집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스파르타쿠스의 이탈리아 탈출 작전은 매우 성공 확률이 높은 도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많은 수의 반란군은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도박 대신 손쉬운 약탈에 더 매력을 느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정말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스파르타쿠스가 알프스 돌파작전에 성공했다면 기원전 216년 한니발의 칸나이 전투(Battle of Cannae)만큼이나 로마에게 치욕적인 사건이었으리라.

조직과 규율로 유명한 로마군에게 비정규 게릴라전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스파르타쿠스 앞에 마침내 유력한 맞수가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공화정 말기 삼두정치의 일원으로 잘 알려진 크라수스가 바로 주인공이다.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특별 명령권을 부여받은 사령관 크라수스는 로마군에서 그동안 사문화되었던 ‘데키마티오’라는 혹독한 처벌 방식을 부활시켜 군의 기강을 다시 잡는다. 한편, 스파르타쿠스는 킬리키아의 해적과 제휴해서 시칠리아 원정을 계획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크라수스가 이끄는 진압군과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결국 스파르타쿠스는 실라루스 전투에서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스트라우스 교수는 당대의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만, 단순하게 로마 최고의 재력가로만 알려진 크라수스의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냉철하게 재평가한다. 로마군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던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수스가 지휘하는 로마군과의 정면 대결을 끝까지 피하면서 알프스 돌파작전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로마로 귀환한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대시대에 인간의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 끝까지 싸운 영웅 스파르타쿠스의 실패한 반란 이야기는 현대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전범이다. 그래서 샘 레이미는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새로운 스타일의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스파르타쿠스 전설 속에 담긴 거친 폭력 코드라는 오락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스트라우스 교수는 노련한 역사가답게 노예검투사들의 반란이 발생한 시대적 배경, 문명과 야만의 충돌이라는 시점에서 노예 반란 전쟁의 진행과정 그리고 비로소 스파르타쿠스 개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라는 요소를 균형감 있게 다룬다. 저자는 실존인물인 스파르타쿠스의 행적을 밝혀줄 역사 기록이 부족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천년 전에 자유와 복수를 외치며 로마인들의 압제에 대항해서 분연히 일어선 트라키아 출신 노예검투사의 투쟁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사실을 뛰어넘어 이제는 신화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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