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 올리브 빛 작은 마을을 걷다
백상현 글 사진 / 시공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참 좋아졌다. 이제는 세계 어디라도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블로그나 구글맵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맛보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검색창에 보고 싶은 곳의 이름만 탁탁 처넣으면, 바로 새로운 별세계가 열린다. 어쩔 땐, 직접 가서 봐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 싶을 정도로 멋진 사진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아무리 그래도 발걸음으로 직접 한 여행에 비할 수가 있을까? 백상현 작가가 이탈리아 32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돌며 남긴 기록인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32개 도시 중에서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도시는 바로 포시타노였다. 미국 출신의 작가 존 스타인벡의 여행 에세이로 그 유명세를 탔다는 지중해 티레니아 바다가 바로 정면에 보이는 포시타노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닷가의 기암괴석이 품은 어느 동화에나 나올 법하게 아기자기하고 원색적인 가옥의 행렬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책에 소개된 것만으로는 부족해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은 사진을 보고서, 소렌토와 아말피 어디쯤에 있다는 이 환상의 마을은 가히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곳이라는 말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스타인벡이 1953년에 하퍼스 바자에 기고했다는 <포시타노> 에세이는 구해놨는데 영어라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소렌토와 아말피> 편에서는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카프리 섬을 구경하고 나폴리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아말피와 소렌토의 추억이 오롯하게 떠올랐다. 소렌토의 사진을 보는 순간 왜 생뚱맞게도 이탈리언 식당인 <소렌토>가 떠오른 걸까. 이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탈리아식 스파게티, 아니 파스타 식당 때문인가 보다.

백상현 씨의 시칠리아 경험은 나도 로마에서 똑같이 경험했다. 신부님으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던 사촌형이 기거하던 수도원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수도사님 중에 베네치아에서 오신 분에게 이탈리아 사람이냐고 묻자 대번에 자기는 베네토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 고작 100여년 남짓한 통일 시대에 사는 이들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이야말로 자부심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볼거리만큼 중요한 여행의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바로 식도락이다. 그래서 움브리아와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작가가 먹고 마신 음식의 향연을 들을 적에는 정말 마음만이라도 당장 이탈리아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티라미수가 페루자에서 후식으로 등장했을 때, 그리고 피렌체식 비프 스테이크인 피오렌티나를 조리하는 방법을 정말 자세하게 설명할 때는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부러웠다.

시에나에서는 캄포 광장(piazza)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바로 이게 삶이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의 자유로움과는 또다른 양식이라고나 할까. 역시 디저트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어쨌는지 계속해서 디저트에 눈길이 간다. 그래서 시에나가 자랑하는 천상의 맛을 가진 판포르테 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마치 그 맛을 음미하기라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볼로냐 특산 살라미를 맛볼 수 있는 셀프 리스토란테 <탐부리니>에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이 책의 저자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이런 멋진 환대를 받는 걸까? 자신을 한낱 배낭여행자로 소개한 실체와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백상현 씨는 이렇게 많은 이탈리아 도시들을 순전하게 대중 교통수단만을 이용해서 여행했을까? 쉽지 않은 일일텐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린 걸까? 궁금하다 궁금해.

나의 이탈리아 여행과 비교해 보면, 백상현 씨의 이탈리아는 정말 하나같이 모든 곳이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는 그런 낙원(paradiso)로 들린다. 그런데 실상이 과연 그럴까?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혹은 관광지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그런 체험은 하나도 없다. 너무 완벽해도 이상하다. 홀로 하는 여행이란 모름지기 교통편과 숙소를 모두 혼자서 정해야 하는 나그네의 고행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다년 간의 여행 경험으로 그 모든 걸 셋팅하고 여행을 했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눈과 마주하는 모든 것을 허투루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기록한 작가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이탈리아까지 직접 가는 대신 방안에서 편안하게 대리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이런 간접 체험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직접 문지방을 걷어차고 떠날지라. 항상 그렇지만 말은 쉽다. 이렇게 멋진 이탈리아 여행을 한 작가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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