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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 멸종 오리 찾아서 지구 세 바퀴 반 ㅣ 지식여행자 시리즈 3
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제목 한 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요상한 제목의 책은 캐나다 출신의 조류학자 글렌 칠튼이 19세기에 이미 멸종된 래브라드 까치오리(이하 까치오리)의 박제라도 보겠다며 전 세계를 3바퀴반이나 돌면서 직접 쓴 육필기록이다. 전 세계에 박제된 상태로 남아 있는 54마리, 아니 53마리의 까치오리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 하에 괴짜 조류학자는 고난에 찬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제목을 이 책의 원제인 <래브라도 까치오리의 저주>라고 번역했다면,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번역서의 제목 한 번 기차게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렌 칠튼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멸종된 까치오리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받아 검색해 봤다. 참 좋은 세상이다.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란 사이트의 정보에 의하면 지구상에 더 이상 산 채로 존재하지 않는 까치오리는 주로 북아메리카의 북동부 지방에 살았으며, 1850-70년대에 이미 희귀종이었다고 한다. 왜 까치오리가 멸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1875년에 마지막 까치오리가 총에 맞은 것으로 지구상에 더 이상 살아 있는 까치오리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수집의 매료되어 '집착‘의 길에 들어선 글렌 칠튼 박사는 브룩본드 식품사에서 만들어 팔던 수집용 카드에서 만난 까치오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29년간 대학 강단에서 조류학자로 강의에 매진하던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까치오리를 보겠다는 신념으로 구도의 길에 나서게 된다. 그의 까치오리 탐사여행은 자못 진지하다. 세계 각처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까치오리와 그 알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대로, 글렌 칠튼 박사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락해서 멸종된 까치오리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글렌 칠튼의 연구 중 상당 부분은 그 이전에 이미 직접 까치오리 둥지를 찾아 나선 미국 조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과 1963년에 <사라진 새는 어디 있는가?>를 펴낸 폴 한(Paul Hahn)이 바로 그다. 전자가 실질적인 까치오리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직접 래브라도 탐험에 나섰다면, 후자는 글렌 칠튼 교수 연구의 전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저자가 실제로 행한 DNA 분석은 그동안 까치오리의 알이라고 알려진 가짜의 정체를 세상에 폭로한다. 글렌 칠튼 박사는 역시 학자답게 꼼꼼하게 처음 만난 까치오리의 박제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단순하게 까치오리 자체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까치오리의 박제를 얻게 되었는가 그리고 또 누가 까치오리를 박제했는가에 대한 상상가능한 모든 정보를 요구한다. 단순하게 생물학적 차원의 연구가 아닌 인문학을 넘나들며 연구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확장하는 저자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괴짜 조류학자인 글렌 칠튼 박사와 어쿠스틱 여행을 하며 독자는 까치오리 뿐만 아니라 까치오리들이 보관되고 있는 각종 박물관 등등에 대한 실체를 접하게 된다. 어떤 녀석들은 박제사의 창의력에 따라 훌륭하게 본박제로 살아 있을 당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들은 쥐나 해충의 공격을 받아 가짜 발을 가지고 있거나 원래의 색도 아닌 조잡한 칠을 뒤집어 쓴 가박제의 상태로 존재하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본박제보다 가박제 상태가 연구가들에게는 더 유용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같은 조류학에 대한 문외한에게는 좀 더 전시와 보관에 손이 가는 본박제가 더 멋지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글렌 칠튼 박사의 까치오리 탐사를 좀 더 재밌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박사의 글쓰기 능력이다. 여느 박사처럼 젠체하지 않고, 때로는 자기 비하를 남발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슷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맞다, 그 전에 앞서 빌 브라이슨이 있었다. 생리학 박사인 아내 리사의 연구여행에 동참해서 누드화 앞에서 공짜 와인을 즐기며, 자기가 탐내는 까치오리를 마음껏 주무를 생각에 흐뭇한 그의 모습은 연구가의 삶이 그렇게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뭐 물론 모든 연구가들이 그의 족적을 따라 가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괴짜 조류학자의 발로 하는 까치오리 탐사는 재밌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직접 가보지 않아도 디지털 정보로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어디서나 접할 수가 있다. 하지만, 글렌 칠튼 박사는 그런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진정한 연구가라면 자신의 연구의 대상을 직접 만나 봐야 한다고 자신의 발로 입증한다. 모두가 박사의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그런 ‘어쿠스틱’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든다. 이 괴짜 조류학자의 다음 번 탐사여행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