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잡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드디어 그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읽었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빅 픽처> 그리고 <템테이션> 같은 소설 대신 이번에 새로 출간된 <더 잡>으로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최신작은 아니고 1998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정글 같은 직장 생활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뉴욕 생활의 정수를 오롯하게 뽑아낸 수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최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컴퓨월드>라는 컴퓨터 잡지 세일즈를 전담하는 잘 나가는 광고지국장 네드 앨런은 오늘도 광고 세일즈에 여념이 없다. 연말에 지급되는 보너스를 위해 오늘도 그는 달린다. 메인 주 출신의 촌뜨기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뉴욕에 둥지를 튼 후, 그 누구보다 성공의 사다리를 향해 질주해왔다. 그렇게 해서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만나게 됐다. 이렇게 나간다면 소설 <더 잡>이 독자의 시선을 끌 이유는 없겠지. 바로 그에게 만만찮은 시련들이 시리즈로 닥치기 시작한다.

 

먼저 직장 동료 이반 돌린스키가 맡은 광고가 펑크가 나면서 그의 즐거운 연말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잡지 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순간, 최고 물주 중의 하나인 <GBS>의 광고담당 이사인 테드 피어슨이 초를 친 것이다. 아슬아슬한 도덕적 기준을 넘나들며, 반협박으로 그에게 다시 광고를 수주해서 위기를 넘기는 네드 앨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업계 3위로 고급독자를 상대로 나름 잘 나가던 <컴퓨월드>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모회사인 게츠브라운의 독일 상사는 네드 앨런에게 발행인 자리라는 승진과 급여인상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던진다. 오늘의 자신이 있게 이끌어준 발행인 척 자누시에게 조금 거리낌이 없지 않지만,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든 것들이 주인공 네드 앨런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겠지만, 역시 이 소설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로 그 성공의 순간, 네드 앨런을 나락으로 떨어 뜨려 버린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컴퓨월드>를 인수한 업체는 업계의 경쟁업체였고, 가차 없이 <컴퓨월드>는 폐간의 운명에 처하고 기존 직원들은 모두 정리해고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에게 달콤한 약속을 했던 상사를 폭행한 네드 앨런은 해당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만다. 위기에 순간에 나타난 고향 친구 제리 슈버트에게 빌붙어 재기를 도모하지만,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준 친구가 실은 더할 나위 없는 악당이란다. , 네드 앨런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은 탄탄한 구성과 확실한 캐릭터 그리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개가 장점인 소설이다. 우선 캐릭터 면에서 주인공 네드 앨런을 자신의 업무에 유능하면서도 부하 직원들을 잘 다독일 줄 아는 멋진 상사로 작가는 그린다. 아마 누구나 직장에서 이런 상사와 함께 꿈꾸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까. 동료 이반의 치명적 실수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들의 사립학교 등록금 때문에 절절매는 데비 수아레스를 위해 보증을 서주고, 나중에 자신의 퇴직금에서 공제된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네드 앨런은 그야말로 소시민적 영웅의 가깝게 그려진다.

 

물론 그도 인간인 만큼 실수도 곧잘 저지른다. 우선 승진과 급여인상이라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아내와의 휴가에서 필요 이상의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보통 사람으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본 다음에 해도 되는 과소비를 성급하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랬다면 소설의 전개가 독자의 기대만큼 재밌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욱하는 성격에, 뒤를 생각하지 않고 독일인 상사를 때려눕힌 일이다. 고소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재취업하려는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네드 앨런의 더 큰 위기는 구원의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잡은 제리 슈버트가 알고 보니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에게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버진 아일랜드, 바하마 등지로 미국에서 검은 돈을 운반하고 세탁하는 일에 종사하게 된 주인공. 이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위기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는 살인혐의에 조세회피 같은 중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소설의 주인공 네드 앨런이 위기에 빠졌을 때, 생각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자는 어떻게든 성공하게 된다?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 아직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 비교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나락에 빠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는 일련의 과정이 그의 소설에는 주를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과연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위기에서 생각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한 까풀 들춰내면, 냉혹하기 짝이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의 제목처럼 일자리는 현대인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매달 내야 하는 집세와 공과금을 비롯한 각종 비용, 문화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일터에서 치환된 노동의 대가다. 그렇게 중요한 일자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주인공 네드 앨런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아내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자질구레한 문제들도 산적하지만 더글라스 케네디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자신 있게 소설의 제목을 <더 잡>(일자리)으로 정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지인에게 권했다. 지인 역시 책을 읽으며 재밌다는 평과 함께 제목이 너무 모호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다. 공감한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이래서 소설에 대한 상상은 끝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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