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에서 이미 인문학의 위기가 이미 상시화된지 오래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 및 어문학계열 학과들이 퇴출 위기에 몰렸다는 뉴스 기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사회 전반에 인문학 열풍이다. 최근 출간되는 책의 제목들에도 힐링과 인문이 대세다. KDI 전문연구원이자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박정호 씨도 이 추세에 착안해서 인문학을 통한 기초 경제 원리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겉으로 보기에 경제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도 알고 보면 경제 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더라는 결론이 무척이나 명쾌하다. 그리고 재밌기까지 하니 일석이조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꽃을 피웠다는 대중문학의 전개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갔다. 우선 문학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책을 읽기에 필요한 여가 시간. 고된 산업화 현장에서 후자는 불가능한 조건이지 않았을까? 가사노동자라는 직업군이 성장하면서, 문학의 수요층이 그야말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상류층이나 중산층이 즐겨 보던 고가의 장정본이 아닌 염가서적과 유명작가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대중문학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과거에는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던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은 서로 크로스오버되면서 그 경계가 희미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수요를 바탕으로 한 시장원리가 가치관과 문화적 행태의 차이마저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요즘은 탄산음료의 위해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탄산음료의 제왕 코카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카콜라 소비자들은 한 때 코카콜라가 모르핀을 대체하는 최음제 성격의 음료수이자 약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마시는 코카콜라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른 채(7X으로 알려진 코카콜라 제조의 비밀 성) 마셔왔다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브랜드인 코카콜라가 모든 음식과 상황에 맞는다는 시대를 초월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수요를 창출해왔다. 패스트푸드 햄버거집에서 코카콜라 없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박리다매 전략으로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를 펼치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코카콜라가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익숙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깨달아야 할 시간이다.

 

얼마 전 대형 극장 체인이 영화관 입장료를 올린다는 소식에 분개했다. 아니 입장료를 올린지 얼마나 됐다고 또? 게다가 극장 입장료 수익보다 극장에서 파는 팝콘 장사로 돈을 더 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래서 저자는 극장 수입의 디테일을 분석한다. 사실 극장에 올리는 영화 제작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세금과 극장 유지를 위해 극장 측이 지불하는 고정비용을 감안할 때, 영화 상영으로는 수중에 들어오는 수입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팝콘 판매 수입은 온전하게 극장이 가져간다. 게다가 팝콘 제작비의 원가는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익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극장입장료를 올릴 것이 아니라, 팝콘 값을 올리는 게 수익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야 뭐 이제 더 이상 극장에서 팝콘을 사먹지 않으니 절대 찬성이다.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 역시 원래는 그들의 주요 식음료가 아니었다고 한다. 본국인 영국 사람들처럼 차를 즐겨 마시던 미국 사람들은 영국이 미국 식민지 지배를 위해 차에 대한 관세를 올리자 이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본국에 저항하기 위해 대체 식음료로 커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미국 특유의 패스트푸드 문화에 커피를 접목시키면서 거실에 우아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마실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야말로 바쁜 일상의 속도전을 소화해내야 하는 미국 문화에 안성맞춤이었다는 지적이다. 세금이 정치적 격변을 불러일으키고, 한 나라의 식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는 기초 경제 원리의 적용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식량은 세계 공략에 있어 단순한 자원으로 인식한 나라 영국과 다양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풍부한 요리 레시피를 가진 요리 강국으로 발전한 프랑스 간의 차이 분석도 예사롭지 않다. 그저 맛없는 영국 요리,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프랑스 요리의 차이가 역사와 경제 원리에 입각한 사례라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기억되는 미국의 남북전쟁 역시 단순히 외국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독립 이래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던 북부와 남부의 경제차이로 인한 무력충돌이었고, 링컨에게 최우선 순위는 노예해방이 아니라 연방제 결속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에게 위대한 음악적 문화유산을 남겨준 모차르트도 유효수요 판단을 잘못해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만하다. 문학이나 미술과 달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 같은 공간은 귀족 같은 특권계층에게만 허용이 되어 있던 시기에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모차르트가 작곡한 귀족을 풍자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표현한 오페라의 수요계층은 없었다. 1회성의 불투명한 클래식 공연이 지나치게 과다한 비용으로 책정되는 것에 대해서는 저자는 경제학자다운 진단을 내린다. 지속되지 않는 그리고 그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연주를 그렇듯하게 포장해서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은 종합 서비스 상품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저자의 능력이 역시 탁월하다.

 

그저 놀랍다. 어려운 기초 경제원리들이 우리 삶의 곳곳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포진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인문, 사회, 역사 그리고 문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경제원리의 엑기스를 저자 박정호 씨는 인상적으로 다뤄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그저 이런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보며 숨차게 따라갈 수밖에. 그리고 이렇게나마 시대의 화두가 된 소통과 통섭의 장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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