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이를 먹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해간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자연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건 노화를 늦추거나 조금 더 천천히 변해가는 것, 딱 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70대가 마라톤을 달리거나 3대 500을 칠 수 있다고 해서 20-30대가 될 수 없고, 요가, 운동, 좋은 식습관, 심지어 보톡스까지 해서 육체나이와 외모를 젊게 가져가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그 나이대의 젊음이지 이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꿈꾸고 살아가고 견딜 수 있는 힘이 그 시간의 흐름, 기승전결이 있는 사이클 덕분이라니. 


최근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두 권을 모두 읽고 나서. 무엇인가 정리하려는 듯한, 의도했든 아니든, 그런 글이 나오는 것 같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세상을 둘러보고 느끼면서 새로운 걸 이야기하는 시기는 옛날에 지나가버렸고, 그 지나간 시점에서 다시 10년이 넘게 흘렀으니까. 여전히 달리고 수영하고 건강하게 규칙적인 글쓰기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어쩌면 보기 드문 꾸준함으로는 이미 노벨상을 탔어야 할것만 같은 그 또한 그 이전의 모든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peak가 있었고 이젠 노년이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저 건강히 오래 살아서 계속 단편이든, 개작이든, 장편이든 글을 쓰고 책을 내주었으면 한다. 2012년 그의 전작을 하고 그가 사는 삶의 담백함에 빠져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나 또한 꾸준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그의 책을 통해 좀더 클래식과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책을 통해 맺어진 좋은 인연이 아니겠는가. 어쩌다 보니 그의 첫 작품과 가장 최근에 나온 소설집을 한 시기에 보게 되어 더더욱 좋은 비교가 되었다.



동시대의 두 작가를 나란히 놓고 책을 보았다. 두 작가의 유명한 작품도 몇 권 읽었고 영화나 에세이를 통해 이 둘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익히 알고 있었기에. '헤밍웨이'의 작품과 인생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에서는 글쓴이 자신의 지식과 교양이 뒷받침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런 면에서는 너무도 실망하여 이 기획 전체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더 읽고 사들이는 것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었다. 


어떤 작가나 대상에 대한 글을 쓰려면 최소한 그 작가나 대상에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야 한다. 지식전달 혹은 자계서수준의 책이야 간단한 리서치를 적당히 버무려 나오는 걸 많이 봤고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피츠제럴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최소한 그와 그의 작품을 평소에도 읽어왔어야 한다는 것. 더구나 문학상 수상이력까지 있는 소설가가 이 기획에 참여하고 나서야 피츠제럴드를 읽었다는 것, 그런 사람이 이 기획에 참여했고 하필이면 피츠제럴드를 맡았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몇 군데에서 보이는 shallow함도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천주교성당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와 '예배'라는 표현을 버젓이 쓰더니 다른 곳에 가서는 멀쩡하게 다시 성당으로 번역하고, 그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Firestone도서관에 가서는 'firestone이 부싯돌이니 도서관의 책을 부싯돌 삼아서 공부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그리 지었나보다'라는 괴랄함이라니. 한국도 요즘은 전주의 이름을 따서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미국은 옛날부터 많이 그래왔고 무엇보다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동양의 문화가 아닌가 싶은데. 문득 의심이 들어 정말이지 5초만에 구글링을 해서 찾은 결과 도서관의 이름은 Harvey S. Firestone Memorial Library였으니 그 유명한 Firestone Tire의 창업주 되시겠고 더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전주였거나 뭔가 기여한 바가 컸던 바, memorial이 들어갔으니 아마 기념도서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쓰는 사람이 그 정도의 조사도 없이 부싯돌 어쩌고를 주절거리면서 그걸 책에 써놓았으니. 당시의 느낌을 회화화 했다면 최소한 주석이라도 달아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 권씩 모으려던 계획이 조금 보류되고 있는데 미술이나 철할 등 내가 모르는 분야의 작가들을 다루는 책이라면 이런 오류가 있어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서, 그리고 다른 작가애 대해서도 그런 정도의 책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에.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두 권인 듯, 책의 디자인과 폰트가 거의 같다. 책디자인과 폰트를 비롯한 다양한 것들은 시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변해왔기에 가끔 이렇게 완전히 예전의, 지금이라면 좀처럼 볼 수 없는 디자인에서 시각적인 즐거움과 질감을 느끼는 것도 책읽기에서 가끔 얻는 기쁨이다. 영미권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의 두 이야기들은 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뭔가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고정된 일상에서 행복을 찾다가 우연한 걔기로 방황하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비둘기)과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역시 시작부터 균일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내는 모습 (제로 전투기)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연달아 읽게 되었으니 기막힌 운명의 타이밍? 이 두 권 모두 비슷한 2012-2013년 언젠가 사들여 지금까지 보관해오다가 읽었다는 건 이들 두 권이 내가 꾸민 책세상속에서는 뭔가 강력한 운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아직 남은 여섯 권 정도는 지금 읽고 있는 Shirer의 20세기 3부작의 마지막을 끝내면 다시 정리해볼까 한다.


그간 해온 근육운동이 빛을 발하는 듯 어제 산을 6마일 탄 몸이지만 알이 배긴 곳이 없다. 뭐든 꾸준히 하는 건 근사한 것 같다. 다만 이런 저런 것들을 섞어주어야 덜 지겹고 부상도 예방하고 몸의 곳곳을 사용할 수 있다.


70의 내가 여전히 서재에 글을 쓰고 있다면 나도 하루키처럼 과거를 회상하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하다못해 아직 오지 않은 오십대나 육십대조차도 먼 과거의 일이 되어있을테니까. 언제나 내가 가장 젊은 건 오늘이라는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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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07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전 지금 4권 읽었는데 저자에 따라서 약간씩 퀄리티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특별히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엇는데 피츠제럴드 읽을 때는 님의 글이 도움이 될 거 같네요.

transient-guest 2020-12-08 02:0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이다혜 기자의 ‘코넌 도일‘로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참신한 계획이고 내용도 좋아서 시리즈를 모을 생각을 했는데 이번 피츠제럴드에서 고민하게 됐네요. 책을 못 썼다기 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 약간은 무성의함, 무엇보다 저자가 피츠제럴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많이 실망했어요.

다락방 2020-12-07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좋아해서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고 그래서 당연히 신간도 사서 읽고 있는데, 단편 앞에 두 편을 읽고는 이게 뭔가...싶어지고 있어요. 저는 하루키 소설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ㅠㅠ

transient-guest 2020-12-08 02:36   좋아요 0 | URL
저는 하루키에게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어서 그저 그의 작품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작가가 많이 늙었다는 세월의 무상함 내지는 뭔가 뭉클함 같은 감정이었어요. 언젠가 이 사람이 쓴 새로운 글을 읽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콕 찝어서 말하긴 어려운데 읽는 내내 작가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봤어요.ㅎ

다락방 2020-12-08 08:28   좋아요 1 | URL
저도 그건 자연스레 느끼게 되더라고요. 아, 하루키 이제 늙었구나, 하는거요. 어디에서 그렇게 느끼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어요.

transient-guest 2020-12-08 09:41   좋아요 0 | URL
그쵸? 역시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을만큼 자연스럽게 모든 곳에 베어있었나봐요. 읽는 내내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맘이 아프기도 하고, 세월의 무상함 같은 걸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얄라알라 2020-12-07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가 계속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어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과 이렇게 대화나누는 행복이^^

transient-guest 2020-12-08 02: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계속 이어지겠죠??ㅎ
 

역대급으로 가장 우울했던, 최소한 내 경험의 한도 내에서는 그럴 추수감사절과 연말이 오는 어귀에서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답답함에 어제 서점에도 가봤지만 더 이상 서점 내에서 머무르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늘 가장 길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약 20분 정도로 짧을 수 밖에 없다. 보통 이맘 때 같으면 카드나 선물을 사는 사람들과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연말의 설레임을 그 어디보다도 잘 느낄 수 있었을 공간이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거의 literally 회색과 음울한 blue의 색이 서점 내부를 감싼 듯 묵직하고 숨이 막히는 그곳에서는 책 한 권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할 만큼 답답함만이 가득했으니 코로나로 인해 트럼프가 낙선한 것 말고는 정말이지 살면서 겪어본 최악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책을 정리하려고 컴을 켰으나 고작 이 말만 나올 뿐, 메모해둔 글을 찾기도 싫어지는 일요일의 오후. 기대하고 사들여 읽은 책이 그 책이 속한 기획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불러일으킨 것도 기분이 나쁜 일이고 저자선정이 잘못됐다는 생각 외에도 상당 부분은 저자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도 모두 나를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려면 적어도 문학에 대한 것이라면 최소한 그 누군가에게 늘 관심을 두고 있었던 사람이면서 보다 더 해박한 지식과 부지런한 리서치를 수행할 수준의 사람은 되어야 한다. 


김중혁 작가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면인 바, 그가 고전문학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별히 읽을 생각이 없으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굳이 이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여러 번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요즘의 작가들 일군에서 심심히 않게 발견이 되고 있는 현상으로 느낄 만큼 종종 기반지식이 약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과도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개발새발 써놓고 originality만 줄창 강조한다는 건데, 문제는 이런 작가들에게는 지식의 부재와 함께 게으름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수치를 제시할 만큼 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읽는 현대의 한국작가들의 글에서 그런 냄새를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건 그만큼 글쓰기 자체가 가벼워졌고, 저열한 글쓰기가 양산되는 환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지식전달목적의 글을 쓰는 이가 특정분야에 대해 원래 아는 것이 전무하고 배경지식도 약하며, 철저한 조사 또한 수행하지 않고 대충 글을 쓴다면 그건 좋은 지식전달의 매개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소설을 비롯한 사회인문분야에서 글을 쓰는 이들의 무지와 게으름은 독창성이란 말로 퉁치는 것이 용납되는 걸까? 작가가 아닌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 생각하면 대충 300권, 많이 잡아도 500권 정도면 흔히 말하는 고전에 속하는 대표적인 책 혹은 작가들의 책을 상당한 수준으로 접할 수 있다. 이후 관심과 필요에 따라 특정한 작가나 시대 혹은 장르로 세분화하여 보다 깊고 넓은 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문학의 재미를 늦게 느낀 나는 무척 아쉽게 생각하는 바, 이런 300-500권 정도의 고전은 중고생때 좀 빠르면 국민학생시절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무리 늦어도 대학교시절이면 거의 다 볼 수 있고, 이때의 독서는 머리가 아주 fresh할 때의 힘으로 평생의 기억속에서 남은 생을 살면서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는 좋은 reference이자 지의 자양분이 된다. 


적어도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테크닉을 비롯한 기초공부가 없이 막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그림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고루한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너무 이상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읽었겠지만 보편적인 기초지식이 없을 수준이라면 그 사람이 쓴 소설을 읽을 이유가 없다. 


불만이 가득한 겨울. 이렇게 쓰니 존 스타인벡이 떠오른다. 내 기분과 비슷한 이름의 작품과는 큰 연관성이 없지만 말이다. 


아직도 해가 짱짱한데 갈 곳이 없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연말연시를 넘어 정상화가 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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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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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0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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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0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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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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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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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0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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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에는 새벽에 따뜻한 잠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 힘든 법이다. 그 와중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더 추운 거리로 나선다는 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요즘 계속 느끼고 있다. 징검다리처럼 가운데 수요일에 끼어버린 탓에 그리 감사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나가버리는 11월 2주차의 휴일 운동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으나 gym이 여는 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보니 (1) 바깥은 너무 춥고 어두운데 (2) 책은 또 어찌 그리 잘 읽히던지 (3) 그리고 오전에 해가 뜨면 운동을 해도 괜찮겠다는 간사한 생각까지 이어지지 두손 두발 아니 들 수만 있었다면 배와 엉덩이까지 다 들고 항복을 할 판이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추위와 어두움 (겨울철 새벽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은 커녕 밤의 끝없는 어둠이 이어지는 시간이 아닌가. 물론 막상 나가면 쌉쌀한 공기와 추위가 모든 감각을 깨우는 상쾌함이 몰려오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이 모든 유혹을 이기고 나갈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에 굴복하고 곱게 이불을 덮고 소파에 길게 뻗어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활시위를 당긴 채 살아온 지난 5년. 마침내 결실을 이루어 새롭게 함께 일할 녀석이 온 후 다시 1년의 방황을 지켜본 끝에 겪은 지독한 실망감. 거기에 경제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낭비를 넘어 가끔은 무슨 젓가락과 수저까지 탈탈 털린 것 같은 거지같은 기분, 그리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는 유난히 힘들었을 금년의 상황까지 책이 잘 읽어지기엔 너무도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을까. 낮에는 그리도 집중을 하기 어려웠던 지난 몇 개월이 무색하게 요즘 이런 새벽 시간에 온전히 책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즐겁게 이야기 하나 하나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겨울 이른 새벽의 독서는 덜 깨어난 시간의 추위와 어둠과는 다른 의미로 큰 유혹이다.


참 많은 이야기가 띄엄띄엄, 그 이야기 하나씩은 완벽하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덕분에 어제 잠깐 뒤적거리다 던져두었던 이 책을 오늘 새벽, 대실 해밋의 느와르에 지친 끝에 느껴지는 신선함을 맛보면서 육체의 운동을 대신할 꺼리로 다 읽어버리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이야기는 여성의 눈으로 입으로 느낌으로 후각으로 그리고 그 외에도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게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넘어 좀처럼 100%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에서의 세상을 보여준다. 패미니스트도 아니고 극단적인 이야기는 좋아하지도, 공감할 수도 없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무엇을 보는 건 늘 필요한 것 같다. 뭔가 모르지만 아주 조금은, 그러니까 진짜 아주 작고 적은 양이지만 내가 이해하는 것이 늘어난 것 같아서. 막상 현실과 생활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아예 모르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시작이라도, 아니 시작 근처라도 가야 하는 것이고 평생 해야 하는 공부이기도 하니까. 나는 남자라서. 잘 만들어진 단편소설, 그것들을 모은 단편집을 볼 때마다 드는 장편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아직은 이것이 만들어진, 학습된 아쉬움인지 고스란히 내 느낌인지는 좀 모호하지만.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하는 조각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안쓰럽다. 할머니와 흑색각설탕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아련함과 애틋함, 정신은 (세월에 따라 달리지지만) 그대로이되 육체가 늙어가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형벌일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아저씨가 나이를 먹어버린 소년이라면 꼭 같은 의미로, 아니 그보다 더한 깊이로 아줌마는 나이를 먹어버린 소녀라는 생각. 상대의 젊음과 싱그러움에만 집착하는 노년의 연애는 종종 추악하기 그지 없고 대부분 안 좋게 끝나고 보통은 교환관계로 서로에게서 원하는 매개체를 나누는 관계라는 편견이라면 편견이라고 해도 좋을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는 역시 서로의 눈높이와 추억이 비슷한 사람간의 사랑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타의 매'로 훨씬 더 유명한 작가의 전집, 첫 번쨰. 첫 몇 페이지가 넘어가면 술술 읽히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하드보일드 느와르물. 의뢰를 받고 간 마을에서 도착한 탐정이 맞닥뜨리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뢰인의 죽음.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느와르의 전형같은 갱단, 두목들, 마을을 휘어잡고 있는 토호, 부패한 경찰서장, 그리고 요부와도 같은, 덕분에 가장 주도적인 삶을 사는 듯한 여자 (나머지 여자들은 모두 가정주부, 비서, 아니면 그 이하). 남자들은 모두 지독한 마초 아니면 겁쟁이 그것도 아니면 망가진 기계처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단서를 잡을 만하면 사람이 죽고, 잘못된 단서가 나오고, 도시는 한 대여섯 번 정도 개판이 난 후, 갱단은 박살나고 토호는 다시 마을을 장악할 것이고 필요할 때는 멀리 있던 공권력은 어김없이 상황종료에 맞춰 나타나 힘의 공백을 메워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일면 싱겁기 그지 없으면서도 흑백영화를 본 것처럼 딱 그 정도의 재미. 


너무 오래 지체된 완독. 가을이면 매번 고전에 취해보리란 거창한 생각을 하면서 집어들지만 열 권도 채 못 읽고 한 해가 끝나버리는 걸 몇 번 되풀이 하고나서 보니 내 독서의 편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으로 주로 역사에 나오는 그는 오현제 시대의 가운데, 즉 세 번쨰의 황제였다는 것 외엔 달리 내가 아는 것이 없다. 회상의 형식으로 쓰인 책이고 첫 권에서는 각주가 너무 많아서 진도른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독자의 교양에만 기댈 수는 없겠지만 적절한 완급이 필요한 것이 각주가 아닌가 싶다. 원래 한 권에 나오는 걸 뜯어서 두 권 또는 세 권으로 만들어 2-3배의 수입을 노리는 것이 한국출판계의 악습이라고 감히 말하는 나는 2권의 반 이상이 저자의 창작노트와 역자후기 였음에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많은 책이 이미 그런 지점을 넘어선지 오래지만 정말이지 이 책은 한 권이면 딱 적당했을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1권을 읽을 때보다 2권부터 더 잘 들어왔는데 그런 의미에서 역시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은 지의 연마에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리서치나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는 되는대로 해도 문제가 없지만 책을 읽겠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시리즈를 다 읽어야 전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간략하게 노트하면 소설적인 재미도 좋았고 창작의 의미로도 고전의 모티브를 잘 가져와 사용한 것 같다. 오마주를 하는 것도 아니 각색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특히 동양의 고전을 가져다가 마치 노작을 하는 것처럼 버무려서 이야기를 만드는 건 과연 창작인지 아니면 번안인지 말하기 어려운데 이 시리즈는 그렇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피부색으로 직업과 귀천, 그리고 사회에서의 위치를 결정하고 한번 정해진 건 바뀌지 않는 절대적인 독재의 사회, 지배층은 그 내부에서 암투를 반복하는 지독한 신분제 사회는 분명 제정 로마와 스파르타에서 가져온 설정이지만 피부색을 주요테제로 내세우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미국의 인구의 반 정도가 21세기판 히틀러를 지지하는 것이 현실임을 자각한 요즘, 역시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발전, 아니 지키는 것만 해도 버거운 것임을 깨닫는 트럼프의 반국가적, 반사회적 억지와 사보타주를 보면서 레드라이징의 세상은 언제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아직도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협잘질을 부리는 트럼프와 그에 충성하는 개새끼들,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하고 일견 두려워 하는 듯한 비겁한 공화당 쓰레기들, 여기서 민주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 그리고 중간의 다수가 무력하거나 안이함을 보이는 순간, 히틀러의 제 3제국은 미국에서 부활할 수도 있음이다. 요즘의 트럼프를 보면 히틀러의 재림 같고 그를 추동하는 자들은 30년대의 독일사람들 같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의 무대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그와 그의 이야기가 그려낸 것을 시대의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버무려 보는 이야기. 거듭 말하지만 참 좋은 기획에 알찬 구성의 시리즈라는 생각. 그리고 역시 알아야 좀더 즐기고 느낄 수 있음에 아직도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던 독서. 민음사에서도 굉장히 훌륭하고 두껍고 비싸며 멋진 합본이 나온 걸 알고 있으나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전에 작고 앙증맞은, 예쁜 전집을 구한 것이 있는데 아직 열지는 않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그 전승에 대한 설화만큼,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해온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다. 굳이 세상을 비추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아도 되고, 시대풍자를 유추해도 즐거울 것이며 원형이 되는 유럽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현대에 와서 이런 저런 주제로 재해석되는 것도 간간히 즐거움을 주니 과연 고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하나씩 찾아가볼 교양의 세계의 필수독서가 아닌가 싶다.


편집자의 이야기. 내겐 조금 책보다는 신변잡기의 느낌이 강하기도 했고 뭔가 이 책을 읽을 때의 마음은 꾸역꾸역 뭔가를 입에 집어넣는 것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서의 인터벌이 너무 떨어진 요즘이라서 이 책을 읽은 건 벌써 한 달은 다 된 듯한 느낌이고 많은 걸 다시 떠올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솔직한 내 머릿속의 형편이다. 


책이 나오기 전의 이야기를 읽는, 그러니까 누구보다 먼저 책 혹은 책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들을 읽고, 아마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책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모조리 읽어버려야 하는 직업이 즐거울 것인가에 대해 정확히 대답할 수는 없으나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즐긴다면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어느 직업이나 업계에도 통용되는 바, 먹고 사는 문제는 분명한 현실이라서 최소한 break even에서 조금이나마 이익을 내야 하는 수준의 책을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고 싶은 책을 결국 출판하지 못할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한 우연으로 그저 손해만 면해도 좋겠다고 냈다는 토마 피케티의 책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여기도 쉬운 분야는 아닌 것이다. 작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이런 분들을 포함한 출판사 직원들의 밥벌이와 노력으로 오늘도 난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 감사한 마음이다. 


새벽은 책을 읽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생가하지만 사실 뭘 해도 좋은 개인의 온전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오전에 길을 나섰으나 역시 새벽의 싸한 공기와 혼자임에 충만할 수 있는 그 어둡지만 밝음이 오는 시간의 기쁨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으니, 역시 새벽만한 시간대가 없다. 겨울에는 추워서 어쩔 수 없지만 아마 봄이 오면 또다시 나는 새벽시간에 독서보다는 걷고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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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11-12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의 단편집 감상이 남성 독자로서의 시각을 알 수 있어 참 좋네요. <하드리아노스 황제의 회상록> 저는 읽다 포기했는데 완독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1권 초반부 읽다 포기해서 아쉬움이 커요.

transient-guest 2020-11-13 01:49   좋아요 0 | URL
1권 초반부가 확실히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무척 오래 걸렸어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여성작가의 소설을 모두 즐기지는 못하고 특정 주제의식이 너무 강하면 읽기 힘들지만 백수린 단편집은 좋았습니다.
 

미국의 미래, 아니 미국이 세계에서 갖는 위치와 위상, 그 이상 더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어쩌면 세계의 미래의 최소 일정부분의 미래를 결정할 이곳의 대선이 치뤄진다. 일찌감치 우편으로 투표를 했고 tracking까지 걸어서 내 표가 무사히 도착해서 count될 것이라는 확인까지 받아놓은 상태. 


오전에는 무릎이 조금 아파서 - 일주일 쉬었다고 그새 몸이 또 그렇게 됐다 - 푹 자고 점심 때 굵고 짧게 gym에서 하체와 어깨를 하고 왔다. 


맨정신으로는 남은 오후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tv를 켜놓고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잡무만 처리하며 개표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배가 좀 나온 것, 키가 중키에서 작은 쪽인 걸 빼고는 이 나이엔 나쁘지 않은 몸이란 걸 땀이 난 셔츠를 벗고 앉아 있으니 살짝 느끼고 있다. 그간의 운동을 통해 몸짱이 되거나 살이 많이 빠진 건 아니지만 - 그런걸 바라기엔 너무 먹고 마신다 - 그래도 꾸준한 운동은 가장 정직한 결과를 주는 것 같다. 세상과 삶의 오만가지는 외부의 영향을 받고 내가 노력한 대로 다 나오지도 않고, 가끔은 용쓴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주기도 하지만 운동과 섭생은 매우 정직하다. 아마 유일하게 그럴 것이다.


'퀸스 갬빗' (넷플릭스 - 강추. 에마의 애냐 테일러조이 주연)을 보다가 60년대 후반 맥주를 마시는 신에서 지금은 거의 똥 취급을 받는 버드와이저와 블루리본을 맛나게 마시는 걸 보고 하나씩 사왔다. 블루리본은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마시던 그야말로 60-70년대의 맛이면서 지금은 블루컬러의 맛으로 표현이 됐는데, 이번에 다시 마셔보니 역시 나에겐 너무 가볍다. 잠시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필스너로 입가심을 하고 다시 버드로 넘어가야겠다. (우웩..이 필스너는 꽝이구나. 혀에는 즐거우나 목넘김 때 맛이 이상하다).


사무실에는 따로 수도가 뚫리지 않아서 (요즘 대부분 그런 듯) 그냥 큐릭 커피메이커만 있고 물은 사다 마신다. 그래도 큐릭으로 물을 데울 수 있어서 사발면을 사다놓고 가끔 필요할 때 해장을  먹곤 한다.


미국과 한국, 아니 발전한 국가라는 곳들을 모두 포함해도 투표경향을 보면 이상한 사람들은 투표를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 맘은 미국에서 Republican일 수는 있어도 trumpard (trump 와 retard의 합성어)일 수는 없다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보수일 수는 있어도 한나라-새누리에서 이제는 일본 극우단체의 슬로건을 채택한 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성향으로 보면 중도보수 혹은 중도좌파에 가까운 나의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이명박근혜와 고쿠민노 치카라를 지지하는 사람, 이곳에서는 trumpard는 내가 감정으로, 논리로, 상식으로, 실리를 바탕으로...어떤 가치에 척도를 두더라도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50분 정도 있으면 조금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게다. 


국수종류는 to-go로 먹기 어려운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배달에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직접 가서 가져오더라도 한국의 신속정확배달에 비교한 한참이다. 덕분에 COVID-19이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쌀국수를 먹을 수 없었다. 25% capacity 인원제한 혹은 100인 (적은 쪽으로)까지 제한을 두고 내부영업을 하고 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가서 먹을 수 없다.  


PS 그나저나 Julie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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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0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미래...암울하네요..적어도 저에게는 ㅠㅠ 이것이야 말로 진정 미국의 민낯안던가요! 쌀국수 두 대접 먹고 싶네요 ㅠㅠ

transient-guest 2020-11-05 02:53   좋아요 1 | URL
오늘 아침부터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만 누가 이겨도 나라는 반으로 쪼개진 것이나 다름이 없네요.

2020-11-07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7 0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9월부터 독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런 깨달음. 뭘 해도 좋은 시간이 새벽의 조용하고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인데 특히 독서와 글을 쓰는데 이처럼 좋은 시간이 없다는 것. 새벽에는 주로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힘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하고 평일에는 새벽부터 이른 오전까지가 아니면 운동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삶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만, 역시 이 고요한 시간의 에너지와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발산되는 집중과 맑음은 책에 바쳐져야 온당하다. 기도나 명상도 이 시간에 어울리는 마음의 행위임을 보면 내면의 독서라는 건 결국 기도나 명상과 다름이 없는 성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싶다. 


코넌 도일의 자취를 따라 에딘버러와 런던을 오가면서 셜록 홈즈를 이야기하는 이다혜 기자의 책을 보고나서 이런 테마로 시리즈가 나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듯 만들어진 '걸어 본다'에 무척 실망한 터였지만 (그 shallow함이란) 이 시리즈는 적어도 이번 두 번째의 리딩까지는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잔잔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벌써 일년이 훨씬 넘어 이년은 족히 되어가는 듯한 예전에 드영 아니면 리전오브아너 박물관에서 클림트와 로댕의 연합전시회를 다녀온 것이 이 책과의 대화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전시회에 다녀오기 전에 배경지식을 얻기 위해 마침 언젠가 구해놓았던 클림트를 읽은 것이 또한 이 책과 좋은 시간을 갖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주 함축적이지만 각각의 scene에서는 무척 구체적으로 깊게 다룬 클림트와 그의 예술세계의 이 책은 흥미로운 예술가를 다뤘다는 점 못지않게 그 기승전결 또한 매우 잘 짜여진 하나의 극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의 약력으로만 assume하고 얘기할 만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제도권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건 '걸어 본다'시리즈에서 얻은 실망이 큰 탓이다. 


다시 미술관이 열리고 일단 코로나로 죽거나 굶어 죽어야 하는 처절한 선택지점에서 이 지역은 코로나로 죽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 듯, 모든 것이 up to 25-50%의 인원제한으로 열렸다. 이제 음식점 내부에서도 이 조건을 지키는 한 식사가 가능하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지만 하필이면 미국 전체에서는 엄청난 숫자로 다시 전염자가 급증하는 시기와 맞물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더 위험한 상황이 금방 재개될 것 같다. gym은 그간 많은 멤버를 잃어버린 듯 새벽이나 점심 모두 사람이 매우 적지만 마스크를 벗지 않고 운동을 하는 환경이라서 닫힌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느껴진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원래 지난 3월에 시작에 맞춰 가려던 프라다 칼로의 전시회를 다가오는 다음 주 토요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철저한 예약제로 사람이 가장 적을 오전 9:30, 두 번째 타임에 맞춰 끊었고 이를 위해 그간 미뤄온 미술관 회원증을 갱신했다. 연간 117불로 De Young과 Palace of Legion of Honor 두 곳을 무제한 이용하고 심지어 남에게 표를 끊어줄 수도 있는데 작년부터 잘 이용하고 주변에도 인심을 쓰니 나쁘지 않다. SF Museum of Modern Art (SFMOMA)는 작년에 앤디 워홀의 전시에 맞춰 회원가입을 했으나 한번 이용하고는 갈 일이 없었던 탓에 이번에는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장부에 맞춰 연초에 이듬해의 수입과 세금을 계산할 때 늘 드는 의문이 profit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읽었는데 비록 중언부언에 쓸데없는 말이 많은 책이지만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장부는 장부로 두고, 실제로 들어오는 돈을 관리하자는 건데 9월부터 실행을 해본 결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너무 늦은 시작이란 건 없고 후회는 언제해도 너무 늦었다는 주의라서 바로 실행에 옮긴 건데, 기대수명에 비춰 아직도 15-25년은 더 일해야 하는 나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될 일이다. 일단 들어오는 금액의 30%을 미리 떼어놓고 임금처리, 렌트, 업무비용 등을 충당하고 (내 월급 포함) 나머지는 적절히 분산해서 모아두고 있다. 일년을 이렇게 하면 그 다음 해에 발생할 세금을 미리 모으고 수익금은 투자로 돌리는 것 외에도 상당한 수준의 예비자금을 모으고 좀더 장기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형태의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책은 딱 그 반 정도면 충분히 할 말을 할 수 있었을 정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인기 높은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오마쥬 또한 많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두 어 작품은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번에 읽은 일본작가의 책 또한 이를 오마쥬하여 신박한 twist를 보여준 즐거운 이야기였다. 단순히 각색을 통한 번안하는 수준은 일본의 경우 이미 다이쇼 시대 정도에 많이 한 것 같고 현대로 들어오면 이렇게 장치와 구성을 빌려와서 전혀 다른 길로 가는 수준을 보여준다. 우리보다 근대화가 빨랐던 것이 문학에서도 큰 차이를 갖게 되어버린 바, 굳이 일본의 것이 우리보다 낫다는 걸 넘어 일단 우리 소설계는 장편을 제대로 쓰는 것부터해서 단절된 문학의 발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쟈선생의 최근작에서 다뤄진 '장편의 부재'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글세계 전체의 큰 병과도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난 30년간 커진 활자의 font size와 멀어진 글 사이의 간격에 힘입어 단편이 중편이 되고 중편이 장편이 되어버린 병폐를 넘어가는 건 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노력해야 하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쓰고 나니 지난 번의 페이퍼 이후 읽은 책이 딱 세 권임을 알게 됐다. 이번 달은 이제 일주일이면 끝인데 아직 여섯 권은 더 읽어야 보통의 페이스가 resume될 수 있음이다. 연 250권은 읽어야 4년 = 1000권, 40년 = 10000권이라는 목표를 채울 수 있다. 40이 되던 해에 잡은 나름 원대한 계획인데 이번의 첫 4년은 그 후반부가 되어보니 힘이 빠진 것 같다. 다행히 그전 3년의 열심한 독서로 아마 1000권을 채우는 건 문제가 없겠지만 그 질과 깊이에는 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내년부터 시작될 두 번째 4년은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새벽에는 가급적 일찍 일어나서 2-3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운동에 나설 생각이다. 주중에는 아무래도 새벽시간은 운동에 바쳐져야 마땅하지만 주말에는 3시 정도에 일어나서 6시까지 책을 읽은 후 9시까지 운동에 쓰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럼 필연적으로 주말 저녁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니 좀 괴롭지만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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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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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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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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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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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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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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