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독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런 깨달음. 뭘 해도 좋은 시간이 새벽의 조용하고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인데 특히 독서와 글을 쓰는데 이처럼 좋은 시간이 없다는 것. 새벽에는 주로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힘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하고 평일에는 새벽부터 이른 오전까지가 아니면 운동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삶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만, 역시 이 고요한 시간의 에너지와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발산되는 집중과 맑음은 책에 바쳐져야 온당하다. 기도나 명상도 이 시간에 어울리는 마음의 행위임을 보면 내면의 독서라는 건 결국 기도나 명상과 다름이 없는 성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싶다. 


코넌 도일의 자취를 따라 에딘버러와 런던을 오가면서 셜록 홈즈를 이야기하는 이다혜 기자의 책을 보고나서 이런 테마로 시리즈가 나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듯 만들어진 '걸어 본다'에 무척 실망한 터였지만 (그 shallow함이란) 이 시리즈는 적어도 이번 두 번째의 리딩까지는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잔잔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벌써 일년이 훨씬 넘어 이년은 족히 되어가는 듯한 예전에 드영 아니면 리전오브아너 박물관에서 클림트와 로댕의 연합전시회를 다녀온 것이 이 책과의 대화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전시회에 다녀오기 전에 배경지식을 얻기 위해 마침 언젠가 구해놓았던 클림트를 읽은 것이 또한 이 책과 좋은 시간을 갖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주 함축적이지만 각각의 scene에서는 무척 구체적으로 깊게 다룬 클림트와 그의 예술세계의 이 책은 흥미로운 예술가를 다뤘다는 점 못지않게 그 기승전결 또한 매우 잘 짜여진 하나의 극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의 약력으로만 assume하고 얘기할 만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제도권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건 '걸어 본다'시리즈에서 얻은 실망이 큰 탓이다. 


다시 미술관이 열리고 일단 코로나로 죽거나 굶어 죽어야 하는 처절한 선택지점에서 이 지역은 코로나로 죽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 듯, 모든 것이 up to 25-50%의 인원제한으로 열렸다. 이제 음식점 내부에서도 이 조건을 지키는 한 식사가 가능하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지만 하필이면 미국 전체에서는 엄청난 숫자로 다시 전염자가 급증하는 시기와 맞물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더 위험한 상황이 금방 재개될 것 같다. gym은 그간 많은 멤버를 잃어버린 듯 새벽이나 점심 모두 사람이 매우 적지만 마스크를 벗지 않고 운동을 하는 환경이라서 닫힌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느껴진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원래 지난 3월에 시작에 맞춰 가려던 프라다 칼로의 전시회를 다가오는 다음 주 토요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철저한 예약제로 사람이 가장 적을 오전 9:30, 두 번째 타임에 맞춰 끊었고 이를 위해 그간 미뤄온 미술관 회원증을 갱신했다. 연간 117불로 De Young과 Palace of Legion of Honor 두 곳을 무제한 이용하고 심지어 남에게 표를 끊어줄 수도 있는데 작년부터 잘 이용하고 주변에도 인심을 쓰니 나쁘지 않다. SF Museum of Modern Art (SFMOMA)는 작년에 앤디 워홀의 전시에 맞춰 회원가입을 했으나 한번 이용하고는 갈 일이 없었던 탓에 이번에는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장부에 맞춰 연초에 이듬해의 수입과 세금을 계산할 때 늘 드는 의문이 profit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읽었는데 비록 중언부언에 쓸데없는 말이 많은 책이지만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장부는 장부로 두고, 실제로 들어오는 돈을 관리하자는 건데 9월부터 실행을 해본 결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너무 늦은 시작이란 건 없고 후회는 언제해도 너무 늦었다는 주의라서 바로 실행에 옮긴 건데, 기대수명에 비춰 아직도 15-25년은 더 일해야 하는 나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될 일이다. 일단 들어오는 금액의 30%을 미리 떼어놓고 임금처리, 렌트, 업무비용 등을 충당하고 (내 월급 포함) 나머지는 적절히 분산해서 모아두고 있다. 일년을 이렇게 하면 그 다음 해에 발생할 세금을 미리 모으고 수익금은 투자로 돌리는 것 외에도 상당한 수준의 예비자금을 모으고 좀더 장기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형태의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책은 딱 그 반 정도면 충분히 할 말을 할 수 있었을 정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인기 높은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오마쥬 또한 많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두 어 작품은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번에 읽은 일본작가의 책 또한 이를 오마쥬하여 신박한 twist를 보여준 즐거운 이야기였다. 단순히 각색을 통한 번안하는 수준은 일본의 경우 이미 다이쇼 시대 정도에 많이 한 것 같고 현대로 들어오면 이렇게 장치와 구성을 빌려와서 전혀 다른 길로 가는 수준을 보여준다. 우리보다 근대화가 빨랐던 것이 문학에서도 큰 차이를 갖게 되어버린 바, 굳이 일본의 것이 우리보다 낫다는 걸 넘어 일단 우리 소설계는 장편을 제대로 쓰는 것부터해서 단절된 문학의 발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쟈선생의 최근작에서 다뤄진 '장편의 부재'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글세계 전체의 큰 병과도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난 30년간 커진 활자의 font size와 멀어진 글 사이의 간격에 힘입어 단편이 중편이 되고 중편이 장편이 되어버린 병폐를 넘어가는 건 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노력해야 하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쓰고 나니 지난 번의 페이퍼 이후 읽은 책이 딱 세 권임을 알게 됐다. 이번 달은 이제 일주일이면 끝인데 아직 여섯 권은 더 읽어야 보통의 페이스가 resume될 수 있음이다. 연 250권은 읽어야 4년 = 1000권, 40년 = 10000권이라는 목표를 채울 수 있다. 40이 되던 해에 잡은 나름 원대한 계획인데 이번의 첫 4년은 그 후반부가 되어보니 힘이 빠진 것 같다. 다행히 그전 3년의 열심한 독서로 아마 1000권을 채우는 건 문제가 없겠지만 그 질과 깊이에는 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내년부터 시작될 두 번째 4년은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새벽에는 가급적 일찍 일어나서 2-3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운동에 나설 생각이다. 주중에는 아무래도 새벽시간은 운동에 바쳐져야 마땅하지만 주말에는 3시 정도에 일어나서 6시까지 책을 읽은 후 9시까지 운동에 쓰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럼 필연적으로 주말 저녁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니 좀 괴롭지만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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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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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3: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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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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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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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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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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