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계절에는 새벽에 따뜻한 잠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 힘든 법이다. 그 와중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더 추운 거리로 나선다는 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요즘 계속 느끼고 있다. 징검다리처럼 가운데 수요일에 끼어버린 탓에 그리 감사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나가버리는 11월 2주차의 휴일 운동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으나 gym이 여는 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보니 (1) 바깥은 너무 춥고 어두운데 (2) 책은 또 어찌 그리 잘 읽히던지 (3) 그리고 오전에 해가 뜨면 운동을 해도 괜찮겠다는 간사한 생각까지 이어지지 두손 두발 아니 들 수만 있었다면 배와 엉덩이까지 다 들고 항복을 할 판이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추위와 어두움 (겨울철 새벽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은 커녕 밤의 끝없는 어둠이 이어지는 시간이 아닌가. 물론 막상 나가면 쌉쌀한 공기와 추위가 모든 감각을 깨우는 상쾌함이 몰려오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이 모든 유혹을 이기고 나갈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에 굴복하고 곱게 이불을 덮고 소파에 길게 뻗어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활시위를 당긴 채 살아온 지난 5년. 마침내 결실을 이루어 새롭게 함께 일할 녀석이 온 후 다시 1년의 방황을 지켜본 끝에 겪은 지독한 실망감. 거기에 경제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낭비를 넘어 가끔은 무슨 젓가락과 수저까지 탈탈 털린 것 같은 거지같은 기분, 그리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는 유난히 힘들었을 금년의 상황까지 책이 잘 읽어지기엔 너무도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을까. 낮에는 그리도 집중을 하기 어려웠던 지난 몇 개월이 무색하게 요즘 이런 새벽 시간에 온전히 책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즐겁게 이야기 하나 하나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겨울 이른 새벽의 독서는 덜 깨어난 시간의 추위와 어둠과는 다른 의미로 큰 유혹이다.


참 많은 이야기가 띄엄띄엄, 그 이야기 하나씩은 완벽하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덕분에 어제 잠깐 뒤적거리다 던져두었던 이 책을 오늘 새벽, 대실 해밋의 느와르에 지친 끝에 느껴지는 신선함을 맛보면서 육체의 운동을 대신할 꺼리로 다 읽어버리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이야기는 여성의 눈으로 입으로 느낌으로 후각으로 그리고 그 외에도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게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넘어 좀처럼 100%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에서의 세상을 보여준다. 패미니스트도 아니고 극단적인 이야기는 좋아하지도, 공감할 수도 없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무엇을 보는 건 늘 필요한 것 같다. 뭔가 모르지만 아주 조금은, 그러니까 진짜 아주 작고 적은 양이지만 내가 이해하는 것이 늘어난 것 같아서. 막상 현실과 생활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아예 모르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시작이라도, 아니 시작 근처라도 가야 하는 것이고 평생 해야 하는 공부이기도 하니까. 나는 남자라서. 잘 만들어진 단편소설, 그것들을 모은 단편집을 볼 때마다 드는 장편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아직은 이것이 만들어진, 학습된 아쉬움인지 고스란히 내 느낌인지는 좀 모호하지만.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하는 조각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안쓰럽다. 할머니와 흑색각설탕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아련함과 애틋함, 정신은 (세월에 따라 달리지지만) 그대로이되 육체가 늙어가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형벌일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아저씨가 나이를 먹어버린 소년이라면 꼭 같은 의미로, 아니 그보다 더한 깊이로 아줌마는 나이를 먹어버린 소녀라는 생각. 상대의 젊음과 싱그러움에만 집착하는 노년의 연애는 종종 추악하기 그지 없고 대부분 안 좋게 끝나고 보통은 교환관계로 서로에게서 원하는 매개체를 나누는 관계라는 편견이라면 편견이라고 해도 좋을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는 역시 서로의 눈높이와 추억이 비슷한 사람간의 사랑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타의 매'로 훨씬 더 유명한 작가의 전집, 첫 번쨰. 첫 몇 페이지가 넘어가면 술술 읽히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하드보일드 느와르물. 의뢰를 받고 간 마을에서 도착한 탐정이 맞닥뜨리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뢰인의 죽음.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느와르의 전형같은 갱단, 두목들, 마을을 휘어잡고 있는 토호, 부패한 경찰서장, 그리고 요부와도 같은, 덕분에 가장 주도적인 삶을 사는 듯한 여자 (나머지 여자들은 모두 가정주부, 비서, 아니면 그 이하). 남자들은 모두 지독한 마초 아니면 겁쟁이 그것도 아니면 망가진 기계처럼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 단서를 잡을 만하면 사람이 죽고, 잘못된 단서가 나오고, 도시는 한 대여섯 번 정도 개판이 난 후, 갱단은 박살나고 토호는 다시 마을을 장악할 것이고 필요할 때는 멀리 있던 공권력은 어김없이 상황종료에 맞춰 나타나 힘의 공백을 메워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일면 싱겁기 그지 없으면서도 흑백영화를 본 것처럼 딱 그 정도의 재미. 


너무 오래 지체된 완독. 가을이면 매번 고전에 취해보리란 거창한 생각을 하면서 집어들지만 열 권도 채 못 읽고 한 해가 끝나버리는 걸 몇 번 되풀이 하고나서 보니 내 독서의 편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으로 주로 역사에 나오는 그는 오현제 시대의 가운데, 즉 세 번쨰의 황제였다는 것 외엔 달리 내가 아는 것이 없다. 회상의 형식으로 쓰인 책이고 첫 권에서는 각주가 너무 많아서 진도른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독자의 교양에만 기댈 수는 없겠지만 적절한 완급이 필요한 것이 각주가 아닌가 싶다. 원래 한 권에 나오는 걸 뜯어서 두 권 또는 세 권으로 만들어 2-3배의 수입을 노리는 것이 한국출판계의 악습이라고 감히 말하는 나는 2권의 반 이상이 저자의 창작노트와 역자후기 였음에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많은 책이 이미 그런 지점을 넘어선지 오래지만 정말이지 이 책은 한 권이면 딱 적당했을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1권을 읽을 때보다 2권부터 더 잘 들어왔는데 그런 의미에서 역시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읽어내는 것은 지의 연마에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리서치나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는 되는대로 해도 문제가 없지만 책을 읽겠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시리즈를 다 읽어야 전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간략하게 노트하면 소설적인 재미도 좋았고 창작의 의미로도 고전의 모티브를 잘 가져와 사용한 것 같다. 오마주를 하는 것도 아니 각색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특히 동양의 고전을 가져다가 마치 노작을 하는 것처럼 버무려서 이야기를 만드는 건 과연 창작인지 아니면 번안인지 말하기 어려운데 이 시리즈는 그렇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피부색으로 직업과 귀천, 그리고 사회에서의 위치를 결정하고 한번 정해진 건 바뀌지 않는 절대적인 독재의 사회, 지배층은 그 내부에서 암투를 반복하는 지독한 신분제 사회는 분명 제정 로마와 스파르타에서 가져온 설정이지만 피부색을 주요테제로 내세우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미국의 인구의 반 정도가 21세기판 히틀러를 지지하는 것이 현실임을 자각한 요즘, 역시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발전, 아니 지키는 것만 해도 버거운 것임을 깨닫는 트럼프의 반국가적, 반사회적 억지와 사보타주를 보면서 레드라이징의 세상은 언제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아직도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협잘질을 부리는 트럼프와 그에 충성하는 개새끼들,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하고 일견 두려워 하는 듯한 비겁한 공화당 쓰레기들, 여기서 민주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 그리고 중간의 다수가 무력하거나 안이함을 보이는 순간, 히틀러의 제 3제국은 미국에서 부활할 수도 있음이다. 요즘의 트럼프를 보면 히틀러의 재림 같고 그를 추동하는 자들은 30년대의 독일사람들 같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의 무대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그와 그의 이야기가 그려낸 것을 시대의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버무려 보는 이야기. 거듭 말하지만 참 좋은 기획에 알찬 구성의 시리즈라는 생각. 그리고 역시 알아야 좀더 즐기고 느낄 수 있음에 아직도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던 독서. 민음사에서도 굉장히 훌륭하고 두껍고 비싸며 멋진 합본이 나온 걸 알고 있으나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전에 작고 앙증맞은, 예쁜 전집을 구한 것이 있는데 아직 열지는 않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그 전승에 대한 설화만큼,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해온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다. 굳이 세상을 비추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아도 되고, 시대풍자를 유추해도 즐거울 것이며 원형이 되는 유럽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현대에 와서 이런 저런 주제로 재해석되는 것도 간간히 즐거움을 주니 과연 고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하나씩 찾아가볼 교양의 세계의 필수독서가 아닌가 싶다.


편집자의 이야기. 내겐 조금 책보다는 신변잡기의 느낌이 강하기도 했고 뭔가 이 책을 읽을 때의 마음은 꾸역꾸역 뭔가를 입에 집어넣는 것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서의 인터벌이 너무 떨어진 요즘이라서 이 책을 읽은 건 벌써 한 달은 다 된 듯한 느낌이고 많은 걸 다시 떠올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솔직한 내 머릿속의 형편이다. 


책이 나오기 전의 이야기를 읽는, 그러니까 누구보다 먼저 책 혹은 책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들을 읽고, 아마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책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모조리 읽어버려야 하는 직업이 즐거울 것인가에 대해 정확히 대답할 수는 없으나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즐긴다면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어느 직업이나 업계에도 통용되는 바, 먹고 사는 문제는 분명한 현실이라서 최소한 break even에서 조금이나마 이익을 내야 하는 수준의 책을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고 싶은 책을 결국 출판하지 못할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한 우연으로 그저 손해만 면해도 좋겠다고 냈다는 토마 피케티의 책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여기도 쉬운 분야는 아닌 것이다. 작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이런 분들을 포함한 출판사 직원들의 밥벌이와 노력으로 오늘도 난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 감사한 마음이다. 


새벽은 책을 읽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생가하지만 사실 뭘 해도 좋은 개인의 온전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오전에 길을 나섰으나 역시 새벽의 싸한 공기와 혼자임에 충만할 수 있는 그 어둡지만 밝음이 오는 시간의 기쁨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으니, 역시 새벽만한 시간대가 없다. 겨울에는 추워서 어쩔 수 없지만 아마 봄이 오면 또다시 나는 새벽시간에 독서보다는 걷고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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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11-12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의 단편집 감상이 남성 독자로서의 시각을 알 수 있어 참 좋네요. <하드리아노스 황제의 회상록> 저는 읽다 포기했는데 완독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1권 초반부 읽다 포기해서 아쉬움이 커요.

transient-guest 2020-11-13 01:49   좋아요 0 | URL
1권 초반부가 확실히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무척 오래 걸렸어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여성작가의 소설을 모두 즐기지는 못하고 특정 주제의식이 너무 강하면 읽기 힘들지만 백수린 단편집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