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걷는 길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한수임 그림 / 실천문학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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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한 편과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한 편을 함께 읽은 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 아들, 딸에게 무엇을 들려주는 부모로 기억될까 하고. 당면과제는 아니지만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해 줄 부모가 되고 싶기도 하고 자녀와 함께 자연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 누군가가 이미 해 본 일에 대한 카피본 교육이라도 좋은 것이라면 내것화 하고 싶은 것이 교육일테니까. 

숨기는 것이 제일 싫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때때로 거짓말을 한다.  설명하기 곤란해서, 이해하기 힘들까봐, 상처가 될까 싶어, 모르는 것이 약이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니까 라는 여러 이유로 아이들에게 판단의 선택권을 주지 않을 때가 있다.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각각의 나이때에 맞는 이해를 구하곤 있지만 좋은 것만 들려주는 것이 아닌 하기 힘든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각각의 책을 잃고 정서적 양분을 전해받았다라고 생각했다. 

전작이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이고, 후작이 이순원 작가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다. 
[은비령]의 이순원 작가의 글은 2011년 개정된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일부가 발췌되어 실릴 정도라도 하니 읽어보면 그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비록 초등학교를 졸업한지는 오래되었지만 소나기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요즘 아이들도 받지 않을까. 나의 책상이나 소나기 같은 책들이 실려 있던 교과서를 몇년전까지는 소장하고 있었는데 최근 이사하면서 분실해버려 마음이 무거웠던 참이었다. 

그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이 소설을 아껴볼까 싶은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과 함께하는 길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길로 묘사되어 꽃샘추위의 날씨 속에 읽었는데도 따스함이 감돌았다. 초등학생인 큰 아들과 대관령 고갯길을 걸어넘으며 미끌어지지기도 하고 업고 걷기도 하면서 부자는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이어나간다. 한쪽 귀가 없는 집안 할아버지의 사연에서부타 시작된 가족내의 이야기나 소설가 아빠의 소설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웠던 학교의 이야기, 아빠의 친구와 나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바우길"은 그렇게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 "강원도 바우길"은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길이며,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지었던 길이자 단원 김홍도가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오래된 길이기도 했다. 그 길을 오늘날 한 아빠와 아들이 걸으며 그들만의 추억을 묻혀 걷고 있었는데, 그 길 끝에 아빠와 화해하지 못하고 살아온 할아버지의 집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감동이었다. 

중간중간 황새밥, 이건 버름, 새풀, 민들게, 개망초, 고들빼기 등 도시의 아이들이 모를 풀이름들을 줄줄 꿰어주는 아빠의 풀이름대기나 자작나무, 도토리 나무, 상수리 나무 등을 수목원이 아닌 자연 그 자체에서 짚어대며 걷는 길은 그 어떤 영화속 장면보다 멋진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이 소설을 읽고 앞으로 많은 아빠들이 바쁨과 게으름을 핑계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자연으로 떠나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먼길이 제시되어 있는 초록색 장편소설은 알퐁스 도데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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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노웨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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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라임 시리즈와 캐트린 댄스 시리즈를 쓰는 틈틈 장편 하나씩을 완성해가는 작가 제프리 디버의 [블루 노웨어]는 발전만을 추구해오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터미네이터] 때까지만 해도 인간에게 경고하던 존재는 "로버트"였다.  인간이 좀 편해지고자 만든 그들이 인간의 삶을 역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경종을 울리며 비슷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아이,로봇] 이후 작품들 속에선 인간에게 대항해오는 세력은 프로그램 하나나 컴퓨터 그 자체가 되고 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결국 편리를 위해 만든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을 밀어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것이라 해석해도 좋을까. 


컴퓨터로 거의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가능하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제 컴퓨터는 삶의 전반을 파고들며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간단한 키 조작으로 실제로 하지 않은 이에게 살인 누명도 씌울 수 있고 그의 존재를 싹 없애 버릴 수도 있으며 세금포탈이나 연체, 전과조작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휴지조각으로도 만들 수 있다. 간단히 몇 가지 조작으로.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편리함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제프리 디버의 [블루 노웨어]가 그런 마음을 증폭시킨다. 

스물 아홉의 질레트는 임시 가석방 된다. 도전을 즐기고 살인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범인 페이트와 그의 공범 숀을 잡기 위해서.
존 핼러웨이로 불리기도 했던 페이트는 해커도 놀랄만한 최고의 사회 공학꾼으로 교환기 트래킹이나 트랩도어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마치 사이코 패스처럼 그는 감정이 없다. 최초의 살인 게임을 가족을 대상으로 한 그에게 애초에 감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런 페이트를 앞지르기 위해선 그만큼이나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질레트였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두뇌아지 심장인 원시코드를 훔쳐 수감중이었는데 인터넷에 중독된 중독자이자 뛰어난 프로그래머였다. 사이버 스페이스 안에서그는 혁신적인 프로그래머인 해커였으나 파과나 절도를 위한 침입자를 뜻하는 크래커는 아니었기에 페이트 일행이 해커규칙 1호 "민간인은 내버려 두라"를 어기자 화를 내며 그를 쫓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모든 것은 철자에 담겨 있다 는 질레트의 생각이 곳곳에서 올바른 것임이 밝혀지며 페이트를 쫓고 숀을 찾는 순간 우리는 숀의 정체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되어 버린다. 

20세기에는 사람들이 이론을 훔쳤지만 이제는 그 대상이 사생활, 비밀, 환상이 되었다는 블루 노웨어. 블루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전기이며 노웨어는 실체가 없는 장소를 뜻해서 조합된 단어인 블루 노웨어 자체가 사이버 스페이스를 뜻하는 이 소설은 앞으로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걱정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극 중 페이트는 자신에게 묻는다 Q :  누가 되고 싶지?  A : 이 세상 그 누구든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은 원하면 이 세상 누구든지 없앨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거의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인간은 얼마나 또 무력해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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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의 비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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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지하도의 비] 는 배신의 반전을 맛보게 하는 단편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조그마한 여인, 작디작은 아사코는 이토 미쓰루에 배신당했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그는 결혼 이주 전 "미안, 어쩔 수 없었어"라는 단 한마디로 결혼을 뒤엎었고 이후 아사코는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멍하니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 앞에 같은 상처를 지닌 모리이 요코가 나타나지만 곧 호의는 악의로 변했고 심술궂은 말투와 더러운 말을 내뱉는 본성을 내보이며 그녀는 아사코와 우연히 만난 아쓰시를 향해 마수를 뻗는다. 

수제품이라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다던 동백꽃이 그려진 넥타이 때문에 요코를 다시 만나게 된 아사코는 그제서야 배신의 반전에 대해 듣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된다. 

[결코 보이지 않는다] 는 "큰 덩치에 비해 상냥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야케 에쓰로에게 어느날 밤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좀처럼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다 함께 서 있던 노인에게 합승을 제안하지만 한 대도 서지 않는 택시 탓에 두 사람은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작된 노인의 넋두리. "나는 운이 나빴어"를 반복하며 인연의 줄처럼 임종을 지켜주는 상대와도 검은 실로 묶여있다며 가족이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비명횡사시 자신이 그 상대를 위해 나서야 해서 당신 앞에 나타났다는 섬뜩한 말을 내뱉는다. 이윽고 에쓰로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이 꿈인지, 죽은 그가 다시 생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단편은 끝나버린다.

부두에서 죽음의 다이빙을 한 일가족 네명의 사인이 사고인지 자살인지를 두고 주변인들의 인터뷰가 계속되는 [불문율] , "너 한테는 내 얘기를 들을 의무가 있다" 며 밤마다 전화 걸어오는 변태에게 전화의 정령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지막에 강제 집행이 이루어지는 [혼선] , 살인범의 뒤를 쫓는 형사반장의 이야기인 [무쿠로바라] 외에도 두 편이 더 실려 총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된 [지하도의 비]는 마치 비오는 날 눅눅한 공기 속에서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읽게 만드는 책이다. 

욕망이나 상처보다는 기괴하고 기묘한 미스터리 일색인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일면을 엿보게 만든 좋은 단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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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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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리오카 고급 주택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딸 아야카의 히스테릭컬한 목소리가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는 엔도 가족의 가정문제는 이제 동네 모두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겉으로 화목해 보이던 다카하시 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 줄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던 엔도 가족도 감쪽같이 몰랐던 사실이다. 우발적 살인은 화산이 폭발하듯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된 것이었는데,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은 의외로 쉽게 찾아왔다.

 

언제나 사건이 터지면 도망가기 일쑤였던 방관자형 가장 게이스케는 다카하시 가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시각, 바로 그 집 앞에서 부부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고 딸의 내뱉는 모욕적인 말과 폭행을 달래기만 하려다 한순간 딸의 목을 조르게 되는 엄마 마유미는 다카하시 가의 막내 신지를 편의점에서 만나 만엔을 빌려주게 된다. 그 시각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 정도였을 것이다. 또한 엄마의 욕심탓에 히바리오카로 이사오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박쥐가 되어 버린 아야카는 옆집에서 큰소리가 들려오자 묵과해 버린다. 

 

시끌시끌한 엔도가와 달리 인자한 의사 아버지 히로유키와 미모의 어머니 준코, 유명 사립고에 다니는 딸 히나코, 핸섬하고 농구를 잘하는 막내아들 신지, 마지막으로 학교 주변에서 따로 살고 있는 전처 소생의 의대생 큰 아들 요시유키는 단란한 다카하시 가의 식구들이었다. 성적과 농구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신지가 엄마와 언쟁을 벌이던 날 준코가 히로유키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신지가 행방불명되고 그 날 하필 친구 집에 가 있던 히나코는 오빠 요시유키를 찾아나섰다가 오빠와 동생 둘 다와 마주치게 된다.

 

여기에 히나코의 절친이자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딸인 아유미와 마을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노부인 사토코까지 합세해 이야기는 놀이기구의 마지막 순간처럼 재미에 박차를 가한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놀이기구가 어느 순간 멈추듯 이야기도 끝을 맺는데, 기존에 미나토 가나에가 [고백]이나 [소녀],[속죄]에서와 달리 훈훈한 마무리를 맺어준 점이 인상깊었다. 사망한 아버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하얀 거짓말로 사건을 덮는 삼남매. 엄마는 다르지만 가족 모두를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한 그들은 이미 알았던 것이 아닐까.

 

악마의 마음에서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시간 단 1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특별한 자부심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사토코는 이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엔도가와 다카하시 가의 따뜻한 이웃을 자청하고 나섰다. 또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엔도가에도 그럭저럭 평화의 시간이 찾아왔고 다카하시 가의 악몽도 끝을 맺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의 표현이 겹겹히 쌓인 오해의 앙금을 단 한 순간 날려 버릴 수 있음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이랄까. 이야기 내내 단 한번의 언급 외엔 야행관람차를 탄다든가 놀이동산에 간다든가 하는 배경적 언급은 없었지만 나는 내내 야행관람차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소설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모든 일을 위에서 관람하듯 내려다보며 약간의 울렁임과 시원함도 함께 만끽하며 소석이 마지막 바퀴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미나토 가나에의 가족 소설 역시 그녀만의 특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포장에 지겨워진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진화되고 있는 그녀의 매끄러운 풀이에 감탄하며 마지막장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악마의 마음과 천사의 마음은 함께하면서도 언제나 서로 먼저 튀어나오려고 경쟁하는 사이같아 조마조마해 질 수 밖에 없는데,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특히 더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이 앞선다. 주인공을 그 끝까지 몰아대면 무슨 마음이 톡 튀어나올지 우리로선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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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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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라 하면 경오,장 아이링,에이미 탄, 중자오정,샨사 정도만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에 장윈 이라는 이름을 또 하나 보탠다. 54년 생의 작가는 루쉰 문학상, 자오수리 문학상, 장편소설상, 소설월보 백화상, 중국작가 다흥잉 우수 작품상, 베이징 문학 우수 작품상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왜 이제사 그녀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서양소설이나 일본 소설에 비해 손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던 탓이라 여기고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그렇기에 더 꼼꼼히 읽어내리라는 마음가짐으로 책과 만났다.

 

 

만남에 비밀이 생기고 만남에 답이 생긴다...

 

소설은 세 사람의 만남 속에 비밀을 만들고 각각의 만남 속에 답을 숨겨 놓기도 했다.

 

시를 사랑하다 못해 스스로를 시인에게 바친 대학생 천샹과 시인 망허 사칭자의 만남은 천샹에게 배신의 아픔과 출생의 비밀을 가진 채 탄생한 아들 샤오찬을 남겼다. 그녀에게 시는 잔인했으며 의도하지 않았던 인생을 받아들이게 만든 악연이었다면,

 

시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인 망허와 산베이에서 만나진 대학원생 예러우의 만남은 그녀가 자궁외 임신으로 죽음으로써 망허가 시인이 아닌 다른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자오산밍으로 살아온 망허는 86년 [청춘에 죽다]라는 시집을 "나의 아내에게 바친다"며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이 시집으로 인해 한 여인의 운명이 또 다시 이그러질 진실이 밝혀지리라곤 그는 알지 못했다.

 

친구의 모든 비극을 곁에서 바라봐야했던 밍추이가 새로 이사할 아파트를 구경갔다가 건설사 사장인 자오산밍을 만나 "시"에 얽힌 그간의 진실을 털어놓는 순간 만남은 답이 되었다. 자신이 직접 행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사칭한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은 일생을 산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당혹하게 만든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사랑은 눈을 닫게 만들고 시는 귀를 막게 만들었다...

 

시는 잔인한 것이었을까. 망허라는 이름의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변해버린 두 여인 천샹과 예러우. 그들에게 그와의 만남을 이어준 시는 참으로 잔인했다. 마치 1980년대, 그 자체적 상실의 비극을 개인에게 덧입힌양 잔혹스럽게 굴고 있지만 문체는 그와 반대로 시냇물마냥 깨끗하고 깔끔하게 우리를 인도한다.  그 극명한 대비로 인해 소설을 잔인하다해야할지 아름답다해야할지 결정짓지 못한 채 독자를 혼돈에 빠뜨리는 [길 위의 시대]는 시의 잔인함을 인정하지만 시를 사랑했던 천샹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자극에 목마르게 만든다.

 

시인이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과 낯선 자극을 원하듯 독자도 낯선 자극에 목마르기 마련인데 불륜이나 치정에 얽힌 이야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낯설 수 있음에 감탄하게 만드는 장윈의 소설은 박범신 작가의 [비즈니스]처럼 한중 동시에 연재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언제나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이지만, 운명 앞에 인간은 참으로 하잘 것 없이 꺾여 버리는 들꽃 같아서 슬프면 슬픈 채로, 힘들면 힘든 채로 견뎌야만 하는 자리를 부여받고 태어난 것 같아 슬프기 그지 없다.

 

천샹에게  사랑은 눈을 닫게 만들고 시는 귀를 막게 만들었으니....참으로 잔인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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