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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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라 하면 경오,장 아이링,에이미 탄, 중자오정,샨사 정도만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에 장윈 이라는 이름을 또 하나 보탠다. 54년 생의 작가는 루쉰 문학상, 자오수리 문학상, 장편소설상, 소설월보 백화상, 중국작가 다흥잉 우수 작품상, 베이징 문학 우수 작품상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왜 이제사 그녀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서양소설이나 일본 소설에 비해 손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던 탓이라 여기고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그렇기에 더 꼼꼼히 읽어내리라는 마음가짐으로 책과 만났다.

 

 

만남에 비밀이 생기고 만남에 답이 생긴다...

 

소설은 세 사람의 만남 속에 비밀을 만들고 각각의 만남 속에 답을 숨겨 놓기도 했다.

 

시를 사랑하다 못해 스스로를 시인에게 바친 대학생 천샹과 시인 망허 사칭자의 만남은 천샹에게 배신의 아픔과 출생의 비밀을 가진 채 탄생한 아들 샤오찬을 남겼다. 그녀에게 시는 잔인했으며 의도하지 않았던 인생을 받아들이게 만든 악연이었다면,

 

시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인 망허와 산베이에서 만나진 대학원생 예러우의 만남은 그녀가 자궁외 임신으로 죽음으로써 망허가 시인이 아닌 다른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자오산밍으로 살아온 망허는 86년 [청춘에 죽다]라는 시집을 "나의 아내에게 바친다"며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이 시집으로 인해 한 여인의 운명이 또 다시 이그러질 진실이 밝혀지리라곤 그는 알지 못했다.

 

친구의 모든 비극을 곁에서 바라봐야했던 밍추이가 새로 이사할 아파트를 구경갔다가 건설사 사장인 자오산밍을 만나 "시"에 얽힌 그간의 진실을 털어놓는 순간 만남은 답이 되었다. 자신이 직접 행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사칭한 누군가에 의해 상처받은 일생을 산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당혹하게 만든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사랑은 눈을 닫게 만들고 시는 귀를 막게 만들었다...

 

시는 잔인한 것이었을까. 망허라는 이름의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변해버린 두 여인 천샹과 예러우. 그들에게 그와의 만남을 이어준 시는 참으로 잔인했다. 마치 1980년대, 그 자체적 상실의 비극을 개인에게 덧입힌양 잔혹스럽게 굴고 있지만 문체는 그와 반대로 시냇물마냥 깨끗하고 깔끔하게 우리를 인도한다.  그 극명한 대비로 인해 소설을 잔인하다해야할지 아름답다해야할지 결정짓지 못한 채 독자를 혼돈에 빠뜨리는 [길 위의 시대]는 시의 잔인함을 인정하지만 시를 사랑했던 천샹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자극에 목마르게 만든다.

 

시인이 항상 새로운 감정을 갈구하고, 신선한 사랑과 낯선 자극을 원하듯 독자도 낯선 자극에 목마르기 마련인데 불륜이나 치정에 얽힌 이야기가 아니어도 충분히 낯설 수 있음에 감탄하게 만드는 장윈의 소설은 박범신 작가의 [비즈니스]처럼 한중 동시에 연재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언제나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 생각 중의 하나이지만, 운명 앞에 인간은 참으로 하잘 것 없이 꺾여 버리는 들꽃 같아서 슬프면 슬픈 채로, 힘들면 힘든 채로 견뎌야만 하는 자리를 부여받고 태어난 것 같아 슬프기 그지 없다.

 

천샹에게  사랑은 눈을 닫게 만들고 시는 귀를 막게 만들었으니....참으로 잔인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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