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정신적인 탁월함만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인간이 동물을 능가하는 점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결정적인 정신적 우월성을 다른 목격자가 있는 데서 나타내는 것은 불손한 행위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복수하라는 식의 도전을 받았다고 느끼게 되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모욕을 줌으로써 복수를 실행에 옮길 기회를 찾게 된다. 즉 상대방은 이것으로써 지성의 영역에서 만인의 평등한 의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따라서 사교계에서는 지위나 재산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정신적인 탁월함은 결코 그런 대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설령 가장 혜택을 받는 경우에도 이것은 무시될 뿐이다. 심한 경우 정신적인 탁월함은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든지, 아니면 이러한 탁월함의 소지자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얼굴을 내밀고 자랑을 해 대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당한다. 따라서 사교계 사람들은 남몰래 어떤 다른 방법으로 이런 인물에게 굴욕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럴 기회를 열심히 찾게 된다. 아무리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탁월함을 나타낸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사디는 <굴리스탄>에서 ‘어리석은 자가 분별 있는 자에 대하여 느끼는 반감은 후자가 전자에 대하여 느끼는 혐오의 100배나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 A.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186쪽~187쪽.

 

 

 

 

 

나는 ‘정신적인 탁월함’이 느껴지는 친구가 있으면 더 친해지고 싶고, 감탄하며 좋아지던데...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정반대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둬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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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7-0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착하지 못할 때에는, 좋은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지 못하니, 슬프게 스스로를 갉아먹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테지요...

페크pek0501 2012-07-08 16:00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입니다. ㅋ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12-07-0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또 한 주가 시작되는 아침도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저는 이제 도서관에 갈 생각입니다.
지인이 뭘 부탁하셔서 그 일을 해야하는데 당분간 어깨랑 눈이 좀 빠질 것 같아요.ㅎㅎ
알바라 생각하고 해달라셔서 기분 좋게 해드릴 생각이에요.
일흔 나이에 그런 열정, 참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존경스러워서요.
정신적 탁월함은 참 쉽지않은 말이네요. 드러내면 오만해 보이고, 드러내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젖어있으면 시나브로 표출되겠지만 그게 그리 쉽나요, 우리같은 범인에게요.ㅎ
그래도 그런 탁월함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분명 있지요. 정신적 탁월함도 관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생각을 새삼 해보는 아침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09 15:1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또 한 주가 시작되고, 또 한 달이 금방 가고 또 여름이 금방 가겠지요. 시간이 마술을 부리는 것만 같고, 그 마술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는 것만 같아요.

오늘 오전은 실내에 있는 여러 화초들을 옮기며 새롭게 배치하고 물을 주는 걸로 시간이 다 가 버렸어요. 일을 줄이려면 화초를 없애야 하는 건데, 저와 십 몇 년을 함께 해 온 세월 때문에 마치 식구처럼 느껴져서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수중식물은 여름엔 시원한 느낌을 주고, 겨울엔 가습기 역할을 해 줘서 좋아요.

알바? ㅋㅋ 그거 좋죠.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알바, 하고 있는데 재밌어요. 나이가 많아져서 잘릴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에요. ㅋㅋ

정신적 탁월함이 관념이 아닌, 실천의 문제다... 으음~~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탁월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에 찬성 찬성 !!!

페크pek0501 2012-07-09 15:12   좋아요 0 | URL
된장 님과 프레이야 님, 두 분 덕분에 무플을 면했다는 것, 에 감사 드려요. ㅋㅋ

된장 님, 감사합니다. 꾸우벅~~
프레이야 님, 감사합니다. 꾸우벅~~

다음엔 쇼펜하우어의 글이 아닌, 제 글을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7-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시하는 행위는 미움받기 딱 좋습니다.쇼펜하우어 성격도 그다지 원만하지는 않았다는데, 아마 여럿 앞에서 아는 체하며 누군가를 무안하게 한 일이 있지 않았을지...그래서 상대방이 발끈한 일이 생겨 이런 글을 남기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페크pek0501 2012-07-11 13: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 노이에자이트 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군요. 저도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러셀도 그렇고 잘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높게 설정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무의식중에라도... 그러니까 이런 사람일수록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 듯해요. 늘 겸손하게 말하는 것부터...

쇼펜하우어의 글을 보면 친구관계를 알 수 있는 대목도 있어요.
"적이 알아서 안 될 것은 친구에게도 말하지 말라."와 같은 글이요.
이 책 재밌어요.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게 만들어요. ㅋ
그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강추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12-07-1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글쎄요. 정신적으로 탁월한 사람을 지켜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나의 절친한 친구라면 잘 모르겠어요. 질투가 날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은 자격지심이 들고 또 바짝 긴장하게 되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왠지 그 사람은 나와의 친교 상황에서도 뭔가 더 고도의 것을 추구하고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면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평등함'의 의지가 샘솟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저러나 저는 정신적으로 탁월하지 못하다는거ㅠ
그런 친구 있어봤으면, 또 그런 사람 되어봤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12-07-16 13:21   좋아요 0 | URL
님도 어떤 부분에선 정신적 탁월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어떤 글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요.
'말없는 수다쟁이'라는 닉네임의 선택도 탁월해요. 말은 없이, 글로 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 속뜻이 멋져요.

이렇게 긴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글 - 남의 글을 읽고 댓글 쓰는 것.
제가 가장 쉽다고 생각하는 글 - 남이 쓴 댓글에 대해 답글을 쓰는 것. ㅋㅋ

비로그인 2012-07-16 1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페크님, 마지막 두 문장에서 아주 크게 웃었어요 ㅋㅋ
아, 정말 요새는 댓글 달기가 무서울 정도에요. 내가 하려는 말 탁 뱉어내는 것보다 남이 하는 말에 어떤 사족으 다는게 더 어려워요, 정말로!! ㅠ

정신적인 탁월함... 제 안에도 분명 도사리고 있겠죠? 광부처럼 그걸 캐내겠어요. 그런데 체력적으로나 정신력적(?)으로나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나랑 같은 소모를 하고서도 짱짱한 사람들 보면 무척 신기하고 그래요. 음, 이것도 나만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잘 파악을 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2-07-16 20:40   좋아요 0 | URL
까르르 까르르~~ 댓글쓰기의 어려움에 공감하시는군요. 정말 어려워요. 잘못 썼다간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아요. 그래서 꼼꼼하게 읽고 써야 해요. 그리고 그 본문에 어울리는 적합한 말을 써야 해요. 그것도 그 댓글을 읽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로... 그러니 어렵죠. 키득키득...

"그런데 체력적으로나 정신력적(?)으로나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나랑 같은 소모를 하고서도 짱짱한 사람들 보면 무척 신기하고 그래요"
- 이것 완전 공감해요. 저는 좀 무리했다 싶으면 금방 몸에서 피곤하다는 신호를 받아요. 목에서 귀까지 아프고 그래요.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요즘도 애쓰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못 올리고 있네요.
그런데 직장에 다니면서도 자주 글을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기가 팍 죽어요. 아주 팍~~.ㅋㅋ

2012-07-18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9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비 

                                  

                                                변영로 작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렴풋이 나는 지난 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빗소리

 

                                                주요한 작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지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볕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두운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혼자 읽기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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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4-12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비 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아요

페크pek0501 2012-04-12 15: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이런 노랫말도 있잖아요. ㅋ

굿바이 2012-04-1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누나!'
우와~ 이런 감성과 관찰력과 표현력은 전생에 뭘 했어야 얻어지는 것이랍니까요!!!!!!
읽고 또 읽어도 좋아요^^

페크pek0501 2012-04-13 14:50   좋아요 0 | URL
그쵸? 그 표현 죽이죠? 저도 그 문장이 제일 좋았어요.
역시 시인은 시인인 거죠. '시인'앞에 '탁월한'이란 말이 생략됐다고 봐요.

굿바이님은 전생에 뭘 했어야 얻어지는가, 하고 썼네요.
저는 잘 쓴 글 보면, 뭘 먹고 살길래 이렇게 잘 쓰는가, 하는데... ㅋㅋ

신지 2012-04-1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처음으로...
공감을 못했습니다 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2-04-14 16:42   좋아요 0 | URL
크하하~~~ 정말 저 이렇게 웃었어요.
으음~~ 제 글엔 대부분 공감을 하시는데, 대작가가가 쓴 시는 공감을 못하겠다고 하시니... 이거 대단한 유머 아닙니까.

아마 신지님의 댓글 중 가장 저를 웃게 만든 댓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ㅋㅋ 좋은 주말 저녁 보내세요.

노이에자이트 2012-04-1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로 주요한...정말 옛날 분들이군요...저런 시는 저도 써보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12-04-14 16:44   좋아요 0 | URL
예, 시 좋지요? 저는 이 시를 읽고나서부터 비만 오면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라는 표현이 떠올라요.
한국의 명시, 라는 책에서 봤어요. 그 책엔 좋은 시가 많답니다. ㅋ
 


<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줍다> 행복하기 위한 마음가짐 4가지



1. 고난을 성장의 기회로 생각하기




어느 날 (그는) 작은 실수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 그의 인생은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뜨거운 창작의욕을 느꼈다. 그 열정으로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을 때 세상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 작품이 바로 400여 년간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는 <돈키호테>, 역경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은 이 작가의 이름은 세르반테스이다.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에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잘 생긴’ 소나무들이 자라난 땅을 파보면 배수가 어렵고 토양이 매우 거친, 말하자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살아남기 어려운 곳에서 자란 소나무가 명품이 되는 것이다. 쉽게 이루는 일보다 힘들게 이루는 일이 더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나 저항이 없으면 발전 가능성도 없다. 공기에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비상할 수 없다. 물에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다.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조차 없다.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에서.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만 보지 말고 성장의 기회로 본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2. 타인을 배려하기




앞을 못 보는 맹인 한 분이 매일 황혼 무렵이 되면 늘 등을 가지고 마을의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당신은 앞을 보지 못하는데 왜 등을 가지고 나가십니까?”하면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이 빛을 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에서.





누가 이런 맹인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위하기보다 남을 위할 때 오히려 행복은 자기의 것이 된다.


3. 해석을 잘 하기




어떤 사업가가 상담가에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주식으로 얼마 전 20만 달러를 잃었습니다. 결국 저는 파산했고 명예를 잃었습니다.”


상담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생각을 그러한 사실에 추가시키지 않는다면 보다 행복해질 수 있어요. 20만 달러를 잃었다는 사실만 받아들이세요. 당신이 파산해서 명예를 잃었다는 것은 당신 생각입니다.”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에서.




삶에서 해석은 아주 중요하다. 때론 우리에겐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불행에 대해 엄살을 떠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부정적인 사고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 습기가 차고 흙탕물이 튀기는 점만 생각한다면 지루한 장마철이 되고 만다. 반대로 뜨거운 햇볕이 없어 덥지 않고 먼지가 없어 깨끗한 점을 생각한다면 행복한 장마철이 될 것이다.


4. 행복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호주 시드니 동쪽 2550km 남태평양 근해의 외딴 섬나라 ‘바누아투’ 공화국. 이 나라는 인구 19만 명에 문맹률 85%, 1인당 국민소득이 2944 달러에 그치는 후진국이다. 그러나 영국의 싱크 탱크인 신경제학재단(NEF)이 최근(2006. 7. 12) 발표한 세계 178개국 가운데 행복지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 차동엽 저, <무지개 원리>에서.




이것만 보더라도 행복은 물질적 만족감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

.......................................................................................




<후기> 뻔한 책 같아도 이 책은 좋았다


나의 경우 <무지개 원리> 같은 자기계발서의 책을 구입하는 일은 드물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동서로부터 선물을 받아서다. 선물을 받고서도 바로 읽지 않았다. 별로 내가 얻을 게 없을 것이라는 선입감 때문에 다른 책들을 끼고 살았다. 읽을 책들이 쌓여 있는데, 이런 책을 읽을 시간이 어딨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그러다가 만약 동서가 내게 “형님, 그 책을 읽으셨어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물을 준 사람의 성의를 헤아려야 했다. 그래서 <무지개 원리>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의 장점은 위에 소개한 글과 같이 유익한 예화가 다양하게 실린 점이다.


<무지개 원리>에 대한 어느 작가의 말 -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생활에 녹아 있는 행복의 법칙들을 경쾌하고 날카롭게 발견해냄으로써 워즈워드의 시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기쁨의 무지개로 뛰게 한다.”(소설가 최인호)


내 경험으론 어느 분야든 20권쯤 읽고 나면 21권째의 책에선 별로 새로운 내용이 없다. 20권의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든 문학이론서든 여성학이든 그 분야의 책을 20권만 읽으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게 아닌 이상 그저 독서광으로서 그 정도만 읽으면 (어디 가서 뽐내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서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그 20권 안에 이 책 <무지개 원리>가 들어가 있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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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산책하다가 ~ >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구별하라


1.

사람의 모습엔 ‘진실’인 것과 진실은 아니지만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P부인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 거리 거리, 골목 골목을 헤매었다. 불쌍한 거지들을 찾아다니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탄일날에 기쁨을 알릴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P부인은 단 하루저녁만이라도 불쌍한 이들을 위해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자기 집을 열어 놓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많이 피우고, 뜨끈한 국과 밥을 장만하고, 포근포근한 융으로 만든 속옷 한 벌씩을 주려고 준비해 놓고는, 거리에 나와 불쌍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문둥이를 만날 때엔 아무리 불쌍하긴 해도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 중에도 비교적 몸이 깨끗한 사람을 붙들고 크리스마스에 자기 집에 오라고 친절히 말해 주었다.


크리스마스날 저녁, P부인의 집엔 절름발이, 곰배팔이, 소경, 늙은 것, 어린 것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P부인은 밤이 깊도록 손님 대접에 최선을 다했다. 거지들은 속옷 한 벌씩을 얻어 입고 맛있는 음식이 잘 차려진, 눈이 부신 식탁에 둘러앉아 후한 대접을 받았다. P부인은 나중에는 사진사를 불러다가 쾅하고 사진까지 찍고 손님들을 보냈다.


P부인은 자기 방으로 올라오는 길로 침대에 엎드려 감사하였다. 이렇게 기쁘고 의의 있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보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만들어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낼 것을 기뻐하며, 천사 같이 평화스럽게 잠들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천사 같은 P부인의 가슴속엔 뜻하지 않은 분노의 불길이 폭발하였다.


그것은 다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기 몸둥이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새 자동차 안에서 엊저녁에 왔던 거지 중에도 제일 보기 흉한 늙은 것 하나가 얼어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태준의 <천사의 분노>라는 단편소설이다. 불쌍한 이들을 돕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던 P부인은 급기야 자신이 아끼던 자동차가 시체로 인해 더럽혀진 것을 보고 가식적이었던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거지들을 집으로 초대해 후한 대접을 했던 P부인의 모습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2.

월나라 왕인 ‘수’에게는 아들 4형제가 있었다. 그리고 ‘예’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 ‘예’는 왕자 넷을 다 죽이고 자신이 왕의 뒤를 잇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 중 세 명의 왕자를 무고(誣告)하여 죽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옳지 않게 여기고, 크게 왕을 헐뜯었다. 왕의 동생인 ‘예’는 또 나머지 한 왕자를 무고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그 왕자는 반드시 자기도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나라 사람들이 ‘예’를 추방하고자 하는 것을 이용하여 왕궁을 에워쌌다. 이에 월왕은 크게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예(자신의 동생)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은 이런 곤란한 일을 당하는구나.”

하였다.


<여씨춘추>에 있는 이야기다. 왕은 어려움을 당하고는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왕은 애초에 ‘예’가 세 명의 왕자를 무고하여 죽인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한 명의 왕자마저 죽이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월왕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때가 있지 않을까.


이처럼 인간에겐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만한 능력이 부족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듯하다. 어쩌면 세상에는 진실’은 숨어 있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만 가득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오류를 범하는 것인지도...


 

3.

건강과 장수에 이르는 비결을 80년 동안 조사한 연구가 있다. 터먼 박사는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소년소녀 1,500명을 선발해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가족관계, 학교교육, 여가활동, 성격 등에 관한 온갖 종류의 귀중한 정보들을 수집해 조사했다. 이 연구는 터먼 박사가 1956년에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후배 연구자들에게 이어져 계속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이 연구의 결과는 건강과 장수에 대한 의외의 진실을 밝혀내면서,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 버렸다.

이 연구의 성과를 담은 책이 하워드 S. 프리드먼, 레슬리 R. 마틴 저, <나는 몇 살까지 살까?>이다.



활달한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 좀 더 위험한 취미를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전반적으로 건강문제에 대해 태평했고 건강을 챙기는 일도 등한시했다. ‘항상 웃고, 활기차게 살면 장수한다’는 통념도 틀렸다는 말이다. - <나는 몇 살까지 살까?>, 85쪽.





건강문제에 대해 태평하여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들과 건강문제에 대해 걱정이 많아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더 장수할까. 이 연구는 적당한 ‘걱정’이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걱정하는 만큼 건강을 위해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놀랍게도 신경증이 건강을 지켜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성실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 이유는 건강한 습관과 건강한 두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한 환경과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었다. 즉 성실한 사람은 더 행복한 결혼생활, 더 좋은 친구관계, 더 건강한 근무환경을 만들 줄 알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인생경로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산) 그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살았던 까닭은, 건강하고 부유하며 현명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장수에 이르는 길에 얻은 부산물이었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 99쪽.


그들 특유의 사회적 관계, 직업, 취미, 습관의 유형이 건강으로 가는 정말 훌륭한 길을 닦아 놓았던 것이다. - <나는 몇 살까지 살까?>, 99쪽.




결과적으로 사려 깊은 계획과 통제력, 성취감, 인내심, 근면함 등이 장수에 도움이 됐고 직업적 성공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오류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첫 번째 오류는 가족력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 질병의 성향이 집안 대대로 유전되기도 하고, 분명히 유전적 원인으로 생기는 병들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가족력으로 심장마비에 걸릴지, 혹은 장수할지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본인의 인생경로가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두 번째 오류는 건강에 관한 ‘조언 목록’이 건강 증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언 목록’이란 의사로부터 받는, ‘적당히 먹기, 금연, 살빼기, 충분한 수면, 운동’ 등의 목록을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연구에 참여한, 장수한 사람들은 그런 목록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목록이 장수에 이르는 보편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이 연구는 결론을 내린다.


한 연구의 기록인 이 책은 건강한 사람은 행복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면서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정확히 짚어 준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

 

누구나 책을 읽을 땐 자신이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다시 말해 저자의 의도대로 읽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같은 책이라도 독자들마다 각각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이 책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 이태준의 단편 <천사의 분노>는 불쌍한 거지들을 돕고 싶어하는 P부인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여씨춘추>에 있는 이야기는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까닭을 알지 못한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는 하나의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상식 중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 준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 이상의 세 권의 책 내용은 그렇게 각각 다르지만 이 책들에서 모두 나는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구분하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것은 중요한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나의 삶에 대입하면? : 내게도 ‘진실’은 아닌데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진실로 착각하고 지나온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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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산책하다가 좋은 글을 줍다> 두 소설의 명문장


어느 날, 첫사랑인 사람으로부터 오랜만에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면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만약 이것을 소설로 쓸 경우, 전화를 받는 사람이 상대의 전화목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면 이건 가짜다. 실지로 그런 대상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아마도 우린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멎을 것처럼 긴장되어 말을 더듬거나 침묵으로 그냥 멍하니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 긴장감은 뜨거운 감정에 비례할 것이다.


경험한 것처럼 쓸 때 리얼하다


만약 길을 가다가 그리워하던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는 어떨까. 갈등 없이 반갑게 달려가서 말을 건넨다면 이건 가짜다. 가짜가 아니라면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연기일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린 아마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글을 잘 쓰려면 직접 경험을 했거나 아니면 경험한 것처럼 쓸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탁월해야 할 것이다. 내가 명작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도저히 경험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혹시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연애소설부터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도 명작의 연애소설을 읽으라고 하고 싶다.



무릇 천지만물을 살피는 데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사람을 보는 데에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살피는 데는 남녀 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한 것이 없다. 18세기 문인 이옥의 말이다.

고미숙 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중에서.




18세기 문인 이옥의 말에 따르면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남녀 간의 정을 살피는 것이 으뜸이란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꼭 해 보아야 할, 중요한 것은 직접 연애를 해 보는 것. 만약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연애에 관한 책이라도 읽어서 남녀 간의 정을 살펴봐야 한다.


소설은 결과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과정을 보여 주는 것


소설에서 “그 두 사람은 이별하였다.”라고만 쓴다면 얼마나 재미없고 싱거운가. 이런 식으로 쓴 글을 읽으면 독자 입장에서 어떤 감응도 일어나지 않으니 아무런 감동도 없다. 다음은 내가 뽑은 명문장이다. 두 연인의 이별장면이다.



니나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내리려 했던 섬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의 시선이었다. 배가 멎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릴 때 그 선객은 슬픔에 가득 찬 얼굴로 섬을 바라보면서도 선장에게 항로를 섬 쪽으로 돌려 달라고 하기 위해서 종을 흔들지 않는다. 눈에 안 보이는 팔이 그를 붙들고 있고 그는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배는 계속해서 가고 섬은 대해의 한가운데에 그냥 떠 있다. 그 섬에는 다시는 어떤 배도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이다.


니나는 갔다.

루이제 린저 저, <생의 한가운데> 중에서.





이별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이별을 꼭 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 풍경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글이다. 이런 글은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그들이 이별했다는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런 세밀한 묘사는 필수다.



1

책 소개



<생의 한가운데>는 린저의 대성공 작품으로서, 특히 그 형식의 참신성에 의해서 매우 찬탄을 받았다. 이 작품 속에서 린저는 이야기, 보고, 일기, 편지, 회상, 여주인공의 창작 등 여러 형식을 서로 섞어서 한 개의 새로운 형식을 낳고 의식적이고 기술적인 문체 구성을 시도하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자이며 남성적인 명성을 지닌 소설가이며 동시에 여성적인 매력으로 풍요하게 장식된 ‘니나 부슈만’이다. 니나를 통해서 린저는 현재의 지성 계급에 속하는 여자가 자기의 의식 세계를 주위와의 분쟁 속에서 얼마나 지킬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였다.
 

루이제 린저 저, <생의 한가운데>,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우리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확 뒤집어 놓는 글은 좋은 글이다. 다음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의심하게 만드는 기회를 주는 글이다.



만약에 신이 나를 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행복 속에서도 선량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현명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솟아온다. 그리고 도대체 현명이 행복이나 선보다 나은가 하는……


그리고 왜 도대체 인간은 고뇌를 통해서만 현명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도대체 원하지도 않는데 현명해져야 하는 것일까?

루이제 린저 저, <생의 한가운데> 중에서.




‘현명함’과 ‘행복’과 ‘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리석게 살더라도 행복한 게 나은가, 불행하더라도 현명한 게 나은가. 꼭 현명해져야만 선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을까. 아는 게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현명함’과 ‘선’, 둘의 가치 중에서 무엇인 먼저인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 있기는 한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은 없는 게 아닐까.


일찍이 R. 타고르는 “자기의 존재에 대하여 끊임없이 놀라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사람이란 매우 가변적이고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십 년 전의 ‘나’와 다르고 또 십 년 뒤의 ‘나’와도 다를 것이다. 현재의 ‘나’만 해도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이 여러 면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성격만 해도 적극적이면서 소극적이고, 사교적이면서 비사교적이고, 활발하면서도 생기가 없고, 명랑하면서도 어두운 일면이 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로 나를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많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였다.



사람은 몸을 굽히고 자기 자신 속을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나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도 참 자기가 아니야. 아마 그 수백 개를 다 합치면 정말 자기일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적어도 믿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이 수많은 자기 중에서 다만 하나만, 미리 정해진 특정의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야.

루이제 린저 저, <생의 한가운데> 중에서.




이승우 저, <생의 이면>이란 소설에도 이와 같은 글이 있다.




나는 내 자신이면서 나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의 단순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나 또한 그 수많은 나 가운데 하나의 나에 불과할 뿐이다.

이승우 저, <생의 이면> 중에서.






2

책 소개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은밀함이다. ...... 이 소설은 자전적이다.

이승우 저, <생의 이면>, 작가의 말 중에서.





다음은 <생의 이면>에서 내가 뽑은 명문장이다.



그 여러 개의 층들은 왜 있는가,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그 수많은 층들이 맡은 역(役)은 무엇인가, 대답은 너무 뻔해서 싱겁다. 그것은 왜곡하기 위해서이다. 감추기 위해서이다. 19의 층은 18의 층을 감춘다. 20의 층은 19의 층을 왜곡한다. 그것들은 서로를 감추고 왜곡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복잡한 기계이다.


나는 내 취사선택되고 검열된 기억 속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내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란 결국 인상(印象)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우 저, <생의 이면> 중에서.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이고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내는 것은 현재의 ‘나’라는 것에 공감한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기억이란 믿을 것이 못 된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5년 전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싸웠던 이유와 그 과정에 대해 말할 경우 두 사람의 말이 각각 다를 수 있다. 또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관해 지금 말하는 내용과 10년 뒤에 말하는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어떤 것을 취사선택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또 (시간이 흐른 뒤엔)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에 불과하다.



왜곡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일 수 있을까? 물 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 그것들을 달이 아니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해라고 말할 것인가, 꽃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것들은 달이 아니지만 달이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 우리의 검열 받은 기억 속의 과거가 그러하다. 그것들은 한낱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 인상을 조작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이승우 저, <생의 이면> 중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일뿐만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물 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과 같이 보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므로 입은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닌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고.


여기에 소개한 <생의 한가운데>와 <생의 이면>은 몇 번 읽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명작소설이다. 이 두 소설은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고, 사색적인 글이 많고, 작가만이 알고 있는 생의 비밀을 포착하여 매력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마치 한 사람이 두 작품을 쓴 것처럼 느껴진다.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두 작가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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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생의 한가운데>와 <생의 이면>이란 두 소설이 공통점이 많아서 놀라며 읽은 기억이 있다. 오랜 전에 읽었던 책들인데, 요즘 다시 꺼내 보고는 좋은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을 소개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나는 좋은 문장에 연필로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이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란 없으며 그저 다양한 변주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이 중복되어 있음을 발견하는데, 그것도 독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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