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됩니다 한밭 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 윤제림, <가정식 백반> -

 

# 1. 어쩔 수 없는 선택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밝아지는 이 날씨를 '차도남'컨셉 커튼 닫기로 촤악 막아버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근데 별로 한 것도 없이 배가 꼬르륵. 요즘은 '취업 우울증'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더욱 싫어졌다. 절친인 동무가 나를 불러주는 애칭, '전단지 할배'를 떠올리며, 서랍 속 전단지를 꺼낸다. 족발,보쌈,냉면,치킨,피자,회,찜닭. 할배모드로 혀를 쯧쯧 차며 어떤 메뉴 컨셉의 부재를 탓한다. 이 컨셉의 명칭을 분명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대신 어떤 이미지를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차려주신 그 잡채, 그 된장찌개, 그 고등어조림, 그 콩나물 무침..' 그러다가 입 밖으로 한 번, "에이씨..우리 동네는 왜 이렇게 가정식 백반 잘 하는 데가 하나도 없는 거야"라며 신경질을 낸다. 어쩔 수 없이 츄리닝 하의를 벗고 청바지를 대충 벨트도 하지 않은 채 입는다. 곱슬머리가 고정시켜 놓은 산만한 머리카락을 감추려고 모자를 쓰고, 눈꼽을 좀 떼고 운동화를 꼬깃꼬깃. 그리고 슬그머니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 1층에 내려갈 때까지 누가 중간에 타면 안돼. 눈을 감는다. "오늘은 삼각 김밥 유통 기한 안 지난 것 남아 있겠지?"

 

 

# 2. 동네에 정겨운 한식당 많나요?  

경기도 B시로 이사온 지도 어느덧 햇수로 7년째다. 그동안 내가 여기에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내가 자주 다녔던 단골 한식집이 대부분 망했다는 것이다. 보통 '자취'를 하는 남자들을 소개팅에서 만나면 그런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럼 요리 잘 하시겠네요"란 진부한 질문에, "뭐 김치볶음밥은 기본이구요. 스테이크도 좀 할 줄 알고, 찌개 종류는 잘 하죠.."이렇게 진부한 대답을 하지만, 사실 그런 자취생이 몇 명이나 되려나. 대부분 부시시한 눈 정리하고 1,500원짜리 '원조김밥' 1 줄과 자제하려 하지만 잘 안되는 탄산음료 1병 드링킹, 아니면 삼각김밥 몇 개에다 한 개만 끓이면 배가 아쉬워하는 라면 두 녀석으로 이렇게 끼니를 채운다. 그것이 질리면 찾는 곳이 동네 가정식 백반집일텐데. 내가 사는 B시의 이 동네는 이제 가정식 백반집이 한 곳 남았다(모두가 '엄마의 맛'이라 칭하며 포스를 자랑하는 한 곳). 사실 한 곳만 남은 것은 아니다. 두 곳 정도가 더 있는데, 이 집은 사실 좀 있으면 망할 것 같다(이유는 정말 맛이 없기 때문에). 사실 좋은 '가정식 백반'을 사 먹기도 시켜 먹기도 '두려운' 요즘이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내 식습관 투정보다는 어떤 사회학적인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연구 더듬이'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  

일단 인구통계학적인 측면을 잠시만 흉내내어 보자면, 내가 살고 있는 B시 S동은 유독 직장인들과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원룸지역이라고 그 특성을 요약할 수 있다. S동은 특히 인천과 서울 가는 방향을 매개하는 지역이라, 버스와 지하철 교통이 나름 잘 발달되어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그런 가운데 주목해 볼 것이 소비의 특성인데, 음식 소비의 경우 주류를 포함할 때 술집과 고깃집이 먹는 장사 가운데 거의 9할을 차지한다. 나머지 1할이 떡볶이와 튀김 파는 노점상, 동네 피자 몇 곳, 횟집 몇 곳, 중국집 몇 곳 정도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다.  

가정식 백반 소비에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면, 가정식 백반집이 요즘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 종종 발견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서구의 패스트푸드에 질린 직장인 등등이 엄마의 솜씨를 그리워한다는 둥으로 요약되어, 그 판매의 변이 실렸는데, 사실 그것은 '현 시기의' 가정식 백반집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치우쳤다. 내가 우려하는 건 바로 올해 서른 살이 된 나. 그리고 나를 포함한 1981년생, 1982년생 00학번, 01학번 세대들이 한 40대 정도나 50대가 되었을 때 과연 어머니의 손맛을 경험할 수 있는 한정식집을 동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을까의 문제다.  

일단 '우리 세대'라고 거칠게 요약하긴 부담스럽지만, 직장 생활 혹은 학교 생활로 인한 나름의 '식습관의 사회학적 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삼각김밥이나 편의점 도시락, 그리고 한솥도시락 등의 매출이 점점 증가한다는 기사를 보는 가운데, 사람들의 식습관을 보면 매 끼니가 밥과 국이어야 한다는 의식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아/점'이라든지, '점/저'문화의 발달로  그 문화를 구성하는 하루의 '맛난 한 끼'라는 컨셉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또 동네마다 주목해서 보는 건 각종 반찬가게의 성행이다. 물론 그렇게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내가 속한 S동은 직장인들이 퇴근할 때가 되면 그야말로 난리다. 아주머니들은 반찬을 담아주느라 정신이 없고, 손님들은 "아니, 이 집 반찬 여러개 맛있게 잘하더니..왜이리 메뉴 개발을 안 해.."라며 타박을 주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싸다는 소비 기대의 효용성이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 3. 한식의 세계화? '한식의 서민화'라는 또 다른 아이러니의 발생 

다만 미래의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한식은 나름의 이중적인 문화적 범주로 소비될 것 같다. 하나는 최근 국가에서도 밀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같은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고안해내는 VIP식 한식 메뉴, 그것이 갖는 미학적 쾌감과 상품성 등. 다른 하나는 여전히 남아 있는 친근하고 이웃같고 집에서 먹는 느낌이 든다는 '한식의 서민화'다. 그런데 사실 '한식의 서민화'라는 것은 모순이 될 수 있는 표현이다. 원래 한식은 우리와 같은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는 최근 문화부장관이 호텔에서 몇 만 원짜리 김치찌게,된장찌게를 누가 먹겠냐로 시작한 한식 폄하를 곱씹어보면서 한식의 세계화라고 하는 담론에 가려진 '한식의 빈곤'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담론이 포함시키고 있는 것, 그리고 배제시키고 있는 것은 무얼까? 이런 맥락에서 '한식의 서민화'라는 이 모순된 용어는 아마 우리 세대가 4,50대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쉽게 말해서 한식이 정말 우리가 예전처럼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그리고 가족과 함께 먹는 그 맛으로 보존가능한 식문화로 남아 있을까? 우리는 이제 그런 식문화를 느끼려면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파는 여러가지 잡다한 유사 메뉴로 그 느낌을 경험하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과연 우리 세대에 우리의 밥을 챙겨줄 몇 천원짜리 가정식 백반집 아저씨, 아줌마가 탄생할까? 나는 '한식의 세계화'라는 담론이 갖는 저 국가 브랜드의 욕망 속에서 정작 우리 동네의 현실은 어떤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난제 하나. "그렇다면 당신이 손수 만들어 먹으면 될 것 아니요?"라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요즘 내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거시적인 차원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요즘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이상기후 현상 등 외부 조건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음식 재료값의 들쑥날쑥모드다. 관련기사들을 찾아보면 이상기후로 인해 신선채소값이 올라 그것을 대용할 간편메뉴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은 우리도 일상을 통해 체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직장과 여가의 문제다. 직장 내 노동 강도와 그것으로 인해 과중되는 스트레스, 또 업무 외 행동의 부담으로 인해 미래 세대가 앞으로 직접 요리를 하여 먹을 시간의 보장 여부, 그리고 그것에 신경을 쓸 여부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으로도 고민해 볼 문제다. 여기에는 "아. 넌 여자애가 요리도 못하냐", "야, 요새 요리하는 것에 남자/여자 구분이 어디 있냐"라는 갈등으로 소비되는 심리적 피로도도 함께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지금은 잘 찾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예전부터 "어휴,..저 복잡한 메뉴를 어떻게 다 해 먹어"라고 생각한 음식메뉴들이 인스턴트 형태로 대형마트에 다양한 메뉴로 더 진열되어 소비자를 유혹할 가능성은 커진다.    

 '지금' 가정식 백반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들에서 나는 미래의 불안함을 느낀다. 이런 불안함을 지적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이런 생각하다가 배고픔을 잊을 수도 있고 ㅋ) 『음식인문학』(주영하, 휴머니스트,2011)이란 책이 나온 것도 어떤 측면에서 이런 지적 고민이 더욱 더 증가하리란 걸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아직은 덜 여문 이야기. 해석은 각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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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5-05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호텔에서 김치찌개를 팔면 격이 떨어진다네요...
한식세계화?...그저 꿈은 아닐지

얼그레이효과 2011-05-05 23:45   좋아요 0 | URL
어린이날 잘 보내셨는지요?^^ 문화부장관 수준이 참...그렇죠. 어떻게하면 팔아먹을까 마인드..그래서 인디영화도 '관변'인디영화로 만들려던 속셈도 있었고 말이죠...그건 아마 인촌이 형님 시기였죠.에효.

비로그인 2011-05-06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식 백반'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도 궁금해지는군요. 어쩐지 억지로 만들어진 말 같아서요. '가정식'이라고 했으니 외식문화가 발달한 뒤일 테고(집에서 먹는 것처럼 해주겠다!) '백반'이라면 예전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명절에나 구경할 수 있는 나름 '귀한' 상차림이었을 텐데...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인지 가끔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이란 걸 시켜 먹을 때면 '뭐야, 우리집은 평균 가정도 못 되는거야?' 하고 자괴감을 느낄 때가 있답니다 ㅋㅋ^^

얼그레이효과 2011-05-06 09:38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용어와 한국적 맥락. 그런 것도 고민해봐야겠군요. 고맙습니다!^^

pjy 2011-05-0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 불러주든 간에 그 백반집이 제발 멀쩡하게 유지되면 좋겠습니다만,,이미 다니던 곳들은 대부분은 없어졌습니다요~
뉴스에서 말하는 건 다 딴동네 이야기입니다 ㅡ,.ㅡ;
요새는 백반집 가야되는 상황에 몰리면 기사식당을 좀 알아보고 댕깁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06 13:59   좋아요 0 | URL
기사식당류 김치찌개...기사식당류 부대찌개의 그 맛이란...#_# pjy님도 저랑 유사한 경험을 하셨군요.

pjy 2011-05-06 15:57   좋아요 0 | URL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네 뭐네해도~ 가장 손쉽게 1인분에 고기주는곳은 그곳뿐ㅋㅋ 맛있는! 기사식당 엄청 좋아해요^^

2011-05-06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6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11-05-0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기사식당의 계급성'이랄까? 그런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던 중이었는데요. ^^

얼그레이효과 2011-05-09 11:05   좋아요 0 | URL
앗 바람구두님 반갑습니다!^^ 기사식당의 계급성. 흥미로운데요~ 즐찾한 바람구두님의 블로그 들어갔는데, 바람구두님의 '아카이브' 구축 능력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문화망명지를 처음 알고 나서.."와..어쩜 이렇게 정리를 잘 하시나.."감탄했었는데요..혹 노트 필기 잘하는 친구의 노트를 훔쳐보며 감탄한 기분이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