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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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표지도 마찬가지다. 헌데 가끔 이런 것을 무시하고 읽는 경우가 많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마나님의 280일이란 단어에서 임신을 떠올렸어야 하고, 표지 그림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데도 읽기 전에 놓쳤다. 요즘 많은 책들이 나오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 정보를 얻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가끔은 제목을 오독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소설 속 공생원의 행동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닐까 멋대로 짐작해본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읽으면서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읽은 후 표지가 나타내고자 한 의도를 알게 된 것이다. 

시대는 중종반정 후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단지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현대인과 별 차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현대까지 이어져오는 가문의 영광과 관련된 일은 생각할 바가 많다. 그 일이 무엇이냐고? 공생원 아버지 공령이 관료가 된 형님 공희달에게 빌붙어 사는 것이다. 

잘 사는 형님에게 좀 신세지는 것이 무엇 대단한 일이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구조적으로 한 가문에 정착된다면 다른 문제다. 조선시대 양반은 반드시 과거에 합격해야만 했다. 가문에 한 명도 합격자가 없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을 위해 온 가족이 한 사람이 합격하기를 바라고 뒷바라지를 한다. 한 번 합격하면 가문의 영광인 동시에 가족들이 이전에 고생한 것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 있다. 가문의 영광이란 무형의 것에는 문제가 없는데 보상이란 부분이 늘 문제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관료가 받을 수 있는 녹봉의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지 너무 뻔한 것 아닌가. 요즘 누구네 형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덕을 보려는 가족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비껴나갔는데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공생원 마나님의 임신 기간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다. 공생원과 최 씨 마님의 결혼이 어떤 의도에서 이루어졌고, 이 둘 사이가 어떠했는지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사실을 말하고, 마나님의 아들 얻기를 위한 지극한 정성을 풀어놓는다. 단지 이런 이야기라면 단편으로 충분했을 텐데 여기에 한 의생의 말에서 생긴 의심이 가슴 한 곳에 똬리를 틀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한마디로 한 소심한 남편의 의처증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공생원이 결혼 이야기를 듣고 최 씨 셋째 딸을 보러갔을 때 느낀 실망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래에도 나오듯이 셋째 딸은 미모가 출중해야 하는데 늘 예외는 있다. 늘 시험에서 낙방하는 그가 호구지책이자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얻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결혼이다. 그런데 최 씨 마나님이 보통이 아니다. 공생원보다 덩치 큰 것과 말과 행동이 드센 것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늘 마나님에게 잡혀 산다. 공생원이자 공처가다. 이런 그에게도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을 수 없다. 서의원이 그에게 심어준 의심이 마나님 뱃속 아기처럼 무럭무럭 자란다.

의처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같이 살아온 동안에 그가 느낀 불안과 부러움과 질투와 사랑이 뒤섞여 있다. 자신은 부르지 못하는 ‘송아’란 이름을 부른다거나 자신과 다른 멋진 외모를 가졌다거나 아내와 자주 만난다거나 하는 등의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의심을 자기 주변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 바로 이 소설이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넘어갈 때마다 용의자는 지워지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뭐 그 덕분에 그가 마나님을 발길질 한 번에 나뒹굴게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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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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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 앉아 있던 그 앞에 한 여자가 말도 없이 앉는다. 그리고 말한다. “날...... 좀 데려다줘요.” 황당한 상황이다. 이렇게 두 남녀 준성과 서진은 만난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은 한 해커와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광고판에서 살던 한 여자 모델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순간만 해도 준성은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랐고,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해커와 광고 모델의 만남은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준성에게 필요가 아닌 순간의 욕망에 지배당해 상품을 사는 서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업들의 이익을 부수기 위해 프로그램 크랙을 만들고 배포하는 그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 속에 빠져 사는 그녀를 만난 것은 어쩌면 극과 극은 통한다는 통설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아니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가 그의 욕망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욕망만으로 그가 그녀의 삶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거짓과 기만 속에서 자란다. 이미지가 만들어낸 환상이 사람을 현혹시키고, 필요가 아닌 욕망이 소비를 촉진시킨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보다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에 더 신경을 쓰고, 그 때문에 자신을 점점 더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이 자신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현명하다는 말이나 탁원한 선택이란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넘어가면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그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에 멸시의 대상이 되지 않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서진이 홈쇼핑 속옷 모델로 벗고 돌아다닐 때 그녀의 탁월한 미모가 한 몫을 했지만 시청자들에겐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그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살아 움직이는 마네킹만 존재한다. 성공을 위해 자신을 던지지만 돌아온 것은 언제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뿐이다. 그 일상의 끝에 만난 사람이 바로 준성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바라는 성공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가 지향하는 삶은 화려한 소비와 자신을 우러르 볼 사람을 바라는 그녀의 것과 반대편에 있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공허와 욕망에서 비롯한 결핍들을 그는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서진의 욕망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받아들일 뿐이다. 그녀의 거짓말을 알게 되어도, 그녀의 일탈을 알게 되어도, 뒤틀린 욕망을 알아도 말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도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그녀 속에 자리한 욕망이 텅 비거나 공허가 채워지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와 욕망 뒤에는 순수함이 있다. 이 순수함은 그녀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트릴 뿐이다. 고가품으로 치장하고 브랜드가 아니면 쳐다보지 않던 그녀가 영화판에서 받은 감동은 그 순수를 아직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화려한 광고 세계 속에서 볼 수 없던 투박함과 진솔함은 강한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늘 유혹은 그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기 전까지.

준성의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녀가 사채를 이용해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들을 사는 것이나 단숨에 인기를 얻기 위해 PD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다른 두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이 괴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춰진 모습은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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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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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놓고 본다면 무협소설이 생각난다. 처음에 끌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김탁환임을 알게 되면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했다. 내가 읽은 그의 소설 대부분이 시대물임을 생각하면서 책 소개를 읽었다.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조선 마지막 호랑이와 개마고원 포수의 7년에 걸친 추격전’이란 문구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이제는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호랑이다. 과연 그들이 어떻게 멸종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호기심을 채워줄 소설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했다. 그리고 이전에 시베리아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 시대 말기다. 주인공은 개마고원 포수 산과 백두산 호랑이 흰머리다. 이 둘은 악연으로 이어져있다. 흰머리의 새끼들이 산의 아버지 일행 때문에 죽었고, 이 때문에 흰머리에게 산의 아버지가 죽고 동생 수는 팔 하나를 잃었다. 가족을 잃은 산이 복수를 위해 흰머리를 좇은 것이 7년이다. 그 사이에 개마고원 포수로서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바란 것은 단 하나다. 바로 흰머리를 쏘아 죽이는 것이다. 흰머리와의 대결에서 패해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냥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그가 나아간 곳은 바로 흰머리가 출몰하는 개마고원이다.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산과 흰머리의 숙명적인 대결과 산과 주홍의 절실하고 뜨거운 사랑이다. 흰머리와의 대결이 서로 죽이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주홍과의 사랑은 추운 개마고원의 찬바람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뜨겁게 피어난 것이다. 가장 중요한 흰머리와의 추격전은 읽기만 해도 추운 개마고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흰머리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산과 해수격멸대란 조직을 이끌고 온 히데오 대장의 충돌은 서로 다른 욕망의 충돌이다. 복수하고자 하지만 너무나도 신중한 산과 만용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자연과 흰머리에 무지한 히데오. 여기에 호랑이 생존에 대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주홍의 등장으로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사랑의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그 추운 개마고원에서 조선 호랑이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과 살리고자 하는 사람의 충돌 속에서 피어날 사랑을 그들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 독자인 우리는 시작과 동시에 미리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들의 충돌은 7년간 복수만 생각한 남자를 생각할 때 너무나도 무모하고 순진하다. 하지만 이 둘은 홀로 살아간다는 외로움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호랑이의 혼을 지닌 채 흰머리를 사냥하러 다니는 산에게 그미가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산에게도 그녀의 무모할 정도로 순진한 행동과 열정이 차갑게 식은 가슴 한 곳을 데워줬을 것이다.

추운 겨울 개마고원을 헤집고 다니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루할 때도 잠시 나타나지만 욕망과 집념과 집착과 순수함이 충동하면서 만들어내는 인간들의 불협화음이 너무나도 간단하고 분명한 산과 흰머리의 대결로 가볍게 날아간다. 자연에 대해, 흰머리에 대해 잘 모른 사람들이 단순히 호기와 만용으로 다가갈 때 산의 경고는 무시되고, 그 결과는 참혹하다. 가끔 이런 맹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을 때 자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이런 설정은 산과 흰머리의 대결을 돋보여주는 동시에 당연히 동물보다 사람이 똑똑하다는 오만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소설 중반까지 나를 분노하게 만든 인물은 다름 아닌 주홍이다. 산의 복수를 위한 집념을 조선호랑이의 생존이라는 자신의 욕망(?)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흰머리에게 공격받아 죽어가는 현실에서 그녀의 논리는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져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맹수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살인은 자기방어에서 비롯한 것이 대부분이다. 읽는 순간 울컥했던 감정들이 이성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산에 대한 감정이입이 심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소설들에서 철부지 여자들에서 비롯한 수많은 죽음을 연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잘 읽히는 소설이다. 간결한 문장과 개마고원의 깊고 웅장한 풍경 묘사는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산과 함께 밀림을 헤치며 흰머리를 좇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풍경은 아쉽게도 외국 영화에서 본 것들이다. 제대로 한국의 밀림을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이야기지만 그 시대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삶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직 산과 흰머리의 대결만이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대결이 가끔 무협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그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단 일합의 승부 때문이다. 첫발이 실패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포수의 운명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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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나이트 Nobless Club 23
김이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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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김이환의 장편 소설을 읽었다. 김이환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이 어느 카페에서 그의 소설 중 하나(아마도 <양말 줍는 소년>)를 극찬한 것을 본 순간이다. 그런데 그의 단편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그런 극찬을 받을 만한가 하는 의문이었다. 몇 권의 장편을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의문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의문만 품고 있을 수는 없다. 노블레스 클럽의 스물세 번째로 나온 이번 <뱀파이어 나이트>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 재미는 있지만 완성도는 부족하다. 독자를 압도하는 매력이 없어 신나게 읽을지는 모르지만 아! 하는 감탄사를 터트릴 정도는 아니다. 그가 설정한 세계와 인물 등이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뱀파이어가 외계인이란 설정은 이미 영화(이놈의 저질 기억력은 늘 제때 그것을 떠올려주지 못한다) 속에서 한 번 등장한 적이 있고, 뱀파이어 여왕의 강력한 힘과 영향력과 두려움은 일본 판타지 소설 <뱀파이어 헌터 D>의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그럼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나 오시이 마모루의 <블러드 라스트 뱀파이어> 같은 깊이 있는 철학이나 세계관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경제를 지배한다는 조금은 비슷한 세계를 보여주는 홍정훈의 <월야환담> 시리즈보다도 오락성이 더 떨어진다. 그렇다면 아주 졸작인가? 아니다.

앞에서 이 작품에 대해 부족한 점을 널어놓았는데 분명히 장점이 있다. 먼저 연작 소설 형태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중심으로 짧게 마무리하면서 이야기를 각각 다른 방식과 분위기로 이어간다. 이 세계에 대한 설정을 앞에서 조금 내려 보았는데 이것은 다른 걸작 판타지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지 아주 허술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장르문학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등장인물의 개성이다. 맥스 리펜키와 그의 몸속에 심어진 인공지능나노로봇 데이비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뭐 이런 것들이 있나 하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다. 특히 맥스가 데이비드와의 대화를 중얼거릴 때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눈에 잡힐 듯하다. 이 둘의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약간 과격하고 잔인할 수 있는 장면에 웃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뱀파이어 소설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잘 쓴 뱀파이어 소설이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영화의 이미지가 강할 때 보아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첫 권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또한 영화로 먼저 보면서 반감되었다. 아마 그때 헌책방에서 뱀파이어 연대기 두 번째 시리즈인 <뱀파이어 레스타>를 구해 읽지 않았다면 아주 좋은 작가 한 명을 놓쳤을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그녀가 기독교에 빠지면서 그녀가 창조한 멋진 캐릭터들이 이제 사라진 것은 열렬한 팬으로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쪽으로 흘러갔는데 이 소설에서 그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를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지만 한 번도 장편을 읽지 않은 작가의 신작과 뱀파이어 이야기란 것 때문에 읽었다. 그가 보여준 상상력이 기존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 것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독창적인 이야기(이 부분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무겁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책이 지겨울 때 가볍게 펼쳐들고 단숨에 읽기엔 좋은 책이다. 물론 이런 장르문학을 싫어한다면 다른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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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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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당히 편협한 독서 취향을 지녔다. 자서전이라고 읽은 몇 권은 대부분이 자기 성공담을 다룬 것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성공담이 신나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그들을 보여주기보다 한편의 시간 때우기 소설로 다가왔다. 대필 작가들이 쓴 글이나 깊이 있는 이야기가 빠진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선택이 나빴거나 그 당시 다른 읽을거리가 없었던 탓도 있다. 아주 정말 가끔 읽는 평전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일 때가 있지만 말이다. 

러셀 베이커 자서전을 선택한 것은 한 독자의 “자서전이란 이런 것”이란 글 때문이다.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좀처럼 읽지 않던 나에게 이 문장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1982년 퓰리처상 평전/자서전 부분을 수상했다는 이력은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낯선 작가의 글이다 보니 혹시 지루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펼쳐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러셀 베이커에게 빨려 들어간 것이다. 

처음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맹모삼천지교나 한국 엄마들이 떠올랐다. 자식을 성공과 공부를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을 위해 생활비를 쪼개 최고의 선물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그의 기억과 추억은 냉정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미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지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고부간의 갈등, 생활고, 연애, 자식의 성장과 성공 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다시 최근 최인호 씨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고 추억한 글들을 연상시켜주었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아버지가 빨리 죽어 어머니가 힘겹게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과 작가가 된 것이다. 

시간적으로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20대 중반까지 다룬다.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만 그의 과거를 좇아가다보면 그 시대의 사회 모습을 만날 수밖에 없다. 특히 공황기에 그들의 겪은 고통과 힘겨운 상황은 그 시대가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과 백 년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현재와 달라 굉장히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의 풍요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1차 대전을 비롯한 전쟁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것은 현재 미국인들이 외국에서 벌어진 전쟁을 보는 시선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현재의 우리도 그런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말이다.

가난은 한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게 만들고, 한 곳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할머니 곁을 떠나게 만들고, 외삼촌에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그곳마저 떠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사는 친한 친구와 헤어지게 만들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경제적 상황적 악화가 그들이 혐오하는 삶 속으로 밀어 넣지만 역시 어머니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한다. 비록 그 시대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시대적 한계는 러셀과 동생 도리스의 행동과 성격을 대비해도 금방 드러난다. 적극성이나 사업 수단이 더 뛰어난 도리스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직업 선택에 제한이 생기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이다. 물론 이것을 검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겪은 실패와 불안과 두려움 등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적극성을 키우려고 아들을 신문팔이로 만들거나 좋은 성적을 위해 옆에 붙어 공부를 시키거나 좋은 친구를 만나라고 하는 행동들이 우리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신문팔이의 경우는 조금 별개지만. 이것은 아마 적극성 외에 경제적인 이유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모의 미래가 아이들의 과거”란 말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다. 이것은 앞부분에 나오는데 어릴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성장이란 제목처럼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그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유치하고 비열한 행동들은 아이들이 단순히 과거의 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소년의 성장기로도 읽을 수 있지만 그 시대를 들여다보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빠르게 읽으면서 한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양한 주제들과 역사로 이어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멋진 자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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